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68)
제 999화
240화. 위기의 적명족(2)
* * *
적명족 제3도시 파틀록.
“빌어먹을! 가일라 동포와 우스록이 이토록 허망하게 당하다니……!”
라키만 호그가 소리쳤다.
제4도시 우스록이 습격을 받는 사이, 당연히 적명족의 나머지 도시들도 최고 단계 비상이 걸렸다.
우스록과 한 번씩 통신이 이어질 때마다 전해진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마력과 화마에 휩쓸려 학살되는 동포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대투왕 가일라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통신 방해 때문에 가일라를 비롯한 동포들이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비명, 그리고 죽음이 가득한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지휘관급 적명족들의 팔찌 위 화면에 드러난 적은 단 한 명, 엘로나 지플이었다.
시마트는 참담한 얼굴을 한 채 팔찌에 떠오른 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면 속에서 가일라가 마지막으로 보낸 통신이 반복되고 있었다.
-{바로 성수관에 잠식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거세게 저항하는군. 가일라 툰, 이런 무의미한 짓은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거헉…… 큭!}
-{하긴, 어차피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겠군.}
음성과 더불어 흐리게 나타나는 영상은 당시 상황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일라는 한동안 엘로나에게 달려들며 마구잡이로 공격을 시도했다. 광심장이 부서지고 이성을 잃은 채였다.
그런 공격이 엘로나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엘로나는 여유롭게 가일라의 공격을 막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성수관의 힘이 가일라를 완전히 잠식할 때까지, 일부러 가일라의 숨통을 끊지 않으면서.
-{이제야 좀 잠잠해졌네. 음…… 그래, 본래 성채화라는 변신을 사용해 부하들이 떠날 시간을 벌려고 했었군. 그리고 이 성채는, 과거 리스릿 자치구의 1마탑을 파괴한 그 공중요새였다고?}
-{카학, 그하아악.}
-{아, 공중요새를 사용하기엔 피가 부족했던 모양이군…… 좋은 전리품이 되겠어.}
팔찌에 남은 통신은 그게 전부였다. 앞뒤로 상황이 더 있는 건 확실하나 통신 방해 때문에 나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엘로나 지플에겐 마치 봉인 이전 시대의 거대 세력들처럼 통신과 차원이동을 방해하는 능력이 있다…… 최근 진마계와 전투를 하며 학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통신은 아마 엘로나 지플이 가일라 동포를 상대하느라 잠시 통신 방해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할 때 전해진 것이겠지.’
시마트는 가일라의 최후와 우스록의 멸망보다 엘로나가 보여준 능력을 더 집중해서 살폈다.
동포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고통스럽지만, 바로 대응하지 못하면 다른 동포들도 그렇게 될 터였다.
“……라키만 동포, 우린 싸워야 합니다.”
라키만의 눈동자가 커졌다.
“시마트 동포.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태가 터지고 열린 비상 회의에서 우스록으로 지원군을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한 건 바로 동포였다!”
당장이라도 시마트를 찢어죽일 듯 노려보며 소리치는 라키만.
그 말대로 시마트는 방금까지 이어진 통신 회의에서 우스록을 지원하자는 다른 대투왕들의 의견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대투왕들은 엘로나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홀로 본진까지 들어온 한 사람이 두려워서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공중요새들이 동시에 움직이면 단지 엘로나를 막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재 적명족의 최고 통수권자인 바카룬은 이번에도 시마트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 시마트가 갑자기 다시 싸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라키만으로서는 당연히 그를 죽이고 싶었다.
“맞습니다. 엘로나에 대해서라면 저는 지금도 싸워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가일라 동포가 남긴 통신을 보니 더 확고해지는군요. 진마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모르겠으나, 현재 엘로나 지플은 우리가 지금껏 파악한 것 이상으로 강합니다. 게다가 극히 강력한 수준의 정신 지배 능력까지 추가된 모양이군요.”
“하! 그렇다면 무엇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냐?”
“황실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 적명족은 지금 즉시 전 공중요새와 병력을 이끌고 황실을 쳐야 합니다.”
“뭐라고……!?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야, 당장 가일라 동포조차 피가 부족해서 공중요새를 가동시키지도 못한 채 엘로나에게 당했다.”
“2급 투왕 이하 동포들을 불사군으로 만들고, 현재 파틀록에 남아 있는 청명족의 피를 더하면 우선 파틀록은 즉시 가동이 가능합니다.”
“이 미친 작자가! 우리 적명족은 대봉인 때도 그런 짓은 최대한 삼가했었다!”
라키만은 결국 시마트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나 시마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뒷말을 이어갔다.
“또한 제1도시의 공중요새 역시 그런 식으로 가동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두 기의 공중요새를 한 번에 가동한 후, 즉시 황실의 주요 거점을 점거하여 그들이 숨긴 청명족 매몰자들을 확보하면. 남은 두 기도 운용이 가능할 겁니다.”
고대의 적명족은 본래 총 여섯 기의 공중요새를 보유했었다.
대투왕들이 다스리는 다섯 성채와 투신의 전용 공중요새. 그러나 그중 투신의 공중요새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고, 가일라의 우스는 조금 전에 지플의 전리품이 되었다.
