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54)
제 888화
213화. 균열, 대격변의 전조(2)
“아메리스 님, 균열을 닫을 방법이 있습니까?”
“균열의 가운데를 자세히 보아라, 진.”
“……흐려서 잘 도드라지진 않지만, 보랏빛 문양 같은 게 보이는군요.”
“그건 진마계의 보라가시꽃을 형상화한 문양으로, 지토를 상징하는 것이지. 즉 이건 지토가 직접 부린 마법이야. 그자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존재나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말에 진이 브라다만테를 뽑아 영기를 휘감았다.
“영검으로 저것을 베어보려는 생각이냐?”
“예, 아메리스 님. 그런데…… 균열을 베려고 마음 먹자마자 왠지 모를 위화감이 치솟는군요.”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구나. 네 영검으로 균열을 베는 건 아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겠지. 네가 요양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놓이는 건, 바멀 연합 전체에 아주 위험한 일이다.”
진은 영기를 거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메리스의 말대로 지금 진의 건강은 곧 바멀 연합의 방위력과 직결되었다.
‘균열을 베려고 하니…… 지토의 의지 같은 것이 가시덤불처럼 나를 옭아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깰 수는 있겠지만, 아메리스 님 말대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거다.’
‘균열을 깨려는 행위’만으로 이런 위험도를 느낄 수 있으니, 지토 본인이 가진 힘은 가늠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온전한 창성의 힘, 혹은 동급의 권능이나 힘이 있어야만 큰 무리 없이 균열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헹, 이 무라칸이 그럼 숨결이라도 한 번.”
“안 된다, 무라칸. 괜히 균열을 자극했다가 너 또한 다칠 수 있다. 옛 힘을 거의 되찾았다고는 하나, 너도 그때처럼 완벽한 창성은 아니지 않느냐.”
“아 거 아픈 데를 막 찌르시네.”
가장 큰 무력감을 느낀 건 단테였다.
“씁쓸해지는군. 나는 무리를 하더라도 그대나 무라칸 님처럼 균열을 벨 수 없을 것 같소.”
“내 생각엔 네놈도 돼, 검황. 다만 나나 꼬마 놈보다는 조금 더 다치겠지.”
“게다가 여긴 제국의 영토건만……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는 말인가.”
“검황, 이 몸이 보기에 너는 이미 충분히 훌륭한. 아니 위대한 지도자다. 가만히 내버려 둔다는 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넌 이제부터 이곳에 사는 네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와 일감을 내어줄 것이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 아메리스 님.”
“너나 무라칸, 진 같은 연합의 최중요 전력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베어야 할 균열은 좀 더 많은 목숨과 가치가 달린 곳이어야 할 뿐이다. 지금처럼 단지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만으로는 타격을 최소화할 수 없는 지역들 말이지. 이제부터 이런 균열이 세상 전역에 수도 없이 많이 생길 테니까. 어쩌면 이미 새로운 보고서들이 올라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일행이 분한 마음에 롬프의 균열을 없애는 일에 힘을 사용했더니, 티칸이나 제국의 구 수도 등에 더 거대한 균열이 발생한다면?
그런 땅들은 인명을 대피시키는 것으로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롬프의 백성 전원을 구 수도로 이주시켜라.”
단테가 함께 온 책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주.”
“삶의 터전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도록. 진마계, 지플, 킨젤로…… 모든 전쟁이 끝난 다음엔, 내 반드시 백성들이 자기 땅을 두고 떠날 일 없는 제국을 만들 것이다.”
아메리스가 이를 악문 채 균열을 노려보는 단테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검황. 비록 롬프를 떠나는 네 백성들은 땅을 잃었으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네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이다. 우리가 행여 균열에서 무언가 튀어나온 다음에야 이곳에 도착했다면,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혹은 지금처럼 알맞게 조치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겠지.”
롬프의 주민들은 즉시 멜타도어 군의 통제를 따라 이주를 시작했다.
일행은 티칸과 하이란 제2성으로 복귀해 즉시 각 세력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명령을 하달했다. 균열이 발생하는 즉시 이주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롬프에 나타난 첫 균열을 확인하고 열흘도 지나지 않았건만, 끊임없이 균열에 관한 새로운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엔 쿠라노 공국의 발론소인가…… 쿠라노 공국은 벌써 두 번째군.”
이제 티칸은 포화 상태였다. 애초에 글리엑전 이후부터 끊임없이 세계 전역에서 티칸으로 이주 신청이 밀려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각 지역 이주는 국왕께서 적당한 지역들을 골라 처리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공자.”
“지플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무명의 보고서에 의하면 루테로 연방에도 계속 전이 균열이 생기는 중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적명족과의 전투에서 지플이 대패를 한 일이 있는데, 아마 엘로나 지플이 균열을 처리하느라 부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마신석으로는 균열을 손쉽게 없앨 수 없나 보군. 무명 측에 가능하다면 연방에 생긴 균열의 숫자를 상세히 알아봐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계속 지상에 돋아나는 중인 것만 같았다. 아직 균열로 인한 인명피해는 나오지 않았고, 이주민들을 지원할 자원도 충분한 상황이긴 하나.
계속 그 상태가 이어질 수는 없었다. 땅과 자원은 모두 한정적이니 언젠가는 부족해질 터였다.
‘답답해 미치겠군…….’
