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
제 11화
4화. 열 살이 되기까지(2)
세상엔 오러와 마력을 제외하고서도, 드물게 다른 특수한 힘을 다루는 이들이 존재한다. 영기는 그 ‘특수한 힘’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힘.
그리고 그 영기를 다루는 존재는 두 부류다.
무라칸처럼 솔더렛으로부터 태어난 존재와, 진처럼 계약을 맺은 경우.
전성기 무라칸은 영기 덕분에 9성 마법사 다섯과 싸워도 물러설 필요가 없었으니, 진으로선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따라서 무라칸은 진에게 더없이 좋은 스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더렛이 진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태라면 더더욱.
“영기 개방은 너나 나처럼 영기를 다루는 존재들에게…… 시작이자 끝인 기술이다.”
“시작이자 끝?”
“기본기이면서도 필살기라는 뜻이지. 원리는 간단해. 마법사가 마력을 개방하는 것과 거의 똑같아.”
마법사들은 3성에 다다르면 마력을 개방할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하면, 마력을 개방할 수 있으면 3성에 이른 것이기도 했다. 전생의 진이 이룬 성취는 5성이니, 마력 개방 정도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무라칸은 진에게 ‘마력’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그에게 ‘5성 수준의 마법 지식’이 있다는 건 아직 모른다.
진이 자신이 회귀자라는 걸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은 앞으로도 그 사실을 타인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에게 마력 개방은 필살기가 아니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개방’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다고, 격이 같겠냐? 방법만 비슷하다는 거야.”
“음.”
“그러니까, 너는 영기 개방을 배우기 전에 마력 개방을 먼저 익혀야 한다.”
“어째서?”
진이 되묻자 무라칸이 어깨를 으쓱했다.
“쉬운 것부터 하는 거지. 목검도 제대로 못 쓰는데, 진검을 써서야 되겠어?”
“아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심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력 개방은 졸업한 지 오래인데…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뭐, 복습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되겠지. 회귀 후, 마력 개방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기도 하고.’
무라칸이 진을 정좌로 앉히더니,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웃기는군. 내가 설마 룬칸델의 아이에게 마법을 가르치게 될 줄이야. 이거, 네 아버지가 알면 네놈이나 나나 숨통 붙어 있긴 어렵겠어.”
룬칸델에서 마법을 익힌다는 건, 곧 가문의 반역자가 된다는 의미다.
무인 가문은 대부분 마법을 싫어하지만, 룬칸델처럼 극단적으로 배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룬칸델은 초대 가주가 사망한 뒤부터 마법을 가문의 금기로 여겼다.
그저 마법을 익히면 검의 극지에는 닿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금기였다. 실제로, 역사 속엔 종종 마검사가 등장했으나 모두 별 볼 일 없는 성취만 이루고 자취를 감췄다.
반대의 경우도 그랬다.
마법 가문은 ‘무기술’을 배척하지 않았으나 ‘오러’를 사용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오러가 섞이면 마력이 혼탁해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룬칸델이 마법을 금기로 여기는 건, 천 년 전 룬칸델이 지플과 맺은 굴욕적인 맹약 때문이다.
테마르가 살아 있던 시절까지만 해도, 룬칸델은 본래 ‘마검사 가문’이었다.
그때는 지금만큼 룬칸델이 유명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역사가 소실, 왜곡돼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회귀자이자 솔더렛의 계약자인 진과 무라칸, 그리고 룬칸델과 지플의 주요인물 몇이 전부였다.
“이미 내가 이 지하실을 들락날락하는 것부터, 걸리면 끝장일걸.”
“그래, 그간 들어 온 네 아비의 성격이라면 그렇겠지. 우린 공범이니까, 시작하기에 앞서 비밀을 하나 알려 주마. 세상 사람들은 ‘마검사’가 희귀해도, 강해질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지?”
“아무래도 그렇지.”
