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3)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5)
이길 수 있다.
곧바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마법과 영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을 때라면 말이지.’
비록 은퇴하고 무뎌졌다지만, 얼마 전 비먼트 특임대 출신인 알리사도 꺾었다. 단테가 극히 뛰어난 건 사실이나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검술만으로 대결한다면.
‘그건 확신이 안 선다. 검기, 순간 속도, 폭발력, 정확도. 모두 놀라울 지경이었으니.’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도무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대신 단테가 멘티스의 목을 친 그 찰나의 순간만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단테 하이란은, 명백히 진보다 뛰어난 검술을 구사하는 인물이었다. 무려 3년이나 되는 시간차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진은 분석해야 했다.
경기장에서 만나 검을 맞대기 전까지, 승리 수단을 모색해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처럼, 속임수나 함정을 이용하고 싶진 않아. 순수하게 정면으로 붙어서 꺾어야만 의미가 있다.’
진이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
건너편, 특급 관객석에 있는 베라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오길 잘했어, 설마 진도 참가했을 줄이야! 게다가 진과 단테가 검을 맞대는 장면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을 줄은…… 이런 횡재가.’
진과 단테.
베라딘은 세상에 둘뿐인 자신의 라이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두 사람을, 이런 공간에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애석하게도 진은 베라딘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 * *
진은 이후 1, 2조의 경기를 모두 지켜봤으나.
단테 이후 주목할 만한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각축장은 무투 대회라기보다는 잔혹극에 더 가까우니 예상한 바였다.
3성 이하 참가자들은 죄다 술수를 부리기 바쁘고, 어리숙한 참가자들은 그것에 당해 귀족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베테랑들은 상대를 서서히 고문하며 환호를 받아 내고.
그게 코스모스의 각축장이었다.
‘내일부터는 하루에 서너 조씩 경기를 하는군. 내가 경기에 나서는 건 사흘이 지난 다음. 그렇다면 그때까지…….’
각축장의 밤을 견뎌야 했다.
어떤 면에선 본 경기보다도 훨씬 위험한.
현재 각축장 숙소에 남아 있는 참가자는 147명. 총 182명의 참가자 중 벌써 35명이 사망한 상황.
그중 경기 도중 사망한 건 10명 남짓이었다. 나머지 25명은 숙소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사망한 것이다.
독살, 암살, 습격은 물론이고 패싸움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방에 앉아 쉴 생각으로 벽에 기댄 채 멍하게 앉아 있기라도 하다간 골로 가기 십상이라는 뜻.
따라서 진은 앞으로 사흘간 잠을 잘 수 없었다. 관객석에서 선잠을 자는 정도는 몰라도, 숙면을 취하는 건 불가능했다.
‘생도 시절에 무수면 훈련을 받긴 했는데…… 사흘이나 버텨야 하는 건 처음이로군.’
참가자 몇을 부하로 만들어 패거리를 형성한 다음,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미친 대회에 참가한 이들 중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서로 등을 맡긴 채 잠을 청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경기 순서가 올 때까지 서로를 보호해 줄 만큼.
없었다. 참가자의 7할은 바깥에서 노략질과 강도를 일삼던 해적에, 2할은 간사한 용병이나 잡배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나마 그들보다는 조금 나은, 나머지 1할. 말하자면 세상 물정 모르고 경험이나 쌓을 겸 이 각축장을 찾은 평범한 무인들. 말하자면 교활하지 못한 보편적인 사람들.
그들은 이미 대부분 사망했다. 이 마굴에서 살아남기엔 너무 어수룩한 이들이니까. 설령 살아 있었다 할지라도 진이 그들과 패거리를 만들 일은 없었겠지만.
‘까짓것, 한번 버텨 보지 뭐. 나만 피곤해? 날 죽이려는 놈들도 피곤에 절어서 덤벼들겠지.’
스릉.
정좌한 진이 브라다만테를 뽑아 바닥에 내려 두었다. 누군가 덤비면 언제든 휘두를 수 있도록.
시간이 무척 더디게 흘렀다.
쇠창살 너머 어둠 속에, 147명의 적이 있다는 생각에 바짝 신경이 곤두서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딘 시간이 흘러, 서서히 동이 트고 주위가 환해질 때까지.
진은 단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다.
‘어제 멋모르고 덤빈 놈들의 손가락이나 팔 같은 곳을 잘라 돌려보낸 게 먹혔나. 내 방으로 찾아오는 놈이 하나도 없을 줄은 몰랐는데.’
물론 그게 ‘오늘 밤은 잘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순 없다. 진을 죽이려는 참가자들은 그가 지치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밤새 바깥에선 꽤 여러 번 싸움이 난 모양이었다. 참가자는 147명에서 140명으로 줄어들었고, 죽지는 않았으나 꽤 큰 부상을 입은 이들도 많았다.
미리 챙겨 온 건조 식량과 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자, 안내역이 경기가 시작되는 걸 알렸다. 이틀째부터는 아침부터 밤까지 쭈욱 경기가 잡혀 있었다.
우르르…….
퀭한 얼굴로 복도를 걷는 참가자들. 진은 이번에도 행렬이 끝날 무렵에 관객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이어졌다. 수준 이하의 잔혹극을 구경하고, 경기가 끝날 때쯤 방으로 돌아오는.
