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2)
제 888화
212화. 복귀 명령(2)
제드 룬칸델. 시론의 형제 중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
그는 로사가 미치자마자 검의 정원을 떠나 흑해로 향했었다. 시론의 복귀만이 혼돈으로부터 가문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었다.
4년 동안이나 홀로 지도조차 없는 흑해를 뚫어온 것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지금 제드를 마주하고 있는 원정대들이 잘 알았다.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애초에 제드의 무력은 8성에 불과했다.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가 있으니 10성에 준하는 실력자로 볼 수 있기는 하나, 흑해의 심부에 닿는 건 무리였다. 진짜 10성들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제드는 지금 시론을 마주하고 있었다.
루나는 일순 그가 겪어왔을 수많은 역경과 부조리한 일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고, 오랜 시간 제드와 가까웠던 전대 흑기사들 역시 감정이 복받치는 걸 느꼈다.
시론과 제드만이 담담하게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가주가 무엇이냐.”
“대뜸 형님이라 부르면 혹 호칭 똑바로 안 하냐고 역정을 내실 것 같아 그랬습니다. 어릴 때 자주 그러셨죠.”
시론은 어린 시절 제드를 혼내던 때를 떠올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성이 극복된 후, 시론은 그렇게 웃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드는 그 모습을 보며 단박에 시론의 변화를 알아보았다.
“그때 덜 혼낼 걸 그랬군. 이런 순간에도 네놈이 그것부터 걱정하는 걸 보니.”
“변하셨군요, 형님. 좋은 쪽으로.”
“그렇게 되었다.”
제드는 한동안 껄껄 웃다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형님, 제가 찾아온 건…….”
“안다. 로사 때문이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계에서 막내를 만났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마침내 흉신을 벤 일 또한 알고 있지…….”
시론의 목소리에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제드는 그 씁쓸함 속에 슬픔이 묻어 있다는 사실도 알아보았다.
마성을 극복한 시론은 이전과 달리 인간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마성을 제하더라도 그토록 오랜 시간 검과 피에 취해 살았으니 일반적인 감성은 결코 아니나, 아내를 잃은 슬픔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가주이기 때문에, 로사가 지은 죄 때문에, 자신은 그때도 지금도 가문을 떠나 있기 때문에 슬퍼할 수 없을 뿐이었다.
“……흉신을 베었다고요?”
제드로서는 시론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게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가 목숨을 걸고 흑해로 온 이유가 흉신이니 말이다.
“너는 내내 흑해를 떠돌았을 테니 바깥소식을 전혀 모르겠군.”
“아니, 형님은 저보다 훨씬 옛날부터 흑해에 계셨습니다만.”
“너도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드는 잠시 말문이 막혔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 일단 자세히 좀 이야기해주십시오. 막내가 정말 흉신을 벤 겁니까? 그럼 가문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저는 여기 올 필요가 없던 겁니까?”
“막내가 흉신을 벤 건 사실이다. 이후 가문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막내 녀석이라면, 분명 잘 이끌고 있을 테지. 그리고 네놈이 나를 찾아온 건 아주 잘한 일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강해지지 않았느냐. 설령 흉신 같은 강대한 적이 또 가문을 위협한다 할지라도, 이제는 가문의 많은 이들이 네게 의지하고 기댈 것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도 너를 보며 생각할 것이다. 제드 룬칸델이라면 무언가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거라고.”
단지 기적처럼 흑해를 지나온 일에 대한 덕담 따위가 아니었다.
시론은 진심으로 제드가 그만한 성취를 이뤄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세상엔 시론보다 상대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제드는 마침내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도 시론이 보기엔 초반이 아니라 중반에 닿아 있었다.
“오즈도크.”
[예, 어르신!]“적당히 식탁을 차려라.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식사라도 한 끼 해야겠군.”
[알겠습니다요! 하이고, 참. 아까 저랑 바네사 경을 마주치고도 묵묵히 걷기만 하시기에 누군가 했는데, 어르신의 동생분이셨군요! 반갑습니다요, 저는 마물 오즈도크…… 원정대의 식사 담당 겸 재롱둥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오즈도크는 인사를 하면서 빠릿빠릿하게 흑해의 바위를 깎아 식탁을 차렸다. 제드는 오즈도크의 익숙한 동작에 그간 흑해의 식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잠시 후 식탁에 오른 요리들은 더 심각했다. 오즈도크가 모은 혼돈과 마물의 잔재를 시론이 정화하자 허여멀건한 덩어리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즈도크는 능숙하게 덩어리들을 식탁 위에 분배했다.
‘가관이군……. 다들 이런 것만 먹고 살았다는 말인가?’
제드가 경악하는 사이 나머지 원정대들이 인사말을 건넸다.
“숙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뵈니 마음이 너무 좋습니다.”
“루나, 너도 더 강해졌구나. 너를 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저도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느껴요.”
“그래……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제드, 이 흑해를 홀로 여기까지 들어온 건 그대가 처음일 겁니다.”
“형님과 원정대가 미리 길을 터둔 덕에 할 수 있던 일이었을 뿐이오, 바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자네가 해낸 일은 가문에 길이길이 남아야 할 위업이지.”
“고맙다, 투벤. 젊은 시절 너를 꺾겠다고 난리를 치던 때가 떠오르는군. 저기 앉은 헤이진도 마찬가지고.”
반가운 말들이 오가는 사이 식사 준비가 끝났다. 시론이 덩어리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 제드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 오오! 제드, 그거 뭐냐!?”
