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02)
제 777화
179화. 피할 수 없는 함정(2)
“피해가 어느 정도라고 합니까?”
“심각합니다. 밀쿤 왕국의 수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민간인 사망자만 대략 이십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십만이라는 숫자를 들은 순간, 진은 자신의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이십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디푸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것이 된다.
듣고 있던 토나 형제도 이를 악물었고 메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감정을 간신히 억누른 그녀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추후 디푸스가 혼돈의 잠식에서 벗어난다 할지라도, 이토록 거대한 비극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게 형제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인질로 잡혀간 인원도 최소 일만 이상입니다.”
카시미르가 침통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가자 진은 온몸이 물 속에 잠기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로사…… 이 미친 괴물이……!’
거대한 참사가 벌어졌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로사의 전쟁 병기가 된 형제에 의해.
카시미르를 쳐다보는 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인질이 일만이라면, 흉신의 혼돈룡과 흑선들이 움직인 겁니까?”
“예, 그것들이 디푸스 경의 지휘 아래 루테로 마법 연방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거대 차원문 형태의 순간 이동, 혹은 소환으로 추정되는 흉신의 능력과 땅굴이 사용되었고요.”
루테로 마법 연방은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다.
난데없이 땅굴과 차원문에서 튀어나오는 수백 기의 흑선과 수천 마리의 혼돈룡은 드락카 본진이 아닌 이상 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
게다가 디푸스는 양동 작전을 펼쳤다. 처음엔 본격적인 침공을 시작한 것처럼 드락카 주변에 가장 먼저 함대를 이끌고 나타났다가, 지플이 병력을 급히 집결시키는 사이 연기처럼 사라져서는 연방 곳곳을 휘저은 것이다.
한 시간.
디푸스가 이끄는 혼돈의 군대는 단 한 시간 만에 지플에 저만한 피해를 입히고 도주에 성공했다. 드락카의 병력은 혼돈의 군대가 가진 기동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디푸스의 무위도 문제였다. 옥타비아와 망령대는 추격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발산하는 혼기를 뚫지 못했다.
세계제일가가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당한 것이다.
밀쿤 왕국을 비롯한 연방의 피해 지역은 현재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빠진 상태다.
디푸스가 남기고 간 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산불처럼, 아직도 남은 양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었다.
사망자가 20만을 넘어선다는 건 부상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내내 지플과의 모든 소통을 차단하고 있던 성국조차 소식을 듣자마자 치유사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빠르게 공포가 퍼지고 있었다.
세상에 그 어떤 괴물이 나타나더라도 가장 안전한 울타리로 여겨졌던 지플의 영토가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흉신에 의한 종말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카시미르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내내 진은 호흡을 골랐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비탄에 빠지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하루라도 빨리 디푸스를 막는 것이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즉시 드락카로 가봐야겠습니다. 혹 제가 부재한 사이 흉신의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모든 방어 장비를 가동시켜 주십시오.”
로사에게 대규모 순간 이동 같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전투는 이제 언제든 갑자기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런 대규모 소환, 순간 이동 같은 능력에 제약이 없지는 않을 거다. 인간, 혹은 절망을 사용하는 것일 테지. 굳이 인질을 납치한 이유는 그를 충당하기 위해서인가.’
이미 흉신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여 있던 이들이 겪는 공포와, ‘안전’하다고 생각한 땅에서 지내던 이들이 갑작스레 느끼는 공포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절망의 크기는 분명히 다를 터였다.
로사가 병력을 이동시키는 힘이 넉넉한 상태인지 아닌지는 당장 알 수 없다.
“알겠습니다, 공자.”
“그리고 시리스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방금 성국에서 돌아오셨습니다.”
“경께서는 시리스 님의 도움을 받아 직접 킨젤로에 다녀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국도 살펴주십시오. 그곳들도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과 카시미르가 뒤돌아 걸음을 옮겼고, 메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치유실을 향해 돌아섰다.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이겨내면서.
“곧 큰 싸움이 있을 거다. 제대로 싸우려면 회복에 전념해야 하니까, 너흰 가문의 기사들을 대비시켜라.”
“예, 누님!”
진이 붉은부엉이의 출격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칠색조의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는 피해 상황.
그저 무지막지한 숫자로만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의 죽음에서는,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돌연 진이 걸음을 멈췄다.
유리아의 방 앞이었다. 닫혀 있는 문 너머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즈 밀의 계약자인 그녀는 이 사태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전부터 느끼고 있던 것이다.
어쩌면 유리아는 이미 이 사태의 결과를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진은 그녀를 위로하듯이 몇 번 방문을 쓰다듬고 다시 출격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어떤 결과를 보았든, 반드시 그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었다.
