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23)
제 888화
208화. 바멀 연합은 바멀 연합의 할 일을(1)
1803년 11월 7일.
“호오…… 이게 루체, 그 꼬맹이가 이 무라칸 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란 말이지. 상당히 희귀한 물건이군.”
벅벅.
무라칸이 옆으로 누운 채 등허리를 긁으며 말했다. 옆에는 라트리가 구운 과자가 가득 쌓여 있었고, 다 먹은 딸기파이 바구니가 가득했다. 무라칸은 루체가 티칸에 맡겨둔 춘화집을 읽고 있었다.
“음, 복사본도 아닌 원본에다가. 이런 걸 피난길에 어떻게 구한 거지? 어쨌거나 기특한 놈일세. 아주 마음에 들어.”
“무라칸, 또 농땡이냐.”
“이게 무슨 농땡이냐, 퀴칸텔. 할 일도 없는데.”
“너 말고는 다 바뻐.”
“내가 잘하는 게 뭐냐. 싸움이지. 그런데 지금은 싸움이 없네, 싸움이. 나라고 놀고 싶어서 노는 줄 알아, 어?”
“뭐 그렇기는 하다만.”
적명족은 계속 루테로 마법 연방만 침공하고 있었다. 두 세력의 싸움엔 적마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엘로나가 봉인에서 풀려났음에도 지플은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더 치밀하게 이어지는 침공에 애를 먹는 중이었다. 바멀 연합처럼 공간 이동 기술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엘로나의 등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엘로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그녀가 대기 중인 지역을 타격하거나 그녀가 전장으로 당도하는 시간을 잘못 계산한 경우, 그녀를 맞닥뜨린 적명족은 예외 없이 전멸을 한 것이다.
적명족의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아직 공중요새나 대투왕급 인물이 엘로나를 마주한 일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미 엘로나를 청명족 투신 이상의 존재로 분류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인기척이 전해졌다. 무라칸은 진과 길리의 발소리라는 걸 알아보고 슬쩍 춘화집과 과자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웠다.
“어, 왔냐. 꼬마. 그리고 나의 딸기파이여. 나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꼬마 너는 잘 알겠지만, 가진 힘이 이쯤 되면 그걸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꽤 시간이 필요하거든.”
“입에 묻은 크림이나 닦고 말해라. 놀고 있던 거 뻔히 보이는데 무슨.”
“다 관리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시겠지. 나와, 검황지에 갈 거야.”
“검황지? 알았다. 딸기파이도 같이 가는 거지?”
“너랑 다르게 길리는 하는 일이 엄청 많아서 쉬어야 하거든. 길리랑 놀고 싶으면 너도 뭔가를 해.”
“그게 무슨 차가운 소리냐. 꼭 뭔가를 해야만 딸기파이랑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거냐?”
“데이트랑 노는 건 어감이 조금 다르지 않냐.”
“딸기파이여, 그대도 같은 의견인가?”
“음, 여기서 춘화집이나 보고 계시는 것보다는…….”
“후후, 알겠다. 그렇다면 즉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돌아오도록 하지. 가자, 꼬마!”
무라칸이 진을 따라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길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웨에엑. 윽, 옛 힘을 찾았어도 이건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
붉은부엉이의 공간 도약이 끝나자 무라칸은 또 토를 했다.
“오늘 여기저기 가봐야 하는데 어쩌냐.”
“으윽…… 딸기파이와 놀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진, 왔어? 무라칸 님도 오셨네요.”
“진 형님, 그리고 위대한 흑룡 무라칸 님!”
발레리아와 루체가 두 사람을 반겼다.
“오, 루체. 선물 잘 받았다. 충분히 내 컬렉션에 들어가도 좋을 작품이더군.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봐라!”
“안 그래도 건조장 내에 크게 크게 깎아야 될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무라칸 님의 위대한 힘으로 해결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여기 있는 기사와 마법사들만으로는 시간이 좀 필요해서요.”
“딸기파이가 인정할 만큼 의미 있는 일이로군. 좋다, 가자!”
무라칸은 즉시 루체를 따라 건조장 내부로 진입했다.
“콰울 박사는?”
“요즘엔 루체한테 건설 쪽은 거의 다 맡기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 혼카랑 같이 연구실에 있는데 예민한 상태니까 안 보고 가는 게 나아. 거의 미쳐가고 있거든.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난리를 치실걸.”
내단 마물, 두꺼비 혼카는 과거 말리엣 히스터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존재다. 그건 곧 말리엣이 이엘로를 만드는 과정을 가장 오랜 시간 지켜보았다는 뜻.
덕분에 혼카의 기억이 양산형 이엘로를 제작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혼카가 실제로 말리엣의 작업을 이해한 것은 아니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설명하면 콰울이 그를 토대로 유추하는 식이었다.
“그렇군.”
바멀 연합의 성장은 콰울의 연구 결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신 장치 배포, 양산형 이엘로 개발, 황금 함대, 라프라로사 복귀 사업, 붉은부엉이 양산 등. 완타라모 숲이 진행하고 있는 저장 종이 생산을 제외하면 전부 다 콰울이 해내야 할 일인 것이다.
게다가 지플과 적명족은 전쟁을 치르느라 연합을 견제할 수 없고, 킨젤로 또한 아직도 오르갈과 제피린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으니 지금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기였다.
그중 특히 통신 장치와 이엘로 양산은 당장 달성해야 할 과제였다. 지금이야 적마전쟁이지만 그게 언제 세계전쟁으로 번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적명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메리스가 지키고 있는 봉마벽.
