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33)
제 777화
184화. 숙명을 넘어(6)
깊다.
황성에 있던 땅굴조차 이 절벽에 비하면 얕은 수준이었다.
진은 거의 몇 분을 하강했는데, 지면이 가까워질수록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는 칼처럼 자신의 몸을 찌르는 혼기였고, 두 번째는 오러 생성 기관이 막히는 감각이었다.
마치 콰울과 발레리아가 제작한 ‘오러 방해기’에 노출된 것처럼 말이다.
착지 직전, 진은 검기로 충격을 상쇄하며 부드럽게 지상을 밟았다.
한 가지 직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곳은 ‘지하 1층’에 불과할 것이라고.
‘로사는 몇 층인지 몰라도 분명 최저층에 있을 테지.’
주위를 살펴보니 저 멀리 쪽빛의 불빛들이 보였다.
진은 어림잡아 스물 가까이 되는 그 불빛이, 안광이라는 사실을 곧장 알아보았다.
그 눈동자들로부터 퍼지는 사나운 살기가 눈에 보일 듯 형형했다.
“이번엔 부디.”
진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처럼 공동에 퍼져 나갔다. 이번에도 지금까지 영묘에서 나온 기사들과 전혀 다른 기운이었다.
“내가 선조라고 부를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군.”
안광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도 그들을 향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한 명인가.’
스물두 개의 눈동자가 모두 쪽빛이라는 건, 그들이 모두 영묘에서 돌아온 기사들이라는 의미였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기사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복식을 살핀 진은 그들이 가주 한 사람과 열 명의 흑기사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다만 흑기사들과 달리, 가주로 추정되는 기사는 앞서 겪은 가주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얼굴이 사슬에 덮여 있어?’
검은 사슬이 그의 얼굴을 휘감고 있었다. 쥐고 있는 검 또한 역대 가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평범한 장검인지라 무기로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12기수 진 룬칸델이다. 기사들은 이름을 밝혀라.”
그 말에 가주가 아니라 한 흑기사가 대신 입을 열었다.
[혼자 내려왔군.]“네가 흑기사대장이로군, 가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냐?”
가주의 얼굴을 묶은 사슬이 조금 들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가주의 목숨을 빼앗는 건 잠시 보류하도록 하지. 다들 들어와라.”
기사들 쪽으로 비스듬히 검을 겨누는 진.
그는 오러 생성 기관과 혈도가 틀어막히는 듯한 답답한 감각이 한층 거세진 상태였다.
반면 영묘의 기사들은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기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들은 신중하게 진형을 펼쳤다.
그들은 오러 생성 기관이 묶여 있다 할지라도, 진이 결코 얕잡아볼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부담스럽다면 내가 먼저 가도록 하지.”
파앙-!
진이 딛고 있던 땅이 터지며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었다.
그의 검이 가장 먼저 노린 것은 가주의 얼굴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슬을 베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가주는 검을 추켜들며 일격을 쳐냈고, 사방에서 진을 향한 흑기사들의 검이 날아들었다.
회전하며 두 자루를 밀어낸 진은 그 틈으로 빠져나와 다시 가주의 얼굴로 칼날을 밀어넣었다.
틱-!
사슬 한 가닥이 칼끝에 걸리며 파편이 튀었다.
이어 가주가 흑기사들 뒤로 물러나며 펼친 광속 찌르기가 진의 귀를 스쳤다.
귀에서 한 줄기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으나, 진은 위기감이 아니라 의문에 휩싸였다.
‘가주의 검은 날카로우나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피부를 아릿하게 찔러오는 살기는 전부 흑기사들의 몫이었다. 즉, 가주는 진을 죽이려는 의지를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격은 하나하나가 명백하게 치명적이라…….’
가주는 조종당하고 있다.
진은 그런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누군가 가주의 몸을 인형처럼 움직이는 중이라고.
그건 당연히 로사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흑기사의 검이 진의 어깨를 스쳤다. 하나둘씩 잔상처가 생기고 있었으나 진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러 생성 방해는 분명 로사의 혼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그걸 실현하는 장치나 연결고리 같은 걸 당장 찾아 부술 수는 없으나, 진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혼자 내려오길 잘했군. 로사가 굳이 오러 생성 방해를 이용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더 쉽게 죽이기 위함이다.’
근본적으로 오러 기관을 완전히 파괴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방해 따위는 진을 그저 잠시 불편하게 만드는 게 전부일 뿐이다.
카아아아-!
진이 기합을 내지르자 번쩍이는 빛과 함께 충격파가 퍼졌다.
그 여파에 달려들던 세 명의 흑기사가 튕겨졌고, 그들의 중심에 있던 가주가 뒷걸음질을 쳤다.
내내 막혀 있던 혈도가 열리고 있었다.
진이 처음부터 오러 방해를 풀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가주와 로사의 행동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성을 짓고, 지하를 파내고, 옛 가주의 입을 틀어막고, 오러 방해 같은 잡기를 이용하고…… 흉신이 자꾸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군.”
브라다만테의 칼날이 하늘로 향하며 새하얀 빛을 머금었다.
룬칸델 제3결전기, 유성우.
허공에 형성된 검기가 해일처럼 지하로 빗발치는 모습이 이어졌다.
흑기사들은 자세를 낮추며 유성우를 요격하기 위한 검기를 퍼뜨렸고, 그 찰나의 틈에 진은 그들의 진형을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스걱-!
