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61)
제 666화
168화. 탈출, 슈리의 수난
문 너머는 무덤으로 들어섰던 동굴 안이 아니라, 칼드란 설원의 어느 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진은,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또다시 급박한 상황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확인해야만 했다.
‘예상은 했지만, 바깥은 역시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군.’
칼드란 설원의 풍경이 변했다.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눈밭은 완전히 검게 물들었고, 답답한 회색으로 휘몰아치던 눈보라 역시 칠흑처럼 변해 온통 혼돈을 품고 있었다.
‘설원 전체가 혼돈에 물든 것인가.’
저 멀리 시야가 닿는 데까지 집중해서 보아도 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혼돈의 눈보라는 광기를 품고 있어, 단련되지 않은 이들은 단지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에에에엑, 카아악-!
게다가 하늘을 뒤흔들고 있는 혼돈룡들의 포효까지.
고개를 들자, 포격처럼 검은 숨결을 지상에 쏘아대고 있었다.
지상에도 혼돈에 물든 기사와 흑해에서나 볼 법한 괴물들이 우글거렸다.
[진, 나도 차원문을 더 만들 수가 없어……. 너도 지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네루는 이미 방금 전 진이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서 있는 것도 버거운 상태였다.
차원문을 여는 일엔 대량의 기운이나 고양이 신의 발톱이 필요한데, 어느 쪽도 성립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네루 님. 이 정도 포위망을 뚫을 정도의 힘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던 진이 잠시 눈을 감고 감각을 끌어올렸다.
설원 전체를 가득 채운 혼돈 사이로 다른 힘들이 그의 감각에 포착되고 있었다. 오러, 마력, 마기. 동료와 동맹의 것이 분명한 힘들이 말이다.
“우릴 구하려고 싸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들과 합류하면 문제없이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네루 님과 발레리아에 대해 궁금한 건 탈출한 다음에 차분히 듣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무덤으로 들어서기 전에 동료들에게 이야길 해둔 거야?]“동료뿐만이 아니라 임시 동맹을 맺은 지플과 킨젤로도 포함입니다.”
[지플과 킨젤로!?]“이런 순간에 써먹기 좋은 친구들이죠.”
[먀!]진이 슈리를 소환해 그 위에 네루를 태우고 봉인된 발레리아를 묶었다.
혼돈이 아닌 기운들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북, 동, 서. 진은 우선 그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한곳으로 모으는 게 나을지, 아닐지를 판단했다.
‘모였다가 혹 로사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와서 탈출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곤란하다.’
감각에 잡히는 아군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건 곧 진을 구하러 온 아군이 각 세력의 소수 정예로만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진은 오히려 아군들 중 가장 약한 쪽에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진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람들은 티칸이었다. 탈라리스가 부상 중이니 티칸의 정예들은 상대적으로 약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이 그들을 구하며 다른 세력과 합류하는 게 가장 나을 수 있었다.
“동쪽으로.”
가장 익숙한 기운들은 동쪽이었다.
슈리가 달리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마물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슈리는 진이 검기나 마법을 뿌리기도 전에 마력 광선을 발사해 놈들을 흔적도 없이 분해해버렸다.
다행히 동쪽으로 가는 동안 이성이 남은 혼돈체들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채 15분을 달리기도 전에, 진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티칸의 동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발카스 경!”
발카스와 아멜라, 라타와 율리안.
티칸에서는 그렇게 네 사람이 칼드란 설원 수색을 맡은 상태였다.
“주군이당! 발카스 아재, 주군이양! 어, 그리고 웬 묘인이징? 귀엽당!”
“주군! 주군이 발레리아를 구출하셨다……!”
진이 우려한 대로, 그들은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주변엔 괴물과 기사였던 자들로 보이는 혼돈체들의 시체가 그야말로 검은 강과 산을 이룬 모습이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발카스 경. 상황부터 설명해주십시오.”
“주군이 무덤으로 들어선 후 닷새가 흘렀소. 그간 검의 정원이 티칸이나 타 세력을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고, 칼드란 설원만 통째로 오염시킨 상태지.”
