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86)
제 666화
176화. 두 사람을 위한 운명(1)
밤.
제피린을 비롯한 킨젤로의 간부들이 돌아가고, 티칸을 찾아온 손님은 다시 헤도와 산드라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손님이 아니라 동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헤도가 산드라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후우-.
달 밝은 밤하늘 위로 짙은 연기가 쏟아졌다.
발카스에게 선물 받은 밀라 산 최고급 송연이나, 헤도는 지금 특유의 진한 향내가 아니라 쓰고 떫은 맛만을 느꼈다.
발코니에 기댄 헤도의 뒷모습이 꼭 어느 고민 많은 아버지처럼 보였다.
“탑지기.”
진이 헤도의 옆쪽에 기대며 그를 불렀다.
헤도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연신 담배연기만 뿜었다.
그들의 뒤편에서는 주황 불빛과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식당에서 동료들과 산드라가 떠드는 소리였다.
산드라는 종종 티칸을 찾아올 때마다 늘 그랬듯, 발레리아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료들과 자연스레 섞여서 놀고 있었다.
그녀가 잔뜩 신이 난 채 유쾌한 바보처럼 떠들어대는 모습을, 헤도는 지플에선 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 것일까…….”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둔 채, 헤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자네도 저렇게까지 신이 나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많나?”
“내 성격 자체가 산드라만큼 활발하지는 않소. 그래도 쉴 때는 친인들과 즐겁게 보내는 편이지.”
“그런가.”
“산드라가 지플에서는 저런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소?”
“어릴 때 이후로는 마냥 즐거운 기분만 몇 시간 이상을 유지한 적이 없다. 그나마 베라딘 공자가 멀쩡하던 시절 가끔 어울릴 때 정도지. 웃다가도 화를 내고, 화를 내다가도 웃고. 자네도 잘 알듯 아가씨는 주로 미친 사람처럼 지냈다. 자네를 만난 다음부터는…….”
방을 온통 진과 관련한 소식지와 광고 전단, 물건 등으로 도배한 채 낄낄거리던 산드라의 모습을 떠올리자 잠시 두통이 몰려오는 헤도였다.
“……조금 나아졌…… 아니, 그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되는군. 이상한 건 똑같았으니. 더 이상해졌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자네를 만난 이후로는 지금처럼 저렇게 기복 없이 행복해하는 시간이 종종 있었군.”
“그렇다면 티칸에 합류하는 게 산드라에게는 더 좋은 일이로군.”
“그 방을 자네가 봤다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텐데.”
“방?”
“못 들은 걸로 하게.”
“그런데, 탑지기. 당신은 어떻소?”
“무슨 말인가?”
“당신은 저렇게 웃고 떠든 적이 있냐는 말이오.”
“없다.”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빠른 대답에 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나?”
“아가씨를 제외한 모든 일에는 감정의 기복이 그다지 없을 뿐이다. 아가씨 말고는 곁에 사람을 둔 적도 없고, 아가씨를 만난 이후엔 고독해 본 적도 없으니 나로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지.”
헤도가 가진 초월적인 무력, 그런데도 드높지 않은 명성, 시론과의 과거사, 산드라와의 관계 등.
소타 사막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은 헤도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느껴왔다.
어쩐지 이번 대화가 끝나면 그 마음이 해소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가씨 이후로 내게 그런 걸 물은 건 자네가 처음이로군.”
“한 식구가 될 사이니, 서로 성격 정도는 알아야 하잖소.”
“한 식구라, 나는 아직 자네에게 확답을 주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밤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진은 재떨이 옆에 놓인 술과 잔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잔을 두 개 챙겨놨기에 당신도 이미 그렇게 정한 줄 알았소. 한 잔 주시오.”
건배는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섯 잔을 마시도록 말이 없었다.
진은 기다리고, 헤도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다시 헤도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름부터 듣게 되었다.
“전대 흑기사, 바네사 올슨을 만난 적이 있나?”
“만나보았소.”
“나는 그 여자와 같은 부류였다.”
“같은 부류……?”
“날 때부터 괴물이었지. 그래서 가만히 숨만 쉬고 살아도 반드시 사고에 휘말리는.”
헤도는 젊은 시절 흑해에서 바네사와 한 번 겨룬 적이 있었다.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나, 그녀를 비롯한 전대 흑기사 대부분이 괴물의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라는 건 알아보았다.
진도 헤도의 말을 곧장 이해했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건 여덟 살 무렵이다. 고아원에서 매일 이어진 원장의 폭행이 거슬리기 시작해서, 아무 생각 없이 주먹을 내질렀었지. 펑! 하고 그의 손목이 터지더군. 그도 3성쯤은 되는 무인이었는데 말이야.”
“음.”
“이어 원장이 넘어진 채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은 내 몸에 겨우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죽일 계획은 없었는데, 막다가 손으로 쳐낸 검이 부러져서 튕기며 그의 목에 박혔네.”
“어린 나이에 놀랐겠소.”
“별생각 안 들더군.”
“원장이 죽어도 싼 인간이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보면 그런 인간은 맞기는 하지만, 당시 나는 말 그대로 그냥 별생각이 없었다. 아, 귀찮아지겠군. 그 정도 감상만 있었지. 살인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했어.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그런 식이었다.”
사고와 도망.
