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
제 88화
27화. 각자의 사정
그들이 싸운 무인도는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유성우에 이어 심검 적월, 마신석이 깨지며 일어난 폭발까지. 자그마한 섬 하나를 통째로 지워 버리기엔 차고 넘치는 힘이었다.
그리고 비먼트는 사건을 감지한 즉시 조사단을 파견했다. 마침 인근 해역에서 근무 중이던 해상 경계병들이 곧장 상부로 보고를 올린 것이다.
조사단으로 파견된 이들은 황실 마법사들과 비먼트 특임대 3조.
그들은 사건 현장을 보자마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섬이 사라진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기이한 마력이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형성하는 모습.
소용돌이 때문에 대형 범선으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게 불가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또한 직전까지 퀴칸텔과 엔야의 행방을 찾고 있던 특임대원들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특임대원들은 직감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번 사건이 그들의 행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현장을 지켜보던 황실 마법사 하나가 특임대를 찾았다.
“라츠 조장님, 아무래도 은룡 퀴칸텔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 모양입니다. 은룡의 마력과…… 풍룡의 마력이 다수 탐지되는군요.”
“풍룡. 확실한가?”
“예, 제 생각엔 지플의 뷰렛타일 것 같습니다. 최근 이 근처에 찾아온 풍룡은 뷰렛타 하나였으니까요. 그리고 인간의 마력도 느껴지는데…… 이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군요.”
라츠가 이마를 짚었다.
그들이 대체 왜 싸운 것일까? 당연하게도 곧장 떠오르는 이유 따윈 없었다.
‘인간의 마력은 올타의 계약자인 엔야의 것일 확률이 높다. 설마 지플이 만들고 있는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젠장, 통나무집에 제대로 감시를 붙여 놓을 걸 그랬어……!’
그것, 마신석.
현재 비먼트에 마신석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황제와 특임대 조장들, 그리고 일부 대신들이 전부.
하지만 그들은 마신석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마신석이라는 이름조차도.
단지 지플이 ‘신의 계약자’와 무언가 관련이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고 있다고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장님! 해군이 소용돌이 반대편에서 용들의 사체 일부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해군이 발견한 것은 살점과 비늘이었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나무의 잔해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
“……확실하군요. 은룡과 풍룡의 것입니다. 날개와 꼬리 부분으로 추정됩니다.”
잔해를 지켜본 황실 마법사가 말했다.
“물에 떠다니는 잔해를 모두 수거해라,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게 유의하도록!”
이후 조사단은 다수의 살점과 뼈, 비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실 마법사들은 격한 싸움 후 두 용이 모두 사망했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고, 황제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은 라츠의 몫이었다.
“그래, 자네 의견대로 그들이 만들고 있는 아티팩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무인도가 있던 자리에 생긴 소용돌이는 그럼 아직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예, 폐하.”
“요즘 들어 자네 보고에 불확실한 점이 꽤 많군. 퀴칸텔의 손님들도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말이야.”
“면목 없습니다, 폐하.”
“뭐,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지. 자네가 찾지 못할 정도면 애초에 보통 녀석들도 아닐 거고. 하지만 자네라면 결국엔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네.”
라츠가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차라리 우리 입장에선 두 용이 다 죽었기를 기대해야겠군. 안 그러면 놈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니 말이야. 일단 지플의 공식 발표를 기다려 보자고.”
“우리 측 소식지들엔 뭐라고 알리면 되겠습니까?”
“덮어 두라고 하게. 엔야는 오늘 밤까지 발견되지 않으면 실종으로 처리하고. 아마 퀴칸텔과 함께 죽었을 테지. 아카데미의 귀족들만 신나겠군.”
라츠가 나간 후 한동안 황제는 어두운 집무실에 앉아 홀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지플 쪽에 특임대를 더 투입해야겠어. 내가 모르는 사이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 * *
지플의 마탑, 최상층.
“안드레이가…… 죽었군.”
한 남자가 수정구를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켈리악 지플, 지플의 절대자.
그는 막 동생이자, 부가주가 죽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간에 알려진 모습과 전혀 다르게,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당장 켈리악이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뭐? 네 동생이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수정구, 아무것도 안 보이는 장식품이잖아. 또 시답잖은 농담이냐, 켈리악.]세상에 켈리악 지플을 이렇게 편하게 대하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화룡 카둔, 불의 신 쉬누의 화룡이자 켈리악의 수호룡. 그는 5미터짜리 꼬치구이를 콧바람으로 살살 익히는 중이었다.
“수정구로는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어. 내 동생은 방금 죽었다. 농담이 아니야.”
카둔의 손가락에서 회전하던 꼬치구이가 가만히 멈췄다.
[흠, 진짜란 말이지. 설마 퀴칸텔한테 당한 건가? 그놈, 마신석까지 가져갔었잖아? 뷰렛타도 함께 있었고. 아, 안드레이가 죽었으면 뷰렛타도 당한 건가? 어쨌거나 마신석의 힘을 쓰면 퀴칸텔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글쎄, 은룡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강했거나, 누군가 개입했겠지.”
[퀴칸텔이? 녀석이 강한 편이긴 하지만, 그 둘을 다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마신석의 힘을 감당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고!]와구!
꼬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먹는 카둔. 켈리악이 그를 바라보며 지그시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제3자가 존재한다는 뜻이겠군. 네 생각엔 누구일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자식아.]그러자 급격히 시무룩한 표정이 되는 켈리악.