한 흑기사의 오른팔이 떨어지며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되었다. 한 자루와 열한 자루의 검이 뒤섞이며 어둠 속에 끊임없이 복잡한 잔상을 남겼다.
그 와중에도 유성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전장을 타격했다.
한 덩이의 검기가 떨어질 때마다 지형이 바뀌었고, 흑기사들은 항상 진보다 한 걸음 늦게 보법을 밟았다.
오직 가주만이 진과 거의 유사한 속도로 정신없이 이어지는 전장의 형세를 읽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쪽빛 눈동자에선 살의를 읽을 수 없다.
오히려 어떤 절박한 외침 같은 것을 품고 있는 듯했다.
명백히, 그는 이 싸움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 검술은 당신의 것이 아니군.”
룬칸델의 검은 결전기와 비기를 제외하면 특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진은 가주가 사용하는 검에서 한 익숙한 흐름을 읽어내고 있었다.
룬칸델의 육체를 갖지 못하고도 그 누구보다 룬칸델처럼 무지막지하게 검을 휘두르던 사람의 흐름을.
“인간 시절에 대한 향수라도 느끼고 있는 것인가? 흉신.”
가주의 검은 정확히 로사의 검술과 일치하고 있었다.
로사가 그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로사가 그를 ‘조종’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
‘옛 가주는 맞서고 있는 것이구나, 흉신에게.’
진은, 그의 모습에서 씁쓸함과 동시에 룬칸델이라는 가문의 한 줄기 희망을 함께 보고 있었다.
‘영묘에서 나온 모든 기사들이 로사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가주처럼, 흉신의 의지에 반하고 있는 자들이 있어.’
가주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진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렀으나.
진은 그가 끝끝내 놓지 않은 룬칸델의 마음가짐 하나를 읽어내고 있었다.
투쟁, 신의 의지에 맞서도 꺾이지 않는.
길고도 긴 룬칸델 천 년의 역사에.
이 같은 인물이 단 한 사람만 남았을 리는 없다.
라이오넬이나 센가처럼 거악에 굴종한 자들이 있다면, 끝끝내 무너지지 않는 사람도 있어야만 했다. 지금, 살아 있을 때보다도 절박하게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옛 가주처럼.
진은 그때서야 로사의 의도를 알아보았다.
‘끝끝내 맞서는 선조들조차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걸 보여주며, 내가 그런 이들을 모조리 죽이기를 원하고 있겠지.’
로사뿐만이 아니라 진과 검을 섞고 있는 가주 역시, 바라는 것은 본인의 죽음이다.
이토록 치욕스러운 인형이 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로지 죽음이라는 탈출구밖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죽어서도 영혼이 해방되지 못해 영원한 고문을 받게 되더라도, 흉신을 위해 싸우는 인형이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해 정신이 무너져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더라도. 가문을 더럽히는 자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이었다.
진은 로사의 그런 추악한 의도에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곧 풀어드리겠습니다, 선조님.”
가주를 대하는 진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를 향해 뻗는 검은 더욱 매서워졌으나, 그건 한시라도 빨리 그를 묶은 사슬을 깨기 위함일 뿐이다.
다만 흑기사들이 집요하게 진을 물어뜯고 있었다.
명왕군림검, 혹은 그에 준하는 비기들을 펼치며 싸우기엔 가주의 육체를 보존할 수 없었다.
물론 가주의 속박을 푼다 한들, 로사가 그로부터 영혼이나 생명을 거두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진은 사슬을 풀어서 잠시라도 온전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선조께선 끝까지 명예롭게 싸워주셨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를 살려서 이 지옥을 함께 헤쳐가고 싶었다.
터걱!
가주의 얼굴을 휘감은 한 줄기의 사슬이 베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조금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동시에 진의 어깨에서 핏물이 튀었다.
흑기사대장의 칼날이었다.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계속 출혈이 누적되면 진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층에서 지하로 뛰어내리는 동료들이 있었다.
“진!”
헤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더불어 비앙카와 옥타비아가 전장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10분이 지난 것이다.
그들이 없을 때에도 전황은 진의 우세로 흘러가고 있었으니, 영묘의 기사들은 더욱 어려운 전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헤도의 검도와 옥타비아의 빛 마법이 흑기사들을 덮쳤다.
얼마 전까지 같은 진영이었던 그들은 호흡이 아주 잘 맞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흑기사들이 움찔한 사이 비앙카가 진의 후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흑기사대장은 진에게 찌르려던 검으로 비앙카의 대검을 막아야만 했다.
잠시 진은 가주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진은 로사가 직접 그를 조종하고 있는 만큼, 싸움이 다소 길어지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진이 사슬을 향해 검을 내지른 순간, 가주는 순간적으로 로사의 조종을 풀어냈다.
브라다만테를 쳐내기 위해 움직이던 검이 한순간 멈춘 것이다.
‘내가 사슬을 몇 가닥 끊은 덕인가!’
그건 가주가 조종을 거부하며 이끌어낼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의 결과였고, 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악, 철컹-!
마침내 진은 단 일격에 가주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었다.
얼굴이 드러난 가주는, 진이 전생에 룬칸델의 역사를 공부하며 수차례 들어본 적 있는 인물이었다.
알펜 룬칸델.
그는 룬칸델의 20대 가주이자, 과거 ‘빛의 기사’라 불리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