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22)
제 777화
181화. 메리의 꿈(2)
티칸궁을 빠져나가자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 모여들었다.
메리는 디푸스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시선에 적대감이 묻어나는 걸 의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다고는 하나, 그가 수십만 명의 죄 없는 인간을 학살한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게 메리를 괴롭게 만들었다. 오라버니의 두 손은 이미 결코 씻을 수 없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오라버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실은 그 의문이야말로 지난 며칠 동안 메리를 잠들지 못하게 한 진짜 이유였다.
오늘 디푸스에게 어떤 변명을 듣게 된다 한들, 메리는 그의 타락을 이해할 자신이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어느새 디푸스와 메리는 도심을 벗어나 해변에 닿고 있었다.
노을에 붉게 물든 백사장 위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늘어졌다.
“벌써 세 시간은 걸은 것 같아.”
결국 메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나 됐나? 한 삼십 분이나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며 대답하는 디푸스.
그의 눈에 메리와 저 멀리 솟아 있는 티칸궁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는 건데. 역시, 얘기하고 싶지 않은 건가?”
디푸스를 노려보는 메리의 눈동자에 원망이 들어차 있었다.
“그건 아니야.”
“그럼 산책을 핑계로 대답을 질질 끄는 이유가 뭔데.”
“너도 알잖냐.”
메리는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으니까 그냥 얘기해. 이미 막내한테 들었어. 흉신의 권능을 받는 건 자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오라버니는, 우리를 강제로 배신하게 된 게 아닌 거겠지…….”
“사실이야.”
턱!
메리가 사납게 디푸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디푸스는 그녀의 손아귀를 떼어내지 않았다.
“고문을 버티지 못해서 흉신에게 굴복했다는 뜻이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거짓말. 내가 아는 오라버니는 고문 따위에 꺾일 인간이 아니야.”
“아니, 난 끝이 없는 고문에 정말로 절망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대체 어떤 고문을 겪었기에?”
“말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어. 어느 시점부터는, 전등이 깜빡이는 것처럼 매 순간 자아가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더군. 그때마다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기도 했다. 마지막엔 내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지. 이제는 다 돌아왔지만 말이야.”
“그럼 오라버니는 정신이 완전히 파괴돼서, 어쩔 수 없이 흉신의 권능을 받기로 했다는 거네……. 하긴, 그것밖에 없겠지. 내가 괜히 뻔한 걸 물어봤네.”
“메리.”
“응.”
“이 정도면 정말 충분한 것이냐?”
“그게 무슨 말이야.”
“고문에 미쳐 어쩔 수 없었다. 겨우 이런 변명을 듣고자 내게 그토록 힘들게 질문을 던졌냐는 뜻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두 번 다시 내가 타락했던 것에 괴로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이제 돌아가자.”
메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디푸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부족해.”
메리의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자 디푸스는 다시 뒤돌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메리는 파도가 칠 때마다 그의 발자국이 지워지는 걸 보며 그를 뒤따랐다.
“고문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한때 어머니였던 인간이. 아니, 괴물이 내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더구나.”
“뭐라고?”
“내 절망이 자신의 신격을 완성하는 일에 가장 큰 보탬이 되는 중이라고 하더군. 내가 괴로워하고 절망할수록 자신의 힘이 강해진다고 말이다.”
“아…….”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불안해졌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살아 숨 쉴 때마다 흉신은 계속 강해지는 것인데, 나는 뜻대로 죽을 수도 없었으니까.”
특별한 존재의 특별한 절망.
조슈아처럼, 디푸스의 절망 역시 흉신의 완성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흉신이 나를 찾아올 때마다 그의 힘이 더 거대해지는 걸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지. 자연스럽게 그때마다 나는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대로라면, 설령 아버지께서 돌아온다 할지라도 그 괴물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디푸스가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가자 메리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하루는 흉신이 내게 제안을 하더군.”
“……권능을 받으라고?”
“그래. 계속 고문당하며 절망을 더해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권능을 받아 함께 막내와 싸울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낭떠러지였어.”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지 그랬어. 오라버니가 끝내 흉신의 권능을 받지 않았다면, 분명…… 우리가 구하러 갔을 거야.”
“그랬다면 흉신은 지금쯤 결코 대항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거다.”
“흉신이 오라버니에게 힘을 나눠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번 작전을 성공한 거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
“그건 더러운 합리화일 뿐이야!”
디푸스는 악을 쓰는 메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 좋아, 그렇다면 흉신은 왜 굳이 오라버니에게 권능을 나눠준 건데? 그 말대로라면 흉신은 가만히 오라버니가 절망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어도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됐을 텐데?”
“흉신은 막내에게 집착하고 있어. 난 파편이 되자마자 흉신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흉신은 그냥 이기기만 하는 걸 원하지 않아. 막내를 바닥까지 끌어내린 다음에 승리하는 걸 원하지. 막내가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고.”
“그래서 오라버니는 힘을 받아서 그런 짓들을 한 거야?”
“메리 경!”
디푸스가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해변으로 달려오며 메리를 불렀다.
“국왕……?”
카시미르였다.
“메리 경,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어서 가시죠.”