행여 그게 허물어지는 순간, 지하 세계에 남은 마족들이 활동을 시작할 터. 그리고 그들은, 지상 세계에 좋은 감정이 없었다. 세상이 반으로 나뉜 후 마족들은 원치 않게 지하에 갇혀야만 했으니까.
마족 대부분의 목표는 태양신의 부활, 혹은 지상 점거였다.
-[지하 세계의 입구는 오로지 이곳 하나다. 그런데 이 몸 모르게 지하의 필멸자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놈이라…… 아주 괘씸하구나.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인지를 모르겠으니, 찾아서 방법을 묻고 벌을 해야겠어. 그놈이 마족을 얼마나 불러들였느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만 이상을 넘지는 않으리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위협이 될 만큼 강한 마족은 열 명 이내로 보고 있습니다.
-[먼지를 끌어모은 수준이로군. 이 몸의 눈을 피해 잔챙이 도둑놈처럼 야금야금 빼낸 것인가. 네가 말한 그 강철 차원문 능력을 이용해서.]
아메리스에 의하면 오르갈이 부리는 마족들은 그 전체에 비해 ‘먼지’에 불과한 수준이다.
심지어 그들은 적명족처럼 고대의 기술도 보유하고 있을 테니, 지금의 바멀 연합으로서는 버거운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봉마벽이 뚫리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나…… 엘로나의 봉인도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무너졌다.’
봉마벽, 그리고 성국에 봉인 중인 마왕 지토.
진은 그것들도 엘로나처럼 어느 날 갑작스레 풀려날 것이라는 직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멀 연합은, 그리고 인세는. 그 모든 위험 요소가 나타난 후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만 했다.
무라칸이 돌아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엘로나가 있음에도 적명족과 지지부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플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세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강대해야만 했다.
“진척도는 내가 대신 전해줄게. 통신 장치는 곧 다섯 이상이 한꺼번에 제작된 후 각 거점에 배포될 거야. 휴대형 통신 장치도 시제품은 나왔는데, 아직 실제로 사용하긴 부족해서 보완이 필요해.”
“그래도 시제품이 벌써 나온 게 고무적이네. 젠, 테벤 님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군.”
“양산형 이엘로는 시제품이 제작된 건 아니지만, 콰울 님이 혼카 덕분에 하나씩 실마리를 찾고 있는 모양이야. 이엘로한테 호언한 대로 1년 안에는 완성품이 나올 것 같아.”
“1년이라, 적마전쟁이 그 기간 안에 끝나진 않을 거야. 봉마벽과 지토 쪽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시간은 충분하겠네.”
“그리고 황금 함대는…… 음, 최근 얻은 적명족 물건들을 분석한 결과 성과가 있기는 한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너도 알지?”
“대량의 광심장이 필요하다고 듣기는 했어.”
“맞아. 광심장,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동력원으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해. 그리고 그만한 광심장을 얻으려면 라프라로사 복귀 사업을 완성하거나, 적명족으로부터 얻어야 하는데. 전자는 언제 완성될지 모르고, 후자는 안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황금 함대 설계도는 적명족이 아니라 명왕족 광심장을 기준으로 제작된 거니까.”
“적명족 놈들한테 광심장을 뺏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지. 그러려면 전쟁에 참전해야 하니까. 적명족의 광심장을 쓰는 건 찝찝하기도 하고.”
“설령 광심장이 지금 있다 한들, 그걸 동력원으로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적어도 현재까지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그래.”
“기술이 아니면, 권능이 필요하다는 건가?”
“아마도. 보라스라는 네 형제가 준 황금 함대 설계도의 유실된 부분들. 그게 아마 그 내용과 관련이 있을 거야.”
지금으로서 유실된 설계도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부분들은 애초에 지금의 명왕족들이 라프라로사에 갇히기 전부터 유실된 상태였다.
“따라서 내 기록 마법이 더 강력해지거나, 무언가 획기적인 수단을 얻지 않고는 황금 함대는 완성될 수 없어. 물론, 황금 함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함대를 만드는 건 시간만 충분할 경우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기록 마법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전승지를 찾아야 하지만, 발레리아는 말리엣 이후 다른 전승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생의 발레리아는 내가 스물일곱, 여덟쯤일 때 대부분의 전승지를 찾은 것처럼 보였었다. 이번 생엔 나로 인해 많은 역사가 바뀌었으니, 아마 그보다 빠를 가능성이 높지만…… 가만히 기다리기엔 부담스러운 요소가 너무 많군.’
또한 기록 마법이 강해진다고 하여 유실된 설계도를 무조건 찾으리라는 법은 없고, 찾는다 한들 그 방법이 현재에도 실현 가능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때문에 발레리아와 콰울은 ‘획기적인 발견’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자신들이 고민해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역시…… 라프라로사 복귀 사업과 황금 함대 제작이 가장 문제로군.”
“맞아, 그 두 가지 때문에 오만가지 실험을 다 하는 중이지. 그런데, 어제 나랑 박사님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어.”
“무슨 생각?”
“칼토르.”
“칼토르?”
율리안의 수호룡, 칼토르.
그는 과거 진에게 조슈아의 별장에서 구출된 뒤, 오즈도크의 내단 일부까지 섭취하고도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심장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율리안의 극진한 간호와 동료들의 노력 끝에, 최근 들어 조금씩 일어날 기미가 보이는 중이었다.
“그래, 뇌룡 칼토르. 그가 깨어나면 폭풍신 페이텔과 소통을 시도해볼 생각이야. 페이텔의 힘은 뇌기고, 근본적으로 신인 만큼 권능이 있을 테니. 어쩌면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