특별한 격을 가진 초월 혼돈체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들이 고전하고 있던 이유였다. 그들은 칼드란 설원 도착 이후 며칠째 끝없이 몰려드는 혼돈을 상대하고 있던 것이다.
“검의 정원 바깥에 직접 공격이 없었다는 사실은 다행이군요. 사망자도 없습니까?”
“바멀 연합엔 없소. 동맹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생체 골렘과 명인을 일부 잃었을 수는 있지만.”
발카스의 보고에 의하면 적어도 바멀 연합이 있던 쪽에는 초월 혼돈체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신 내단 마물 수준의 괴물들이 설원 곳곳에서 며칠째 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무덤을 빠져나온 걸 알면, 로사가 그때부터 즉시 격이 있는 존재들을 보낼 수도 있겠군요. 저를 발견한 후 탈출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단장의 차원문을 이용하기로 하였소.”
“좋군요, 갑시다!”
진이 합류하자마자 티칸 파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지 진의 신변이 확인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록 무덤 개방과 룬티아와의 전투로 인해 체력이 거의 소진되었다고는 하나, 그 상태로도 평범한 혼돈체를 쓸어버리는 것쯤은 일이 아니었다.
양손에서 맺힌 화염옥들이 초마다 수십 단위의 괴물들을 불사르고 있었다.
와중에도 그중 기사였던 이들로 보이는 이들은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킨젤로와 지플은 북서쪽에 위치했다. 파티 모두를 태운 슈리는 또 머잖아 다른 세력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지플의 헤도와 산드라였다.
그 두 사람은 지플의 다른 인원들과 떨어져서 진을 찾던 중이었다. 당연히, 산드라가 난리를 친 결과였다.
그녀는 이딴 식으로 미적지근하게 찾아서는(지플은 진심을 다해 진을 찾고 있었다) 진 씨를 구할 수 없다며, 설원에 다시 도착하자마자 헤도를 빼내 따로 행동해왔다.
“자기! 정말 진 씨야!? 진 씨 맞지, 헤도!?”
“12기수가 맞습니다, 아가씨. 그러니 제 옷 좀 그만 잡아당기십시오.”
“거봐, 내가 따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잖아. 가문의 멍청이들은 우리 진 씨가 돌아온 걸 아직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저와 아가씨도 방금 알았습니다. 직접 찾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12기수가 우릴 찾아온 격이고 말입니다.”
“진 씨이이!”
달려든 산드라는 폴짝 슈리 위로 뛰어 진에게 안기려 했으나, 진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피하고 말았다.
덕분에 산드라는 진의 뒤쪽에 묶여 있는 발레리아의 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캉!
얼음덩어리와 사람의 머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젠장! 조금만 더 빨랐으면 안길 수 있었…… 하! 이 여자가 우리 자기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뻔한 아주 아주 소중한 사람이로군요? 부숴버리고 싶, 아니, 아니지 산드라. 지금은 진 씨가 무사히 돌아온 기쁨이 우선이야!”
그렇게 산드라도 슈리의 등에 올라탔다.
슈리는 시간만 있으면 태산도 없애버릴 수 있는 괴력을 소유한 만큼 그 많은 인원이 무겁지는 않았으나, 때때로 자세가 불편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틀었다.
헤도는 몸집이 너무 큰 탓에 슈리의 등에 타지 못하고 옆구리에 매달렸다.
보기에 영 모양새가 좋지 않았으나 정작 헤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해낸 모양이군, 12기수.”
“그렇소, 탑지기. 감사는 돌아가서 전하도록 하지. 그대의 검에 대해서도 궁금한 바가 많소. 탑지기 또한 그러리라 생각하오.”
“진 씨, 나는?”
“너도 고맙다, 산드라.”
“아주 고맙다고 말했다면 이 얼음에 갇힌 여자의 남은 인생을 이틀은 더 늘려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호시탐탐 제가 직접 노릴 거랍니다.”
“아주 고맙군.”
