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32)
제 999화
232화. 각성(1)
크아아아아-!
파엘리토가 괴성을 내지르며 진을 밀쳐냈다. 진은 팔이 거의 꺾일 듯 돌아간 채 뒷걸음질을 쳤다.
그 반동에 튄 한 덩이의 화염이 일순 파엘리토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화염을 치우고 돌진하려는 찰나, 화염을 반으로 가르며 브라다만테가 떨어졌다.
브라다만테는 정확히 파엘리토의 정수리로 내리꽂혔다. 다만 마기의 보호막을 뚫기엔 힘이 부족해서 파엘리토를 베지 못하고 튕겨졌다. 그저 마기 보호막에 흠집이 생긴 정도였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다고?’
다만 파엘리토로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긴 하나 그리 빠르지도, 예리하지도 않은 검이었다. 한 팔을 잃고 만신창이가 된 진의 검은 그렇게 무뎌져 있었다. 이제 겨우 검이라는 사물을 이해하기 시작한 무인의 평범한 일격과 비교해도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검이 들어오는 순간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보호막이 없었다면, 진에게 평소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그대로 온몸이 반으로 베였을 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심마 때문인가, 그렇다 할지라도 이따위 평범한 검을……!’
이해할 수 없는 일.
그에 대한 분노. 그런 것들이 계속 파엘리토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사키엘의 죽음도, 지금 진이 보여준 어이없는 반격도, 사실 진이 회귀자였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 룬칸델을, 활활 타오르는 저 괴물을 베어야만 이 악몽이 끝날 것이다.
황천검, 바스칼라가 흐릿해졌다.
그러나 진에게 이제, 강제적인 감각 교란은 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이미 시야는 아까부터 반쯤 어두워진 상태고, 부서진 몸은 정교하게 제어되지 않았다.
거기에 황천검의 특성이 더해진다 한들 그저 몽롱한 느낌만 커질 뿐이었다. 어차피 눈을 뜨나 감으나 앞은 어둡고, 어디로 보법을 밟아도 파엘리토가 있었다.
분노와 증오와 광기에 취한 검마가 있었다.
“죽어라, 죽으란 말이다!”
키기기기깃! 두 검이 얽히며 고막을 찌르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퍼졌다. 두 사람은 검의 고동이 맞닿을 정도로 한껏 서로를 향해 몸을 숙였다.
그런 힘 싸움에서 진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파엘리토는 내던지듯 검을 옆으로 밀어내며 무방비로 드러난 진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바위가 속에서부터 터진 듯 둔탁하고 묵직한 타격음이 일었다. 이마뼈가 부서지는 감각이 선명하게 파엘리토의 주먹을 울렸고, 진은 저 멀리까지 튕겨져 땅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머릿속에서 피가 가득 담긴 무언가가 폭발한 것 같았다. 눈과 귀, 입 밖으로 핏물이 터지며 잠시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다.
파엘리토는 급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으며 짐승처럼 진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잠시 정신을 잃은 지금이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죽어, 진 룬칸델, 죽어!”
그러나 파엘리토는 진과 거리를 좁히자마자 질끈 눈을 감아야만 했다.
또, 어느새 진이 손바닥에 맺어둔 섬광포가 작열하고 있었다. 파엘리토의 주먹에 맞아 땅에 처박힌 순간, 진은 잠시 검을 놓으며 빈 손에 섬광포를 맺었다.
그저 본능에 불과한 행동이었다.
창성에겐 우연으로도 결코 통할 수 없는 얕은 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엘리토는 섬광포에 정면으로 노출된 두 눈에 작열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 상황을 어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있어선 안 될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진은 파엘리토가 주춤한 사이 의식을 겨우 되찾았다. 어둡던 시야는 이제 피에 젖어 온통 시뻘건 풍경이었다.
코와 목에 들어찬 핏덩이들 때문에 호흡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검을 쥐고, 불꽃을 일으키며 자세를 잡았다.
운명을 초월하기로 각오했다.
회귀로 인해 벌어진 수많은 역사 변경과 죽음들을 모두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싸움에 스러진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질 자들의 슬픔을 전부 짊어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몸이 부서져도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찾아와도 싸울 수밖에 없다. 과거 그가 존경한 론 하이란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진은 죽음을 넘어서고 있었다.
‘놈의 심장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
눈을 뜬 파엘리토가 성큼성큼 진에게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있는 듯 심박이 들렸다. 맥없이 겨우 헐떡이는 심장을 꺼내 두 손으로 움켜쥐고 싶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마치 태양신의 가호라도 품은 것 같은 기현상이 멈추기만 한다면.
‘가만, 태양신의 가호…… 설마 방금 놈이 회귀자임을 밝힐 때 드러났던 그 빛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태양신은 이미 죽고 지토가 그 뒤를 이어 곧 세상의 새로운 질서가 될 예정인데.
