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8)
제 77화
26화. 룬칸델이라는 기현상(2)
‘저건……!’
하늘을 올려다보는 진의 두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전생에 몇 번쯤, 형제들이 가문의 결전기에 대해 논하는 걸 들은 적 있었다.
하늘이 열리며 오러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아 ‘제3 결전기 유성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목도한 가문 비기의 모습은.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강하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무수한 검기.
한 줄기, 한 줄기가 지상을 내리칠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번졌다.
인간이라는 종이 검이라는 도구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의 끝을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며 정신을 집중하는 진. 단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부 눈에 담아 두고, 언젠가는 직접 이와 같은 광경을 재현하고 싶었다.
이 압도적인 힘을.
퀴칸텔도 넋을 놓고 하늘을 수놓은 오러의 별들에 시선을 고정한 와중, 무덤덤한 사람은 무라칸뿐이었다.
[결전기 유성우라, 천 년 만에 보는군. 테마르의 원본에 비하면 조금 부족하지만 네 누이도 괴물은 괴물이구나.]콰르릉!
콰륵!
유성우가 지상을 난타할 때마다 섬 전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대지는 흉측하게 갈라지고, 바위는 산산조각 으스러지며, 흙은 그보다도 더 작은 입자로 분해된다.
닿는 모든 것을 무無로 환원시킬 것 같은 기세로 빗발치는 유성우.
그 속에서 간신히 피할 땅을 찾고 있는 한 마리의 용과 인간은 한없이 작고 초라했다.
감히.
어설픈 힘에 기대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플의 일원들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마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다……! 이럴 수는 없어!’
마신석을 움켜쥔 채, 기도처럼 되뇌는 안드레이.
다시 본모습으로 변신한 뷰렛타가 필사적으로 그에게 몸을 던지고 있었다.
‘안드레이만 살리면 승산이 있다. 안드레이만 살리면!’
온몸이 일만 조각으로 찢겨도 작은 뼈, 한 덩이 살점만 남길 수 있다면. 마신석의 힘으로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었다.
때문에 뷰렛타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나.
루나의 힘은…….
여전히 공포였다.
살아나도, 살아나도. 어차피 또다시 살해당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에. 어쩌면, 마신석을 완전히 개방해도 이 인간을 당해 낼 순 없을 것 같기에.
반면.
여전히 검을 내리친 자세 그대로 멈춰 있는 루나에게선 진하고 심원한 위엄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쏟아지는 유성우에도, 그 속에서 갈가리 찢겨 나가는 뷰렛타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만족스럽지 않다는 마음.
말 그대로 섬을 지워 버리고, 지플의 일원들을 압살하고 있음에도.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검에 닿긴 아직도 멀었군.’
과거 딱 한 번 마주한, 아버지의 유성우는 이렇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보다 더 초월적인… 차마 인간의 검이라 부를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느낌이 들어야, 비로소 아버지의 검에 닿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막내에겐 좋은 공부가 되겠지. 자극도 될 거고.’
만약 내가 끝내 아버지의 검에 이르지 못한다면.
네가.
막내, 너는 반드시.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쳐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위대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은 이 검을 지켜보고 있을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성장하라고, 더더욱 강해져 룬칸델의 가주가 되라고.
그리고 진은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누이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멀어서 잘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늘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군.’
가슴속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검에 대한 열망이 치열해지는 기분. 누님을, 아버지를 뛰어넘어 검의 성좌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에 숨이 막혔다.
진은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유성우가 끝을 맺었을 땐.
섬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부터 화산이 터진 듯 해일이 솟구쳤고, 뷰렛타와 안드레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산화한 것이다.
무심히 솟아오르는 해일의 물결 속에 간간이 뷰렛타의 사체 일부가 잠겨 있는 게 보였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엔 구름조차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유성이 지나간 자리였기 때문이다. 더없이 맑게 갠 하늘과 해일이 대비되는 와중, 루나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네요? 동생 보는 앞에서… 이렇게 질기게 굴면 짜증나는데.”
해일을 향해 크란텔을 겨누는 루나.
동시에, 해일에 가려져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멓고, 거대하며, 기괴한.
얼굴.
마신석의 그것과 똑같이 생겼으나, 이어서 두 팔과 다리, 몸통이 해일 속을 빠져나오는 광경이 이어졌다.
마신석과 동화한 안드레이의 모습이었다.
“미친… 저게 대체 뭐야? 놈의 아티팩트가 개방된 결과인가?”
근원석이나 마신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진이 보기에도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또한 ‘아티팩트’가 일으킨 현상이라고 판단하기엔 너무나 불길하고 괴상한 힘.
‘이런 건 전생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어. 꼭 역신이 강림한 것 같은 모습이잖아?’
‘역신’이라는 단어보다 저 괴상망측한 것에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 같았다.
퀴칸텔의 꼬리가 말려 들어갔다. 본능적인 공포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조품이라고 하나.
마신석이 지닌 ‘신들의 힘’은 용들에게 내재된 공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후, 확실해졌다. 꼬마, 지플은 계약자를 이용해 근원석을 재현했다. 다행히 아직은 조악한 수준인 것 같다만…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주지. 일단 자리를 떠야 돼.]“피해야 한다고?”