객석에선 ‘살인’이 금지인 만큼, 몇 번 선잠에 빠질 수 있었고 말이다. 참가자들은 다들 그렇게 잠을 잤는데, 피로감을 해소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또다시 밤.
각축장에 참가하고 이틀간 진은 딱히 한 일이 없었다. 처음에 방을 접수하고 어리석은 참가자 몇을 혼내 준 걸 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피로도에 온몸이 다 바스라질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수면 부족 때문이었다.
단순히 잠만 못 잤다면 이만큼 힘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온 신경을 다 열어 둔 채, 이틀 내내 임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오늘, 내일만 버티면…… 된다. 승자전이 시작되면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이 악물고 버티면 돼.’
이대로라면 13조 경기가 있을 때쯤엔 평소 전력의 2할이나 겨우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상관없었다. 첫 상대가 단테가 아닌 이상, 누굴 만나든 2할이면 충분히 족칠 수 있으니까. 이 각축장에서만큼은 ‘꽤 하는’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어제와 똑같이 브라다만테를 뽑아 둔 진.
피로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시간은 미친 듯이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 때문에 한 번씩 졸음이 밀려오기도 했다.
게다가 야속하게도, 오늘 각축장의 밤은 고요하기까지 했다. 종종 누군가 죽어 나가는 먼 비명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오늘도 진을 습격하는 참가자는 없었고.
그게 오히려 진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이 지치길 기다리고 있는 놈들이 있을 거라는 의심은 확신이 되었으며, 그놈들이 대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점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그렇게 새벽 네 시가 가까워 오던 찰나.
문득 진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그냥 내가 먼저 나서서 싹 죽여?’
일순 소름이 돋았다.
물론 참가자 대부분은 악인이라 불러도 좋을 인물들이지만, 100명 이상의 인간을 큰 원한도 없이 죽일까 고민했다는 사실이.
‘하, 미쳐 가는 기분이로군. 카시미르 경 말대로, 확실히 위험한 대회야.’
후우!
크게 한 번 호흡을 고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무인으로서 평생 동안 꽤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미친 살인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난 찰나.
저벅, 저벅…….
바깥 복도에서 발소리 하나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냥 복도를 지나가는 참가자일 리는 없고, 다른 누군가를 치려고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물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노리는 걸 수도 있지만, 진은 우선 소리 나지 않게 브라다만테를 쥐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
발걸음이 멈춘 것은 진의 방 바로 옆,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진의 방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날 노린 게 맞는 것 같군. 대담한 놈인지, 멍청한 놈인지. 아주 대놓고 오네? 아니면 이틀 동안 못 자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인가.’
일어서서 자세를 낮추고, 손아귀에 꽉 힘을 줬다. 놈이 쇠창살 앞에 다가온 순간, 일격에 베어 버릴 요량으로.
쇠창살 바깥에 선 상대에게선 진한 피 냄새가 진동을 했고.
다음 순간, 진은 예상치 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소?”
걸걸한 목소리.
단테였다.
‘뭐야, 단테가 날 왜 찾아와?’
순간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내 정체를 알고 있나? 알고 있다면, 베라딘이 알려 준 건가? 그래서 기다릴 것 없이 지금 당장 승부를 가리자고 온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우연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만약 단테가 자신과 달리 충분히 수면을 취한 상태라면,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여긴 지금은 피곤하니 다음에 싸우자고 말할 수도 없는 동네고.
“이야기?”
진이 당황스러운 속내를 감추며 태연히 물었다.
“그렇소.”
잠시 고민하던 진이 쇠창살을 열었다.
“들어와라.”
“고맙군…….”
휘청!
‘엥?’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몸을 가누기 어려운 듯, 한쪽 무릎을 꿇는 단테. 진이 놀란 눈을 치켜뜬 사이, 단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초면에 굉장한 실례이오만… 나 좀…… 재워 주시오. 대신 내일은 그대가 잘 수 있도록, 내가 보초를 서겠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요. 난 더 이상 못 버티겠소. 한 시간이라도 자야…… 미치지 않을 것 같소.”
이를테면 단테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진처럼 이틀째 밤새 눈을 부릅뜨고 암살자들을 기다리다가.
“그런데 왜 나한테? 뭘 믿고?”
“어제부터 그대를 지켜보았소.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그대는 진짜배기 무인인 것 같더군. 이 각축장에서, 오직 그대만이. 그래서 믿을 만하…… 드르렁.”
드르렁, 드르렁…….
뒷말을 잇지도 못한 채, 그대로 드러누워 잠든 단테를 보며.
진은 참 황당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어떤 면에선 베라딘보다 충격적이네.’
막말로 지금 당장 진이 슬쩍 단테의 목을 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건만. 단테는 코까지 골며 완전히 곯아떨어진 모습이었다.
‘하이란은 무수면 훈련 같은 거 안 시키나? 아니면 이놈한텐 특히 더 많은 참가자가 덤볐다던가.’
그러나 그런 황당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슥, 스스슥.
이번엔 감추려고 애를 쓴 티가 역력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껏 단테가 ‘지치기를’ 기다려 온 다른 참가자 패거리의 발소리였고, 그 순간 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테가 풍기는 진한 피 냄새. 이놈, 지금껏 다른 참가자들에게 시달리다 여기로 온 거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나와는 다르게. 어쨌거나.’
하이란의 차기 가주가 한 번쯤 빚을 지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진이 브라다만테에 오러를 둘러 단테 대신 암살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