시간이 지날수록 진은 롬프의 균열을 베려고 했던 게 얼마나 위험한 선택이었는지를 절감했다.
‘그때 롬프의 균열을 베려다 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사람들에게 진짜로 내가 필요한 순간에 싸우지 못했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티칸 회의실에 놓인 통신 장치가 공명음을 냈다. 룬칸델, 검의 정원으로부터 온 통신이었다.
진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불길한 직감에 휩싸였다.
{소가주.}
“말씀하십시오, 집사장.”
{시아텔로에 대규모 전이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시아텔로는 휴페스터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검의 정원이 있는 ‘칼론’과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당연하게도 주거 인구 역시 휴페스터 내 최상위에 속했으며, 시아텔로를 잃는 건 곧 검의 정원 인근에 진마계의 본거지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대규모?”
{예, 게다가 요즘 보고되던 대부분의 균열과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대규모라 말씀드렸다시피 훨씬 더 거대하고, 균열로부터 일종의 충격파가 계속 발산되는 중입니다. 다행히 외곽지역에 발생한 균열인지라 큰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만, 확산되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까드득! 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진은 무라칸, 아메리스와 함께 즉시 붉은부엉이의 출격장으로 향했다. 출격장엔 오늘 아침에 잠시 티칸으로 돌아온 콰울 박사와 발레리아가 있었다.
게다가 붉은부엉이는 부품 상당수가 해체된 상태였다.
“엇, 진. 지금 바로 출격해야 하는 거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콰울 박사.”
“내가 오늘 아침에 여기 온 이유를 잊은 거야? 요즘 지나치게 잦은 출격 때문에 붉은부엉이가 많이 상했다.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동력원이 날아갈 판이었지.”
“지금 시아텔로에 대규모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당장 가야 합니다.”
“이런 망할, 시아텔로에? 정비는 거의 다 끝났어. 하지만 부품 조립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두 시간은 필요한데…….”
“더 빠르게는 안 됩니까?”
“두 시간도 나랑 발레리아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다. 그것보다 빠르게 하면 넌 이거 타고 가다가 아공간 어딘가에 갇히게 될 거다.”
“진, 어쩔 수 없어. 조금만 기다려줘. 아니면 비궁에 연락해서 소궁주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진은 발레리아의 말대로 즉시 비궁에 통신을 요청했다.
{엇, 소가주? 나 팽이야. 소궁주는 지금 모트와 서해를 순찰하고 계셔…… 이쪽에도 하나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보니. 뭐? 엄청 급하다고? 시아텔로에 대규모 균열? 이런, 어쩌지!? 우리도 소궁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분노가 치솟았다. 자신이 늦는 만큼 시아텔로엔 더 큰 피해가 있을 터였다.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가문의 기사들이 죽는 모습이 상상되어 미칠 것 같았다.
[소가주, 일단 제가 시아텔로에서 보고가 들어오는 대로 계속 내용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겨우 두 시간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선 흑검회장과 기수들을 먼저 파견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진은 통신 장치 앞에 앉아 초조한 마음을 억눌렀다.
초조하기는 르엣도 마찬가지였다. 행여 진이 도착하기 전에 시아텔로에 진마계의 주둔지가 소환되기라도 한다면, 휴페스터는 즉시 진마계와 전쟁에 돌입해야 하는 것이다. 발라스와 메리, 토나 형제에겐 균열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지금껏 균열이 생성된 후 바로 균열에서 무언가 소환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왠지 진마계가 일부러 시아텔로를 골라 대규모 균열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만일 진마계가 인세의 지리적 특성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라면, 시아텔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령지였다. 진마계의 도시가 소환된 순간부터 곧바로 검의 정원을 칠 수 있는 지역이니 말이다.
결국 비궁은 두 시간이 지나도록 시리스와 모트를 찾지 못했다.
{미안해, 소가주. 각종 신호탄을 다 터뜨렸는데, 아무래도 소궁주가 서해 먼 지역들까지 순찰하느라 확인을 못 했나 봐.}
“괜찮아, 팽이. 혹 다른 문제 생기면 바로 티칸으로 통신해.”
출격장엔 정비가 끝난 붉은부엉이가 대기하고 있었다. 콰울과 발레리아는 녹초가 된 상태였다.
“고생했습니다, 콰울 박사, 발레리아. 다녀올게.”
붉은부엉이를 가동하자 순식간에 시아텔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아텔로에 생긴 대균열은, 진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모습이었다. 보랏빛 균열이 시아텔로 외곽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기사들은 정체 모를 보랏빛 유령 같은 것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진, 저건 균열을 연 지토의 의지가 형상화된 괴물들이다. 골치 아픈 것들이 있군…….”
아메리스가 그렇게 설명을 해 준 순간.
진은 흠칫하며 기사들이 분투하고 있는 반대쪽 균열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전혀 생각지 못한 다섯 사람이 서 있었다.
“꼬마, 왜 그러냐? 어…… 허! 저 녀석 진짜 오랜만인데!?”
무라칸도 뒤늦게 그들을 확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이제 막 인세에 도착해 검의 정원으로 향하고 있던,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이었다.
“루나 누님……!”
“오, 막내야!”
이내 루나와 전대 흑기사들이 붉은부엉이를 올려다본 순간.
진은 그간의 답답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씻겨나가는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