“캬캬캬, 그래야죠!”
진, 발레리아, 네루, 발카스, 아멜라, 라타, 율리안, 산드라, 헤도.
그렇게 총 아홉 명을 태운 슈리가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또 얼마 가지 않아, 슈리는 새로운 인물을 추가로 태울 수밖에 없었다.
“자기, 저 거적때기 같은 놈은 뭐죠? 죽은 것 같은데.”
“저건 란케 할로비체라는 마족이다, 산드라.”
란케 할로비체. 상태를 보아하니 그는 ‘폭주 란케’가 되었던 모양이지만, 며칠째 내단 마물급 혼돈체들을 처리하느라 지쳐 쓰러진 상태였다.
“자리도 부족한데 그냥 버리고 가죠? 아니다, 쟤까지 올리면 나랑 진 씨가 더 붙어 있을 수 있네. 저 얼음덩어리랑은 더 멀어지고. 헤도!”
홱!
헤도가 란케를 낚아채 슈리의 등으로 던졌다. 발카스는 밧줄로 대충 그를 묶어주었다.
그런 식으로 슈리에 탑승하거나, 매달린 사람은 계속 늘어만 갔다.
“부바르 가스톤? 전투 인원도 아닌데 킨젤로는 저걸 왜 데려온 거지?”
“헤도!”
홱!
“……아이나스 칼리고? 아, 부바르가 여기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군.”
“헤도!”
홱! 주렁주렁.
“저건 백랑족 돌격대장쯤 되는 놈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고.”
“헤도!”
홱!
오르갈의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결국 슈리에겐 약 이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리게 되었다.
진에게 착 달라붙은 산드라는 거의 납작한 찐빵처럼 보일 지경이었고, 슈리는 정말 피곤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과 슈리에 매달린 인원들은, 오르갈을 마주하며 왜 지금껏 자신들이 격 없는 혼돈체들만을 상대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오르갈이 제피린과 둘이서 라이오넬과 스탐, 그리고 이름 모를 옛 흑기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것이다.
‘오르갈…… 대단하긴 대단한 존재로군. 라이오넬은 그때 끝이 아니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벌써 나타날 줄이야. 게다가 저 시체들도 전부 초월 혼돈체 같군.’
다만 오르갈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진을 보자마자 반색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 슬슬 한계였는데, 좋은 순간에 나타나주는군. 진 룬칸델. 애인을 구한 모양이지?]“아니, 진 씨를 구한 건 난데? 뭘 잘못 알고 있네.”
[이제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이 튀어나올 참이었으니 아주 잘됐어. 즉시 도망치도록 하지.]오르갈이 라이오넬의 검을 쳐내며 말했다.
라이오넬은 한 팔을 잃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마족!]라이오넬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행과 오르갈 사이에 강철문이 열렸다.
동시에, 그 반대편에서도 혼돈의 검은 문이 열렸다.
“그런데 오르갈, 지플은?”
[설마 룬칸델이 지플을 같이 데려가자고 할 줄이야. 그 친구들은 알아서 돌아오라고 하는 게 좋겠어.]“그렇다면 임시 동맹이라도 동맹은 동맹이니 최소한 탈출 사실 정도는 알려야 하지 않겠나?”
“자기, 그냥 우리 먼저 가요! 저기 저 문에서 나오고 있는 사람, 엄청 강한 것 같으니까요!”
“아가씨, 지플은 아가씨의 가문입니다.”
“알 게 뭐야, 진 씨가 죽게 생겼는데?”
혼돈의 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건 바로 파들러 룬칸델이었다.
오르갈도 저것 보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탄은 쏘겠다.]“그게 좋겠군. 슈리, 강철문으로.”
[진…… 룬칸델…….]파들러가 어두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혼돈의 문을 빠져나오기 직전, 다행히 슈리는 그 많은 인원을 태운 채 무사히 강철문으로 몸을 던질 수 있었다.
오르갈과 제피린도 그 뒤를 따라 강철문으로 내달렸고, 파들러는 허망하게 그들이 사라진 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