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4)
제 99화
32화. 코스모스의 각축장(6)
‘넷, 아니. 다섯.’
기척을 어설프게 숨긴 걸 보니 암살 훈련을 받은 이들은 아니었다. 또한 희미하게 전해지는 호흡 소리 또한 거칠었고, 그건 곧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
쓰러질 정도로 지친 단테라면 모를까.
진을 감당하기엔 한참 부족한 이들이었다.
‘굳이 좁은 곳으로 끌어들여 싸울 필요도 없겠어. 앞으로 며칠 더 지내야 할 방을 피범벅으로 만드는 것도 께름칙하고.’
성큼!
진이 대놓고 쇠창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암살자들이 일순 제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진은, 그들이 채 눈짓을 나누기도 전에.
“여긴 폴 믹의 방이 아니야.”
스걱!
쏜살같이 튀어 나가 복도 벽에 바짝 붙어 있던 암살자 하나를 베었다. 이번엔 손가락이나 팔만 베어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진은 이미 첫날 충분히 경고를 했던 것이다.
누구든 내 방에 찾아오면, 다음엔 신체가 아니라 목숨을 잃게 될 거라고.
“으악!”
단칼에 목이 떨어진 암살자 대신, 그 뒤에 있던 남자 하나가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진의 짐작대로 암살자는 총 다섯. 방금 하나가 죽어서 넷이 됐으나, 넷 중 첫 번째 암살자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정확히 본 자는 아무도 없다.
알리사와의 대련에서 성취를 얻은 후. 진의 검은 한층 더 날이 선 것이다.
“쳐, 쳐라악!”
푹!
심장을 정확히 관통한 두 번째 일격, 찌르기. 동시에 남은 셋이 달려들었으나, 이미 공포에 질린 그들의 검은 뻣뻣하기만 할 뿐.
칼날에 맹독이 발려 있어 봐야 닿질 못하면 의미가 없다. 진은 독이 발려 번들거리는 칼날들을 여유롭게 피하며 공격을 이어 갔다.
“우, 우린 널 치러 온 게 아니다!”
“그래, 폴 믹을 죽이려고 왔겠지. 하지만 내 방을 찾아왔으니 그걸로 끝이야.”
브라다만테의 칼날이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선혈이 튀었다. 난데없는 학살극에 다른 방에 있는 참가자 몇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으나, 이내 행여 불똥이 튈까 봐 다시 숨었다.
그렇게 남은 암살자들을 다 정리하려는 순간. 복도 저쪽에서, 무언가 잠시 빛나는 것이 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활시위가 당겨지며 잠시 반짝인 화살촉이었다.
‘저격수까지 준비했었나? 아니면…… 애초에 이들은 미끼였고, 단테가 바깥으로 나오면 쏘려고 했던 건가?’
챙!
아슬아슬하게 화살 하나를 쳐 냈다. 만약 화살촉이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부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시시시식!
이어서 다발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최소 10명 이상이 동시에 시위를 놓은 모양새.
그러나 진 또한 그 정도는 예상했기에, 이미 시체 하나를 방패 대신 들어 올리고 있었다. 툭, 투툭툭! 시체의 등을 뚫고 도드라진 화살촉엔 역시나 싯누런 맹독이 발린 모습.
‘이 새끼들이…….’
이쯤 되니 분노가 치밀었다.
철천지원수도 아니건만, 애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하는 놈들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회 성향이 원래 그렇다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그리고 이것들. 평범한 참가자라기엔 너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그래서 시체를 버리고, 벽과 벽 사이를 뛰어넘으며 저격수들에게 달렸다.
한 놈만 남기고 다 죽인 다음 물어보려는 요량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피곤하게 덤비느냐고. 그리고 네놈들 뒤엔 누가 있느냐고.
앞서 죽은 다섯 암살자의 검술이 시원찮았듯.
활을 쏘고 있는 놈들도 사격 실력이 아주 뛰어나진 않았다. 진이 직선으로 달렸다면 모를까, 곡예에 가까운 이동 궤적을 보여 주고 있으니 화살촉이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 혹시 내가 방 앞을 떠난 사이 단테를 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때문에 거리가 좁혀지고, 검광이 번지기 시작하자마자.
도망치는 놈들은 그냥 내버려 뒀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쫓아가 처리하고 싶으나 단테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저깟 놈들은 언제든 죽일 수 있지만, 하이란의 차기 가주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건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스걱! 서걱!
무심히 떨어지는 목들. 도망치지 못한 넷 중 셋을 죽이는 건 몇 초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 살려.”
“닥쳐.”
빡!
하나 남은 암살자에겐 칼 대신 주먹을 날렸다. 턱을 돌려 기절시킨 후, 놈을 질질 방으로 끌고 가는 진.
각자 방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다른 참가자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했다.
“후. 야, 일어나라.”
철썩! 철썩! 철썩!
방으로 돌아온 진이 암살자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때까지도 단테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진 모습.
“어윽! 어억!”
“자, 지금부터 내가 너한테 세 가지를 물어볼 거야. 대답이 만족스러우면 보내 줄 거고, 시원찮으면 저 위로 가는 거고. 질문을 했을 때 3초 내로 대답이 나오지 않아도 가는 거고. 이해했어?”
끄덕끄덕.
“첫째. 너흰 뭐냐?”
“해… 적입니다. 마, 마저 설명할게요! 카, 칼 내려 주십시오. 각축장의 전년도 우승자, 애꾸눈 죠 형님의 부하입니다…….”
