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82)
제 888화
220화. 지치지 않는(5)
* * *
“헉……!”
벌떡!
시리스가 몸을 일으키며 반사적으로 만빙을 소환했다.
“아오, 깜짝이야! 야, 얼음공주. 만빙 집어넣어, 나 아파 죽겠는데 갑자기 병실이 추워졌잖아!”
“깨어나셨군요, 시리스 님.”
시리스는 난데없이 들려온 무라칸과 길리의 목소리에 잠시 넋을 놓고 주위를 살폈다. 익숙하지 않은 티칸 궁 특급 병실의 풍경이 보였다.
‘아…… 그때 오의 백으로 놈들을 죽이고 기절했었지. 몸은 다 나은 건가? 상처가 상당히 깊었는데.’
어깨를 관통한 상처는 흉터조차 남지 않고 완전히 나아 있었다. 온갖 골절과 자상 절상 타박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 깨어났네. 소궁주, 강골이야. 그만한 상처를 겨우 나흘 만에 딛고 일어서다니.”
루나였다.
“……나흘? 제가 나흘이나 쓰러져 있던 겁니까?”
“걱정 마, 그사이 비궁이나 연합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으니까. 성왕이 그러더라. 아무리 자기가 직접 치료했어도, 이렇게 회복이 빠른 건 우리 막내 이후 처음이라고. 너, 이렇게까지 다쳐본 적은 별로 없지? 없으니까 자기가 얼마나 튼튼한지 잘 몰랐겠지. 역시 넌 나와 같은 부류야.”
“후, 또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가 상대한 대장군들 따윈 비교도 안 되는 놈을 초살 시키시고는.”
“하하, 그야 난…… 음, 난 좀 더 세니까? 아, 이건 위로가 안 되려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제 소궁주도 그 대장군 놈들하고 다시 싸우면 훨씬 수월하게 이길 수 있을걸? 이건 위로가 되겠지.”
생사를 건 전투로 인한 성장.
시리스는 루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의 백을 펼치던 순간의 날카로운 감각이 여전히 내면을 자극하는 중이고, 막 깨어난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이내 시리스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곤, 루나에게서 풍기는 전장의 냄새를 알아보았다.
“제가 쓰러진 사이, 1기수께선 또 전투를 치르고 오신 겁니까?”
“응, 쉴 수가 없더군. 지금 균열 생성이 미친 듯이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거든. 해상 주둔지 쪽에선 계속 마왕급 마족들이 튀어나와 지상을 압박하고, 그것 때문에 진까지 계속 전장에 나가는 중이야.”
진마계의 침공은 날이 갈수록 미친 듯이 격해지고 있었다. 만일 그전에 황금함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그 황금함을 통해 해상 방벽을 구축하지 못했다면. 휴페스터의 3할은 이미 지옥으로 변했을 터였다.
초인과 병력들의 힘만으로 대륙 전역을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해상에선 바멀 연합이 세운 방벽과 마족들 사이에 끊임없이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바멀 연합은 황금함을 앞세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나 진마계의 병력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나날이 늘어가기만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진은 여전히 ‘선제공격’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해충은, 결국 근원지를 찾아 없애기 전엔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까진 모트를 탈 수 없었으니, 우리가 맡은 선제공격 임무는 거의 정체되어 있었지. 진이 이동해야 할 상황이 많아서 붉은부엉이도 내가 매번 탈 수 없었거든. 무슨 뜻인지 알지? 준비해. 안 그래도 우리가 때려 부순 키카로에 또 주둔지가 생겼어.”
“키카로에, 또 생겼다고요?”
“지칼로 같은 마왕들도 다수 소환된 것 같더군. 소궁주가 두 시간만 더 누워 있었어도 나 혼자 갈 뻔했는데, 외롭지 않겠어. 여기, 라트리 님이 특제 샌드위치 싸줬으니까 어서 먹어. 다 먹으면 바로 출발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루나랑 얼음공주 둘 다 얼른 먹고 가라. 이 무라칸 님은 딸기파이랑 아직 좀 더 쉬어야겠으니.”
“얼음공주라고 부르지 마라.”
“무라칸 님, 서운하네. 왜 나는 별명 안 지어줘요?”
“서운했냐? 앞으론 튼튼이라고 불러줄게. 튼튼아, 나 진짜로 노는 것 아니니까 꼬마 놈한테 말 좀 잘 해줘. 회복 끝나면 나도 바로 전장으로 갈 거니까.”
“막내가 맨날 빈둥거리네 어쩌네 하면서 무라칸 님을 갈구긴 하지만, 사실 걱정도 많이 합니다. 아시면서.”
“쳇, 모르겠는데. 그놈 내가 딸기파이랑 사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식이라면 누구나 보통 부모의 애정행각을 되도록 안 보고 싶은 법이죠. 그런데 길리 자네는 이제 무라칸 님이랑 정식으로 연인 사이가 된 건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1기수 님.”
“따, 딸기파이여?”
시리스는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분명 지금 루나와 함께 전장에 나가면 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두렵긴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두려움이었다.
“가시죠, 1기수.”
[보오옹!]백색 차원 문이 열리자 모트가 이계 설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무인 배달이 싫어? 콰울 박사가 붉은부엉이의 양산형을 빨리 완성해야 할 텐데.”
“아뇨, 배달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뭐…… 배달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게 제 역할이라면 충실해야겠죠.”
“실력뿐만이 아니라 내면도 좀 컸군.”
“그나저나 괜찮은 겁니까?”
“뭐가?”
