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15)
제 999화
228화. 격전의 그로쉬에 성(12)
수정구에 생긴 균열 속에서 진한 마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사키엘은 빠져나가는 마기를 붙들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 재차 진이 검을 내리치자 사키엘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 틈으로 단테가 라시드를 찔러 넣었다. 날카로운 검광이 사키엘의 등을 관통하며 자줏빛 선혈이 튀었다.
[카악!]진에게 영원화라는 창성 특유의 절대성에 준하는 힘이 있듯이, 단테에게도 론이 남긴 진기가 있다.
따라서 엄청난 초재생이 뒤받쳐준다 한들 단테의 일격 역시 매 순간 치명적이었다. 사키엘은 허리를 꺾으며 자세가 무너졌다.
곧장 마기를 증폭시켜 보호막을 펼쳤으나 다음 일격에 곧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진 룬칸델은 내 수정구를 타격하면서 직접 지토 님의 마기에 노출되었을 텐데.’
분명 브라다만테의 칼날에 묻은 지토의 진기가 보였다. 그 진기는 마치 거머리처럼 검에 담긴 영기와 오러,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상도 존재했다.
‘게다가 지토 님의 기운이 진 룬칸델의 정신으로도 침투하고 있을 터. 그런데 어째서 아무런 타격이 없는 듯 보이는 것인가……!’
잠시 주춤하는 기색도 없고, 움직임이 둔해진 느낌도 없다. 하다못해 미간을 좁히거나 눈을 찡그리는 모습조차 없었다.
오히려 몰아붙이는 기세가 점점 더 사나워지고 있었다. 마기에 직접 닿지 않도록 검기 위주로 공격하던 방금 전까지와 달리, 계속 사키엘의 품을 파고들어 검을 휘둘러댔다.
보통의 기사라면.
아니, 초월의 영역에 진입한 기사들 또한. 대부분은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은 흉신전에서 이미 이보다 더한 정신 공격을 견뎌냈다. 지토가 직접 행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 힘을 일부 빌린 마족의 정신 공격이 진에게 제대로 통할 수는 없었다.
“자신만만한 기세는 어디로 갔나, 이게 전부인가? 사키엘 그로쉬에.”
터엉-!
사키엘이 내성 기둥에 처박혔다. 무너지는 잔해가 사키엘을 덮치려는 찰나, 반원 형태로 쏘아진 단테의 검기가 먼저 사키엘의 목을 덮쳤다.
[욱!]사키엘은 반사적으로 제 목을 더듬었다. 지토의 진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계산 착오.
방어선이 생각보다 빨리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줄곧, 사키엘은 자신의 계산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폭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택했건만, 지금 사키엘은 물밀듯이 차오르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상실의 장을 통한 자폭이라는 수마저 틀린 계산이라면?
그래서 자신은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진과 단테의 검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런 불안감이 사키엘의 내면을 빠른 속도로 어지럽히고 있었다. 싸움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잡념이 끼어들고 있었다.
이 세상에 진과 단테를 상대로 잡념을 가진 채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스카악-!
빈틈이 늘자마자 브라다만테가 사키엘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영원화를 이겨내는 초재생이 시작되긴 했으나 팔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가 조종할 수 있는 마력의 흐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래선 안 된다. 정신을…… 다잡아야 해. 과거 수많은 마신과 마왕들에게 대적할 때에도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은 없다.’
공포.
지금 사키엘이 굳고 있는 이유는, 명백히 진이라는 압도적인 적으로부터 느끼는 공포에서 비롯되고 있다. 공포가 그녀를 위축시키고 있었다.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다. 대진마계 총서기관인 내가, 지금 진마계의 입구를 지키는 이 내가. 적들에게 이토록 초라한 모습만 보이다 죽어서는 안 된다!’
사키엘은 두 눈을 부릅뜨며 다가오는 두 자루의 검을 마주 보았다.
일순, 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 눈동자는 더 이상 떨리지 않고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브라다만테가 자신의 목을 베러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사키엘은 두 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 그렇게 한 번은 더 절망을 딛고 일어서야지.’
‘사키엘, 살아야 한다! 너라도 살아야 해,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다.’
지토, 그리고 파엘리토의 목소리.
지토의 목소리는 현재였고, 파엘리토의 목소리는 과거였다. 그녀가 잊고 있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들려온 목소리였다. 사키엘은 지토의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핏……!
브라다만테가 사키엘의 눈 밑을 스쳤다.
‘분위기가 변했군. 이제야 진짜로 죽음을 각오한 건가, 아니면…… 지토의 기운에 더 잠식된 건가.’
칼끝을 타고 전해지는 마기가 더욱 진해졌다.
여전히 사키엘이 아닌 지토의 힘이었다. 진은 물러서지 않고 더 깊숙이 검을 밀어 넣었다.
‘어차피 사키엘이 얼마나 강해지든 나와 단테의 상대가 될 순 없다. 갑자기 창성에 오르는 게 아닌 한, 절대로.’
그렇다면 여전히 진이 신경 써야 하는 건 사키엘의 분위기나 무위가 아니라, 그녀가 준비한 다른 계략이었다.
콰아아아아……!
