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898)
제 888화
226화. 로키아의 세계
온갖 거대한 마법진들이 바닥과 벽,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관실, 두 사람이 자신의 앞에 놓인 유리관들을 바라보았다.
란, 그리고 뮤였다. 그들도 앤과 마찬가지로 룬칸델 기수였던 시절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기수 코트가 아니라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다섯 개의 관 중 하나가 붉게 빛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 관 속에는 앤이 있으니, 그 붉은 빛은 그녀가 인세에서 육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뜻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진마계에서 인세로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됐을 텐데.”
란의 말에 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큰언니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냉정해진 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 진이나 전대 흑기사들이 지원을 와 그들에게 당했거나. 어느 쪽이든 재수가 없었네. 깨어나면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자고.”
앤이 의식을 되찾고 유리관을 빠져나오려면 최소 한 달은 필요할 터였다.
그들은 비어있는 세 개의 유리관과 기관실을 점검했다. 유리관은 혹 깨진 곳이 있는지 섬세하게 살폈고 사방에 그려진 마법진들 중 연해진 것들에 마력을 더 주입했다.
그들은 작업을 끝내고 기관실을 빠져나가자마자 가장 가까운 이동 관문으로 향했다. 인세에선 검황성전 이후 폐쇄된 휴페스터 중앙 이동 관문이었다.
이동 관문의 안내원은 남매가 들어서는 모습에 잔뜩 겁에 질려서 고개를 조아렸다.
“어서 오십시오, 새로 오신…… 관리자님들이시군요.”
관리자, 이 세계에서 그들은 그렇게 불렸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관리자를 두려워했다. 그 어떤 거대 세력보다도.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창조자의 공간.”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로키아는 오래 전 이 세계를 만들고, 가네스토가의 거처에 창조자의 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키아는 천 년 전 수많은 이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창조자’는 십대기사 시절 세인들이 주로 그녀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특등석 내부로 들어서며 뮤가 입을 열었다.
“가주는 가네스토 본가에 당신께서 십대기사이던 때의 칭호를 붙였단 말이지.”
“그게 왜?”
“그 시절에 미련 같은 게 남으신 걸까 싶어서.”
이동 관문은 순식간에 목적지에 다다랐다. 창조자의 공간은, 이름과 위치만 다를 뿐 천 년 전 검의 정원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넌 독마성을 나온 이후 매일 여길 보면서도 그걸 물어본 거냐? 당연히 남으셨겠지. 이상향을 눈앞에서 놓치셨으니.”
“하긴, 그건 그렇군.”
다만 창조자의 공간엔 사람이 하나도 없어 휑한 기운이 가득했다.
정원엔 현재 인세에 있는 진짜 검의 정원, 그리고 이곳의 칼론에 있는 검의 정원보다 검이 훨씬 적게 꽂혀 있고,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드넓은 정원을 사용하는 이들은 오로지 가네스토가뿐이었다. 하인들도, 집사와 문사들도, 기사들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와 스산하기만 하지는 않은 정도였다.
두 사람은 조슈아가 있을 수련실로 걸음을 옮겼다.
수련실 한가운데, 언제나처럼 조슈아는 정좌한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명상은 가네스토의 피를 각성한 이후 그가 가장 많이 한 일이다.
“1기수.”
조슈아, 그리고 지옥에서 구해진 이들은 가네스토가에서도 기수가 되었다. 1기수 조슈아, 2기수 란, 3기수 뷔고, 4기수 뮤, 5기수 앤.
그중 뷔고만이 아직 각성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뷔고는 창조자의 공간에 온 적이 없었다.
“왔느냐.”
“앤이 인세의 육신을 잃었습니다. 한 달은 깨어나지 못할 겁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다. 앤이 예상보다 못 버텼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가주께도 저희가 보고를 올릴까요?”
“아니, 어머니께는 내가 말씀을 드리겠다.”
조슈아는 다른 가네스토의 기수들과 달리 로키아를 어머니라 불렀다. 기수들은 그 이유를 조슈아가 가장 깊은 각성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로키아와의 유대가 깊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오류는 따로 발생한 바가 없나?”
로키아가 만든 세계는 불안정하다.
대체로 이곳의 모든 역사는 창조자인 로키아의 뜻을 따라 흘러가지만, 그녀가 원치 않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난데없이 세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강자가 등장해 권력 구도에 균열이 일어나거나, 설정하지 않은 자연재해가 발생해 파괴되면 안 될 곳이 파괴되는 등.
관리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다. 세계를 위협하는 기인이 등장하면 처치하고, 있어야 할 건물이 무너지면 재건하고, 있어선 안 될 무언가가 생기면 제거하고.
상황이 좋다면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인들에게 그 과정이 노출되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모두가 관리자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근본적으로 ‘오류가 없는’ 세계를 만드는 건 로키아의 숙원 중 하나다.
“아직 확정된 심각한 오류는 없지만, 세리얼 지플이 다소 난폭해진 감이 있습니다. 평소와 달리 루테로 연방 대회의에서 자신에게 찬성하지 않은 인물 몇을 암살했더군요.”
“죽은 이들은 영향력이 거의 없는 중소 가문의 가주거나 기수였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나, 세리얼 지플을 일단 요주의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세리얼 지플…… 인세라면, 베라딘 지플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로군. 알았다, 오류로 번질 것 같으면 처리하기 전에 먼저 내게 보고부터 하도록.”
