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49)
제 666화
165화. 충격 이후(4)
* * *
1803년 3월 4일, 세인들이 ‘대격전’이라 이름 붙인 검의 정원 전투가 끝나고 약 열흘이 흘렀다.
전 세계는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기간 5년의 공식 휴전 협정을 맺고 채 3년이 되지 않았건만, 어떤 예고도 없이 거대 세력들이 하룻밤 사이에 휴페스터에 총공세를 퍼부은 건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일이다.
그 전투의 실질적인 승자가 룬칸델이라는 것과, 룬칸델이 혼돈과 결탁해 휴페스터 전체를 오염시키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세계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룬칸델가 가주 로사 룬칸델, 시론 룬칸델이 흑해에서 전사했음을 밝혀. 반신을 전사시킨 존재는 흑해의 왕이며, 검황성전의 글리엑과 같은 존재가 몇이나 더 남았음을 암시…….)
(흑표범, 룬칸델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전대 가주의 유지를 이어 흑해의 왕들을 토벌하겠다고 밝히다. 그러나 그전에 전 세계를 통일하는 것이 우선 과제임을 매우 강조.)
(진 룬칸델이 지플, 킨젤로와 동맹을 맺고 반역을 시도하다. 로사 룬칸델은 그의 기수 자격을 박탈하고, 가문의 적으로 규정을…….)
(격동하는 세계, 천 년 전쟁이 끝나는가?)
연일 특보가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휴페스터발 소식지들이 활발했다.
온통 로사를 찬양하고, 진을 역적으로 몰아붙이는 내용이었으나 진은 오히려 그런 흑색선전과 선동에 안도감을 느꼈다.
“로사가 당장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없앨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요. 선동을 한다는 건 곧 여론을 의식한다는 의미이니.”
진의 말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로사는 전 세계의 인간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 없는 것 같군. 하긴, 통치할 대상이 없다면 세계의 유일한 패자가 되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
“통치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제물을 수급하기 위해 선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퀴칸텔 님. 그날 그 거대한 흑선과 혼돈의 힘을 운용할 때, 어쩌면 칼론 주민 전체가 제물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여자는 룬칸델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멸망한 세상의 통치자라…… 그럼 제물, 인간을 모으려는 건. 우리와 지플, 킨젤로와의 다음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인가?”
“그것도 이유겠지만…….”
진의 시선이 소식지에 닿았다. ‘로사가 시론의 유지를 잇겠다’는 내용에.
“남은 흑해의 왕들. 로사가 그들을 토벌하겠다고 말한 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것들이야말로 지금의 룬칸델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일 테니 말이죠.”
흑해 5왕.
진은 그 숫자를 정확히 알지 못하나, 글리엑전 이후 그들이 복수라는 사실을 줄곧 인지해왔다. 시론이 흑해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들 때문이리라는 예상과 함께.
“흑해의 왕들이 예언자와 한패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예언자의 정체가 정말 마녀인지, 최초의 혼돈인 마녀와 흑해의 왕들이 어떤 관계인지를 확인해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순간, 제트와 길리가 회의실을 찾았다.
“도련님, 지플과 킨젤로의 함선들이 영토로 들어섰습니다.”
오후 세 시, 양대 세력이 회담을 위해 티칸을 찾아온 것이다.
“놈들에게 쓸 만한 정보가 있기를 기대해야겠군. 약속은 지켰나?”
“예, 나리. 두 세력 다 제1기함 한 대씩만 가지고 왔습니다요. 무리한 진입 요구도 없고, 해상 착륙해서 소수만 입국하고 있고요. 지플 측 총 네 명, 킨젤로 측 총 세 명. 다들 똥줄이 타는 모양입니다요, 정말 호위도 없이 그 적은 수로 우리 본진을 찾아올 줄이야.”
불과 3년 전만 해도 양대 세력의 핵심 인물 서넛 정도라면, 그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티칸을 치려면 많은 걸 걸어야만 했다. 티칸의 전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급하기는 할 테지.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저택을 나선 진과 일행은 티칸 1층으로 향했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각 세력 수뇌부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진은 그들을 보자마자 실망한 듯 인상을 구겼다.
“어째서 그대들이 왔소? 분명 수장끼리 이야기를 하자고 전달하였을 텐데.”
지플 측의 네 사람이 로브를 벗었다.
옥타비아, 헤도, 산드라, 그리고 진이 이번 생에서는 처음 보는 인물 한 사람.
‘로닐 지플이라…….’
켈리악의 첫째 아들.
그는 전생에 지플 2세대 중 베라딘 다음가는 재능의 소유자라 알려진 난 인물이었고, 호사가들은 그가 베라딘과 루나에게 가려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인물로 분류하고는 했었다.
‘옥타비아처럼 지플의 숨은 권력자였다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로닐은 숨은 권력자가 아니라 ‘미지의 전력’에 더 가까웠다.
전생의 진은 몰랐으나, 그때도 각 가문의 수뇌들은 로닐을 요주의 인물로 판단하고 있었으니까.
일부러 빈정거리는 와중, 진은 묘하게 조용한 산드라를 잠시 의식했다. 산드라는 평소와 달리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사를 잘 구분하게 된 것인가? 설마 지플의 어떤 실험에 노출된 결과는 아닐 테지.’
