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793)
제 777화
196화. 큰 뱀, 아메리스(3)
이 세상엔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이 강한 힘을 지니고 태어나는 존재들이 있다.
‘축복받은 육체’로 유명한 룬칸델과 특출한 마력 친화력을 지닌 순혈 지플이 가장 대표적이다. 인류 역사에서 두 가문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피의 특성을 기반으로 이 세상의 패자로 군림해왔다.
그리고 그런 가문의 평균을 한참 압도하는 잠재력을 가진 채 세상에 나오는 이들.
이를테면, 태어남과 동시에 남들과는 분명 규격 자체가 다른 인간.
그들은 대부분 보잘것없는 혈통을 지녔으며,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두각을 드러낸다.
영주에게 끌려간 동생을 구하려다 각성한 바네사 올슨.
평범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갑자기 살인귀가 된 스마리온 프로치.
괴력 때문에 인세를 떠나 괴물의 삶을 살았던 헤도.
아메리스에 의하면, 그런 이들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의 근원은 바로 태양신의 사념이었다.
[태양신, 킨젤로의 사념은 스스로의 죽음과 소멸을 부정하려는 의지다. 그렇기에 사념이 깃든 존재들은 무의식적으로 지상을 파괴하고, 제단을 찾아 태양의 시체를 깨우려고 하는 것이다.]헤도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아메리스의 말이 사실이라 한들 자신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정했으니 흔들릴 일이 없었다.
“제단에 닿기만 하면 태양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겁니까?”
[닿기만 하는 걸로는 부족하나 태양신의 부활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가 돌아온다는 건, 곧 이 세상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 몸과 너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질서가 파괴되고, 모든 우연과 필연이 사라지는 것이다.]“쉬누라는 신은 제게 태양신이 어떤 식으로 부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였습니다.”
[어떤 결과든 태양신이 부활하는 순간 너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 필멸자들은 다시 운명에 묶일 것이며, 불멸자들은 모두 태양신의 일부로 수렴될 것이다. 이 세상은 다시 완전해질 테지만…… 글쎄, 그게 과연 옳은 모습일까? 오로지 순응만 있는 무미건조한 충만감으로 가득한 세상이.]진과 헤도는 그 세상을 직접 겪은 적이 없기에 상상할 수가 없었다.
또한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켜야 할 게 있는 세상은 바로 지금 그들이 서 있는 땅이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자란 땅을, 꿈을 좇아 투쟁해온 이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버리면서까지 얻고 싶은 무언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 자들만이 태양신의 부활을 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너희에게 이야기를 들어본 바, 지상에 옛날만큼 태양신교들이 활개를 치진 않고 있으니. 그때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 몸은 매일같이 그들을 상대해야 했느니라.]“아메리스 님과 선한 머리들을 제외한 다른 아군은 없었습니까?”
[있었으나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솔더렛은 새 질서에 순응한 자였으니 아마 나와 협력을 하였을 테지. 클람 또한 순응자였으나 그는…… 자신이 주관하는 힘, 마력으로 지상을 무너뜨릴 운명에 놓여 있었을 게다.]-[나는 한때 세상의 모든 마력을 주관하던 신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멸망시킬 뻔한 순간, 솔더렛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이 거울 속에 봉인했지.]
-[이 봉인이 막고 있는 것은 무한한 마력의 근원, 그 자체로 나다. 그리고 끝없이 팽창하는 마력은 언제든 이 세상을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지…….]
불현듯 과거 콜론 유적지에서 클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클람은 솔더렛이 봉인하였습니다만, 설마 그에게도 태양신의 사념이……?”
[그렇다. 그가 가진 힘은 지상 세계를 모두 없애 지하 세계를 꺼내고도 남았음이니, 사념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지. 그 또한 나처럼 불행한 불멸자다. 원치 않는 운명에 속박되어 있으니 말이다.]원치 않는 운명.
아메리스가 말한 ‘불멸의 무게’란 것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뜻했다. 아메리스는 소멸할 때까지 세계의 경계를 수호해야만 했다.
진과 헤도는 잠시 그녀의 역할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을 가졌다. 그녀의 고독한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아메리스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읽은 듯 미소를 지었다.
[하하, 너흰 볼수록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이 몸에게 부여된 운명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지.]“그렇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또한 때때로 운명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너희 같은 필멸자들을 만난 것이 이 몸에게는 그러한 일이다.]아메리스는 지금부터 ‘기억할 수 있는’ 동료를 얻은 셈이었다. 진과 헤도처럼 강한 인간들이 태양신의 부활을 저지하겠다 말하고 있으니까.
[진.]“말씀하십시오.”
[다행히도 태양신의 사념은 오로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지.]죽음을 유지하려는 사념.
