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89)
제 777화
195화. 옛 오테리엄으로(1)
오테리엄.
그곳은 오백여 년 전 반켈라의 수도였다. 당시 성국수호전이 발발한 이후 오테리엄을 포함한 반켈라의 영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었다.
때문에 성국은 나라 전체를 대륙 중부로 이전시켰고, 옛 반켈라의 터전은 줄곧 미보호 구역으로 남은 상태다.
예비 기수 시절에 진은 옛 오테리엄에서 생체 골렘 실험을 자행하던 킨젤로의 암흑마법회를 토벌했었다. 그곳에서 리올 지플의 유산을 얻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오르갈을 마주하기도 했다.
진과는 여러모로 인연과 악연이 겹쳐 있는 땅인 셈.
“옛 오테리엄이라…….”
진은 룬칸델과 나눈 통신을 되짚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타샤는 그곳에서 남은 마족들을 처리하다 전사했다. 당시 성국수호 연합군은 그녀를 비롯한 영웅들의 활약 덕에 결국 마족 잔당을 모조리 토벌할 수 있었으나, 끝내 마계의 실체는 찾지 못했다.
결국 성국수호전은 반켈라와 연합군의 승리로 종료되었고 마족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니, 마계 조사단은 임무를 끝내지 못하고 해체했다.
양대 가문이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까닭이었다. 몇 명의 가주들이 죽었고, 소속 기사와 마법사의 피해는 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기록이 없군…….”
진의 말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주군. 당시 양대 가문이 지나친 피해를 입어 그걸 치부로 여겼다 한들, 오테리엄에 대해 남은 기록이 적어도 너무 적소.”
회의가 끝나자마자 르엣은 집사와 문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현재 검의 정원에 남은 성국수호전에 대한 기록을 낱낱이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마계의 위치’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룬칸델은 흉신전 때문에 소실된 기록이 많으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국에도 관련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시리스가 즉시 성국에 다녀왔으나 라니 역시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즉 룬칸델과 성국, 둘 다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설령 룬칸델과 성국이 성국수호전의 피해 상황을 치부로 여겨 숨기려고 했다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기록이 없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적어도 가주나 성왕만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정도는 남겨뒀을 겁니다.”
“성국과 룬칸델에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외압이 있었거나, 역사 조작이 있었거나…… 둘 중 하나겠군요.”
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게 아니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을 대사건,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사가 이토록 소실된 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외압이든 역사 조작이든.
룬칸델과 성국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지플밖에 없었다. 현재 동료들이 확인할 수 없는 기록 또한 지플의 몫밖에 없다.
“타샤 경은 당시 지플은 룬칸델을 압박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없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양대 가문은 모두 심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역사 조작 쪽으로 추가 기우는군요, 공자.”
“예. 드러나는 압박은 할 수 없으니, 몰래 역사를 지우는 쪽을 택했을 겁니다.”
“사건의 핵심이었던 알펜 경과 타샤 경이 전사한 상태였으니, 역사 조작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도 적었을 겁니다. 르엣 님의 말대로 두 분이 갖고 있던 존재의 힘이 없었을 테니까요.”
–
존재의 힘.
그 이름을 처음 확인한 건 테마르의 세 번째 무덤, 르엣이 있던 아공간이었다. 르엣은 지플이 성국수호전의 역사를 조작했을 경우, 두 사람이 부재해서 가능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플은 마계가 이 세상의 지하에 존재한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쉬누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했죠.”
“그렇다면 지플은 타샤 경이 마계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는 역사를 조작하기는 했으나, 당시 조사단이 알아낸 위치인 옛 오테리엄에 대한 건 모른다는 뜻인가?”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샤 경의 조사단에는 지플이 소속되지 않았으니까요. 타샤 경과 당대의 흑기사들만 옛 오테리엄과 마계의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었다.
“산나는 지플이 마계의 위치를 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막상 지플과 협력을 시작하니 그 위치를 모르는 눈치였다. 때문에 지플이 가진 힘을 통해 지상을 전부 파괴해 입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산나가 이미 마계의 위치를 알고 있을 걸로 추정되는 오르갈과 연계하지 않은 건, 그들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정리가 되네, 진. 그리고 설령 지플이 마계의 위치를 안다 할지라도 그걸 산나에게 바로 공유해줄 리는 없겠지. 쉬누에 의하면 베라딘과 산나는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니까. 서로 빼먹을 때까지 빼먹을 심산일 테니 상대가 원하는 걸 내어줄 이유가 없어.”
“베라딘, 산나…….”
진은 잠시 두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이 갑자기 함께하게 된 연유를.
“……성지. 지플의 성지는 태양신의 잔존 기운이 남은 땅이야. 베라딘은 산나를 통해 그 땅이 가진 특별한 힘을 이용하려는 중일 거다. 베라딘이 태양신교가 됐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태양신조차 마신석에 담기 위함일 것 같군.”
