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32)
제 888화
209화. 테마르의 일곱 번째 무덤 – 케이탐의 그림(6)
“바리사다가 열쇠라고……? 그런 얘긴 들은 적이 없는데?”
무라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진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얼마 전에야 집사장으로부터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 열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결코 가짜 무라칸이나 마녀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만 들었습니다. 세상에 거대한 위험이 도래한다고 말이죠…….”
이미 진과 무라칸은 베일의 샤칸을 통해 검이 열쇠로 사용된 걸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설마 바리사다도 또 다른 테마르의 무덤을 여는 열쇠라는 건가? 그런데 왜인지 다른 무언가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 애초에 무덤과 관련이 있었다면, 피콘 님도 알고 있었어야 한다.’
진에게 테마르의 첫 번째 무덤의 정보를 알려준 것도 피콘 민체다. 그는 솔더렛에게 직접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전달자’였다.
따라서 솔더렛이 피콘을 첫 번째 무덤의 전달자로 정하면서 바리사다에 대한 내용만 빼먹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피콘은 바리사다의 제작자이기도 했다.
‘떠오르는 가정은 두 가지다. 첫째는 피콘 님이 바리사다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역사 조작으로 인해 잊은 것. 둘째는 솔더렛이 피콘 님조차 모르게 바리사다에 특수한 장치를 더했거나 능력을 부여한 경우.’
어느 쪽이든 바리사다의 비밀이 현재까지 세상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건 분명했다.
현실의 바리사다는, 현재 시론 룬칸델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테마르 사후 룬칸델 천 년의 역사에서 바리사다가 가문을 벗어나 다른 이의 손에서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바리사다가 열쇠라는 사실 또한 ‘오염’의 일환으로 생긴 설정일지도 모른다. 그림의 진실을 마주하기 전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께선 바리사다의 비밀을 알기 때문에 흑해 원정을 가신 것일지도…….’
문득 시론과 루나, 원정대가 보고 싶었다.
‘내계에서 뵌 아버지는 여전히 강인해 보이셨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자신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와 루나가 그리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위험이라……. 여기나 저기나 아주 난리로군. 그래, 르엣이 헛소리를 했을 리는 없으니 꼭 지켜야겠군.”
“저기라뇨? 또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아아, 라프라로사에도 약간 소동이 있었어. 여기만큼 심각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무라칸은 현실을 라프라로사라 둘러대며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동자를 끔뻑였으나 더 묻지는 않았다.
“가짜 무라칸, 그놈이 언제쯤 쳐들어올지 짐작되는 바는 있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계속 다른 지역을 공격해 우릴 자극하면서 유인하고 있으니, 섣불리 전면전을 치를 생각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놀랐던 거죠. 그간 폭풍성을 직접 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드라낙스가 나더러 기어이 폭풍성까지 마수를 뻗치는 거냐고 따졌던 것이군.”
“그래, 무라칸! 놈은 우리랑 정면으로 붙을 자신은 없는 거다. 그러니 힘없는 사람들 괴롭히면서 어떻게든 우리 중 하나라도 다른 곳으로 빼내려는 것이지. 그간은 가주와 싸우다 다쳐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가짜 놈이라서 그랬던 거군!”
프레이의 판단이 떨어졌으니, 드라낙스는 이제 진과 무라칸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럼! 진짜 이 몸이었다면 너희 셋이 무서웠겠냐? 벌써 시원하게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지.”
“하하, 무라칸! 그 말은 조금 상처인걸! 이 새끼가 우릴 우습게 보네! 안 그러냐, 비올로?”
“동감이다. 우린 십대기사라고, 십대기사. 무라칸, 십대기사 뭔지 몰라?”
“솔직히 이 몸이 어마어마하게 센 건 사실이잖냐? 물론 내게도 너희 셋과 정예 기사들을 한꺼번에 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그래도 바리사다가 폭풍성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일단 돌격해서 다 때려 부순 다음 검만 챙겨서 튀는 것쯤은 쉬울 거라고. 이건 인정하지?”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 더 열이 받는군. 그렇지, 비올로?”
“네놈이 자꾸 맞는 말만 하는 것도 열이 받는다, 드라낙스.”
“자 봐봐, 프레이. 나랑 비올로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다니까. 싸우고 그런 건 다 장난이야.”
“그럼, 그럼. 무라칸이 세긴 세지!”
무라칸과 드라낙스, 비올로는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진과 프레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은 무라칸이 부끄럽고, 프레이는 두 사람이 부끄러웠다.
“식사들은 하셨나요?”
“예, 오는 길에 간단히 챙겼습니다.”
“그래도 괜히 힘을 쓰셨으니 요리를 좀 준비하도록 하죠. 어차피 대기하는 동안 할 일이 많지는 않으실 겁니다. 가짜 무라칸과 관련된 보고서들도 준비할 테니, 식사하시면서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프레이 경.”
“막상 당신과 무라칸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무척 든든하군요. 무라칸, 마음 같아선 바멀과 돌아온 당신을 위해 환영식이라도 하고 싶지만. 보다시피 그럴 상황은 아니에요. 서운히 여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런 좀생이겠냐.”
