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1)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4)
진의 결의에 화답하듯, 함성을 내지르듯.
다시 함대가 불을 뿜었고, 용들은 숨결을 토했다. 혼돈룡의 시체와 흑선의 잔해들이 그 충격파에 산화하고 있었다.
진은 어지러운 포화 속에서 계속 성문의 안쪽을 주시했다.
그 속에서 풍기는 음울한 기운이 빠르게 증폭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기사인가, 나름 무게감이 있군.’
성내에서부터 퍼진 날카로운 투기가 피부를 찔러왔다.
어차피 성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로사와 싸울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혼자 오지 않았으니까.
“베일.”
[왜?]“안에서 나오고 있는 놈 너무 뜸 들인다. 가서 뭐 하고 있나 봐봐.”
“좋은 의견이군.”
진의 말에 헤도가 맞장구를 치자 베일은 표정을 구겼다.
[성문으로 혼자 들어가라고?]“그래. 너보다 저 어두운 곳을 살피기 적합한 인물이 없네. 무명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또 내부에서 역장처럼 특수한 힘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너는 아무래도 좀 더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잖아.”
[하아.]한숨을 내쉰 베일이 두 날개를 펼쳤다.
진과 헤도를 향한 짜증이 샤칸의 칼날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권능으로 발화하고 있었다.
[망할,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파앙-!
베일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성문으로 쇄도했다.
동맹들은 긴장을 유지한 채 그의 뒷모습이 성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베일이 들어갔는데도 성내엔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삼십여 초가 지났을 때, 동맹들 대부분은 기함하며 탄식을 내뱉어야만 했다.
성에서부터 한 호리호리한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왼손으로 베일의 머리를 쥐어 땅에 질질 끄는 채로.
오른손에는 그보다 족히 두 배는 긴 장검을 들고 있었다. 샤칸이 장검 베일이었을 때와 유사한 형태였다.
[가주가 그토록 아끼기에, 한 번 배짱은 얼마나 좋은 녀석인지 보고 싶었건만.]철푸덕, 퉷!
기사가 베일을 제 발 앞에 내던지며 침을 뱉었다.
그는 라이오넬과 마찬가지로 다른 혼돈의 기사들과 달리 전신에 은은한 쪽빛이 흘렀다. 영묘에서 빠져나온 기사들만이 그런 형태를 하고 있었다.
[흥이 깨지는군. 당연히 혼자 들어와서 이쪽을 다 쓸어줄 정도는 되는 놈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이딴 인형이나 먼저 보내다니…… 실망, 실망, 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단 말이다.]그가 말하는 사이 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방심했네.”
“방심했군.”
진과 헤도가 동시에 말했다.
베일의 저 꼴사나운 모습을 온 동맹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등줄기가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하여간 저건 초회복이 문제입니다, 헤도 경.”
“그래, 어지간해선 죽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있으니 저런 꼴을 당하는 것이지. 방금까지 네가 기껏 끌어올려 놓은 아군의 사기를 저 망나니가 지금 다 깎아먹으려 하고 있구나.”
“베일을 믿은 제 잘못도 크니 할 말이 없습니다.”
[이봐,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저놈도 방심하고 있군요. 베일에 대해 흉신 측에 보고된 바가 분명 많을 텐데, 저런 자만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실력일 테…… 음!”
치잉-!
별안간 기사가 내지른 장검에서 한 줄기 날카로운 섬광이 번졌다.
진과 헤도의 사이로 룬칸델의 제5비기, 광속 찌르기가 지나간 것이다.
[배짱도 없고, 싸가지는 더더욱 없는 놈이로군. 비록 지금은 네놈이 반역을 저지르고 있으나 얼마 전까지는 룬칸델의 가장 촉망받는 기수였다고 들었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우선 내게 예를 갖추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설마 내가 영묘에 묻혀 있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은 아닐 테지.]진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룬칸델에 헌신한 자. 가문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몸과 영혼을 모두 바친 자. 그 어떤 재앙이 찾아와도 기어이 마지막까지 가문을 수호한 자.”
[잘 알고 있군. 하면?]“그런 자가 왜 거기에 서 있지?”
[뭐라?]“너는 아마 생전에 방금 내가 말한 거의 모든 조건을 충족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묘에 묻힐 수 있었을 거고. 그러나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디를 향하고 있지? 흉신이 가문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는 지금, 무엇을 지탱하고자 거기에 서 있는 것이지?”
기사는 대답하지 않고 진을 노려보았다.
[가주가 되어본 적도 없는 녀석이 잘도 나를 가르치려 드는구나…….]“네놈이 가주였든, 평기사였든 그건 중요치 않다. 영묘에서 깨어난 지금, 죽음 이후의 의무를 지키고 있는가만이 중요할 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의무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마. 당장 나와 함께해서 룬칸델의 투쟁이 흉신의 권능에도 꺾이지 않음을 증명하라.”
[갈수록 태산이군!]“내 말에 응하겠나?”
퉷! 남자가 한 번 더 침을 내뱉었다.
[대답이 되었느냐? 나는 센가 룬칸델! 검가의 11대 가주이자 다시 한번 룬칸델을 위해 죽음에서 돌아온 자다.]“센가, 네놈으로부터 영묘에 다시 안치될 자격과, 룬칸델의 성을 박탈하겠다.”
센가가 대답하려는 찰나, 진은 한껏 숨을 들이마시며 여전히 성문 앞에 쓰러져 있는 베일을 쳐다보았다.
“베일!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서 놈을 마저 상대해줘라.”
[쳇…….]베일이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진과 헤도의 말대로 베일이 센가에게 추하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 나온 이유는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성으로 진입하자마자 센가의 장검에 가슴팍이 관통되었고, 이어 체내에서 그의 오러가 폭발하며 온몸이 터질 뻔한 것이다.