이를테면 베라딘은 태양신을 마신석에 담기 위해, 산나는 태양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게 진의 결론이었다.
“쉬누가 도움을 청한 이유도 알겠군. 베라딘과 산나, 둘 중 어느 쪽이든 목적을 달성하면 쉬누가 설 자리는 없어. 지플은 그간 마신석의 핵심을 내가 가진 영기와 쉬누의 권능이라 판단했을 텐데,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거야.”
돌아보면 지플은 어느 순간부터 진이 가진 그림자의 힘을 전처럼 탐내지 않았다.
-이 기습은 칭찬해주지. 그러나 너와 너의 신은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될 것이다, 진 룬칸델……!
-진 룬칸델을 확보하라, 그가 혼돈에 먹혀서는 안 된다!
과거 제국의 무인도에서 안드레이 지플과, 검황성전 당시 켈리악이 했던 말.
진이 계약자임이 밝혀진 이후, 지플은 줄곧 그림자의 권능을 마신석에 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흉신전 이후로는 달리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중이다. 진이 거인이 된 까닭도 있을 테지만, 진은 요즘 들어 지플이 자신의 힘을 노리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베라딘은 성지와 마검사 생체 골렘들을 공개할 때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르갈에 의하면 태양신은 이 세상의 시초이니, 태양신이 솔더렛보다 높은 권능을 지녔다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그래서 쉬누는 버려졌다는 뜻이군. 너는 어차피 지플 소속이 아니니 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일단 우리가 머리 맞대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온 것 같군요. 이제 직접 오테리엄으로 가봐야겠습니다.”
* * *
붉은부엉이를 타고 도착한 옛 오테리엄은, 과거 진이 무라칸과 함께 암흑마법회와 전투를 펼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문득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생체 골렘 실험에 희생된 성국의 신민들과, 그 실태를 알리고자 끝까지 숨어서 싸우다 자신을 희생한 성자 머츄얼 실라.
진은 잠시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함께 온 동료들도 진을 따라 묵념을 올렸다.
“……전투 흔적이 대단하군. 예비 기수 시절에 이미 10성이라도 됐던 것이냐, 진.”
헤도가 암흑마법회의 성채가 있던 자리를 훑어보며 말했다.
“아뇨, 그때 실질적인 전투는 대부분 무라칸이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테스와 동화되어 본래보다 훨씬 강한 힘을 낼 수 있었죠. 차가운 조가 테스 앞에서 불사조를 이용해 만든 골렘을 꺼냈었거든요.”
파괴된 암흑마법회의 성터가 스산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전투 흔적과 더불어, 간간이 글리엑이 남긴 혼돈에 오염된 구역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진 씨의 소년 시절 무용담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네요. 아! 이런 기쁨이라니.”
“아가씨, 우린 일을 하러 온 겁니다.”
“닥쳐! 난 이 검흔들을 더듬으며 진 씨의 영웅적인 모습을 상상할 거니까 일은 너나 해.”
그렇게 산드라가 곧장 현장에서 빠진 덕에 일행은 곧바로 조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발레리아는 그런 산드라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옛 오테리엄에 발레리아가 함께 온 건 당연히 기록 조사를 위해서다. 헤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함께 왔고, 산드라는 그냥 따라왔다.
그러나 기록창엔 별다른 내용이 서술되지 않고 있었다.
“혼돈에 지역 일부가 오염되었기 때문인지, 기록이 잘 안 잡혀. 어쩌면 딱히 특별한 기록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 애초에 네가 예비 기수였을 때, 나도 여길 찾아와서 기록을 살핀 적이 있으니까.”
-리올 지플의 마법서는 최대한 빨리 습득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그 마법서를 노리고 있는 겁니까?
-그래. 최근 내가 주시하고 있는 한 마법사가 그 마법서를 노리고 있지. 아리아 아울하트라는 인간 여자아이인데, 너처럼 꽤나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다.
과거 미샤가 진에게 리올의 유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며 했던 말.
그 말처럼 발레리아는 몇 년 전에 리올의 유산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소득 없이 돌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보다 내 능력이 많이 상승했는데도 기록이 안 잡히는 걸 보면, 킨젤로가 최근 이곳을 찾은 적은 없다는 뜻이야. 아니면…… 지하. 쉬누가 마계의 문이 있는 곳은 지하라고 했지?”
“그랬지.”
“만일 오테리엄의 아주 깊은 지하에서 킨젤로가 무언가 행동을 취했다면, 거리 때문에 기록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지도 몰라. 예를 들어 마계의 문이 몇 리쯤 되는 지하에 존재할 경우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거지.”
기록 마법에서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현장과 근접하지 않고는 관련 기록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여길 파봐야겠군. 무언가 나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