“대신 환영식은 모두가 돌아오면 거하게 열기로 하죠. 가주도, 다른 동료들도 모두 다시 폭풍성에 모이게 될 때 말이에요.”
무라칸은 씁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가 말한 건 이곳 그림 속 세계에서도, 현실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프레이는 이번에도 무라칸의 표정에서 뭔가를 읽은 듯 보였으나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진은 그녀와 십대기사들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 조용히 무라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폭풍성 식당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오히려 낡아서 보수된 부분들이 새것처럼 깨끗했고, 날씨조차 평소의 폭풍성과 다르게 화창했다. 창틈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아름다웠다.
보고서를 살피는 사이 하나씩 요리가 나왔다. 진과 함께 있는 무라칸이 진짜 무라칸이라는 사실이 폭풍성 곳곳에 전해졌고, 하인들은 무라칸을 보며 울면서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저흰 무라칸 님이 정말 악마가 되신 줄 알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제 아들도 얼마 전 로론에서 놈의 숨결에 맞아 죽었습니다. 꼭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돌아오셔서 기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무라칸 님. 평소 즐겨 드시던 음식들로 준비했습니다.”
육류와 더불어 각종 파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식성 참 우직하네.”
“하지만 그때는 딸기파이를 딸기파이처럼 완벽하게 만드는 녀석이 없었어. 아, 슬슬 딸기파이가 보고 싶군. 내가 없으니 많이 외롭고 쓸쓸하겠지, 내가 얼마나 보고 싶을까…….”
“참…… 끔찍하다, 끔찍해. 어째 미샤 님 대리 끝내고 돌아와서는 딸기파, 아니. 길리 타령이 훨씬 더 심해진 것 같다.”
“흥, 당연한 것 아니냐? 용에게 3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길리에겐 아니라고. 한정적인 수명을 지닌 존재에게 애정을 주는 게 어떤 마음인지 너 같은 애송이가 뭘 알겠냐.”
“닭살 돋으니까 남들 보는 데서는 작작 하라는 뜻이었다.”
“너랑 내가 남이냐?”
“말을 말자. 파이나 먹어. 물도 좀 마시고.”
“뭐, 딸기파이의 딸기파이보다는 못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추억의 맛이로군. 내가 파이를 좋아하는 게 유명해서 감히 내 이름으로 파이 가게를 여는 놈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양민이니까 딱히 제재를 가하진 않았지. 한 번씩 몰래 가서 먹고 흑룡으로 변신해서 놀라게 해준 적은 있지만.”
진은 배를 채우자마자 보고서에 집중했다. 내용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간 폭풍성이 가짜 무라칸의 동향을 살피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에만 파괴한 도시와 마을이 대체 몇 개지? 추적 도중 사망한 기사는 몇이고.’
이내 진은 가짜 무라칸의 행동에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가짜가 휴페스터 전역을 두루 습격하던 때의 보고서는 전부 외부에서 온 거다. 반면 미텔은 모두 폭풍성의 기사들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고…… 최근엔 오직 미텔 왕국에서만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가짜는 꼭 이틀에서 사흘의 간격을 두고 미텔만을 공격하고 있었다.
“좀 살펴봤나요?”
“예, 최근엔 가짜가 미텔만 노리고 있군요, 프레이 경. 그리고 지난 열흘 동안 습격한 슐비에, 툴란, 키티아, 로론은 모두 가짜의 기준에서 폭풍성과 멀지 않은 곳입니다. 마치 미텔을 외곽부터 휩쓸면서 폭풍성으로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군요.”
“우리도 그 점을 인식하던 중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라면 아마 놈의 다음 사냥터는 루가도, 그다음은 미토일 테죠.”
루가도는 인근 도시였고, 미토는 처음에 진과 무라칸이 찾아갔던 산 아래의 마을이었다.
“그래서 루가도와 미토, 그리고 근처 다른 지역들엔 대피령을 내리고 통제할 기사들을 보낸 상태입니다.”
“루가도와 미토, 다른 인접 지역들을 모두 끝장내면 가짜가 습격할 만한 곳은 모두 폭풍성과 먼 지역밖에 남지 않습니다.”
“바멀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짜가 그 지역들을 끝내고 다시 먼 지역들을 노릴 것 같나요, 아니면 폭풍성을 노릴 것 같나요?”
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십대기사들은 분명 어마어마하게 강하지만…… 보고서에 적힌 무라칸의 무위는 아마도 그 이상이다. 숨결 한 번에 도시 하나를 초토화할 지경이니, 십대기사 셋이 있는 폭풍성과 전면전을 펼치기에도 무리가 없을 거다.’
마을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 생각에 놈은 그간 테마르 님이 누메루스의 신물로 회복해서 돌아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반드시 폭풍성을 함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인근을 공격하는데도 테마르 님이 그들을 구제하러 직접 나서지 않는 걸 확인하면, 폭풍성으로 진격할 것 같습니다.”
“후우, 지금 가주께서 돌아오실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놈이 곧 찾아오겠군요…….”
그리고 그날 저녁.
인근 도시에 대피령을 내리고 복귀했어야 할 가문의 수호기사들은, 폭풍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밤부터는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오후까지 이어진 화창한 날씨는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그리고 한 흑룡이 검은 구름을 사납게 찢으며, 폭풍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가짜 무라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