“둘째. 왜 폴 믹을 노렸지? 이렇게까지 조직적으로.”
“죠 형님이…… 폴 믹이 대단한 가문의 자제라며 사로잡아 몸값을 받아 내자고 하셨습니다.”
“어느 가문이라는데?”
“죠 형님은 루, 룬칸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
피식.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룬칸델이라 짐작하고도 이런 짓을 벌여? 무식하면 무서운 게 없다더니.’
“근데 화살에 독은 왜 발랐어? 포로가 필요한 거지, 시체가 필요한 게 아닐 텐데.”
“해독제가 있습죠.”
“그럼 세 번째. 죠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놈도 각축장 참가자냐?”
“아닙니다, 올해는 관객 신분으로 오셔서, 그냥 폴 믹을 잡아 오라고 저희에게 명령만 내렸습니다요.”
단테는 진의 전생에서도 이 대회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놈들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는데, 하이란은 잡스러운 해적단에게 어마어마한 거액을 쥐여 주고 보복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다음 겨우 단테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로 인한 나비 효과로 하이란은 내부 분열을 겪어 막대한 손해를 봤고 말이다.
진은 모르는 하이란의 특급 비사지만, 방금 그가 단테를 구한 덕에 하이란의 역사가 바뀐 셈이었다.
‘흠… 이놈 말대로라면 단테는 전생에 무난히 납치당했었겠군. 그리고 이 해적 새끼들은 인질극을 벌여 하이란을 상대로 꽤나 크게 뜯어먹었을 거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거대 가문이라 할지라도.
중요 인물이 인질로 잡힌 상태에선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인질이 차기 가주라면 더더욱.
‘물론 룬칸델이라면 누가 인질로 잡히든 그냥 죽이라고 한 다음, 해적 전원과 그들의 가족, 친인, 하다못해 그냥 한동네에 살기만 했던 관계없는 이들까지 모두 몰살하겠지만…….’
그게 룬칸델의 방식이었다. 다른 거대 가문과는 다른.
“좋아, 훌륭해. 마음에 들어. 넌 살려 주마.”
“가, 감사합니다!”
“대신 손가락 두 개만 놓고 가.”
“예?”
“말 그대로. 싫으면 목을 놓고 가던지.”
목숨보다야 손가락이 낫다.
“끄아아읍!”
결국 정보를 분 해적은 스스로 손가락 두 개를 자른 채 제 방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고.
진은 다시 정좌한 채 단테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 *
단테가 일어난 건 그로부터 열일곱 시간이 지나, 다시 저녁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리고 진은 그가 일어나자마자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너를 지키려고 얼마나 갖은 고생을 했으며, 그 와중 한 놈을 붙잡아 애꾸눈 죠인지 뭔지 하는 해적이 뒷배로 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고 유세를 부린 것이다.
“날 룬칸델인 줄 착각하고 포로로 잡으려 했단 말인가… 그 애꾸눈 죠라는 해적,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야. 룬칸델? 기가 막히는군!”
헛헛, 걸걸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젓는 단테. 빤히 쳐다보는 진의 시선이 느껴지자, 단테가 뒷말을 이었다.
“아아, 그대는 내 은인이니 설명을 해 줘야겠지. 나는 그놈들 말대로 귀족이 맞소. 룬칸델은 아니지만…… 가문명을 정확히 알려 주기는 부담스럽군. 그냥 비먼트 귀족이라는 것만 밝혀도 이해해 주겠소?”
단테는 행여 자신이 ‘하이란’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가 진의 태도가 변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가명으로 여행을 하다 신분이 밝혀질 때면, 방금까지 친구였던 상대가 급격히 굽신거리는 걸 자주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 태도를 지켜보는 진은 헛기침까지 하며 웃음을 참아야 했지만.
‘뭐, 내가 진 룬칸델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곧 알게 될 테니. 베라딘이 입이 무거울 것 같지도 않고.’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이해하지. 자신을 숨기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
“고맙군. 어쨌든 그대를 찾아오길 정말 잘했어. 혼자 놈들을 계속 상대했다면 나는 큰 화를 면치 못했을 터…… 이 은덕을 앞으로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그렇게 말하는 단테의 두 눈망울엔 진한 감사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대는 그대가 얼마나 큰일을 한 건지 모를 거요… 그대 같은 진정한 무인이 돈을 원할 것 같진 않고. 명검을 한 자루, 아니야. 물질로는 이 고마운 마음을 결코 다 표현할 수 없소!”
“뭘 그렇게까지.”
속으론 진도 좋았다. 단테에게 제대로 부채감을 심어 줬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그래, 그래. 검이나 돈은 필요 없어. 마음이 중요해, 나한테 빚을 졌다는 그 마음이.’
이내 단테가 결심한 듯 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렇게 하는 게 좋겠소. 목숨은 목숨으로. 앞으로 내 언제든, 그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대가 원한다면. 나 또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워 그대를 지켜 주겠소. 내 모든 명예를 걸고.”
“음, 그건 알아서 하고. 아무튼 약속대로 난 이제 잘 거니까, 잘 지켜 주기나 해. 13조 경기 시작할 때 깨워.”
“알겠소! 아, 그리고 내가 지금 그대를 지켜 주는 건 방금 한 맹세와 무관한 것이오.”
“그래, 그래.”
드르렁.
진도 새벽의 단테처럼 드러눕자마자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단테는 가만히 진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친구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아마 이번 대회의 결승은 그대와 나의 몫이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돌아가서 조부께 이야기해 드릴 것이 참 많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