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29)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2)
* * *
1803년 6월 20일.
결전이 시작되었다.
약 오백 척의 함대와 육백 이상의 용이 검게 물든 휴페스터의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류의 존망을 건 밤이, 느리고 괴로운 세월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함선에 탑승 중인 기사와 마법사들, 마족과 수인들은 선내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깊은 공포는 그렇게 감각으로 변환될 수 있는 법이다.
그간 숱한 사선을 넘어온 각 진영의 최정예들은 간절하게 자신의 전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걸 잠깐이라도 놓치면, 공포가 칼처럼 내면을 찌를 것 같았다. 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검의 무덤이 가까워질수록, 밤이 깊어지듯 흉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하늘에도 미로가 존재할 수 있었군……. 분명 항로는 정확할 텐데, 왜 아직도 흉신의 성이 관측되지 않는 거지?”
베라딘이 말했다. 아까부터 짙은 혼기 안개가 시야를 가린 탓에 함대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르갈이 이끄는 정찰대 쪽도 마찬가지였다.
흉신이 퍼뜨리는 진짜 혼기는 그의 강철문조차 함부로 여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 베라딘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근처였군.”
갑자기 문이 열리듯 안개가 걷히며 터무니없이 거대한 성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안개가 계속 성을 가리고 있던 것이다.
흉신이 단 이틀 만에 완성한 성채는, 과연 성벽부터 그간의 보고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백 척의 함대와 용들은 그 성 앞에 그저 하루살이처럼 작아 보일 뿐이었다.
세상의 끝.
흉신의 성채를 확인한 이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고.
“소가주! 하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성채 위로 퍼진 적란운이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자연을 어그러뜨리며 무겁게 내려앉고 있는 것은, 바로 흉신의 권능을 상징하는 초거대 함선.
‘람’의 그림자가 온 하늘과 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질량이 있는 듯 용들은 비행이 버거워지는 걸 느꼈고, 함대 동력을 유지하는 마법사들은 진땀을 흘렸다.
실제로 고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게 임시 동맹의 함대를 지그시 누르는 것 같았다.
용들과 마법사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고도는 유지가 되지 않았다. 중압이 멈춘 건 함대가 성벽의 중간 높이쯤에 멈췄을 때였다.
“감히 신의 거처를 날아서 넘어갈 수는 없다는 건가…….”
신을 상대함에 있어 마땅한 의례는,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
베라딘은 이 현상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뚫지 못하면 성내로 진입할 수 없다고 말이다.
“성내 강하가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예상한 바. 전원, 고도를 높이려고 애쓰지 말고 침착하게 보호막 전개를 준비하라. 곧 환영식이 시작될 것이다.”
아울러 카둔과 오르갈, 베일이 함대 진형의 각 중심부에 자리를 잡았다.
첫 총공세 때 겪어본 바 있는 악몽, 람의 주포를 막기 위한 준비였다.
그아아아악-!
그러나 별안간 들려온 것은 포성이 아닌, 혼돈룡들의 음울한 포효였다.
놈들은 첫 총공세 때나 리칼튼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흉신의 권능이 혼돈룡들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람의 하부에서 쏟아진 혼돈룡들은 순식간에 천여 마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람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혼돈룡과 흑선들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베라딘이 예상한 환영식은 이것이 아니었다.
‘주포를 쏘는 대신 혼돈룡과 흑선을 내보내?’
초전은 시작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을 보였다.
저만한 숫자의 혼돈룡과 흑선이 나타났다면, 공중은 당연히 난전이 된다.
아무리 흉신이라 할지라도 아군이 뒤섞인 하늘에 람의 주포를 발사하지는 않을 터.
‘주포에 사용되는 힘을 아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저 정도 병력은 난전을 유도한 후 우리와 함께 치워도 된다는 건가?’
베라딘이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망루로부터 긴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소가주님! 함선 람의 동력이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입니다!”
“뭐라고?”
“람의 중앙 부분이 개방되며 돌출되던 주포의 움직임이 갑자기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주포로 모여들던 혼기 역시 흩어졌습니다!”
람의 동력은 흉신의 권능 그 자체다. 동력이 끊겼다면 그건 곧 흉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여야 하며, 혼돈룡과 흑선들 역시 강화되지 않았어야 한다.
‘흉신의 권능은 건재하나, 함선 람과 연계되는 고리만이 끊어졌다……?’
린 밀카노.
바멀 연합을 제외한 임시 동맹은 그녀의 배신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람이 갑자기 멈춘 이유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소가주,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기회요. 람이 다시 가동하기 전에 최대한 돌파해야 하오.”
옥타비아가 말했다.
베라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베라딘은 돌파 명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스스로 위화감을 물리칠 만한 근거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전 함대 돌파 진형으로 변경. 주포 방어의 중심이 되기로 한 3인 중에선 화룡 카둔과 기사 베일이 선두에 서고, 오르갈은 계속 방어에 대비하라 알려라.”
