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90)
제 666화
176화. 두 사람을 위한 운명(5)
“그런데, 오랜 고문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로사로부터는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오?”
“육체가 한순간에 변한 적이 있나, 12기수.”
“경지가 오를 때마다 강해지는 감각은 있었소만.”
“단지 그런 영역이 아니라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말하네.”
“본 적은 있소. 돌아가신 론 경을 통해서.”
“나는 그걸 아가씨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 직접 겪었다. 누메루스의 신물이 아니고는 어찌할 수 없다던 내 육체가, 갑자기 살아나기 시작하더군. 어긋나고 부러진 뼈들이 붙고, 손상된 장기가 회복되는 게 느껴졌지.”
마치 론이 글리엑을 상대할 때 죽음으로부터 홀로 부활했던 것처럼, 헤도도 육신의 재형성을 겪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시론 경과 같은 영역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그런 의문까지 들었다. 머잖아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당장 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
“그날 당신과 산드라는 서로를 지켜준 셈이군.”
“새로운 경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싸운 데다 변변한 검도 없던 터라 밀리기는 했으나, 다행히 로사도 실험동까지 뚫고 오느라 지친 상태였더군. 덕분에 본대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텼고, 로사는 이를 갈며 탈출했다네.”
이후 헤도는 자연스레 지플에 소속되었다.
그가 켈리악에게 요청한 건 딱 두 가지였다. 흑해에서 얻은 자신의 검을 돌려받는 것과, 산드라와 함께 지내는 것.
산드라는 그간 헤도에게 그 누구도 주지 못한 것을 주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고아원장도, 그가 처음 죽인 기사도, 시론도, 켈리악도, 다른 누군가나 그 무엇으로부터도 받은 적 없는 것을.
“그래서 2등 집사장이 된 것이군.”
“그보다 더 알맞은 직책이 없었지. 그때부터 나는 아가씨를 모시기 위해 많은 것을 익혔다. 인세의 상식과 지식, 교양 등. 아가씨에게 부족한 것을 가장 중점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어. 아가씨도 짐승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내가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산드라를 위한 일이라면 헤도는 무엇이든 미친 듯이 빠르게 습득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익힌 건 가문 내의 처세였다. 그는 가문이 자신의 충성을 탐낸다는 걸 일찍 알아보았으나, 그만큼 의구심을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래서 청소부 역할을 자처했다. 이번 실처럼 일을 그르치는 요소를 갖춘 채 요직에 머무르는 자들을 가차 없이 숙청했고, 쓸데없는 알력다툼으로 힘을 축내는 가문 내 세력들을 정리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니, 켈리악을 비롯한 수뇌부가 그를 흡족하게 여긴 건 당연지사였다.
헤도는 그렇게 순식간에 지플의 숨겨진 실세가 되었다. 실세가 된 후에도 직책을 변경하지 않은 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그가 바란 유일한 보상은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드라 아가씨를 실험체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우하고, 자유를 주는 것. 그게 내가 가문에 바랐던 전부다. 권력을 잡은 후 대놓고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으나, 가문은 똑똑히 알고 있었지.”
“지플이 그걸 허락할 리는 없었겠군. 산드라가 자유를 얻는 순간 당신의 충성 역시 사라진다고 여겼을 테니.”
“가문이 목줄을 놓지 않으려고 한 건 사실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네. 나로서도 가문이 아가씨의 안전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여겼지. 가문과 룬칸델의 오랜 원한이나 국제 정세, 도저히 바뀌지 않는 아가씨의 이상한 성정 등이 이유였다. 가문을 나가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겠나? 아가씨가.”
켈리악은 헤도가 자신의 진짜 충성을 산드라가 아니라 가문에 바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용해서 가문 내에 나와 아가씨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12기수.”
“당신의 입장에선 나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것이군…….”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진은 불현듯 전생의 산드라를 떠올렸다. 전생의 그녀는 비먼트 황가의 서열 낮은 황족과 정략결혼을 했었다.
어쩌면, 그때 산드라가 결혼을 한 건 헤도의 의지가 마침내 결실을 이룬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헤도는 다시 입을 열어 이런 말을 내뱉었다.
“12기수. 내가 아가씨에게 보답으로 주고 싶던 건, 평범한 삶이다. 정상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언젠가 그럴싸한 짝을 만나 여생을 함께 보내는. 자네가 없었다면…… 나는 반드시 그 일을 해냈을 것이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헤도와 눈을 맞췄다.
“그러나 그건 내가 원한 것이지, 아가씨가 원한 삶이 아니었을 테지……. 그 쉬운 걸, 이제야 깨닫게 되는군.”
마지막 남은 술을 자신과 진의 잔에 따르는 헤도.
“탑지기, 하나 궁금한 게 있소.”
“무엇인가.”
“당신이 실권을 잡은 이후로도 지플은 산드라를 통한 실험을 멈추지 않은 모양이고, 당신은 그게 산드라가 원한 것이라 말했지. 내 생각에, 그건 당신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 같소. 나는 사정을 몰랐으니 당신에게 비겁하다고 말했는데, 철회하고 싶군.”
“비겁했던 게 사실이니 그럴 필요 없네.”
산드라가 실험에 응한 건 물론 헤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자신이 가끔은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여야 헤도도 의심을 덜 받고, 또한 반 불사의 육체를 얻게 되면 헤도가 곤경에 빠질 일이 적어지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12기수.”