진이 모르는 척 대꾸하자 무라칸이 흡족한 듯 껄껄 웃었다.
“그건 다 개소리야! 룬칸델보다 더 나쁜 지플의 머저리들이 지어낸 개소리라고. 엄청난 선행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마검사야말로 궁극이다. 네놈들은 원래 축복받은 마검사 가문이고.”
“그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봐.”
“……안 신기하냐?”
무라칸이 다소 김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진이 와아, 뒤늦게 신기한 기색을 꾸몄으나 무라칸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하, 너를 만난 것보다 신기할 게 뭐가 있겠어. 그보다, 선행 조건이라면?”
“하여간 귀염성 없는 꼬마 같으니. 마력 친화력과 오러 감응도가 미친 타고난 육체. 그리고 신과의 계약.”
“난 다 갖췄네.”
“알겠으면 네놈은 앞으로 마법을 익히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단, 한 가지만 약속하자. 꼬마.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진, 절대로 가문에 마법을 노출시키지 마.”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아. 이제 겨우 여덟 살인데, 죽고 싶을 리 없잖아.”
“그럼, 그럼. 언젠가 정점에 서서 이 무라칸을 호강시키는 게 네 목표란 말이다. 시작하지. 우선, 마력을 일으켜 보자고. 음, 마력을 일으킨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면…….”
우우웅.
진이 손바닥 위에 호두만 한 마력 구체를 띄우자, 무라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런 미… 친놈이. 뭐야? 그걸 1초 만에 해 버리면 어떻게 해? 아직 설명도 안 해 줬잖아!”
진도 놀랐다.
적절히 수준을 조절해서 보여 주려 했건만, 저도 모르게 마력 구체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덟 살의 육체는 스물여덟의 그것처럼 정밀한 제어가 어려웠다.
특히, 요즘은 마법을 사용할 일이 극히 적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진이 뭐라고 둘러댈지 고민하는 순간, 무라칸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그래, 솔더렛! 이놈을 왜 천 년의 계약자로 골랐는지 알겠구나! 크하하, 진짜 물건이야. 물건이라고! 꼬마, 자꾸 설레게 만들래?”
실수가 오히려 이득이 되었다.
그래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꾸민 진은, 이렇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대단하고말고! 핏덩이 때 손바닥 위에 마력 구체 둥둥 띄우는 인간은, 내 평생 세 번밖에 못 봤어! 첫 번째가 지플의 초대 가주. 두 번째가 지플의 4대 가주. 그리고 바로 네놈!”
무라칸이 지플의 초대 가주와 4대 가주는 각각 다섯, 일곱 살에 마력 구체를 띄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그건 별 감흥이 없었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 또한 그들 못지않은 ‘마법 천재’였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회귀 전 3년 만에 5성에 닿고, 솔더렛과 계약을 했으니 어쩌면 그들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회귀 전의 내가 지플에서 태어났다면, 스물여덟에 최소 8성은 이뤘겠지. 어쩌면 9성이 되었을지도.’
무라칸이 웃음기를 지웠다.
“꼬마. 솔직히 영기 개방까지 넉넉히 몇 년은 필요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폭풍성을 나가기 전에 시작할 수도 있겠다.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다음 단계는 마력 이동. 기초적인 수련법으로, 손바닥 위에 놓인 마력을 꺼뜨렸다가 반대쪽 손으로 옮기는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역시 진에겐 포크질만큼이나 쉬운 일이지만 진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었다.
이미 무라칸에게 충분한 기대감을 심어 주고 있는데, 그 이상 부풀리는 건 진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또한 방금은 실수가 이득이 되었으나,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전생에서처럼 능숙히 마력을 다루기까지 분명 제대로 된 반복 훈련과 복습이 필요할 터였다.
진이 무라칸의 설명에 따라 오른 손바닥에 있는 마력을 찬찬히 반대쪽으로 이동시켰다.
