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13)
제 888화
204화. 전쟁 선포(1)
지하, 적명족 제4도시 우스록.
4도시의 주인, 대투왕 ‘가일라 툰’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며 비볼 비먼트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음, 그냥 통신을 하면 될 걸 뭐하러 찾아오고 그래.”
“어째서 그리 무모한 짓을 한 거요?”
비볼은 인사치레도 하지 않고 대뜸 따지듯이 물었다. 마치 상관이 부하를 나무라는 듯한 태도에 근처에 있던 적명족들은 그를 노려보았다.
“감히 가일라 동포께 이 무슨 말버릇이냐, 인간 따위가. 우리와 거래를 하니 뭐라도 된 것 같나?”
“한 번만 더 이따위 태도를 보이면 그대로 피 공장으로 보내주마.”
“우선, 난 인간도 아니고 붙잡혀서 네놈들 식량 창고에 들어갈 일도 없다. 하찮은 평전사들 따위가 개념도 없이 간부들 대화에 끼어들다니. 지금 적명족이 왜 계속 실패를 하고 있는지 알 만한 대목이오, 가일라 대투왕.”
비볼의 말에 가일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들 있어라.”
“대투왕 동포, 하지만 저놈이 감히……!”
“아, 나가라면 좀 나가! 가는 길에 비볼한테 사과도 하고. 그리고 밖에 시마트 동포 있지? 데려와.”
결국 평전사들은 비볼에게 영혼 없는 사과를 건네고 성주실을 빠져나갔다. 비볼은 무표정한 눈으로 가일라를 쳐다보았다.
“부르셨습니까, 가일라 동포.”
“어, 시마트 동포. 알지? 난 머리 굴리는 게 썩 좋지 않아서. 동포가 좀 도와줘야겠어. 비볼한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알겠습니다.”
대투왕 가일라와 1급 투왕 시마트.
적명족은 앞으로 있을 동맹과의 모든 회담을 이 두 사람이 맡을 수 있도록 결정한 상태였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하면 ‘회담과 협력’에 적합한 인재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가일라는 적명족 중 가장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였고, 시마트는 봉인 전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두뇌였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소. 우리가 분명 조언을 했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한 건지. 동맹으로서 반드시 이야기를 들어야겠소.”
터무니없는 일이란 드렉 혼의 죽음과 함대가 궤멸한 일을 뜻했다.
“면목이 없소, 비볼. 우리도 현재 황망하여 정신이 없는 상태요. 하나 황족 측이 분노한 이유는 십분 공감하오.”
“면목이 없다는 말로 그냥 무마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이오? 특히 이번에 전사한 드렉 혼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던 청명족 매몰자 대부분을 먹여서 부활시킨 인물이오. 대투왕 최강이라 평가되는 바카룬 융보다도 먼저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줬지. 왜 그런 줄 아시오?”
바카룬 융은 드렉이 진과 동료들의 피를 취해 넘고 싶어 했던 벽으로, 제1도시의 대투왕이었다.
“……드렉 동포가 가진 고유한 능력 때문이라 생각하오.”
“그렇소, 흡혈 능력! 바로 그것 때문이오. 그 능력만 있으면 앞으로 우린 지상 세력들과 전쟁을 치를 때 손쉽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겠지. 9성 미만의 적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저 당신들의 훌륭한 양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그렇게 흡수한 피는 공장을 가득 채웠을 것이오. 그런데 이제 모두 물거품이 되었지.”
“그, 음. 그렇기는 한데 이번에 드렉 동포가 죽은 걸 보면, 흡혈이 그 정도까진 아니라는 뜻 아닐까? 물론 엄청난 능력이긴 한데.”
‘제발 닥쳐, 가일라 대투왕. 말을 아끼려고 날 부른 거잖아!’
가일라의 대답에 시마트는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진 룬칸델, 우리가 분명 그는 특별하다고 말을 했소. 어떤 일이 있어도 그와 직접 싸우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고 말이오. 심지어 라키만 대투왕의 전적도 있었지. 흡혈 능력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만일 내게 그 능력이 있었다면 우린 벌써 진 룬칸델을 압박하며 유리한 거래를 유도했을 거요. 그에겐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그의 동료와 영토는 아니니까!”
비볼이 이토록 울분을 토하는 이유였다.
황족은 드렉의 능력을 토대로 지상을 잠식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지플이나 킨젤로에 드렉의 흡혈 능력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소? 없소. 있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반드시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테지. 어떻게 시작부터 가장 중요한 패를 잃을 수 있냐는 말이오.”
가일라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닫았다.
“게다가 우리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조룡성채를 건드린 것도 불쾌하오. 제국 영토는 결국 우리 황가가 되찾아야 할 땅, 고작 양분을 더 얻겠다고 거길 건드리다니. 대체 우릴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오? 적명족은 우리 없이 홀로 지상을 정복할 수 있소?”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실수를 완벽하게 인정하오, 비볼. 그러니 책망은 그만두고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오만. 그대도 우리와 동맹을 끊거나 어떤 보상을 받고자 찾아온 건 아니지 않소.”
열 받은 거 알고, 앞으로 모든 일을 상의하며 저자세를 취해줄 테니 이쯤에서 적당히 그만두고 미래를 생각하자. 시마트의 의사는 명확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 믿어도 되겠소? 시마트 투왕.”