“숙부! 이건……!”
음식이었다.
마지막까지 아끼고 아껴둔 몇 줌의 건조 곡식과 영약들. 지난 몇 년 동안 정화한 혼돈과 마물만 먹던 원정대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멀쩡한 음식이었다.
원정대가 미리 키알과 스 같은 흑해의 왕들과 흑해 각 구역의 지배자 격 마물들을 미리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 음식들은 모두 부패했을 터였다.
제드는 음식 앞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원정대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속으로 혀를 찼다.
가장 먼저 음식에 손을 댄 건 시론이었다. 그는 곡식을 종류별로 한 알씩만 집고, 영약도 아주 작은 뿌리나 잎사귀 한 조각만 골랐다.
“나는 이것이면 되니 나머진 너희가 똑같이 분배해서 먹어라.”
“저도 빠지겠습니다, 형님. 오는 길에 많이 먹었으니.”
“그렇겠군. 아, 루나. 너도 빠져라.”
“예, 아버…… 예? 저요? 저는 왜……?”
“이제 말대답을 다 하는구나, 이 아비가 우스운 모양이지.”
“헙, 알겠습니다.”
“바네사.”
“예, 가주. 아, 설마 저도……?”
“그렇다. 그리고 투벤.”
“알겠습니다.”
“헤이진. 자네도.”
“예, 가주.”
제드, 루나, 바네사, 투벤, 헤이진.
오즈도크는 그렇게 다섯을 제외하고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곡식 한 알까지 완벽한 분배였다.
오랜만에 인간다운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을 나눠 받지 못한 이들은 평소와 같은 식사지만 말이다.
우물우물.
한동안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가 이어졌다. 원정대에겐 곡식의 텁텁한 맛과 영약의 쓴맛이 그저 설탕처럼 달달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너희 다섯을 왜 제외했을 것 같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나 또한 너처럼 날 때부터 강자였기에 타인의 진의를 어렵게 파악할 일이 부족하긴 했다만, 너는 좀 심하구나. 넌 돌아가거든 막내에게 눈치라는 게 무엇인지를 좀 배우도록 하라, 루나.”
“예, 알겠습…… 어? 돌아가거든, 이라고 하셨어요?”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즈도크는 깜짝 놀라 사레가 들 정도였다.
[콜록, 콜록. 오…… 사레가 드니 영약의 쓴맛이 더 풍요로워지는 감이 있습니다요. 하, 하하. 그나저나 복귀라뇨? 루나 아가씨와 다른 기사분들은…… 이제 흑해를 떠나시는 겁니까요!?]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귀 명령을 받은 이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를 쳐다보았다.
“너흰 돌아가면 더 좋은 음식들을 먹을 테니 제드가 챙겨온 건 모두 남을 이들에게 주는 것이 옳다.”
“아버지. 아버지와 다른 분들에게만 이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날 수 없습니다.”
“말대답이 아니라 눈치를 키우라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
루나가 일어서서 소리치자 다른 기사들이 흠칫했다. 아무리 루나라 할지라도 시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시론은 루나를 말리려는 기사들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였다.
“나와 다른 기사들이 걱정되는 것일 테지, 루나.”
“아버지가 아무리 마성을 극복하셨다 한들, 여기 있는 모두가 보았습니다. 아버지라 할지라도 저희 없이는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니 명령을 재고해주십시오, 아버지.”
“루나. 내가 혹 원정대가 전멸할 경우를 대비해 후일을 도모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였다면, 틀렸다. 또한 나는 이곳에서 남은 흑해의 왕들과 공멸할 생각 또한 없다.”
나는 흑해의 왕들을 모두 죽이고 가문으로 돌아간다.
시론이 그렇게 뒷말을 이으며 루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네게 바리사다를 맡겼을 것이다. 가서 막내에게 전해주라고 말이다. 그러나 바리사다는 내가 계속 가지고 간다. 나는 흑해에서 죽을 계획이 없기 때문이지. 솔직히 이전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가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흑해의 왕들을 모두 처리하고, 다 함께 복귀하는 쪽이…….”
“지금은 여기가 아니라 막내 쪽이 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막내 쪽…… 인세가 여기보다 더 위험하다고요?”
“상대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가문엔 현재 내가 없지 않느냐. 인세에 강대한 적들이 깨어나고 있다. 이미 지플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법사가 등장한 모양이고, 지상이 아닌. 내가 가본 적 없는 어딘가에서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이 힘을 드러내는 중이다.”
꾸며낸 말일 리가 없다. 원정대가 그간 본 시론의 감각은 이제 반신이 아닌, 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영역에 닿아 있었다.
“그러니 너흰 돌아가서 막내를 돕도록 하라. 또한 이 시간부로 나는 그 녀석을 정식으로 나의 후계, 소가주로 임명한다.”
복귀 명령을 받은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식사가 끝나면 너희가 돌아가기 좀 더 수월하도록 내가 길을 열어주도록 하겠다. 흑해 전역에 잠시 내 모든 기운을 발산해야 하니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진 밀린 이야기를 조금 나눌 수 있겠군.”
“……알겠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서 막내를 도우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드.”
“말씀하십시오, 형님.”
시론은 잠시 고개를 들어 흑해의 어둑한 하늘에 시선을 두고는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돌아가거든 막내에게 이 말을 전해주어라. 내가 아니라, 네가 흉신을 베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