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4)
제 999화
238화. 속죄와 편지(2)
설마 시론으로부터 편지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시론 경께서 마성을 극복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설마 그대가 창성에 오른 일을 축하해주시려는 것인가!?”
“와, 시론 경이 축하를? 상상이 잘 안 가는데?”
단테와 베라딘이 말했다.
“아마 그런 건 아닐 거야. 뭔가 내게 전하실 말씀이 있겠지. 제트, 붉은부엉이를 준비시켜.”
“그건 방금 발레리아 양과 산드라 양이 타고 갔습니다요. 대신 시리스 님이 조금 전에 서류를 확인하러 오셨으니 모트를 타고 가시면 되겠습니다, 나리.”
진은 베라딘이 준 노트를 챙겼다.
“이건 서신부터 확인하고 살펴볼게, 베라딘. 몸조리 잘 하고 있어라.”
“알았다. 오랜만에 단테랑 놀고 있을 테니 저녁에 술이나 마시러 다시 오든지.”
“아직 내상도 다 회복되지 않은 놈이 술은 무슨 술?”
“속은 따끈해야 잘 낫는 법이거든.”
진은 피식 웃고는 시리스를 찾아갔다. 그녀는 막 카시미르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참이었다.
“진? 안 그래도 얼굴이나 보고 갈까 했는데.”
“저도 오신 줄도 몰랐는데 그냥 가셨으면 섭섭할 뻔했군요.”
“그러시겠지. 표정을 보아하니 어디 가야 하는 모양인데?”
“예, 사실 아버지의 서신을 받으러 급히 검의 정원으로 가야 합니다.”
“아, 안 그래도 1기수 뵈러 검의 정원에 들르려고 했었어. 마족 침공 때 시작한 수련은 아직 진행 중이거든. 타, 가자.”
[보오옹.]진이 등으로 오르자 모트가 백색 차원문을 열었다. 시리스의 뒤에 앉아 이계설원을 달리는 건 이제 산책만큼이나 편안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편지라…… 시론 경이 정말 변하긴 변하신 모양이군. 설마 네 창성을 축하하시려는 걸까?”
“설마요.”
“흠, 그 편지에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한 줄이라도 있길 바라야겠군. 알지? 어머니는 시론 경께 가끔 섭섭하신 모양이야. 어머니께 그나마 벗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시론 경과 론 경 두 분이었으니.”
“잘 압니다. 저는 들은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루나 누님께는 아버지께서 탈라리스 경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더군요.”
“나도 1기수께 그런 얘길 듣기는 했어. 시론 경이 어머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면 꼭 알려줘.”
“예. 그나저나 탈라리스 님도 이제 회복이 거의 끝나셨다 들었습니다.”
“응, 많이 회복하셨지. 비델루체인가 뭔가 하는 놈이 남긴 내상이 아주 치명적이진 않았으니까. 벌써 새 애인들을 사귀고 있다고.”
“지난번에 탈라리스 님과 통신할 때 듣기는 했습니다. 요즘 재미있는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고.”
“그 재미있는 친구들의 정체는 용이야. 천 살쯤 먹은 젊은 용들.”
“젊은 용……?”
“묘한 일이지. 소속이 없는 용은 드무니까.”
시리스의 말대로 용들이 갑자기 비궁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현재 활동 중인 대부분의 용은 지플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탈라리스가 적당히 어울린다는 건 그들이 지플 소속도 아니고, 비궁에 적대적인 성향을 보이지도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와 관련해 어머니께서도 조만간 너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고 하시더군.”
“알겠습니다. 용들과의 만남이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라야겠군요.”
모트가 검의 정원에 도착했다.
“1기수도 시론 경의 편지를 봐야 할 테니 난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 나중에 보자, 진.”
“예, 시리스 님.”
그리고 그 시각, 진을 만나기 위해 굳이 발레리아를 들볶아 검의 정원을 찾은 산드라는 다시 티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검의 정원에서도 진을 만날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소가주.]르엣의 집무실엔 기수들과 원로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진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증손 왔느냐! 애가 타서 죽는 줄 알았느니라. 여기 이 친구가 이거 들고 오느라고 아주 고생을 한 모양이다.]발라스가 한 기사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칸 경……!?”
폭풍성부터 진을 봐왔고 그때부터 예비 기수 시절 내내 카시미르의 서신을 흑해로 배달한 이 시대 최강의 우편배달부, 수호기사 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룬칸델 수호기사 칸, 소가주를 뵙습니다. 낮춰 불러주십시오.”
오랜만에 본 칸에게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인한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흑해 원정을 하는 동안 수많은 시련이 그를 단련시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칸은 늘 편지를 배달할 때마다 흑해 마물들의 피와 내장을 뒤집어썼으나 이번엔 옷차림이 깨끗했다.
흑해 초중반부의 마물은 이제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데다, 시론이 그를 위해 길을 열며 내린 가호 덕분이었다.
“장성하신 모습을 직접 보니 저도 왠지 울컥한 마음이 드는군요.”
“고생 많았소, 칸 경. 강해졌군…… 검은 투구가 어울릴 정도로.”
진이 칸이 들고 있는 검은 투구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루나와 흑기사들이 검의 정원으로 복귀한 후, 시론은 바로 그를 흑기사로 임명했다.