“말하시오.”
“나는 솔직히 여전히 회의적이네. 나와 아가씨가 과연 이곳에서 자네의 식구가 된다 한들, 지금까지 가문에서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지냈던 나날보다 정말 더 나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지.”
“그럼 어떻게 하고 싶소?”
“가문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아니다. 돌아보면, 어차피 늘 도피처를 전전했던 삶이지. 가문에서의 삶도 결국 나나 아가씨 모두에게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으니.”
“질문을 바꿔야겠군.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소?”
“어느 날, 티칸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면 나는 주저 없이 아가씨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 그때 나를 가로막지 마라.”
“맹세하겠소. 막지 않는 것은 물론, 당신과 산드라가 우리를 배신했다며 찾아서 보복하는 일도 없을 것이오.”
“자네의 혀를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군.”
“이제 내가 그 정도 무게감은 있는 사람이지 않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이 뒤돌아 잠시 산드라를 바라보았다.
티칸은, 그녀가 황족과 결혼한 전생보다 반드시 나은 선택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결국 지플이 존재했으니, 산드라는 계속 감시에 놓여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높았다.
게다가 그때의 산드라는 지금만큼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니, 정신 조작의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보다는 반드시 더 자유롭도록 만들어주는 게 진의 도리였다.
“나는 산드라에게 꽤 큰 부채감이 있소. 그녀는 여러 번 나를 도왔고, 목숨을 구했지. 지금 당장은 로사를 처리하는 게 우선이지만, 내 궁극적인 목표엔 지플의 멸망도 포함되오. 그들이 없어지면, 세상에 당신과 산드라를 위협할 요소는 없어질 테지.”
“우리가 떠나는 시기는 흉신과의 결전보다 빠를 수도 있다.”
“이해하오. 어차피 내가 겁박한다고 한들, 당신에게 통하지도 않을 것 아니오. 전력을 잃는 건 뼈 아픈 일이나, 나로서는 존중할 수밖에 없소. 당신이 힘에 굴복하는 부류라면 모를까.”
헤도의 송연이 잔불을 남기며 꺼졌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오. 당신과 산드라의 긴 악몽이, 티칸에서 지내는 동안 끝날 수 있도록 돕겠소.”
진이 물끄러미 잔을 내려다보자, 헤도가 잔을 들었다.
첫 건배였다. 헤도와 산드라는 이제 티칸에 남을 것이다.
“갑자기 얼마 전 자네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어쩌면 당신이 베일이라는 십대기사의 후손일 수도 있잖소. 그래서 검이 당신을 찾은 것이지. 우연이 아니라.
진이 헤도를 회유하며 했던 말.
물론 헤도는 베일의 후손이 아니다. 그러나 헤도와 베일의 운명에는 분명 묘할 만큼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도 당신과 대화를 나누며 베일 경의 이야기가 생각났소. 그가 겪은 일들은 당신만큼 가혹하지 않았으나 당신이 산드라를 통해 다시 태어났듯, 베일 경 역시 사라 경으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찾았지.”
지금 헤도의 과거사를 들은 것처럼, 진은 이미 베일과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베일은 헤도와 마찬가지로 사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어디서나 파괴를 일삼는 괴물일 뿐이었다.
“그 미친놈은 나와 다르게 생각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지만 말이네. 여전히 나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자네 말이 잘 들어맞은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진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게 두 사람을 위한 운명이라고 여기고 싶소.”
헤도는 어깨를 으쓱이며 새 송연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보다, 자네가 처음에 부탁한 일이 문제로군. 이제 나와 아가씨는 배신자가 되었으니, 아킨에서 요나 룬칸델, 자네의 누이를 찾는 걸 도울 수 없게 되었네.”
“뭐, 그렇기는 하지만 당신과 베일이 티칸에 소속되었으니 오히려 상황이 더 나아졌소. 나와 당신, 베일 경. 이렇게 세 사람이 직접 아킨에 잠입해서 무명과 연계하면 지플의 도움 없이도 폭주한 요나 누님을 충분히 안정적이고 빠르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군.”
“배신하자마자 가문의 영역에 잠입이라, 그런 낯뜨거운 일을 잘도 시키는군.”
“부담스럽다면 베일 경만 데려가도록 하겠소.”
“아니, 나도 같이 가겠다. 간 김에 자네 누이를 확보하고, 가문에 인사나 남겨야겠군.”
“고맙소, 탑지기. 아, 그리고.”
진이 헤도에게 악수를 청했다. 헤도는 그 손을 몇 초쯤 내려다보다 맞잡았다.
“앞으로는 경어를 쓰고 예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무례는 잊어주시길, 헤도 경.”
헤도는 진의 말이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럼 나는 편하게 말을 놓도록 하마, 12기수. 앞으로 잘 부탁하마.”
이어 헤도가 옆쪽 기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발레리아 양도 잘 부탁하겠소. 한 가지 말해두자면…… 아가씨는 히스터와 관련한 일에 가담한 적이 없소.”
진과 헤도가 먼저 식당으로 들어서자 기둥 뒤쪽에서 발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과 헤도는 처음부터 그녀가 거기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발레리아도 마찬가지였으나 서로 내색하지 않은 것이다.
발레리아는 한동안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