안드레이가 펼쳐 놓았던 ‘무풍지대’가 사라져 있었다. 이미 무라칸은 날개를 펼쳐 고도를 오르기 시작했고, 진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누님, 루나 누님을 모셔야 해! 저런 걸 혼자 상대하게 둘 수는 없어!”
[아니, 저건 당장 죽여야 해. 살려 두면 끔찍한 재앙이 될 거다. 근원석은 그런 물건이거든. 그리고 지금 여기서 저걸 끝장낼 수 있는 건 네 누이뿐이지.]“하지만.”
[내가 힘을 잃었어도, 아직 눈은 멀쩡해. 네 누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태다. 진짜 근원석이었다면 테마르가 와도 제압할 수 없었겠지만 말이야.]마치 다 듣고 있다는 듯, 루나는 어느새 진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피해 있어!”
그럼에도 진은 불안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으나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진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무라칸의 말대로, ‘저것’은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말이다.
다만 분통이 터져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오늘 이후, 두 번 다시 이토록 무력한 날은 없을 것이다……!’
으득, 이를 악무는 진.
그러나 무라칸은 내심 진이 기특해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꼬마 녀석, 겁이 없는 줄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저걸 보고도 이토록 투기를 발산하고 있단 말이지… 대견해서 깨물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군.’
등가죽이 따끔거릴 만큼 강렬한 투기는 분명 진의 것이었다.
결코 이제 막 5성에 이른 열다섯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투기.
‘넌 최고가 될 거다, 진 룬칸델. 천 년의 계약자여.’
그래서 무라칸은 도망치고 있는데도 그저 마음이 들뜨고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 녀석과 함께할 날들이 더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자, 너무 상심 말고 네 누이에게 잘 배워 두라고. 룬칸델이라는 기현상을. 오늘 루나 룬칸델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동생 일행이 섬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순간.
루나가 크란텔에 오러를 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해일을 완전히 빠져나온 안드레이가 루나를 내려다보았다.
“안드레이 지플. 음… 너무 기괴한 얼굴이라 알아보기 어렵지만, 아마 당신은 지금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 있을 테죠. 이제 아티팩트로 괴물이 되었으니, 나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르륵, 그륵, 그르르륵!
목을 긁는 것 같은 웃음소리. 그녀의 말대로, 안드레이는 이제 루나가 두렵지 않았다.
[열둘의 신이 지금, 내 속에 잠겨 있다! 루나 룬칸델이여, 네게는 무엇이 있지? 여기 네 아비가 있었더라도 내게 대적할 순 없으리라.]“아, 신이 열둘이라. 애석하게도 제게는 여전히 한 자루의 검뿐이네요.”
담담한 얼굴로 대답하는 루나.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펼쳐 보아라. 기꺼이 받아 주겠노라!]그리고 루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없이 가소롭다는 미소가.
“역시 아직도 착각하고 있군요. 당신이 만약 평생 갈고닦은 마법으로 나를 상대했다면, 내가 쌓아 온 무의 절반 정도는 구경할 자격이 있었을 겁니다.”
안드레이가 대답하려는 순간, 크란텔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오러?’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안드레이. 지금껏 수많은 기사를 상대해 봤지만, 붉은 오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마땅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마치 홍염이 번진 듯, 크란텔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리석은 이를 동정하는 차원에서… 검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죠. 그리고 자연스레 당신은 깨닫게 될 겁니다.”
당신은 ‘신’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를, 그 알량한 돌멩이에 가두기는커녕.
감히 마주한 적조차 없을 거라고. 왜냐하면, 내가 평생 보아 온 한 남자는 ‘반신’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세상을 압도하고 있다고.
“아니면, 당신이 말하는 신은 그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심검
적월
루나가 속삭이자, 크란텔을 타고 붉은 광휘가 번지기 시작했다.
섬 전체를, 아울러 창공의 한 조각까지 물들이는 빛이었다. 안드레이는 그때까지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채, 마신석의 힘에 도취되어 있었다.
[오너라! 네 무력함을.]섬에 뚫린 거대한 균열을, 또 한 번 반으로 가르는 붉은 검기가 퍼진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붉은 섬광이 섬 가운데를 잠시 스쳐 지나간 느낌.
그리고 루나는 더 확인할 것도 없다는 듯, 이미 크란텔을 거두고 뒤돌아서고 있었다.
[알…….]알려 주겠다.
그 뒷말은 마저 이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드레이의 유언이 되었다.
프즈즉!
파창!
안드레이의 가슴팍에 숨겨져 있던 마신석이 깨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그가 서 있던 공간이 잠시 깨진 유리처럼 변하더니, 그 속으로 마신석의 시커먼 기운들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이어졌고.
이미 섬이라 부를 수 없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들마저 그 일그러진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힘에 부친 듯, 한쪽 무릎을 꿇는 루나까지 그것에 잠식되려는 순간.
휘이이익!
무라칸이 전속으로 하강했고, 진이 루나에게 손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그 손을 붙잡은 루나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막내도 날 구한 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