“그 붉은 기운 말입니다. 횟수에 제한이 있다고 들었는데…… 전쟁 시작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쉬지 않고 사용하신 것 같아서요.”
“아, 그거 말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
“네?”
“아버지께서 창성이 되기 전까지 되도록 사용을 자제하라고 말씀해주셨긴 한데 말이야…… 실제로 지칼로전 전까지는 연속으로 사용하면 좀 버거운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 그런데 이번에 지칼로 놈을 죽일 때는 특히 많은 붉은 검기를 썼는데, 지치지 않는 걸 넘어 어째 상쾌하기만 하더라고?”
“상쾌…… 하다고요?”
“그래, 몸속에서 불순물 같은 게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인 것 아닙니까?”
“나도 혹시 그런 건 아닐까 계속 고민하고 있기는 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말이지. 아버지도 마성화를 극복하셨을 때 이런 기분이셨겠지.”
“음.”
“물론, 다시 몸에 무리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할 거야. 그렇게 되면 소궁주가 더 많은 역할을 해줘야겠지. 이번에 보니 만빙에도 내 붉은 검기처럼 마족을 지워버리는 힘이 있었으니.”
[보오오.]모트가 이계설원을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키카로 왕국으로 도착한 것이다.
나흘 전에 루나와 시리스가 이곳에서 치른 전투는 전혀 흔적이 없었다. 폐허가 된 주둔지엔 새로운 성채가 소환되었고, 그때보다도 훨씬 더 강한 마기가 평원 전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때처럼 쓸데없는 하급 병력은 거의 없는 모양이군. 그리고 이번엔, 대장군이 섞이지 않고 전부 마왕으로만 채운 것 같은데?”
루나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시리스와 눈을 맞췄다.
“좋은 경험치일 뿐이죠.”
“훌륭한 자세야. 그런데 병력을 뺐으면, 성채도 같이 없앴어야지. 이것들은 자원이 남아도나?”
척!
루나가 크란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쇄천, 이번에도 결전기로 일단 성채를 부수고 시작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마왕들이 먼저 성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또 무식하게 시작하려고 하는군. 이봐, 루나 룬칸델. 미솔의 성은 부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우리 미솔이 말은 잘 못해도 자기 성이 파괴되는 건 절대 못 참거든.”
미솔을 제외한 세 명의 마왕들이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루나는 그들을 훑어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렇게 소중한 걸 왜 인세로 가져왔어. 아, 죽을 때도 함께하려고 그런 건가? 아니면 소중한 무언가가 부서져야만 열 받아서 제 실력을 낼 수 있는 부류?”
“후자라고 해두지. 난 바이스 스칼로, 진마계 심해지대의 지배자다.”
“틸리아스다.”
“쿠칸 텐이다…… 비궁의 잡것이 죽인 시칸의 원수를 갚아주러 왔다.”
“시칸? 나흘 전에 죽은 대장군 중 한 놈 말이군. 잘됐네. 소궁주, 이번엔 저 쿠칸이란 놈을 맡아. 마침 놈도 소궁주를 원하는 것 같으니.”
쿠칸은 얼핏 가늠하기에도 빌라굴이나 시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자였다. 시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궁주, 볼수록 귀여운 구석이 있군. 하지만 저 녀석은 소궁주에겐 아직 무리야…… 다른 놈들 먼저 정리하고, 소궁주가 적당히 깨달음을 얻고 죽기 직전이 되면 구해줘야겠어.’
물론 시리스가 루나의 예상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폭발시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분명 루나는 적들에게도 지칼로 때와 달리 새로운 수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선제공격의 목적은 지토의 살점을 소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칼로는 살점을 사용하지 않았어. 진마계 놈들도 머리가 없지는 않을 테니, 이번엔 쪽수도 늘리고 다 지토의 살점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테지. 쿠칸이 소궁주를 상대하며 행여 지토의 살점을 사용하기라도 하면, 소궁주로서는 방법이 없다.’
루나가 도끼검 크란텔에 다시 기운을 집중시켰다.
“통성명과 상대 지정은 끝났군. 쿠칸 빼고 나머지 셋은 한꺼번에 와라. 지칼로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름 품격이 있었는데, 네놈들은 어떨지 궁금하구나.”
당연히 루나는, 마왕들이 일단 비장의 수를 감춘 채 전투에 임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시작부터 빗나가고 말았다. 마왕들이 일제히 품속에서 지토의 살점을 꺼내 든 것이다.
크직-!
마왕들이 살점을 그러쥐자, 루나와 시리스는 갑자기 온통 보랏빛으로 변한 시야를 마주해야만 했다.
살점에 담긴 지토의 힘이 마왕들에게 흡수된 것만으로, 루나와 시리스는 살갗이 아릿해질 정도의 압박을 느꼈다.
“우리가 설마 쿠칸과 소궁주를 따로 떨어져서 싸우게 둘 줄 알았나? 우린 지칼로처럼 격조를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말이지.”
“소궁주, 계획 변경이다. 지금 당장 모트를 타고 전장 바깥으로 이탈해. 이번엔 아무래도 나 혼자 오는 게 좋았겠군…….”
시리스는 예전처럼 반박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트를 소환할 수 있는 이계설원의 차원 문이 열리질 않았다. 바이스는 시리스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도망칠 생각은 마라, 너희 둘은 오늘 지옥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니.”
루나와 시리스가 서 있는 땅엔 어느새 시커먼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바이스가 가진 심해의 능력은,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두 사람을 완전히 물속에 가둬두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