‘음…… 첫 성공은 10분 정도면 적당하겠지.’
10분 뒤, 진의 오른손에 있던 마력이 정확히 왼손으로 이동하자 무라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진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쉬운 행위를 일부러 느리게 하는 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억지로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게 더 힘들듯이 말이다.
“잘했다. 아주 훌륭해. 그걸 5초 내로 할 수 있게 되면, 마력 개방에 들어설 수 있을 거다. 동시에, 3성급 마법사가 되는 셈이지.”
“거기까진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진이 땀을 닦아 내며 물었다.
“2년.”
그렇다면 1년 정도로 조절해야겠군.
계산을 끝낸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마력 이동만 더 연습하고 돌아가. 혹시라도 나 없을 때 성내에선 수련하지 말고.”
“알겠어.”
한 시간을 더 수련하자, 성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진이 노트와 바구니를 챙기자, 무라칸이 드러누워 허벅지를 긁었다.
“아, 그리고 꼬마. 내일 올 땐, 꼭 딸기파이를 바구니 가득 가져와라. 좋게 말로 할 때.”
무라칸이 떠나는 진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딸기파이는 아까 먹은 게 마지막이었어. 지난 반년 동안, 네가 먹어 치운 딸기가 대체 몇 송이인 줄은 알아?”
“빌어먹을, 그럼 네 유모가 구운 다른 파이라도 일단 가져와 봐!”
“그럼 생쥐 파이는 어때?”
“이 밤톨만 한 게 보자보자 하니까…… 어, 야! 야!”
호다닥!
진이 지하실로 이어진 구멍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생쥐 말고, 다른 거! 제발!”
진이 다음 날 무라칸에게 내놓은 것은, 바구니 가득한 사과 파이였다.
무라칸은 몹시 흡족해하며 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1년이 흘러 1789년 9월 9일의 아침이 밝았고, 오늘은 진의 아홉 번째 생일이다.
사계절 우중충한 폭풍성에서 생일을 보내는 건, 아이들의 정서에 딱히 좋을 것이 없다.
열 명 남짓한 하인과 길리, 수호기사 다섯이 모여 케이크에 초를 꽂는 동안, 비바람이 폭풍성 창문을 매섭게 후려갈기고 있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진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다들 고마워.”
후우-.
케이크 촛불이 꺼지자 모인 이들이 박수를 쳐 댔다.
쾅쾅쾅쾅. 기사들의 건틀릿 때문에 짝짝 대신 강렬한 금속 마찰음이 일었다. 어느 평민 가문의 생일 파티라 할지라도 이보다 황량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진에겐 꽤 단란하면서도 호사스러운 풍경이었다. 전생에선 아홉 살 때 이런 생일 축하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길리가 케이크를 한 조각씩 썰어 모두에게 나눠 주는 사이, 별안간 혼자 폭풍성 입구를 지키고 있던 수호기사가 복도를 달려왔다.
“진 도련님!”
수호기사 칸이었다.
“칸?”
성내에서, 칸이 복도를 뛸 일은 많지 않다.
진은 가문의 누군가가 폭풍성을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첫째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루나 누님께서……?”
진이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진의 첫째 누님, 루나 룬칸델.
13명의 자식 중 첫째인 그녀는, 룬칸델의 자식들 중 가장 강하다고 정평이 난 인물이다. 고작 스물여덟인 지금 9성 기사가 되었으니, 정확한 평가였다.
그럼에도 룬칸델의 ‘왕위 계승’이라는 추악한 싸움엔 끝내 참여하지 않고, 늘 혼자서 움직이는 여인.
‘어린 막내 생일 축하나 해 주려고 찾아올 만한 사람이 아니야. 무슨 일이지……?’
진이 창문에 바짝 붙어 바깥을 살폈다. 루나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거대한 도끼검, ‘크란텔’을 등에 멘 채 성큼성큼 폭풍성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