그게 딱히 베일에게 큰 타격이 되지는 않았다. 베일이라는 ‘생명의 흔적’을 소멸시키려면 창성, 혹은 그에 준하는 권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다만 베일은 한동안 그냥 누운 채로 창피한 마음을 억누르기로 했었다.
‘아, 쪽팔려. 혹시 어딘가에서 파들러 새끼가 이 모습을 지켜본 건 아니겠지……?’
다행히 주위를 둘러보아도 파들러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파들러에게만큼은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베일을 지켜보던 센가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나도 언제 일어나서 꺼지려나 궁금하던 참이었다, 인형.] [이 새낀 아까 진한테 선조 타령하더니, 나한테는 왜 맞먹으려고 들지? 방심해서 내 몸에 칼 한 번 꽂으니까 뭐라도 된 것 같고 그러냐? 어? 내가 기분이 언짢아서 가만히 있었더니 붕어밥 같아?]나날이 산드라와 지낸 데다 무척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기 때문인지, 베일은 다소 걸쭉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종종 엔야가 들려준 무라칸 성대모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말이다.
[과연, 파들러 경의 말대로 저급한 인형이로군. 하지만 네놈의 목숨은 이미 한 번 앗아보았으니 흥미가 없다. 너와 다른 놈들에겐 친구들을 붙여줄 테니, 잘 어울리며 기다려라. 나와 반역자, 진 룬칸델의 승부가 끝날 때까지.]센가가 팔을 들어 올리자.
열린 성문에서부터 혼돈에 물든 기사와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세어볼 수도 없는 대군.
그들은 센가가 성에서 한 걸음을 빠져나온 시점부터 줄곧 성문의 경계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다.
베일은 군대가 위치를 잡기도 전에 전방 전체에 금빛 권능을 물들였다.
그리고 베일의 머리 위에 뜬 빛나는 고리가 드넓게 퍼진 권능과 공명하기 시작하자, 그 땅을 밟고 있던 흉신의 병력들이 일제히 폭사하는 풍경이 이어졌다.
[너 방금, 진과 승부를 내겠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너 따위가? 도대체 무슨 수로? 지금 실시간으로 터지고 있는 네 부하들까지 전부 다 한꺼번에 덤벼도 저 녀석에겐 겨우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일 거다. 애초에 흉신이라는 놈도 네가 진을 상대하는 건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걸?]센가는 병력들의 허망한 죽음을 보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으나, 샤칸을 뒤덮은 금빛 권능이 한층 더 진해진 다음부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베일은 룬칸델의 최전성기에 그 압도적인 힘 하나만으로 십대기사가 된 존재.
반면, 센가는 룬칸델이 가장 심각하게 저물었던 시기의 가주였다.
진이 무게감이 있다고 표현한 것도, 헤도가 센가를 상당한 실력자라고 인정한 것도. 어디까지나 ‘흉신의 문지기’ 정도는 된다는 평가였을 뿐.
마침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힘겨운 싸움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진과 동료들에게 센가 같은 인물은 작은 위기조차 될 수 없었다.
베일의 말대로 그는 진과 검을 섞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센가는, 지금처럼 처절한 시대를 살아본 적 없이 가주가 된 사내였다.
츠아악-!
샤칸이 센가의 머리로 떨어지자 두 사람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베일은 결투가 시작된 후에도 문을 빠져나오는 병력들을 계속 불사르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센가는 생각했다.
베일이 가진 힘이 아무리 거대해도, 결국 모든 병력을 처리할 수는 없을 거라고.
자연스레 함대의 포격이 이어질 거고, 그로 인해 난전이 시작되면 다시 호흡을 고르며 싸워야 할 것 같았다.
방심하지 않은 베일은 명백히 자신보다 몇 수 위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센가는 결투 이외의 영역, 말하자면 전체적인 전황에 대한 계산을 줄이고 온전히 베일에게 집중해야만 했으나.
베일은 오히려 센가보다 혼돈의 병력을 홀로 몰살하는 일에 더 중점을 맞춰갔다.
두 사람의 전투가 끝난 것은, 센가의 장검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그것을 쥐고 있던 두 팔이 어디론가 사라진 다음이었다.
[후, 후욱……!]한쪽 무릎을 꿇은 센가는 넋이 나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싸우는 동안 함대는 단 한 번도 전장에 포격을 가하지 않았으며, 살아남은 혼돈의 병력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시체의 산들 사이로, 진이 걸어오고 있었다.
“기사 센가, 이제부터 너는 더 이상 룬칸델이 아니다. 또한 전쟁이 끝나더라도, 너의 주검은 세상의 그 누구도 수습하지 않을 것이다.”
[큭큭…… 그걸 정녕 네가 정할 수 있다는 말이냐, 저 안에 버젓이 가주가 숨쉬고 있건만. 네 반역은 성공할 수 없다.]진이 천천히 센가의 머리를 돌렸다.
센가의 시선이 그가 아까 빠져나왔던 성내의 어둠 너머에 닿도록.
“오늘 저 어둠으로 들어가 로사에게 검을 겨눈 자들은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갖게 될 테지만, 투쟁을 잊고 끝끝내 흉신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이름은 멸시에 파묻혀 잊힐 것이다.”
센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은 애써 떨림을 억누르는 그의 눈동자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영묘의 기사들은 본래 흉신의 권능을 통해 부활이 가능하나, 로사는 애초부터 그를 되살릴 계획이 없었다.
진은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로사는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센가 같은 부류를 아껴준 적이 없었기에.
풀썩!
센가가 바닥에 엎어졌다.
진은 그를 지나쳐 서서히 성내의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헤도와 베일, 그리고 하강해서 진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어느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