수축하는 죽음의 벽 때문에 그로쉬에 성 일대가 진동하고 있었다. 죽음의 벽은 어느새 성 근처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좁혀지는 벽을 피해 안으로 달아나는 이들의 외침, 함대의 동력기관이 최대로 가동되는 소음, 결국 피하지 못해 막판에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들의 비명.
진과 단테는 성 안에서 그 모두를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도 연합원 중 죽음의 벽에 당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연합이 5차 방어선에 있을 때 죽음의 벽이 시작되었고, 나머지 세력은 3차부터 도피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진, 이대로라면 곧 성으로 모든 병력이 진입할 것이오.”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키엘은 의도적으로 방어선을 치던 인세의 모든 병력을 모으고 있다…….’
사키엘은 피투성이가 된 채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막 회복된 오른팔로는 쉴 새 없이 단테를 향한 저주를 만들어냈고, 수정구를 쥔 왼팔로는 진을 견제하는 공격 마법과 보호막을 형성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어둠계 마법진들이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지고 있었다.
또한 사키엘에게선 분에 넘치는 힘을 다루는 이들 특유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육신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재생된 오른팔은 물론이고, 온몸이 흐물거리며 자줏빛 진액을 떨구고 있었다.
진은 이내 그녀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로쉬에 성으로 유인해서 마기로 인세의 병력을 몰살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폭을 계획하고 있었군.’
자폭이 아니라면 굳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 가며 싸울 이유가 없다. 뒷일을 생각해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려는 모습이 보여야 했다.
이제야 알았냐는 듯, 사키엘은 일그러진 얼굴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만. 당신은 저를 상대하며 지나치게 자만했습니다. 이쪽은 이미 방어선이 무너질 때부터 목숨을 걸고 있었죠. 그런데, 당신은? 당신은 어땠습니까, 진 룬칸델. 나를 상대하며 죽을 준비가 된 채 이 자리에 왔습니까?]성 바깥에서 전해지는 진동과 소음이 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너진 성벽 너머로 지플의 함대가 벽을 피해 내성으로 쇄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반대쪽에선 연합의 병력이, 좌우에선 킨젤로와 연합, 지플 모두의 병력이 그렇게 내성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지토 님도 아닌, 나 따위를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을 일 따윈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어쩌면, 그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진 룬칸델, 단테 하이란. 싸워보니 당신들은 실제로 나를 한참 뛰어넘는 무력을 가지고 있어요.]하지만 저 밖에 있는 당신들의 부하도 그럴까요?
사키엘이 뒷말을 이으며 진과 눈을 맞췄다.
[아닐 겁니다. 그들은 죽음의 벽을 피하더라도 이곳에 깔린 마기에 살해당할 것이며…… 당신들은 결코 그들 모두를 구할 수 없습니다.]진은 그사이 업화를 펼치며 사키엘의 마법진들을 쓸어냈다. 사키엘이 숨겨둔 마법이 무엇이든, 그게 완성되기 전에 그녀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진은 그게 처음 예상한 것만큼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우리라는 직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사키엘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다. 지토의 힘을 견디지 못한 육신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무너질 테니까.
따라서 사키엘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죽음의 벽과 더불어, 상실의 장을 펼칠 준비가.
진은 아직 상실의 장을 모르고 있다. 설령 안다 할지라도, 이미 상실의 장을 위한 마법진이 완성되었으니 진으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으리라.
사키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정구를 그러쥐었다.
“말이 많아졌군, 불안한 모양이지.”
쿠드드득-!
사방에 남은 건물들이 완전히 허물어지며 인세의 병력들이 성내로 들어섰다.
그때서야 죽음의 벽은 수축을 멈췄다.
[총수! 괜찮은가!]“진! 지금부터 나와 기사들이 벽을 열어보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마저 놈을 해치워라!”
페이텔과 루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금함은 죽음의 벽을 겨눈 채 주포를 장전했고, 루나는 붉은 검기를 펼치고 있었다.
다른 세력의 기함과 초인들 역시 벽을 뚫고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 사키엘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신하며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마기에 휩쓸려 죽거나, 모든 것을 잊은 채 빈 껍데기가 되거나. 당신들은 그 두 가지 결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화아아악……!
별안간 성내가 환해졌다. 마족의 어둠계 마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마치 빛 마법처럼 보이는 마기가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상실의 장.
진마계 최고의 금기가 사키엘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이건…… 확실히 위험하군.’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몸이 경계하고 있다. 이 빛에 몇 초만 더 노출되면,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진과 단테는 빛을 보자마자 엄습한 이명에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사키엘은 그 모습에 한 번 더 희열을 느꼈다. 내내 지토의 마기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단테는 사키엘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가슴팍에 라시드를 꽂았다. 이미 장기가 다 녹아내린 탓에 묵직한 감각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진은, 손을 들어 한 가지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사키엘, 너를 시간 안에 죽이지 못한 건, 내 불찰이라는 걸 인정하마.”
역천, 역류계 궁극의 마법.
어느새 성 위에 형성된 거대한 마력구가, 그로쉬에 성 전체를 잠식한 새하얀 마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러나 마법을 망가뜨리는 방법이, 꼭 술자를 죽이는 것만 있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