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0)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3)
진 룬칸델이 내려간다.
전장의 모든 아군들이 그 붉게 빛나는 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돈룡과 흑선조차 잠시 동작을 멈춘 듯했다.
이 전장에서,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군에게도, 적들에게도.
혼돈의 군대는 흉신의 피조물, 그들에게 로사는 ‘어머니’와 같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이 향하는 곳은 오직 진 룬칸델이라는 한 사람뿐.
흉신의 피조물들은 자신들이 진과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로사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녀의 뜻과 마음과 의지가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그녀가 바라는 단 한 가지가 무엇인지, 그 대가 없는 사랑과 증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흉신의 피조물들은 진에게 뒤틀린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로사가 완성되어 갈수록 피조물들은 그녀의 내면을 더 뚜렷하게 읽어왔고, 지금은 진을 향한 그 막대한 적개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지이인…… 룬……카안, 델!]한 혼돈룡이 악의에 찬 어눌한 목소리로 악을 쓰며 진에게 쇄도했다. 놈을 따르는 무리들도 함께 하강하는 진을 덮치고 있었다.
“사람의 말도 하는군.”
진이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순간적으로 혼돈룡들에 가려 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스악-!
브라다만테가 반원을 그렸다. 진을 덮쳤던 혼돈룡들은 반원의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몸이 뚫리거나 조각난 채 공중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찰나의 순간에 이십여 마리에 이르는 혼돈룡이 죽은 것이다.
진은 역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건 진이 혼돈의 피조물들처럼 로사로부터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망토처럼 둘러싼 영기 장막이 역장의 인력을 상쇄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진은 하강을 멈추지 않은 채 허공에 빙결 속성의 마력을 뿌려 길을 형성했다.
역장을 향해 달리는 진의 발아래로 은하수처럼 빛나는 얼음 결정들이 흩뿌려졌다.
영검 제1식, 영혼 베기.
거대한 역장을 향해 한 인간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아무리 날카롭다 한들, 역장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게 고작일 터였다.
그러나 수직으로 떨어지는 진의 검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중력이 그를 끌어당기는 속도에 맞춰, 역장은 반으로 갈리고 있었다.
“진을 엄호해!”
“12기수를 엄호하라!”
엄호는 필요치 않았다. 혼돈룡의 숨결과 흑선의 주포가 벌떼처럼 진을 덮쳤으나, 그들은 드넓게 퍼진 영기 장막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진은 그것들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오롯이 역장을 베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내 진이 지상에 착지했을 때, 그와 역장의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모두 한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도양단.
역장 중앙을 직선으로 가른 거대한 검흔에, 초인들조차 일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 수많은 함대와 용들을, 각 세력의 최고의 정예들을, 인세의 영웅들 모두를 당황케 만든 역장이었다.
그것이 단 일검에 반으로 찢어진 것이다.
물론 아직 역장은 소멸하지 않았다. 찢어진 탓인지 무자비하던 인력은 다소 약해지기는 했으나, 함대와 용들이 내부로 들어서기에는 균열이 좁았다.
따라서, 동료와 동맹들에게도 할 일이 있었다.
“헤도 경, 베일!”
온 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진의 부름에 두 사람이 즉시 지상으로 착지하며 진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균열을 열어주십시오. 그사이 내가 상공을 잠시 책임지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은 역장의 균열을 마치 문처럼 열어젖히라 말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헤도와 베일은 곧바로 균열의 양측에 서며 두 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그들 정도의 괴력을 갖지 않고서는 실행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읍……!”
[크아아아아!]쩌저적-! 끄지직……!
헤도와 베일이 있는 힘껏 균열을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조금씩 역장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은 검을 바꾸었다. 봉뢰검 시그문드가 검집을 빠져나오자 광심장에 시퍼런 빛이 맺혔다.
동시에, 전장 위로 수백 갈래의 벼락이 쏟아졌다.
그 벼락은 혼돈의 군대가 아니라 아군 함대와 용들에게 직격하고 있었다.
섬멸이 아니라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검이기 때문이었다.
형제수호자, 명왕검 사투왕 절기.
하지만 아무리 진이라 할지라도 이토록 많은 군대를 제대로 보호하는 건 불가능했다. 뇌기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뜨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투신합일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다면 그 역시 가능할 테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형제수호자의 뇌기 보호막은 어디까지나 피아식별을 더 수월히 하기 위한 장치일 뿐. 진짜 보호는 여전히 오르갈의 역할이었다.
가아아아……!
타오르는 새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신이 그 푸르고 신령스러운 몸을 드러내며 포효하고 있었다.
테스, 막 소환된 진의 불사조가 부릅뜬 눈으로 적들을 주시했다. 혼돈룡들이 그의 몸을 물어뜯고자 쇄도했으나, 테스는 그 주둥이가 몸에 닿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혼돈룡들은 불에 닿은 부나방처럼 맥없이 타버릴 뿐이었다.
그조차 개중 그나마 강한 개체들만이 테스의 근처에서 타올랐다.
