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80)
제 888화
220화. 지치지 않는(3)
‘설마…… 지칼로 님이 밀리고 있는 것인가?’
‘만약 지칼로 님이 패배한다면, 우리라도 반드시 비궁의 소궁주를 잡아야 한다!’
대장군들은 시리스를 압박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들은 본래 자신들이 빠르게 시리스를 처리하고 지칼로 쪽을 지원하는 그림을 원하고, 예상했으나.
뒤쪽에서부터 느껴지는 지칼로의 기운은 점점 약해지는 중이고,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시리스는 여전히 생존한 상태다.
“내가 우스워도 말이지, 1기수 쪽 전장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으면 되겠나?”
츠아아악-!
시리스가 눈을 부릅뜨며 만빙을 휘둘렀다. 피를 상당히 흘린 탓에 몸이 무거웠으나 그만큼 더 강한 한기를 퍼뜨리면 그만이었다. 적들 역시 그만큼 느려지도록.
새하얀 냉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전장을 가득 채웠다. 빌라굴과 시칸도 냉기를 밀어내기 위해 마기를 방출하며 검을 휘둘렀다.
만빙과 두 자루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주변에 퍼진 냉기와 마기가 흩어지며 잠깐씩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장군들의 눈에 악에 받쳐 쇄도하는 시리스는 분명 허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곳을 노리고 검을 찔러넣을 때마다 오히려 반격을 당했다. 대장군들은 싸우는 내내 그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기의 힘으로 어찌저찌 버텨내는군……. 그러나 지하에 이 정도 한기는 흔하지. 잡기로 버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빌라굴이 뿌득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지칼로와 마찬가지로 라미에르가의 일원, 그건 곧 염화지대를 지배하는 마족이라는 뜻이다. 지칼로만큼은 아니지만, 그 또한 진마계의 염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콰르르륵-!
별안간 시리스의 눈앞으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돌진하던 시리스는 그걸 피하느라 급히 몸을 돌렸고, 그사이 시칸의 검이 그녀의 옆구리를 스쳤다.
시리스는 다시 한 번 몸을 빼내야만 했으나 후방엔 이미 새로운 불기둥이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사각, 시리스는 하는 수 없이 무리하게 만빙의 힘을 한 번 더 끌어올려 냉기로 염화를 상쇄시켜야 했다.
“허억, 헉……!”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두 자루의 검과 화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답답하게 만드는 마기.
그 속에서 시리스는 매 순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1초라도 방심했다면 바로 치명상을 입었을 테고, 조금이라도 잘못된 대처를 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든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 그 속에서 극한까지 치솟은 감각.
그 모든 걸 뚫고 활로를 찾아 나아가는 일.
사실 싸움이란, 언제나 그런 것이다.
‘이런 싸움이 대체 얼마 만이지.’
돌아보면, 시리스는 최근 들어 이런 ‘당연한’ 싸움을 한 기억이 없었다. 진과 베라딘, 단테, 시리스. 각 세력의 대표적인 2세대로 알려진 이들 중, 자신은 분명 그들보다 더 편한 싸움을 해왔다.
그녀는 탈라리스의 독녀로서 비궁의 모든 것을 받을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났고, 언제나 탈라리스와 비궁 7검이 자신을 지켜주었으며, 홀로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할 때에도 늘 만빙이라는 특별한 권능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사이 있었던 가장 큰 두 전쟁.
검황성전과 흉신전, 시리스는 그 전쟁들에 참전하긴 했으나 또래들보다 더 나은 입장에 서 있었다.
단테는 글리엑이 깨어나기 전부터 검황성을 홀로 사수했었고, 진은 지상의 모든 세력을 규합해 스스로 흉신전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말이다. 베라딘 또한 켈리악의 계략에 타락하긴 했으나, 결국 그를 끌어내리고 가주가 되어 이제는 세계의 한 축을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시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처럼 거대한 싸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던 건, 단지 자신이 그들보다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를테면 시리스는 지금껏 상대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으나, 진짜로 목숨이 위태로운 실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비궁은 바멀 연합이 되기 전까지 늘 중립이었으니 투쟁을 하겠답시고 타 세력에 그냥 쳐들어갈 수도 없었고 말이다.
‘돌아보면, 연회…… 룬칸델의 연회에서 진과 대련을 하다가 죽을 뻔한 게 처음이었나.’
대장군들의 검이 계속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는 와중 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창피하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기억에 매료되면서도, 시리스는 무의식적으로 적들의 검을 쳐냈다.
지금은 그날보다 백 배는 위험한 상태다.
그러나 시리스는 이제 막, 지금껏 내내 자신을 결박하고 있던 ‘안전한 운명’의 껍질이 깨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비궁의 주인이 될 자로서, 나는…… 언제나 세계가 위험할 때 가장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세계 수호,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궁의 진짜 존재 의의.
지하 세계가 인세를 침공하기 시작한 지금, 그녀는 안전하고 평탄한 땅을 벗어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핏-!
시칸의 검이 시리스의 목을 스쳤다.
한 번의 전투, 초 단위로 갱신되는 사망 위험. 그 위험을 넘어설 때마다 시리스는 한층 눈앞이 트이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조금씩 루나가 말한 ‘성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성장이란, 운명의 새로운 국면을 돌파하는 일이었다. 공포를 딛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일이었다.
“이 개자식들 더럽게 무섭네.”
시리스가 상말을 내뱉으며 만빙을 다잡았다.
경험치.
목숨 건 실전이 부족했던 대신, 타고난 운명이 편했던 대신, 얕보이지 않기 위해, 열등감을 지워내기 위해 했던 수련들.
때때로 싸웠던 강적들, 언제나 저 멀리 앞서가던 친구들을 쫓느라 벅차던 나날들.