아메리스의 아홉 머리 중 그녀를 포함한 넷이 그런 사념이었다. 그녀에겐 태양신이 남긴 사념 중 가장 거대한 의지들이 깃들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태양신의 부활과 부활을 막는 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리고 내 생각에, 너희 룬칸델이라는 가문 또한 왠지 태양신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구나. 축복받은 육체라고 했던가? 천 년이 넘도록 이어진 너희 가문의 특성. 그건 필멸자가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필멸자의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역량에 대한 영역이지. 아무리 대단한 필멸자라 한들 혼자 일족 전체를 천 년이나 강화시킬 수는 없다.]아메리스는 룬칸델에 깃든 축복이 태양신, 혹은 그에 준하는 불멸자와 관련이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솔더렛의 축복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애초에 태양신이 있던 때에 저희 가문은 존재치 않았습니다.”
[태양신의 축복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아니더라도 솔더렛이라면 그만한 축복을 내리고도 남음이지. 어쨌거나 천 년이 넘도록 지속되는 축복이 가능한 불멸자는 태양신과 잠들기 전의 이 몸, 그리고 솔더렛과 헬루람 정도가 끝일 게다. 그러나 마녀일 리는 없고, 나 또한 아닐 것 같으니 둘 중 하나겠구나. 둘 다일 수도 있고.]“어느 쪽이든, 저희 가문이 아메리스 님의 반대편에 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아마 유사한 축복을 받았을 지플이라는 놈들은 이미 내 적이다. 놈들의 목적이 태양신 부활이 아니라 근원석이라는 물건을 재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아 보이는군. 게다가 놈들은 태양신의 잔존 기운과 무녀까지 이용하고 있으니 죄질이 아주 무겁다.]“아메리스 님, 그렇다면 저희 연합에 가입을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순간적인 영입 권유를 한 건 놀랍게도 진이 아니라 헤도였다.
[가입에 따로 피의 맹세 같은 게 필요한가?]“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의로 이루어진 모임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군요.”
아메리스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바멀 연합에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아군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진, 지하에서 마족을 지상으로 꺼내는 자가 있다 하였지. 오르갈, 내 기억에는 없는 마족이로군.]아까부터, 아메리스는 그 부분에 대해 의아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아는 한 잠든 이후 경계 수호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메리스가 잠든 이후 지상에서 그녀를 처음 깨운 게 진과 헤도였다.
[지하 세계의 입구는 오로지 이곳 하나다. 그런데 이 몸 모르게 지하의 필멸자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놈이라……. 아주 괘씸하구나.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를 모르겠으니, 찾아서 방법을 묻고 벌을 해야겠어. 그놈이 마족을 얼마나 불러들였느냐?]“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만 이상을 넘지는 않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위협이 될 만큼 강한 마족은 열 명 이내로 보고 있습니다.”
[먼지를 끌어모은 수준이로군. 이 몸의 눈을 피해 잔챙이 도둑놈처럼 야금야금 빼낸 것인가. 네가 말한 그 강철 차원문 능력을 이용해서.]“아마 그럴 겁니다.”
[흐음…… 지상과 지하를 연결할 정도의 차원 이동 능력을 지닌 존재라면 이 몸이 모를 것 같지가 않은데. 기억을 얼른 되찾아야겠구나.]“그런데 아메리스 님, 약 500년 전 지상엔 성국수호전이라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마족이 나왔고, 흉신전 이전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여길 찾을 수 있던 것도 당시 활동한 제 선조의 기억 덕분이죠.”
[그건 당시 전쟁에 마녀가 개입했다고 하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불멸자 지토의 물건까지 있었으니, 마녀는 그걸 이용해 나 몰래 지하 세계의 필멸자들을 올려보냈을 것이다. 그조차 문을 직접 연 것은 아니야.]“그렇군요. 불멸자 지토에 대해선 기억나는 바가 있으십니까? 지토에 관해서도 최근 연합이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지토는 자신이 새로운 질서가 되길 바라는 불멸자였다. 고통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려 하였던가……. 어지간하면 엮이면 안 될 미친놈이라 할 수 있겠구나. 그는 머리가 아홉이던 시절의 이 몸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진은 그간 막혔던 혈이 뚫리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기억이 불완전한 상태이긴 하나, 추후 아메리스의 기억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적들의 의도를 더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자기!”
그때쯤 별안간 산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떨어진 채 계속 기다리던 중, 상황이 궁금해 먼저 찾아온 것이다.
“어머? 자기, 이 여자는 또 누구? 자꾸 바람둥이처럼 굴…… 읍.”
헤도가 자연스레 산드라의 입을 틀어막았고, 진은 구덩이로 온 동료들을 아메리스에게 소개해주었다.
“바멀 연합의 발레리아 히스터와 산드라 지플, 그리고 적옥묘 슈리입니다.”
[발레리아 히스터. 네가 진이 말한 기록 마법사로구나.]“예, 앞으로 발레리아가 아메리스 님의 기억을 찾는 일에 많은 도움을 드릴 겁니다.”
발레리아가 살짝 고개를 숙인 순간.
아메리스는 그녀에게 남아 있는 강렬한 태양신의 기운을 느꼈다. 그간 오르갈을 비롯한 태양신교의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기운이었다.
[호오…… 너는 이 몸조차 처음 보는 종류의 사념을 가지고 있구나, 발레리아 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