시마트는 이대로라면 남은 공중요새도 모조리 지플이나 황실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대로 적명족은 멸망한다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네 기의 공중요새를 전부 이용해 우선 황실과의 관계를 역전해야 합니다. 이후에는 지플이 룬칸델과 서로 견제하는 동안, 어떻게든 투신 형제를 찾는 겁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군. 좋아, 동포 말대로 한다고 치지. 하지만 대체 뭘 믿고? 뭘 믿고 우리가 멀쩡한 동포들을 불사군으로 만들고, 아껴둔 청명족의 피까지 다 소모해가며 그런 도박을 한다는 말인가? 황실의 주요 거점들에 청명족 매몰자들이 확실히 존재하는지도 확인된 바가 없는데?”
“후, 라키만 동포.”
시마트가 한숨을 내쉬며 라키만과 눈을 맞췄다. 그 순간, 라키만은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하마터면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마치 옛 시절 진노한 투신의 눈을 마주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천천히 말라 죽을 것인지, 그래도 희망이 있는 도박을 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나라고 동포들을 불사군으로 만들고 싶겠습니까? 분명 우린 바카룬 경이 깨어난 직후에 한 회의에서 황실을 치기로 결정했고, 곧바로 움직였으나 적들은 그보다 더 신속하게 변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멀 연합은 진이 창성에 오른 데다 복귀한 원정대까지 전력에 추가되었으며, 지플은 엘로나가 깨어난 것도 모자라 더 강해지기까지 했다. 갑자기 켈리악이 돌아와서 다시 가주가 바뀐 일 역시 적명족에겐 그저 악재였다.
킨젤로는 진마계 토벌 이후 딱히 도드라지는 면모가 없으나 상기 세력들이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강함이 입증된 셈이었다.
반면 적명족은 난데없이 시작된 습격에 가일라와 휘하 함대와 병력 전체, 공중요새 우스까지 잃었다. 심지어 황실을 배신하기로 결정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던 단계에서 말이다.
“황실 주요 거점에 청명족의 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황실 놈들의 피 그 자체를 취하면 됩니다. 어떻게든 황실을 제압해서 투신의 행방을 찾아야만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전력으로 붙어서 황실을 이기기 쉽겠습니까, 바멀 연합이나 지플, 킨젤로를 이기기 쉽겠습니까?”
라키만은 더 노기를 드러내지 못했다.
시마트에게 일순 투신의 위엄을 느낀 착각을 제하더라도, 그 의견 자체로 일리가 없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엘로나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이 통신이 도착하고 한 시간이나 지났으니, 당장 이곳 파틀록 성채 역시 우스록과 똑같은 사태에 놓여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여긴 우스록과 가장 가깝습니다.”
“……하! 알겠다, 시마트 동포. 일단 바카룬 동포에게 연락을 해보도록 하지.”
라키만의 팔찌에 붉은빛이 퍼지며 창이 떠올랐다.
{라키만 동포. 설마 우스록에서 다른 연락이 왔는가?}
“바카룬 동포, 시마트 동포가 할 말이 있다는군.”
{말해보라.}
시마트는 한동안 차분하게 바카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동포들을 불사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목에선 바카룬도 불쾌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는 시마트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즉시 실행하는 게 좋겠군. 세부적인 이야기를 하는 시간조차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야. 그렇다면 최초 침공 지역은 어디로 골랐는가?}
“피르올과 메이실입니다. 황실이 우리에게 청명족의 피를 제공할 때, 놈들은 대부분 피르올을 통해 전달하는 정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실은 제가 지금껏 따로 정보를 수집한 바에 따르면…… 황제의 주거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르올과 메이실은 둘 다 고대 작은 수인들의 도시였다.
그중 피르올은 과거 오르갈이 적명족을 만나러 왔다가 마노프와 휘하 마인들을 상대한 지역이었다.
당시 마인들은 모두 테마르의 육신에 남은 정보를 기반으로 완성된 병기였는데, 오르갈은 아직 그 정보를 진에게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알겠다. 우리 1성채 피빌록은 바로 메이실을 치러 가겠다. 성채 가동까지는…… 대략 한 시간쯤 소요되겠군.}
“엘로나 지플이 그 안에 파틀록을 치지만 않으면 1단계는 성공입니다. 그럼, 이쪽도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라키만은 파틀록의 주인인 자신을 빼놓고 두 사람이 결정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시마트에게 느낀 위엄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주고 있었다.
시마트 같은 기묘하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적명족은 하급자가 반드시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회였다.
파틀록 가동을 위해 불사군이 되는 희생에 반발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적명족들은 기꺼이 피와 목숨을 내어주며 소리칠 뿐이었다.
“적명을 위해!”
“붉은 하늘이 다시 돌아오리!”
그렇게 피빌과 파틀, 두 기의 공중요새가 지하의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 순간.
아직 엘로나의 침공 사실을 모르는 황실은, 그저 적명족에게 당근과 채찍을 내리고자 청명족 매몰자들을 피르올로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