“왜 그걸 국왕이 직접 전하러 오신 겁니까? 사람을 보내지 않고.”
카시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리는 별안간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는 걸 느끼며 그와 디푸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디푸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해줘요. 아직 오라버니한테 들을 이야기가 남았으니.”
메리는 다시 디푸스를 따라 달렸다. 카시미르와 겨우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디푸스는 이미 저 멀리까지 가 있었다.
“오라버니! 도망이라도 치는 거야? 좀 천천히 가! 흉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정말 그게 다야?”
“메리.”
“왜!”
“내성에서 예언자의 술수에 당해 죽음 직전까지 몰렸을 때…… 무슨 생각이 들더냐?”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이상한 일이지…… 왠지, 막내라면 이 속임수에 계속 놀아날 것 같지가 않아.
리칼튼 내성에서 메리가 예언자에게 했던 말.
도저히 적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고,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던 그때. 메리는 돌연 묘한 기분에 휩싸였었다.
어떤 거대한 존재가…… 막내가, 곧 이 사태를 해결해주리라고. 왠지는 몰라도 막내는 이번 싸움을 결국 승리로 이끌 것 같다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내가 흉신의 파편을 받으면, 막내가 곧 찾아와서 그것을 부숴줄 것 같더구나.”
“메리 경! 메리 경……! 늦었어요, 회의에 참석하셔야죠.”
이번엔 엔야였다. 잠깐 엔야를 돌아보자, 캄캄한 밤하늘과 아득히 멀어진 티칸궁의 불빛이 보였다.
이제 밤새 뛰어가도 티칸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벌써 그만큼이나 멀어진 것이다.
디푸스는 또 저 멀리까지 가 있었다. 메리는 고개를 휘젓고 있는 힘껏 다시 디푸스를 쫓았다.
“오라버니, 멈춰……!”
겨우 디푸스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디푸스는 계속 앞으로 갈 뿐이었다.
“나로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더 나은 수를 고를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파편을 받고, 막내가 그런 나를 죽이면 흉신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어…….”
“알겠어, 알겠다고. 이제 회의가 시작한다잖아.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 마저 얘기하자! 응?”
“메리 누님!”
“누님,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뒤쪽에서 토나 형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까지, 왜, 왜 나만 찾아! 여기 디푸스 오라버니 안 보여? 내 옆에 있잖아!”
메리는 그들을 뒤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디푸스에게서 한 번만 더 눈을 떼면, 다신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라버니, 어서 돌아가자. 내가 미안해. 그날 오라버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주제에, 자꾸 괜한 말로 오라버니를 힘들게 했어. 그러니까 잠깐만 멈춰줘…… 제발.”
이내 디푸스가 걸음을 멈추며 뒤돌아 메리를 바라보았다. 메리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눈물 때문에 디푸스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메리. 내 선택에 어떤 이유가 있었든, 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용서받지 못할 짓들을 저질렀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하, 하지만 오라버니도 마지막엔 결국 돌아왔잖아. 애초에 흉신의 힘을 축소하기 위해서 힘을 받은 거고, 결과적으로 오라버니 덕분에 그렇게 됐잖아. 그리고 글리엑이 끝장났을 때, 오라버니 덕에 살아남은 사람은 셀 수도 없어……!”
“이러나저러나, 나는 그냥 흉신에게 패배한 거야. 약해서 졌고, 막내와 너.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뒷일을 맡긴 거다.”
“사람이 질 수도 있지……!”
“룬칸델로서, 절대 져서는 안 될 싸움이라는 것도 있어. 그러니까 메리, 너는 나처럼 지지 말고, 계속 싸워라. 막내랑 같이. 사람들과 같이.”
“왜 자꾸 이제 사라질 사람처럼 말해. 그러지 마.”
디푸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도 알잖냐. 그만 저 사람들하고 같이 돌아가라.”
메리는 디푸스의 손을 붙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앞서 자신을 불렀던 카시미르, 엔야, 토나 형제와 더불어.
티칸의 모든 동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냥 회의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들.”
“메리.”
“곧 간다고 할게, 오라버니랑 같이.”
“메리. 너 혼자 가야 해.”
디푸스가 그렇게 말한 순간, 메리는 디푸스의 손이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도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꿈속인 듯,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내 디푸스가 부드럽게 메리의 어깨를 밀었다.
“비록 네 꿈을 통해 경험했을 뿐이지만, 지내보니 티칸은 정말 좋은 곳이다.”
“오라버니!”
“하지만 우리 집을 되찾아야 해. 룬칸델의 집은 검의 정원이니까.”
“디푸스 오라버니! 가지 마!”
“오랜만에,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없어도 씩씩해야 한다, 내 동생.
오라버니……!
메리가 쓰러졌다.
다시 디푸스를 쫓기 위해 몸을 일으킨 찰나, 메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병상을 지키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형제와 동료들이었다.
“메리 경!”
“메리 경이 깨어났습니다!”
“히, 언니 일어났다!”
“누님!”
진이 메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메리는 한동안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 진을 안아주었다.
요나와 토나 형제도 함께 두 사람을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던 발레리아는, 메리에게 보여주고자 기록 창을 열었다.
메리는 그 기록으로부터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