“감사합니다. 소가주 곁에 남아 힘이 되어드리고 싶긴 하나, 저는 소가주께서 편지를 확인하면 즉시 다시 가주께 돌아가야 합니다.”
칸이 진에게 목갑을 내밀었다. 그 속에 봉인된 편지가 꽤 두꺼웠다.
진은 한동안 말없이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황폐한 땅 위에서 편지를 썼을 시론의 모습이 그려졌다.
“알겠소.”
[가주께서 원하시면 저희 모두 자리를 비키도록 하겠습니다.]“아닙니다, 집사장. 다 같이 보도록 하죠.”
진은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봉인을 풀었다.
놀랍게도 첫 문장은, 진 본인만 상상하지 못한 축사로 시작되고 있었다.
(막내아들에게.
편지를 쓰려는 지금 막, 네 기운이 마침내 하늘에 도달하였음을 느꼈다. 내가 가문에 있었다면 너를 위한 두 번째 연회를 열었을 것 같구나.
축하한다.)
그 대목에서 진은 한순간 사람들을 물리지 않은 걸 후회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다만 눈이 촉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살다 보니 아버지께 이런 칭찬을 듣는 날이 다 오는군.”
토나 형제들은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 진의 양쪽에 붙어 그의 눈을 닦아주었다.
“좀 짜신 감은 있네. 창성에 올랐는데 이 몇 줄이 전부라니.”
[그러게 말이다, 루나야. 허허, 내 손자지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이야.](우선 아버지이기 이전에 먼저 창성에 다다른 선배로서, 너를 위한 요령들을 알려주겠다.
너도 알다시피 창성은 언제든 마성에 잠식될 수 있는 영역이다. 나 또한 오랜 시간 마성에 빠져 인간성을 잃어갔지…… 그걸 최대한 방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마.
첫째, 짐승처럼 살지 마라.
풀어서 설명해주자면 식사를 할 때는 되도록 알맞은 식기를 사용하고, 책을 읽을 때는 눈이 밝아도 굳이 안경을 쓰는 게 좋으며, 옷은 항상 자리와 격식에 맞춰 입으라는 뜻이다.)
그 대목에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식기? 안경? 옷? 칸, 이거 정말 아버지가 쓴 것 맞아?”
“맞습니다, 1기수.”
“으음,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서재에 계실 땐 주로 안경을 쓰시긴 했어. 의식해본 적 없는데, 돌아보면 이상하긴 하지? 수천 걸음 바깥도 바로 앞처럼 보실 수 있을 텐데 안경이라니.”
(……이상한 내용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저 일상적인 일들은, 인간성을 지켜주는 행위가 된다.
창성이 되고 반신의 영역에 오른다는 건, 사실 인간에게 필요한 수많은 요소들이 불필요한 것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하지.
포크와 나이프가 없어도, 손을 쓰지 않고 살기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음식을 먹기 좋게 조각낼 수 있고(심지어 이쪽이 더 편하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메말라가는 내면은 쉽사리 반응하지 않는다.
격을 차리는 모임에 걸인처럼 입고 가도 모두가 너를 경외하겠지. 너는 그렇게 점점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들을 잊게 된다.
그것이 내가 겪은 창성이라는 경지다. 창성에 도달한 인간은, 상기한 사소한 행위들에 매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음식을 섭취할 땐 늘 되도록 어렵게 음미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독서를 할 땐 독서를 한다는 기분에 심취해야 하는 것이다…….)
“아…… 그래서 그러셨군.”
[이건 마성을 겪어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조언이로구나, 증손아.]진과 형제들은 한 번씩 검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시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돌아보면 시론은 늘 검의 정원에 오면 로사의 요리를 고집했고, 식사엔 항상 이상하리만치 오랜 시간을 투자했었다.
서재에선 반드시 안경을 착용했으며, 평상복을 입을 때나 정복을 입을 때나 옷매무새가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하나 내게는 그럴 수 있는 순간이 많지 않았다.
알다시피 내게는 젊은 시절부터 주어진 숙명이 있었고, 그래서 늘 흑해를 전전해야만 했다.
당연히 흑해에선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도, 독서에 심취할 수도, 알맞은 복장을 차려입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다. 흑해에 있는 건 오로지 괴물과 마녀의 잔재뿐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식들에겐 그 사실이 뻔뻔하게 느껴지지도, 원망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운 감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룬칸델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객관적으로 시론은 분명 아버지로서 끔찍했고, 늘 지독하게 냉혹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자식들이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숙명의 무게라는 걸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은 자식들 모두 저마다의 숙명을 극복해나가는 중이니까. 애초에 룬칸델이 일반적인 가정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기도 했다.
(……흑해 원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니르간드와 모르가니엘이라는 조각만이 남아 있지. 엊그제부터는 니르간드의 분신들을 추적하고 있으니, 곧 놈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구나.
한데, 최근 흑해를 탐사하며 얻은 새로운 정보가 하나 있다.
그것은 가주의 검인 바리사다가 흑해에 숨겨진 어떤 공간을 개방하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가문의 옛 십대기사인 로키아 가네스토의 작품인 것 같더구나.)
‘열쇠……!?’
진은 케이탐의 그림 속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