“가일라 동포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앞으로는 우리 적명족이 비먼트가를 더 존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오.”
“이번에도 말뿐이라면 우린 즉시 동맹을 파기할 것이오. 그리고 아랫것들 교육도 시키셔야겠더군. 올 때마다 하찮은 인간이니 벌레니…… 그따위 대접을 받으며 적명족을 지원해야 하니 회의감이 드는군.”
“그 역시 확실히 조치를 해두겠소.”
“좋소, 믿어보도록 하지.”
시마트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드렉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동맹 관계의 주도권을 쥔 건 적명족이었으나, 이제는 반대가 된 것이다.
“우선, 적명족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야겠군. 드렉을 대신할 대투왕은 선정한 상태요?”
“내 생각엔 시마트 동포가 그 자리로 올라야 맞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혼 일족의 전사들이 있으니. 곧 그쪽에서 한 사람이 선정될 거야.”
“아시겠지만, 새로이 대투왕에 오를 혼 일족의 전사는 드렉 동포가 갖고 있던 능력 일부를 이어받을 것이오.”
“반쪽도 되지 않는 흡혈 능력은 전쟁 병기로서 그다지 가치가 없소. 지상의 괴물들을 상대하기엔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지.”
적명족의 대투왕은 성채와 연결된 존재.
그리고 ‘흡혈’은 애초에 성채에 부여된 능력이니, 드렉 다음으로 대투왕이 될 인물 역시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 투신의 허가가 없으면 능력은 그저 흉내에 불과한 정도로 고정되었다. 따라서 투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5도시의 대투왕은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투신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제5도시의 다음 대투왕도 드렉 동포와 비슷한 힘을 쓸 수 있소.”
“투신의 행방은 마땅한 성과가 있어야만, 또한 우리가 완벽한 동맹이라는 확신이 생겨야만 알려줄 수 있소. 또한, 어차피 그대들은 아직 그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소.”
적명족들이 ‘투신의 행방을 안다’는 황가의 말을 믿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황가가 과거 적명족 투신이 남긴 인장과 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서 다른 대투왕 동포들을 깨워야 해. 라키만 동포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다른 성채들을 확인해야겠어. 진 룬칸델, 놈의 무력에 대적하려면…… 적어도 대투왕 바카룬 동포와 그 성채, 혹은 투신 동포가 깨어나야 한다.
-바카룬 동포의 성채는 아마 우리처럼 봉인된 상태일 겁니다. 하지만 투신 동포는…… 우리가 활동하던 때에도 갑자기 잠적을 하셨지 않습니까.
-요즘 나는 투신 동포께서 잠적한 이유가 이런 봉인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시마트는 과거 안돌린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투신 동포는 봉인을 예견하고 잠적하셨다. 그런데 어째서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명령서와 검을 남기신 것인가…….’
대투왕이 성채와 연결되는 것처럼, 적명족의 투신은 검과 연결이 된다.
황족들이 보여준 그 검엔 분명 투신의 기운이 남아 있었고, 그건 곧 투신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었다.
‘투신 동포가 저들에게 그것들을 빼앗겼을 리는 없다. 그랬다면 검은 몰라도 명령서는 자동으로 파기가 되었을 터. 뭔가 뜻이 있기는 할 텐데,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군.’
비볼은 시마트의 속내를 읽으며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알겠소. 어쨌거나 제5도시는 혼 일족 중 한 명이 대투왕으로 오를 것이며, 지상 침공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바가 없소. 다만, 바멀 연합은 침공 대상에서 당분간 완전히 제외하기로 하였소.”
“옳은 선택이오. 지금 상태로 드렉 혼의 능력 없이 바멀 연합을 압박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겪어봐서 알겠지만, 차원 이동과 함대만으로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기록 마법사가 계속 적명족을 추적하고 있는 것도 문제요. 계속 바멀 연합을 치다 보면 반드시 꼬리를 잡힐 수밖에 없소.”
발레리아는 아직 적명족 성채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족들이 보기에, 적명족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그녀였다. 발레리아가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 진이 직접 적명족들의 본거지를 박살 낼 테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선, 우리가 다시 청명족 매몰자들을 보내주도록 하겠소.”
“……청명족 매몰자들이 더 있었단 말이오?”
“다행히 이번에 새로 발견한 매몰자들이 있소.”
그럴 리가 없다. 황족은 적명족이 단계적으로 옛 힘을 되찾도록 조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그들을 제어하는 일에 무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시마트는 그 사실을 알아보았으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눈치 없는 가일라는 잘됐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 그놈들이 또 있었다니! 그럼 이번엔 바카룬 동포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가!?”
“아니, 우리 생각은 다르오. 이번에 제공할 청명족 매몰자들은, 공중요새를 가동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하시오.”
“공중요새는 바카룬 동포를 먼저 회복시킨 다음에 가동하는 게 낫지 않아?”
“공중요새를 먼저 가동하시오. 그리고 그 요새를 기반으로, 지플을 치는 걸 추천하고 싶소. 말하자면, 지플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오. 그들이 보유한 태양의 무녀를 사로잡으면 태양신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비볼은 그렇게 말하며 홱 몸을 돌렸다.
“명심하시오. 이번에도 또 어이없이 드렉 혼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우린 즉시 적명족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