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82)
제 999화
243화. 붉은 왕의 기습(3)
* * *
1804년 4월 25일, 적명족이 드락카를 기습하고 하루가 지났다.
벌써 전 세계가 드락카가 함락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켈리악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도망친 사실도, 적명족이 드락카를 정복하며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사실도.
유사 이래 최대의 충격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황성에서 혼돈의 왕이 현현한 그때보다, 검의 정원에서 흉신이 탄생한 순간보다, 마왕 지토가 이끄는 진마계가 인세를 침공한 얼마 전보다도, 사람들은 더 큰 충격에 휩싸이고 있었다.
세인들로서는 지플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마트는 지플의 진짜 심장을 이야기의 탑이라 표현했지만, 연방의 수도는 분명 드락카였다.
“메이실에서 바로 줄행랑을 친 놈들이, 설마 이렇게 바로 지플을 칠 줄이야…… 게다가 드락카를 함락해?”
티칸.
루나가 회의실 책상에 소식지 뭉치를 내려두며 말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이 쉴 새 없이 특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바멀 연합도 디노 재글런을 필두로 기사를 내는 중이었다. 루테로 연방의 피해 상황을 알리는 기사는 아니었다. 추후 연방에서 연합으로 피난 올 이들을 위한 각종 정보와, 현 거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내용 위주였다.
“나리! 이것 좀 보십시오. 지플 쪽 언론사들에서 방금 막 나온 소식지들입니다.”
제트가 회의실로 들어오며 소식지들을 추켜들었다. 그동안 내내 지플의 펜대로서 여론전을 담당하던 언론들의 소식지였다.
(오랜 통치자가 저물고 붉은 태양이 떠오르다.
드락카가 함락될 정도로 큰 전투가 있었음에도, 도시와 인근 자치구 어디에서도 비탄에 빠진 이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놀랍게도 이번 전투에 민간인들은 전혀 피해를 받지 않았다. 적명족은 앞서 전쟁을 선포하며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켰고, 지플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채 드락카를 떠났다.
…….
드락카의 진화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적명족이 우월한 기술을 바탕으로 전투로 인해 파괴된 모든 건물과 기관을 순식간에 새로 교체한 것이다.
도시 곳곳엔 그간 바멀 연합만이 사용하던 장거리 통신 장치가 배치되었고, 흉신 사후부터 사용이 불가해진 이동 관문을 대신할 장치가 생겼으며…….)
“와, 이 의리 없는 자식들. 그간 지플한테 받아먹은 게 얼만데, 바로 이렇게 지플을 씹는 소식을 퍼뜨려?”
베라딘이 혀를 차며 말했다.
드락카가 함락된 후, 그는 착잡하고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이 이상해서 가주로 지낼 때는 좋은 추억이 하나도 없으나, 그에게 지플은 어쨌거나 자신의 근간이자 고향이었다.
물론 베라딘은 이제 바멀 연합의 일원이고, 그 누구보다도 지플의 추악하고 썩은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베라딘 공자는 지플에 아직 애정이 남으신 건가요!?”
엔야가 말했다.
“아니, 방금은 농담이야. 나도 지플이 망하기를 바라지. 하지만 이런 방향을 기대한 건 아니야. 뭐라도 세상과 사회에 속죄하고 기여한 다음에 망해야지.”
“이 정도로 지플이 망하지 않는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베라딘.”
진의 말에 베라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이것 참, 기분이 이상하긴 하네. 하루가 지났는데도 지플은 다시 드락카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이야기의 탑을 방어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지. 켈리악, 그 괴물 같은 작자가 그 과정에 또 무언가 선을 넘는 짓을 할 것 같아서 불안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가네스토가와 연계해서 마신석에 더 집착한다든가, 그 과정에 갑자기 마신석이 완성되어버린다든가.
베라딘은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신석이 완성되는 순간, 이번에 지플이 잃어버린 땅과 병력은 손실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선을 넘는 짓이라면 마신석에 대한 것밖에 없겠지. 그건 반대로 말하면 결국, 켈리악은 마신석을 완성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 너무 걱정 마라, 베라딘.”
마신석.
요즘 진은 마신석의 완성이 엘로나에게 달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테마르의 무덤들에서 확인한, 역사를 송두리째 조작하던 천 년 전 마신석의 핵심은 분명 엘로나였다. 지플은 그녀가 직접 이야기의 탑을 조종할 때 가장 많은 현실과 역사를 훼손했었다.
‘그러나 무덤의 아공간들에서 확인한 엘로나 경은, 분명 지금처럼 성수관을 사용하지 않았어. 처음 본 엘로나 경처럼 평범한 인간 같은 모습이었다.’
진은 기록 장치로부터 엘로나가 성수관을 사용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성수관을 사용한 그녀가 전보다 더 강해진 것은 사실이나, 지금의 그녀는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이 아니라 그저 끔찍한 전쟁병기다.
“베라딘, 네 가주 시절 기억 중 이런 내용이 있었지. 이야기의 탑은 엘로나 경과 교감을 했다고.”
“맞아.”
“그렇다면 지금 자아를 잃은 엘로나 경은 이야기의 탑과 제대로 교감할 수 있을까?”