함대가 진형을 바꾸기 시작하자 흉신의 공중 전력도 그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포수들 위치로. 현 시간부터 돌파가 완료될 때까지, 자율 포격을 허가하겠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 함대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성 쪽에서는 혼돈룡의 숨결과 흑선의 포격이 날아들었다.
쉴 새 없이 귓속이 묵직해지는 소음이 번졌고, 망막엔 포격이 맞부딪히며 퍼지는 어지러운 빛이 새겨졌다.
“나도 이만 나가보겠소, 소가주.”
“무운을 빕니다, 망령대장.”
옥타비아가 갑판으로 나섰다. 그녀를 비롯해 각 함대의 기함들 위로 초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헤도의 검도, 단테의 무형검, 시리스의 만빙, 발카스의 흑왕권, 아멜라의 전쟁병기, 율리안의 뇌궁 하르밀라, 베락트와 비앙카의 대검기, 란케의 폭주, 옥타비아의 빛 마법과 망령대의 연환 마법 등.
그 모든 절기들이 몰려드는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선봉을 맡은 베일이었다.
그의 황금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마다 백 단위의 혼돈룡과 흑선이 입자로 분해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공중전에서의 베일은 그야말로 재앙과 같다. 속도는 요격이 불가능했고, 홀로 함대 수준의 공격 범위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람의 주포는 여전히 개방이 중지된 상태였다. 하부에서 계속 충원되는 혼돈룡과 흑선들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지금의 임시 동맹에게 물량전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초인들의 힘을 분산시킬 만한 전력이 나오지 않는 한, 성문 앞까지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십여 분 뒤.
임시 동맹은 또 한 번 상정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전방, 자줏빛 역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역장이 함대를 끌어들입니다……!”
흉신의 성에 도달하기까지 약 5리를 남긴 시점이었다.
성채 사방에 형성된 자줏빛 역장의 인력에, 함대의 비행 속도가 설정한 것보다 더 빠르게 가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흉신의 공중 전력은 그 역장에 효과를 전혀 받지 않았다.
함대가 속도를 늦추느라 잠시 주춤한 사이 적들의 역공이 이어졌다.
역장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갑판 위의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각자 방어막을 치고, 무언가를 붙잡으며 인력에 저항하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었다.
선두 무리에 있던 용들이 역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베일이 금빛 권능을 일으켜 일부를 다시 역장 외부로 끌어냈으나, 일부가 역장에 처박히는 건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카하아악!] [크학……!]역장에 붙잡힌 용들이 외마디 비명을 토했다. 그들은 역장에 닿자마자 종잇장처럼 우그러지고 있었다.
뒤편의 함대 또한 쉽사리 역장 반대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다행히 역장이 물리적 공격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니군.’
함대의 포격이 역장을 두들길 때마다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균열이 다시 수복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포격만으로 뚫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될 것이다.’
한 척씩 혼돈룡과 흑선에 당해 침몰하는 함선이 생겨났고, 베라딘은 전황을 유심히 살폈다.
베일처럼 특수한 힘을 보유한 인물의 공격이 일으킨 균열은 일반 포격에 비해 확연히 늦게 수복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오르갈과 베일이 핵심이 되어 역장을 파괴해야 했으나, 혼돈의 군대도 그 사실을 알아보고 있었다. 놈들은 집요하게 두 사람을 압박해댔다.
“오르갈과 카둔의 위치를 변경한다.”
“다소 시간이 필요합니다, 혼돈룡들이 후방을 잡았습니다!”
내내 방어에 대비하던 오르갈이 그것들을 처리하며 역장에 끌려가는 함선들을 붙잡고 있었다.
전방의 베일 역시 같은 상황인 만큼, 그 둘을 중심으로 역장을 파훼하려면 진형 변경에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코젝의 수련실에 있던 한 사람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베라딘.”
“안 그래도 부르려던 참이었다.”
진, 가장 특별한 힘을 가진 마검사.
“명상은 잘 끝냈나?”
함대가 흉신의 성으로 진격하는 사이, 진은 홀로 수련실에서 마지막으로 명상을 진행했다.
로사와의 일대일을, 흉신과 오롯이 홀로 주고받아야만 하는 검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한 명상이었다.
진은 자줏빛 역장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흉신의 성을 응시했다.
저 성 가장 깊은 곳에서, 로사 또한 자신과의 대결을 상상하고 있을 터였다.
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베라딘의 지팡이에 불꽃이 맺혔다. 과거 검황성전에서 켈리악이 사용했던 ‘불의 인장’이었다.
베라딘이 허공에 지팡이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어둑한 밤하늘에 붉게 빛나는 거대한 글씨가 새겨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진 룬칸델이 내려간다.
포문이 열리듯 코젝의 앞유리가 개방되었다.
진은 영기에 물든 브라다만테를 추켜들며, 전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