약한 개체들은 아예 테스에게 공격을 시도할 수도 없었다. 접근하기도 전에 날개의 피막이 녹아내려 추락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군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역장을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던 함대의 동력은 다시 주포로 집중되었고, 초인들은 다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하늘에 불의 인장이 떠오른 건 불과 몇 분 전이다.
진은 그사이 전세를 완전히 뒤집고 있었다.
한 사람의 힘이, 아군들의 내면에 싹트던 불안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몰려들던 혼돈룡과 흑선의 수가 현격히 줄었다.
함대는 이제 역장의 인력을 바람처럼 이용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크워어어!”
[으그그그극!]헤도와 베일의 괴력이 드러내는 성과가 가속되고 있었다.
처음 진이 만들었던 직선 형태의 균열은 이제 타원처럼 벌어진 모습.
역장은 더 이상 평평하지 않았다. 타원 모양의 균열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흉하게 우그러져 있었고, 그런 부분마다 영기가 들어차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헤도 경, 이제 비켜주십시오.”
진이 다시 검을 바꾸며 말했다.
그리고 균열의 중심을 향해 사선으로 두 차례 브라다만테를 휘두르자 실핏줄이 터지듯, 역장에 맺혀 있던 영기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처엉-!
역장의 한 면이 유리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함내의 아군들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뜨렸다.
‘임시’ 동맹이라고는 하나.
오늘만큼은 모두가 진심으로 진에게 의지하고, 진을 믿고 있는 것이다.
[고생은 우리가 다 하고, 폼은 네가 잡냐!]“그게 억울하면 네가 솔더렛과 계약을 해라, 베일. 그 검은 다시 내게 돌려주고.”
[내 샤칸에 손만 대봐, 확.]아직 3면이 남기는 했으나, 베라딘은 이미 진이 내려선 순간부터 그쪽에 있던 함대를 중앙으로 집결시킨 상태였다.
“전진!”
함대가 역장 너머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함선 람의 하부에서는 더 이상 혼돈룡과 흑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흉신의 성은 가까워질수록 끔찍한 위압감을 드러냈다. 고도가 낮아진 탓에, 함대에 있는 아군들조차 성 뒤편의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 지점을 지나왔을 뿐이다.
흉신의 군대에서 혼돈룡과 흑선이 차지하는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7성 이하의 인물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기엔 충분하지만, 지금처럼 진 같은 인물이나 초인들을 보유한 군대를 상대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애초에 흉신의 무지막지한 역장이 없었다면 제대로 전투가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는 혼돈에 물든 검귀들.
그들을 지휘하는 영묘의 옛 영웅들과, 성내에 존재할 수많은 변수들, 그리고 흉신 그 자체였다.
람이라는 불안 요소도 계속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약속대로 린이 람을 정지시킨 듯 보이나, 언제든 다시 가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
‘로사가 린 경의 배신을 계속 모르고 있을 리는 없다. 람이 정상화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전력을 성내로 침투시켜야 한다. 린 경의 희생이 헛되이 되어서는 안 돼.’
진이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전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거대한 괴물이 깨어나는 듯한, 그런 울림이 지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흉신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해처럼 거대한 문은 그만큼 깊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
“전 함대, 주포 최대 출력 장전, 즉시 포격하라.”
베라딘은 즉시 포격을 명령했다. 그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어둠에 동맹들이 잠시라도 압도되지 않도록.
진은 베라딘이 아주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성문의 어둠은 분명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으니까.
또한 적이 나타나는 걸 굳이 기다려줄 이유는 없었다.
콰아아아……!
수백 발의 포격이 휑한 어둠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인간의 성이라면, 문이 아니라 성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도 남을 화력.
그러나 포격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돌멩이와 다름이 없었다.
포격이 계속되고 있건만 성내에선 먼 폭음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허망하게 빨려 들어가고만 있었다.
“중지!”
소용없는 공격을 위해 마력을 소비할 이유는 없다.
베라딘은 곧장 포격을 중지시켰으나, 역효과가 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전 함대가 최대로 전개한 포격이 우물 속으로 떨어진 돌멩이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싸움에서도 군대의 사기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전장에 서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흉신의 권능이 모두의 내면을 압박하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베라딘은 지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몇 초쯤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진은 한 차례 호흡을 고르고는 기합을 내지르며 검기를 난사했다.
열린 성문이 아니라 성벽을 향해 무작위로 검기를 쏘았다.
다행히도 열린 성문 속으로 그냥 사라져버린 포격과 달리, 성벽은 물리적 충격에 타격을 받는 모습을 보였다.
성벽이 갈라지며 석재가 터지는 듯한 굉음과 금속성의 파열음이 퍼지고 있었다.
“세상에 절대로 부술 수 없는 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저 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동맹들은 침착하게 성벽을 타격하며 전투에 대비하라. 곧 성내에서 적들이 뛰쳐나올 테니.”
진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그러쥐었다. 성문 안쪽에서부터 음울한 기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꿈틀대는 걸 느끼면서.
“그리고 그들 또한, 오늘 우리 손에 모두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