* * *
붉은부엉이는 지플 본가의 좌표를 설정할 수 없었다. 진은 드락카 외곽의 한 숲으로 떨어졌는데, 도착하자마자 로닐 지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붉은부엉이가 이곳에 도착하리라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진 경.”
진은 어떻게 미리 알고 기다렸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걸 알아낼 상황도 아닐뿐더러, 지금 중요한 문제는 디푸스였다.
“로닐 경.”
“즉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진이 떨어진 자치구는 디푸스의 공격을 받은 곳이었다. 본진 근처인 만큼 피해가 아주 크지는 않았으나 도시 전체가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밀쿤과 다른 연방에서 벌어진 참사는 언론을 통제해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티칸 측에 지원 요청을 하는 사이, 한 차례 더 습격이 있었습니다.”
지플의 제4기함 앤디온에 탑승하며 로닐이 말했다.
“그사이에, 설마 또 대규모 병력 이동이 있던 것이오?”
“아닙니다. 디푸스 룬칸델이 두 명의 흑기사를 대동한 채 바클 자치구를 쳤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던 터라 민간 피해는 아주 크지 않으나…… 망령대장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카둔 님도 회복이 끝나지 않은 몸으로 응전했다가 내상에 빠졌고요.”
디푸스 형님은.
그렇게 말을 시작하려던 진이 함선 창으로 바깥을 둘러보았다. 지금 이 땅엔 그가 죽이거나 다치게 만든 사람이 가득했다.
“……4기수는 어떻게 되었소?”
“첫 습격과 마찬가지로 달리 피해를 받지 않고 도주했습니다. 흉신에게 많은 힘을 받은 것 같더군요…….”
로닐에 의하면 디푸스는 흉신의 권능을 통한 차원 이동과 예언자의 땅굴뿐만이 아니라, 베일처럼 비행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흉신의 분신.
지플은 그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디푸스는 흉신의 권능 일부를 내려받지 않았다고는 납득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앤디온이 지플의 본가에 도착했다. 마법의 본산이라 불리는 지플의 성채는, 평소와 달리 완전히 개방된 채 민간인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민간인들을 받아주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앤디온에서 진이 내리자 손가락질을 하기도, 구원자가 온 것처럼 고개를 조아리기도 했다.
전자는 진이 어쨌거나 흉신, 디푸스와 같은 룬칸델이라는 사실에 그랬고, 후자는 그의 행적들을 생각해서 그랬다.
로닐이 손가락질하는 민중들을 정리하라고 지시하려는 찰나, 진이 그를 말렸다.
“그냥 두는 게 좋겠소.”
진은 그들을 지나쳐 안채로 들어섰다.
밖과 안을 가릴 것 없이 지플의 권속들이 쉴 새 없이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뛰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최고위 원로들로 보이는 이들뿐이었다. 그들은 급히 달려온 진을 보고도 로닐처럼 예를 갖추지 않았다.
오히려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거나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진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늙은 송사리들의 투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나, 원로들은 자연스레 진과 로닐을 따라오고 있었다. 곧 있을 최고 결정권자와 진의 이야기를 자신들도 들어야 한다는 듯이.
두 개의 회랑을 지나 지플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본래 켈리악이 있어야 할 자리엔 베라딘이 있었다.
“이렇게 또 만나는군, 진.”
“베라딘.”
지플의 보호를 받던 수많은 민간인이 죽었고, 옥타비아와 카둔이 다시 부상에 빠졌으며 심각한 병력 손실이 있었음에도.
베라딘에게선 침통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지플이 겪은 참상보다도 진을 뒤따라 온 원로들이 더 짜증 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원로들께선 뭐하러 오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가주. 당연히 회의에 참석하고자…….”
“무능하면 눈치라도 좋고 발이라도 바빠야겠지요. 뭐, 굳이 걸음들 하셨으니 궁금하면 듣고 가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원로들이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그들은 베라딘의 말에 함부로 반박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군.”
“네 여유로운 태도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방금도 4기수가 바클 자치구를 쳤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태평할 수 있는 이유가 있나?”
“민간인은 백여 명쯤 죽었다더군. 망령대장과 카둔 님이 다쳤지만 4기수는 그 둘을 상대하고도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클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드락카까지 진입했어도 괜찮을 텐데, 멈췄다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럼 왜 바멀 연합에 다급한 지원을 요청했나? 사후 복구를 위해서인가?”
그 말에 베라딘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질문은 조금 이상하군. 임시 동맹이니 당연한 일이지 않나? 무엇보다도 흉신이 획득하는 절망이 커지는 걸 막아야 하니…… 인질들을 구해야 하지. 2기수와 더불어, 4기수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흉신에게 귀속되는 절망이 급격히 커지고 있거든.”
베라딘이 ‘절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미 지플은, 로사가 수확하는 절망의 크기까지 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