시리스는 몸속에서 그 모든 것이 폭발할 기세로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죽음과 공포라는 계기가 시리스가 쌓아온 경험의 둑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좀 죽어라!”
빌라굴의 화염과 시칸의 검이 재차 시리스를 덮쳤다. 화염은 냉기로 상쇄했으나, 검에는 왼쪽 어깨를 관통당했다.
이내 시칸이 검을 돌리며 칼날에 두른 마기를 폭발시키려는 찰나, 시리스는 악을 지르며 만빙을 올려쳤다. 서걱-! 시리스의 어깨를 찌른 시칸의 팔이 잘리며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졌다.
시리스는 그대로 어깨를 관통한 채 남아 있는 시칸의 팔과 검을 뽑아 만빙으로 얼려버렸다.
“하악, 큭……!”
얼어붙은 시칸의 팔을 밟아 깨뜨린 후, 시리스는 자신의 어깨도 얼려 마기가 번지는 걸 막았다.
‘이제 기회는 딱 한 번이다.’
검과 팔을 잃었다 해도 시칸이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전투력을 잃는 건 아니다. 심지어 빌라굴의 화염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다.
만빙검 3식, 눈사태.
시리스가 초식을 펼치자 화염에 흩어진 냉기가 만빙으로 모였다. 만빙에서 쏟아진 거대한 얼음 결정들은 쉴 새 없이 귀가 멍해지는 폭음을 일으켰고, 그 기운에 대장군들은 잠시 몸을 빼냈다.
‘드디어 마지막 발악인가!’
마침내 어깨를 관통하는 치명상을 입힌 직후다. 그 와중에 이 정도로 큰 기술을 펼쳤다는 건, 당연히 최후의 수일 수밖에 없었다.
위협적이긴 하나 폭발을 피하면서 기운이 잦아들 때까지, 몇 초만 기다리면 될 터였다. 그다음에 진입하면 시리스에겐 싸울 힘이 없을 터.
이제 대장군들이 걱정할 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지칼로가 끝장나고 루나가 이쪽으로 합류하면 답이 없었다.
그래서 뒤쪽 전장을 잠시 확인한 순간.
‘아…….’
‘지칼로 님이!’
대장군들은 온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시뻘건 기운을 확인하며 헛숨을 삼켜야만 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붉은 검기, 그게 뜻하는 바는 지칼로의 죽음이었다.
그들은 사키엘이 배포한 영상과 죽은 마족들의 기억으로만 붉은 검기를 마주했다. 그 위험성에 대해 수차례 설명을 듣기도 했으나, 직접 본 붉은 기운은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다 찢어지는 것 같은 위압감이다……!’
‘진마계에 지토 님을 제외하면, 저걸 감당할 수 있는 마족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들은 성큼성큼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루나의 모습을 확인하며 기겁했다.
심지어 그녀는 그다지 지친 듯 보이지도 않았다.
“설마 벌써……!”
하지만 루나는 당황한 대장군들을 보자마자 겁먹을 것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아, 난 끼어들 생각 없으니까 하던 일 마저 잘해 봐.”
“……뭐라고?”
“가서 소궁주를 죽이라고. 한 번만 더 다시 설명하게 만들면 그냥 난입해서 둘 다 없애주마. 룬칸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대체 무슨 의도인가.
대장군들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차피 도망쳐봐야 곧바로 루나에게 잡혀 죽을 테니까.
결국 대장군들은 다시 시리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루나가 자리에 앉아 과자 같은 걸 꺼내서 먹는 모습을 본 다음이었다.
“힘들 내봐.”
눈사태의 기세는 빠르게 잦아들고 있었다. 서서히 걷혀가는 냉기 속, 시리스는 핏물을 토하며 파들파들 몸을 떨고 있었다.
루나가 정말로 약속을 지킨다면, 저 끈질긴 목숨을 드디어 끊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셈이었다.
대장군들은 주저하지 않고 마기를 최대한 증폭시키며 시리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단 한 줌의 오러와 냉기도 남지 않은 그녀의 목을 베는 건, 벌레를 밟아 터뜨리는 것보다 쉬울 터였다.
‘잠깐, 오러와 냉기가 아예 남지 않았다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먼저 감지한 건 빌라굴이었다.
아무리 지쳤다 할지라도, 아주 조금은 오러와 냉기가 느껴져야 정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시칸 역시 시리스와 열 걸음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똑같은 위화감을 느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만빙검 오의
백白
시리스가 쓰러지듯 앞으로 몸을 숙이며 만빙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녀는 바로 이걸 펼치기 위해 눈사태를 속임수처럼 사용한 것이다. 그사이 남은 모든 오러와 냉기를 오의 백을 펼치기 위해 집중시켰고 말이다.
과거 검황성전에서 탈라리스가 펼친 것에 비해 시리스의 오의 백은 훨씬 더 규모가 작았다.
얼마 남지 않은 기운으로 펼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나, 열 걸음 이내에 그때와 똑같은 위력을 퍼뜨리기엔 충분했다.
쿠드드드득……!
시리스와 대장군들 사이에 터무니없이 날카롭고 단단한 빙화가 치솟았다. 흐드러진 빙화는 순식간에 대장군들의 몸을 관통하고, 찢어발기는 모습이었다. 빌라굴과 시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오의 백의 빙화 속으로 파묻혀야만 했다.
다만, 시리스는 그들이 분쇄되며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루나는 싸움이 끝난 걸 확인하고는 들고 있던 리트라 쿠키를 한입에 삼켰다. 그러고는 쓰러진 시리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서 치료받고 다음 전장으로 가자, 소궁주. 우린 쉴 시간이 없어, 쉴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