[……아마 용이겠지! 저번에 킨젤로가 ‘그림자를 다루는 용’이 묘지 거인들을 죽였다고 했다며? 그럼 ‘미샤’일 수도 있겠네. 가능성이 아주 높아.]“미샤라면, 흑룡 무라칸의 누이?”
[그래, 무라칸의 누이, 미샤. 그 녀석이라면 마신석의 기운을 받고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거야. 전성기의 무라칸만큼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하기도 하고.]“방금 네가 할 일이 정해졌다, 카둔.”
[미샤를 찾아보라고? 하여간 귀찮은 건 다 내 몫이지. 찾아보긴 하겠다만… 기대는 하지 마라. 흑룡이 마음먹고 숨으면 탐색의 신이 강림해도 찾기 힘드니까.]“너만 믿고 있을게, 카둔.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마신석을 잃은 건 좀 뼈아픈데.”
[네 동생이 죽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거냐.]“그 녀석이야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저번에 겁도 없이 시론이 주최한 연회장에 찾아갔을 때는 내 가슴이 다 철렁했지. 하필 마신석을 갖고 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 조각가를 불러 다시 만들어야지. 그게 없으면 시론이 죽기 전까진 룬칸델을 넘볼 수 없다. 그리고 흑해의 왕들도…….]“안다고, 나도 알아. 후우, 너무 더럽게 꼬였군. 우선 혹시 모르니 마신석과 관련된 모든 증거를 제거해야겠어. 귀찮은 일은 너보다 내 몫이 더 많다고, 카둔.”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 되려면 말이야.]* * *
쿠라노 공국, 부바르 가스톤의 조각 공방.
“앗, 오셨습니까. 비슈켈 님! 안 그래도 저번에 갖다 주신 고구마 크로켓이 먹고 싶었는데, 잘됐군요. 흐흐.”
비슈켈이 혐오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크로켓은요……? 오늘은 없습니까?”
“잘 들어라, 부바르. 방금 비먼트의 첩자들에게 소식을 듣고 오는 길이다. 아무래도 지플이 우리 몰래 마신석을 사용한 모양이야.”
“에? 마신석을 사용했다고요?”
“그래. 비먼트 해역에서 은룡과 풍룡이 큰 싸움을 벌였고, 섬이 하나 사라졌다더군. 그런데 남아 있는 마력 때문에 바다 한가운데 소용돌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했으니… 마신석이 깨진 게 분명하다.”
그러자 부바르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이이! 마신석은 제 작품입니다! 그자들에게 분명 완성될 때까지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바르가 노발대발하는 사이, 비슈켈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 멍청한 돼지 녀석을 죽일 수 있는 날이 더 멀어졌군. 마신석을 다시 제작해야 할 테니까.’
아이디어는 지플의 것이었으나, 직접 마신석을 제작한 건 부바르였다.
따라서 마신석에 대한 소유권은 지플과 킨젤로가 반씩 나눠 가진 상태.
“이번 일로 단장님께서도 극히 노하셨다. 차후 지플과 동맹이 깨질 수도 있으니, 당분간 지플 측 교신은 받지 말도록.”
* * *
이틀 뒤, 티칸 카시미르의 대저택.
“진 공자, 돌아오셨군요!”
카시미르와 칠색조의 수장들이 직접 정원까지 마중을 나왔다. 물론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길리와 엔야 역시 황급히 뛰어나오는 모습이었다.
“도련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딸기파이여. 하하, 나는 괜찮다.”
길리는 엔야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듣고, 지금껏 한숨도 못 잔 채 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잠시 진을 살펴보던 길리는, 이내 루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몸을 숙였다.
“루나 아가씨, 인사가 늦었습니다.”
“괜찮아, 길리. 오는 길에 들었는데 막내가 그대를 끔찍이 아끼더군. 앞으로도 계속 잘 보필해 주게.”
“루나……? 설마, 백경. 루나 룬칸델 경?”
“아, 당신이 카시미르 경이로군. 반갑소. 루나 룬칸델이오.”
“제 저택에 루나 경을 모시는 날이 올 줄이야, 영광입니다. 다들 어서 들어가시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택으로 들어선 진이 그간 겪은 일들을 설명해 주려는 찰나, 카시미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 공자, 우선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 세 시간쯤 전에 제 딸아이의 수호룡이, 돌아왔습니다.”
진의 동공이 커졌다.
“라트리가 돌아왔다고요?”
“예,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행방불명된 기간 동안의 기억이 아예 없는 모양이더군요. 일단 지금은 딸아이의 곁에 붙어 있습니다만,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납치가 아니었던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퀴칸텔 님이 직접 뷰렛타에게 자백을 받았으니까요.”
순간적으로 진의 뇌리에 한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신석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증거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없애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라트리의 기억도 의도적으로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이런 생각을 무인도에서 겪은 일들과 함께 설명해 주자, 카시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일들을 겪으셨군요… 진 공자께서만 그런 일을 감당하게 만든 제 무능함에 치가 떨릴 지경입니다. 신의 계약자들을 집어삼키는 아티팩트라니, 지플은 대체 무슨 일을…….”
“근원석의 모조품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미물.”
무라칸이 입을 열자 진과 퀴칸텔,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이미 ‘근원석’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이들이었다.
“신이 되려는 것이지. 이 세상을 다스릴…… 과연 놈들 뜻대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