“알겠습니다.”
“뮤.”
“예, 1기수.”
“진마계에 네 육신이 아직 그대로 있나?”
“예. 방치되어있는 염화지대에 잘 숨겨두었습니다. 인세 쪽 육신도 멀쩡한 상태고요.”
“진마계 독마성을 찾아가라. 켈리악 경에게 앤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려. 드루가 킬렛은 상황을 보고 그로쉬에 성으로 빠졌을 테지만, 사키엘의 눈 때문에 라갈에게 바로 상황을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켈리악 경의 추측대로, 비셉스는 룬칸델과 손을 잡은 것 같군.”
“예나 지금이나 우리 막내는 운이 참 좋군요. 전쟁이 시작된 후, 진마계의 정보가 없어서 머리가 아팠을 텐데. 가만히 있어도 비셉스 같은 놈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말이죠.”
“그건 운이 아니다. 진의 그간 행보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에 더 가깝지.”
“비셉스가 붙을 만한 곳은 바멀 연합밖에 없긴 했죠. 앤이 한 달 동안 유리관 신세가 된 걸 보니 심사가 꼬여서 해본 말이에요. 안 그래도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은 부족한 형편이니까요. 로사 룬칸델, 아니. 로사 가네스토가 있다면 지금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조슈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면 넌 지금처럼 편하게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로사 룬칸델이 가네스토로서 완벽하게 각성하고도 우리를 룬칸델 시절처럼 대했다면, 진지하게 가주께 숙청을 요청했을 겁니다.”
그 말에 조슈아는 로키아에게 들은 흉신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진과, 당시 흉신으로부터 분리된 로사 룬칸델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이 나눈 대화가.
-나는 지쳤다는 이유로, 더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됐다는 마음으로, 투쟁을 멈춘 것이다. 흉신이 되는 건 아주 편한 길이었을 테지. 아마…… 내가 태어나 흉신이 되기까지 걸어본 길 중, 가장 유혹적이고 쉬웠을 것이다.
-나는 가문의 기수로서 그 죗값을 받아내러 가는 길이다. 흉신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내게 알려라.
-부디…… 죽음이 편안한 탈출구가 되지 않기를. 죽어서도 그 추악한 영혼과 육신이 어딘가에 갇혀 고통에 빠지기를, 영겁이 흘러도 결코 그 속에서 해방될 수 없기를, 내가…… 그 옆에…… 언제나 함께 있기를, 간절히.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로키아는 조슈아에게, 그때 인간으로서의 로사가 흉신에게 내린 저주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인간 로사 룬칸델의 자아도, 흉신도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소멸한 것이다. 지옥에도, 윤회의 길에도 오를 수 없는 소멸.
그건 현재 인세에 남은 그 어떤 불멸자의 권능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로사 룬칸델은 완전하게 소멸했으니 의미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1기수께서 웃었으니 농담으로서는 훌륭했던 것 같네요.”
“나는 자주 웃는 사람이니 자랑스럽게 여길 일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우리 죽이고 싶은 귀염둥이, 우리 모두의 사랑스러운 원수! 막내가 가네스토의 피를 각성하는 건 어떤가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일까요?”
조슈아는 뮤와 똑같은 질문을 로키아에게 한 적이 있었다.
“진이 솔더렛의 계약자인 한 가네스토의 피는 각성 될 수 없다.”
“전 왜 우리의 각성이 저주로 분류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언젠가 각성할 날이 올 수도 있는 건가?”
“그 또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지. 어머니의 세계가 완벽해져서 인세를 대신할 수 있게 된다면. 바멀 연합에 있는 모든 형제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진까지도…….”
다른 가네스토들과 달리, 조슈아는 진이나 다른 형제들의 각성에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에겐 어머니에게 그들이 아니어도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다만 가능하다면, 콰울 박사는 기회가 될 때 언제든 각성하길 바랐다.
콰울은 이어받은 피의 농도에 비해 지나치게 큰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계속 바멀 연합에 거대하면서도 이로운 변수를 제공하는 중이었다. 로키아의 세계에 빗댄다면, 걸어 다니는 오류 덩어리 같은 존재인 것이다.
“쓸데없는 가정과 농담은 여기까지만 하지. 란, 너는 오늘부터 당분간 나를 대신해 창조의 공간을 맡는다.”
“어디 가십니까?”
“인세로 간다. 어머니께서 마침내 그자에 대한 단서를 찾으신 모양이다. 루시 룬칸델, 아직 진이 한 번도 그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천 년 전의 마지막 십대기사. 유리관 점검은 확실하게 했을 테지?”
“예, 완벽하게 조정해두었습니다.”
조슈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출발하겠다. 너 혼자 감당키 어려운 오류가 발생하면, 즉시 어머니께 보고를 올리도록. 그리고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뮤는 켈리악 경을 만날 때 루시 룬칸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 그자는 쉬누가 탐내는 용들을 데리고 있으니.”
“와, 농담이죠? 제가 아직도 룬칸델 시절 뮤로 보여요?”
조슈아는 한 번 더 피식 웃었다.
“그래, 농담이다.”
“재미없네요. 잘 다녀오십시오.”
기관실로 향하며, 조슈아는 루시 룬칸델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쉬누조차 통제하지 못한 화룡들이 따를 정도라니. 유폐된 모든 용들의 어머니라…… 어머니께서 경계하실 만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