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27)
제 999화
231화. 각오(1)
바스칼라는 솔더렛의 권능인 저주 면역마저 무시했다. 진은 왼팔에 급격히 힘이 빠지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안 그래도 이미 주먹이 부서져 약해진 부위다. 노화까지 겹치니 아예 왼팔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강제 노화는 시간의 신 올타가 직접 현현했을 때나 실현할 수 있을 법한 저주였다.
그렇다는 건 곧 파엘리토가 최소 현현한 올타와 동등한 수준의 권능을, 그것도 시간에 관한 권능을 가졌다는 뜻이 된다.
‘파엘리토가 창성이라 할지라도, 시간의 권능까지 올타 님과 동등할 수는 없어. 아마도 이 저주는, 놈이 쓰는 검의 능력…….’
-[……그가 사용하는 검 바스칼라에는 권능을 차단하는 능력이 깃들어 있어.]
오르갈은 파엘리토에게 패배한 직후 진에게 바스칼라를 그렇게 설명했으나, 사실 바스칼라는 권능을 봉하는 능력만 가진 검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바스칼라로 완벽하게 봉한 적 있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사로라는 마신이 있었다. 그는 죽음을 원하는 마족들을 늙게 만들어주던 존재였는데, 그 역시 감히 지토 님께 대항하다 이 검에 봉인되었지.”
파엘리토가 진과 눈을 맞췄다.
“너와 네 신의 힘 또한 오늘 바스칼라에 봉인될 테니, 그 노화의 감각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것이다. 검에 담긴 비사로의 원념이 너를 아주 어여삐 여길 것 같거든.”
이를테면 파엘리토는 창성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자, 그 과정에 바스칼라로 벤 수많은 신과 초월자들의 권능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진마계제일.
그 위엄에 이견이 없는 이유였다.
“카학!”
단테가 파엘리토의 일격을 막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본래라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는 속도로 들어온 공격이나, 노화된 오른다리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반응이 확연히 느려진 것이다. 론으로부터 받은 진기 덕에 단테는 강체 중의 강체가 되었으나 노화는 어쩔 수 없었다.
족쇄가 걸린 듯 움직임이 답답하고, 땅을 박찰 때마다 발목뼈가 덜컥였다.
‘보통의 저주라면 되돌릴 수 있을 테지만…….’
일반적으로 저주는 술자를 죽이거나 해제식을 사용해서 소멸시킬 수 있다. 혹은 저주를 발현한 물건에 타격을 주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물리적인 발현이 이만큼 진행됐으니, 아마도 팔은…… 포기할 수밖에 없겠군.’
팔을 잃어도, 다리를 잃어도 싸울 수만 있으면 된다. 온몸이 다 부스러져 사라질 때까지, 도중에 쓰러지지 않고 싸울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 진과 단테는 그렇게 각오를 다졌다.
파엘리토는 일부러 단테가 피할 수는 없고, 막을 수만 있는 속도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진이, 고통스럽도록.
옆에서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도록, 겨우 뻗은 검이 허공을 헛치며 자괴감에 빠지도록 말이다.
그러나 단테는 진이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오늘 전투에 임하며, 단 한 순간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진이 검황성에서 자신을 구해준 그날부터. 아니, 코스모스의 각축장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그때부터.
단테는 늘 언젠가 진과 함께 싸우다 죽을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각오를 품고 있었다. 그도, 진도 늘 위험한 싸움을 헤쳐가야 하는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치졸한 짓거리를 하는군, 파엘리토! 이러면 진이 나를 구하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았나? 내 이름을 소리치며 마구잡이로 달려들 것 같던가? 천만에!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다. 여기서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만 살아남는 일은 없단 말이다.”
츠아아아-!
단테의 용검갑이 한층 더 강한 빛을 뿜었다. 파엘리토는 일순 거리를 벌리며 검기를 쏘았다.
“함께 죽는 건 두렵지 않다. 그러니 진이 정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를, 제국의 검황을 먼저 죽여야 할 것이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계속 이따위로 우리를 농락하면 화를 면하지 못한다. 네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단테가 한 말은 단지 투지와 기백으로 뻗대는 소리가 아니다.
진은 단테가 압박당하는 와중 계속 침착하게 파엘리토의 측후방을 노리고 있었다. 파엘리토는 ‘힘 조절’을 하느라 견제를 완벽하게 받아치지 못했고, 브라다만테는 때때로 그의 몸 어딘가를 파고들었다.
물론 모두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큼 옅은 상처가 생기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수준에 다다른 이들의 싸움은 결국 상처 하나하나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치명상이 되는 법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무인도 두 사람을 상대로 적당히 즐겨가며 싸울 수는 없다.
심지어 극한에 다다른 이들의 검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으니, 그건 파엘리토 자신도 목숨을 내놓는다는 의미였다.
진과 단테가 다다른 영역 또한 창성이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격을 지닌 것이다.
“아니면 분노에 취해 그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흐려진 것인가? 세뇌 때문인지, 확실히 네놈은 그간 우리가 본 창성들과 다르군. 그분들이라면 분명 우리를 상대로 단 한 순간도 방심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츠즈즈즛-!
다시금 마기가 저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노화시킨 비사로의 조롱과 더불어 츠작이라는 또 다른 마신의 저주였다.
진과 단테는 비사로의 조롱은 완벽하게 피했으나 츠작의 저주에 이전과 똑같은 부위가 노출되었다.
츠작은 지토 이전에 가장 강대한 마신이라 알려졌던 존재로, 진마계의 마족들은 그를 역병신이라 불렀다.