로닐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께서 병환이 깊어 내가 대신 1마탑의 대리 자격으로 오게 되었소. 룬칸델의 12기수께서는 부디 양해 바라오.”
먼저 나서긴 했으나 로닐이 옥타비아보다 위계가 높지는 않았다. 진은 그가 옥타비아 대신 민망한 상황을 감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보았다.
“진 경, 우린 단장님이 직접! 왔어요, 하하. 칭찬을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드르륵, 마르지엘라가 휠체어를 끌며 말했다. 그 말대로 킨젤로는 오르갈과 비슈켈, 마르지엘라가 찾아왔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오르갈과 눈을 맞췄다.
“꽤 의기양양한 얼굴이로군, 단장. 내게 받을 빚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였나? 그날 검의 정원에서 너를 도운 건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 특별히 대가를 받을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런데, 진 룬칸델. 보기보다 섬세한 구석이 있군. 지플이 내 정체를 모를 것 같아서 굳이 단장이라 호칭한 건가?”
“그럴 리가. 당신의 역사를 조작한 장본인들이, 오르갈이라는 이름을 모를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만한 존재라면, 어쩌면 지플 스스로도 자신들이 오르갈의 역사를 조작한 사실을 모를 수도 있겠군요.
-지플이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뮤론에게까지 그 정보가 내려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요.
단장의 정체를 처음 알게 된 직후 동료들과 나눈 대화.
진은 그때부터 줄곧 궁금했다. 지플은 과연 오르갈에 행한 역사 조작을 인지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의 역사를 조작한 이유가 무엇인지.
진의 입장에선 기묘한 풍경이었다.
역사를 조작한 자와 조작당한 이들이 한자리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킨젤로와 지플은 내가 예비 기수였던 시절 꽤 친한 사이이지 않았나.”
“네가 안드레이 지플을 죽이고 초기 마신석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진, 지플이 내 이름을 알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네가 알게 된 시점보다 조금 늦었지.”
“천하의 지플이 정체도 모르는 자와 그토록 오래 거래를 해왔다는 이야기로군.”
“서로 필요한 걸 줄 수 있으면 그만일 뿐이지. 그런데, 우리가 오자마자 회담의 목적과 벗어난 이야기를 주제로 삼을 셈인가?”
회담의 목적은 당연히 임시 동맹이다. 로사의 룬칸델을 상대하기 위한.
“글쎄, 과연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일까?”
진이 미소를 지었다.
“오르갈, 아마 당신은 역사 조작에서 풀려날수록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될 테지. 그렇다면 로사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지플이 당신의 역사 조작을 해제할 때가 아닌가 싶은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그 말에 결국 내내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옥타비아가 미간을 좁혔다.
“12기수, 지나친 억측이로군. 우린 그의 역사를 조작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회담을 하자고 불러놓고는, 지나치게 예의가 없다는 생각은 안 드나?”
“내가 수련을 끝내고 가문으로 돌아가자마자, 그에 맞춰 휴전 협정을 깬 이들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오. 이번에 기대했던 바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전력만 잔뜩 잃어 괴로운 마음은 이해하겠소, 망령대장.”
“하, 감히…….”
옥타비아는 애초에 진의 일방적인 통보부터 불쾌하던 차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지플이 아무리 타격을 입었다 할지라도, 티칸이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런 푸대접이라니. 평소 옥타비아와 카둔의 성질머리를(진을 상대할 때면 특히 요상해지는) 한심하게 여기는 헤도조차 이번엔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이해와 별개로 말려야만 했다.
그래서 헤도와 로닐이 나서려는 찰나, 오르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힘을 되찾게 만든 후 나를 이용해 로사를 처리한다라……. 꽤 재미있는 생각이로군. 그런데, 진.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오르갈이 지플 측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흐릿해 잘 보이지 않으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의 지플은 내 역사를 조작한 적이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나를 묶은 건 과거의 지플이고, 저들은 그들이 펼친 마법에 달리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 그 방법은 접어두는 게 좋겠군.”
“권한이 없다?”
“그래. 지금의 지플도 차라리 날 풀어주고 싶을 거다. 흑해의 왕이나 다름없는 로사 룬칸델과 달리, 나는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부류니까.”
새로운 정보였다.
옥타비아는 치욕적인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진이 로닐과 눈을 맞췄다.
“사실이오?”
사실일 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플과 킨젤로가 먼저 만나 그 방법은 안 된다고 말을 맞췄든, 아니면 지플이 가능한 사실을 숨겼든.
“……그렇습니다, 12기수. 그러니 더는 망령대장을 자극하지 않으면 좋겠군요. 망령대장의 말씀대로 대책을 세우고자 만난 것이지 않습니까?”
대신 진은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뭐, 내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소. 미안하오, 먼 길 오셨는데. 안으로 드십시다,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12기수.”
“단, 먼저 알릴 것이 하나 있소. 우리 모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다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이 천천히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회담은, 아즈 밀의 계약자가 함께할 것이오. 아즈 밀의 계약자가 직접 모든 대화를 검열할 것이며, 모든 내용은 기록될 것이오.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회담은 없던 걸로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