마족을 지하로 내몬 비정한 창조자의 그림자가 진을 감싸고 있는 듯 보였다. 그 환상은 소름이 끼칠 만큼 생생해서, 파엘리토는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검마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 아니.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공포가 그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바스칼라를 쥔 손아귀가 덜덜 떨리고, 땅을 밟는 두 다리는 휘청거렸다.
“태양신이라고……! 태양신이라고!? 개소리 집어치워, 나는 검마다. 고통의 은총을 받은 유일한 검이다!”
마치 치기 어린 소년들이 공포를 외면하듯, 파엘리토는 억지로 자신을 다독이며 빛을 헤쳤다.
무서운 환상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환상 뒤에 서 있는 건, 이제 곧 먼지가 되어 사라질 한 인간일 것이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파엘리토는 잠시 후 검을 끌어안듯이 짧게 쥔 채 겨우 서 있는 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업화도 병 걸린 짐승의 털처럼 듬성듬성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 하하. 진 룬칸델, 지금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느냐? 운명을 초월하겠다고, 다시 지껄여봐라!”
마성에 침식된 소리와 본래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있었다. 표정 또한 일그러졌다 평온해지기를 반복했는데, 진이 죽음을 극복하고 있듯 파엘리토도 마성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진에게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성대도, 폐도 모두 기능을 거의 잃은 까닭이다. 진은 파엘리토가 가까이 오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해 허공에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파엘리토는 한동안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마를 짚고 허리를 꺾으며 헛바람 섞인 웃음을 토했다.
“그래, 그게 네게, 인간에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죽었다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고? 그 회귀는 모든 운명보다 우위에 있다고? 천만에, 너는 그저 얻어선 안 될 행운에 취해 있던 것이다.”
파엘리토가 검기를 쏘았다. 천멸참이 아니라 전투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뿌려댄 검마류 평식 검기였다.
그조차 지금의 진은 감당할 수가 없다. 프서서석……! 마치 삭은 흙더미가 부서지듯이 검기에 닿은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으로 떨어진 건 검을 쥔 손가락 두 개였다. 살점이나 피, 뼈도 보이지 않았다. 환부의 단면에 드러난 속은 그저 텅 빈 어둠이었다.
남은 세 손가락도 힘을 잃은 듯 쥐어진 브라다만테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가서 툭, 살짝 밀기만 해도 손가락이 모두 분해되며 검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파엘리토는 그때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를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송장이나 다름없는 한 오만한 인간의 말로였다.
진을 마주하자 파엘리토는 섬에 혼자 버려진 듯한, 홀로 살아남아 멸종이 임박한 사실을 마주한 듯한.
그런 고독에 휩싸였다. 그 감정 어디에도 마침내 승리했다는 기쁨 따윈 없었다. 진의 말대로, 승자를 기다리는 건 오로지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상처뿐이라는 사실만이 섬뜩했다.
“……너는 아무것도 초월할 수 없다. 이 세상엔 이제 너 같은 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너의 뜻을 이어갈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정해진 삶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바스칼라가 검게 물들었다.
그런데 진을 찌르는 게 쉽지 않았다. 파엘리토는 머뭇거리며 한동안 진을 노려보기만 했다.
태양신의 환상이 빚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지쳐서 검을 휘두를 힘조차 남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파엘리토는 혼자서도 성국에 남은 모든 벌레들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파엘리토를 멈추게 만드는 건, 죽음이 오히려 그를 편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진의 영혼이 지옥으로 올 것 같지 않았다. 바스칼라로 삼킨다 할지라도 그 안에 봉인된 비사로 같은 존재들이 진을 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진은 그 안에서 부활해 바스칼라를 뚫고 나올지도 몰랐다.
아직은 세상에 고통의 질서가 정립되지 않았으니까. 질서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기 전까지, 진은 어떤 식으로도 봉인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건 느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러나 파엘리토는 진을 소멸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설령 먼 훗날 진이 바스칼라의 봉인을 뚫고 나오는 불상사가 생긴다 할지라도, 일단은 그의 영혼을 붙잡아둬야만 했다.
그래서 그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질서가 세워진 세상을, 운명의 천장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벌레들을, 그가 사랑한 세계가, 그가 책임지려 한 모든 것이 결국 종말을 맞이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언젠가 다시 깨어나는 날, 울부짖어라.”
푹……!
바스칼라가 진의 가슴을 관통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채 멈춰 있던 심장에서 끈적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바스칼라가 개방되며 진을 집어삼킬 일만 남았다. 바스칼라는 죽음을 극복하고 있던 진의 의지를, 그 영혼을 봉인해 소멸을 유예할 것이다.
봉인은 몇 초면 끝이 난다.
그러나 바스칼라의 칼날에서 뿌리처럼 뻗어진 마기들은, 진을 묶지 못한 채 무언가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파엘리토는 잠시 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진의 등에 이마를 맞댄 채 몸을 숙이고 있는, 한 인간을 확인한 것이다.
“진, 제가 여기에 있어요. 제가, 성국이,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왕 라니.
그녀가 진의 뒤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