부글부글……!
순식간에 츠작의 저주에 닿은 두 사람의 살이 끓어오르는 모습이 이어졌다. 말 그대로 살이 순식간에 짓무르며 용암처럼 부글거리고 있었다. 수포가 주먹만 하게 부풀며 터져댔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역병은 노화처럼 직접 닿은 부분에만 효과를 일으키지 않았다. 마치 물이 스미듯이 육신 전체를 잠식하려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강체는 역병이 차오르는 걸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몸속에서 미친 듯이 오러가 폭발하며 역병의 잠식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체력은 더 빨리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역병이 온몸을 집어삼킬 터였다.
“그런 소리는 한 번이라도 나를 위협한 다음에 지껄여라, 인세의 검황. 그래, 네놈들이 충분히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뿐이다. 내가 그 긴 세월을 살면서 너희만큼, 너희보다 강한 존재들을 몇 번이나 꺾었는지 아느냐? 그들조차 나를 두려워하여 감히 사키엘에겐 마수를 뻗치지 못하였다.”
파엘리토의 두 눈동자에 담긴 악의가 당장이라도 실체화해서 두 사람을 덮쳐버릴 것 같았다.
실제로 진과 단테는 그 환영을 보고 있었다. 거대하고 어두운 악의의 그림자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희는 내게서 너무 큰 것을 앗아갔어…….”
파엘리토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사이 진은 잠시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판단했다.
그는, 가장 먼저 업화에 소모되는 마력을 줄였다. 아예 업화를 해제한 건 아니나 최소한의 유지력만 남겼다.
그러곤 노화되고 썩어가는 단테의 오른쪽 발목에 발레리아에게 배운 빙결계 봉인을 걸어주었다.
투명한 냉기가 단테의 발목을 감싸자, 눈으로 보기에도 역병의 진행이 확연히 느려졌다. 거의 멈춘 듯 보일 정도였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전보다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운이 따라주면 저놈을 죽인 후엔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서걱-!
이내 진은, 브라다만테로 자신의 왼팔을 베었다. 툭, 목탄처럼 시커멓게 변한 왼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부스러졌다.
“진!?”
“봉인을 두 개나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든. 네가 다리를 잃는 것보다 내가 팔을 잃는 쪽이 그나마 낫기도 하지. 발이 묶이면 정말로 답이 없으니까.”
떨어진 왼팔에 들러붙었던 역병은 더 이상 진의 몸을 파고들지 못했다. 진은 환부를 얼린 후 한 손으로 검을 쥐었다.
단단한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단테는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말들을 삼키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감정에 흔들려서는 적과 싸울 수 없기에.
“전보다 보기 좋은 모습이 되었군, 진 룬칸델.”
“그러냐?”
“뭐, 나름대로 차선책이라고 할 수는 있겠어. 결국 그런 식으로 사지를 다 잃게 되겠지만.”
“팔을 잃어서 약해진다면 나는 투왕이라 불릴 수 없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룬칸델의 가주가 될 자격이 없다. 또한 싸우다 다리를 잃는 게 두렵다면, 그건 검황이라 불릴 수 없지.”
진은 파엘리토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이건 더 보기 좋은 모습이 맞다, 파엘리토 벨가시움. 네놈이 정확히 봤군.”
한층 잦아든 업화가 조용히 이글거렸다.
파엘리토는 오히려 진과 단테가 더 견고해진 느낌을 받고 있었다.
‘……위기가 놈들의 몸과 내면에 묻혀 있던 무언가를 꺼내주고 있군.’
그게 놀랍지는 않았다. 궁지에 몰린 괴물들은 또 한 번 껍질을 벗는 법이니까. 과거에도 강적들을 상대할 때 자주 겪은 일이었다.
그리고 파엘리토는 이럴 때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잡은 승기를 놓친 적도 없고, 방심해서 악수를 둔 적도 없다.
‘이번에도 나는 그리할 것이다, 사키엘.’
파엘리토가 바스칼라를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황천검이 펼쳐졌고, 두 사람은 감각이 흐려지기 전에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브라다만테와 라시드의 검기가 사선으로 펼쳐졌다. 검기는 파엘리토의 심장을 노렸고, 그는 맨손으로 검기를 움켜쥐며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 손아귀에 들어온 검기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두 사람의 궤도를 비틀었고, 이어서 단테의 목으로 검을 찔렀다.
단테는 쳐낼 것이다.
파엘리토는 그렇게 예상했다. 사각을 정확하게 찔렀으니 피할 수는 없으리라고. 과연 단테는 파엘리토의 찌르기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단테는 바스칼라를 쳐내기만 한 게 아니라, 라시드와 바스칼라가 부딪힌 순간 검을 떨구며 손뼉을 치듯 손바닥으로 바스칼라를 붙잡았다.
파엘리토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단테를 반으로 베려고 했지만, 진의 검이 너무 가까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파엘리토는 단테를 베지 못했다. 단테는 그가 자신을 포기하자마자 바스칼라를 놓으며 용검갑을 폭발시켰다.
용검갑에서 튄 예리한 오러 파편 한 조각이 파엘리토의 얼굴을 스쳤다. 파엘리토는 뒤돌아 검을 내려치며 진의 일검을 가로막았다.
거의 얼굴이 땅에 처박힐 듯이 자세가 낮아진 진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놈에게 한 가지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파엘리토. 덕분에 오랜만에, 강해진다는 기분을 느껴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