열넷이 될 때까지 헤도의 삶은 그게 전부였다.
초반엔 뜻하지 않게 사고를 쳤고, 나중엔 귀찮게 구는 놈들을 그냥 손봐주고 지역을 옮겼다.
“툭 건들면 죽을 것 같은 놈들이 어찌나 많이 시비를 걸던지 의아하더군. 아마 유별나게 큰 골격과 당시 뻣뻣하던 내 태도 때문이었겠지.”
진은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청하며 술잔을 홀짝였다.
“그만하면 수배가 붙었을 법도 한데.”
“밑바닥만 전전하느라 세력가나 유명 무인을 해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보니. 너무 어렸던 때라 자연스레 의심도 피했을 거고. 오히려 도적떼 몇 개를 완전히 몰살시키고 숨어 지냈더니 영주가 상을 주겠다고 날 찾은 적은 있었다.”
“찾아갔소?”
“그가 날 찾았다. 역시 귀찮을 것 같아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데 용케 내가 지내던 폐가로 찾아오더군. 밑으로 들어오라기에 거부했더니 싸움이 났다.”
“그때가 몇 살이었소.”
“열둘이었나, 셋이었나. 헷갈리는군. 영주가 끌고 온 병력은 오십쯤 되었는데…….”
“그 오십이 열둘, 셋 먹은 애를 상대로 모두 덤볐단 말이오?”
“골격이 크니 겉보기엔 그보다 많은 듯 보였을 테지.”
“그래도 애티가 났을 것이오. 아무리 명령이라고는 하나, 어린 당신을 공격하는 것에 정말 아무 거리낌이 없던 것인가.”
“나는 그것보다 처음 달려든 부하가 바로 목이 비틀어져 죽었는데도 놈들이 악귀처럼 내게 맞서는 게 더 신기했다네.”
“신기한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비정하기에 한 말이오.”
“세상엔 그보다 더 비정한 일이 흔해. 아무튼 그중 훈련된 기사라고 할 만한 자가 하나 섞여 있었지. 영주의 부하들은 내 괴력을 보고도 그를 믿고 덤볐던 것이다.”
어린 헤도는 그를 상대하며, 처음으로 ‘검’이라는 사물에 매력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자네도 아마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테지. 날 죽이겠다고 기세등등하게 모인 놈들이 마치 들개처럼 하찮게 보이는 기분…… 난 순식간에 영주와 부하들을 모조리 죽였고, 그와 둘이 대치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영지에서는 제일가는 기사였으나, 객관적인 기준에선 평범한 수준이었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 5성을 뚫지 못하고 있는 인물.
그의 눈에 어린 헤도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나 악마로 보였다.
“근처엔 온통 피와 시체가 가득했고, 나는 몇 번쯤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한 상태였지. 그런데 그때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그에게 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네. 그래서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는 정말 이상한 표정을 짓더군.”
“그럴 수밖에.”
“그리고는 갑자기 각오를 다지더니, 여기서 나를 죽여야만 한다고 혼자 되뇌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은 물론이고 영지는 끝장날 거라고.”
당연하게도 헤도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이가 든 지금은 알았다.
“그는 대의를 위해 각오를 다졌던 것이지. 지금이라면 살려줬을 테지만, 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나보다 강했으나, 사람이었지.”
그때 그 기사가 헤도를 꺾었다면 그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진은 사람이었지, 말하는 헤도의 옆얼굴이 왠지 씁쓸해 보였다.
“그를 죽였을 땐 처음으로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어쩐지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헤도는 잠시 자신의 왼손에 쥐어진 송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그를 기억했다.
기사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 중에 담배가 있었다.
기사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는 않았다.
이후 헤도는 그의 검과 소지품을 챙겨 다른 영지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어딜 가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고, 헤도는 검을 얻은 이후로 미친 듯이 빠르게 강해져갔다.
자신이 죽인 기사의 동작을 복기하며 홀로 수련하며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또 추격자들이 붙기 시작하자, 헤도는 깨달았다.
자신은 평범한 사회에 섞일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고른 도피처가 흑해다.”
가득 채운 술잔을 쭉 들이켜는 헤도.
“내가 홀로 흑해에 들어간 건, 열다섯이 되던 해였다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없었소? 무가를 찾아가거나.”
“내가 상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였을 것 같은가?”
헤도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타고난 몸과 마음이 범인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폭력 말고 다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그 역시 무가나 자신을 끌어줄 사람을 찾아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깨달음을 얻은 그는 그냥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고자 했다.
“흑해는 사람도 없고, 괴물만이 가득하다고 하니 검을 수련하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지. 실제로 겪어보니 흑해는 내게 완벽한 도피처였다네. 마물은 아무리 많이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놈들을 벨 때마다 나는 더욱 강해지기까지 했으니까.”
“그럼 설마…… 그때부터 줄곧 흑해에만 있었기에 당신의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오?”
“바네사 올슨이 너무 일찍 시론 경의 기사가 되어 알려지지 않았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나는 그때부터 이십 년이 훌쩍 넘도록 흑해에만 있었다네.”
진은 잠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열다섯에 홀로 흑해에 들어가 이십 년 넘는 세월을 살아온 사내, 그런 일이 가능한가는 둘째 치더라도…….
그의 지난 삶이 너무나 혹독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자네 아버지, 시론 경을 만난 것도 흑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