베라딘의 눈동자가 커졌다.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아마 못 할 거다. 그러니 내 예상이 맞다면, 성수관은 켈리악에게 큰 힘이 되면서도 그만한 제약일 테지. 탑과 교감하지 못하면 마신석을 제대로 쓸 수 없는데, 성수관의 통제를 해제하면 엘로나 경이 그자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 없으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어. 켈리악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움을 청한다면…… 바로 떠오르는 건 태양신교나 킨젤로, 그리고 가네스토 정도로군.”
“그러나 태양신교는 이번 메이실 전투로 지플과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고 확인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 킨젤로 아니면 가네스토가다.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아. 그들은 이미 연계하고 있으니.”
그들에 대해선 아직 별다른 정보가 추가되지 않고 있었다. 킨젤로는 몸을 사리는 눈치이고, 바멀 연합은 그들의 꿈 능력을 경계하고 있었다.
얼마 전 기록 마법으로 밝혀진 ‘로키아의 세계’를 추적 중이기는 했다. 다만 큰 소득은 없었다.
“드락카가 무너졌으니, 가네스토가가 켈리악을 돕기 위해 곧 움직임을 보이긴 할 거야. 그때부터 더 집요하게 추적을 해야겠지. 설령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진 않아. 놈들의 관계가 우리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는 뜻이니.”
적들 중, 당장 연합이 일단 가장 신경 써야 할 적은 단연 적명족이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그들의 전쟁 능력은 언제든 인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드락카는 갑자기 지하에서부터 습격을 당했지만…… 놈들이 만약 보편적인 방식으로 침공했어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군.”
세상에 드락카와 방위력을 견줄 수 있는 땅은 단 두 지역뿐이다.
검의 정원, 그리고 티칸.
그 두 지역은 특정 상황엔 드락카보다도 막강한 방위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진과 무라칸, 그리고 연합의 초인들이 모두 대기 중일 때였다.
즉, 이제부터 연합은 전보다도 더 초인 이상급 인원을 항시 대기시켜야 했다.
적명족은 공중요새를 이끌고 차원문을 넘어 난데없이 연합 상공 어디든 나타날 수 있다. 적명족은 가네스토가를 제외한 모든 세력을 상대로 완벽한 선제공격권을 가지고 있었다.
“외부 임무를 나가는 인원을 더 줄여야겠군…… 그나마 다행인 건, 지토가 끝장난 후 세상 곳곳에 열리던 균열은 사라졌으니, 적명족이 쳐들어오지 않는 한 당장 민간 피해가 커지지는 않겠군.”
“흠!”
별안간 엘티엇이 목을 가다듬자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스승님?”
루나는 어느새 그를 스승이라 부르는 일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직 스승으로서 완전히 신뢰가 가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제자가 된다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흰 시마트를 잘 모르지.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놈을 잘 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놈은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드락카 전처럼, 언제나 자신이 완벽하게 이길 수 있을 때 싸우는 걸 즐기는 놈이지.”
엘티엇이 진과 눈을 맞췄다.
“따라서 시마트가 검의 정원이나 티칸을 치는 건, 너와 네 수호룡, 그리고 내 제자와 다른 초인들 대부분이 부재할 때다.”
“지금 진 말이 그 말이었잖아요.”
“다르다. 제자야. 너희 최고 전력들이 언제나 대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어느 날 갑자기 가네스토라는 놈들이 튀어나오고, 그놈들을 잡으려면 진과 무라칸이 둘 다 빠져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치자. 그때 적명족이 가만히 불구경만 하고 있겠느냐?”
“하여, 엘티엇 경께는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진은 루나의 스승이 된 엘티엇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존댓말을 사용했다. 루나가 깍듯이 경어를 사용하는데 함부로 반말을 하긴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있고말고. 뻔한 것 아니더냐? 내가 가만 돌아보니, 너희 연합에도 제법 쓸 만한 함선이 하나 있더구나. 황금함이라고 했지? 공중요새에 비하면 초라한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그걸 양산하면 된다.”
“우리가 그걸 양산하기 싫어서 가만히 있던 건 아닙니다, 스승님.”
“떽! 내 그것을 모르고 말하였겠느냐? 제자야, 이 스승은 너처럼 단지 몸만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우리 청명족은 비록 적명족보다는 아주 약간 떨어졌으나, 지금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찬란한 문명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오…… 설마 엘티엇 경은, 그 시절 사용한 기술들을 재현할 수 있는 겁니까?”
“그렇고말고. 이 엘티엇은 투신이 되기 전엔, 청명족 최고의 기술자 중 하나이기도 했거든. 다만 기억이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닌지라, 그 시절 지식을 되찾으려면 준비물이 조금 있어야겠다.”
“준비물이요?”
“그래, 준비물. 마침 방금 제트가 가져온 소식지들을 보니, 놈들이 벌써 드락카 곳곳에 적명족의 물건들을 공공시설로 배치했다는 내용이 있구나. 게다가 지금쯤 시마트는 분명 인근 자치구들과 도시, 기존 루테로 연방의 요충지 대부분을 접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시들에도 고대의 첨단 장비들을 배치했겠지. 지금 시마트는 좋은 통치자인 척을 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엘티엇이 잠시 말을 멈추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가서 그것들을 좀 가져오도록 하자꾸나, 제자야. 하나씩 내가 직접 분해해서 보다 보면 기억이 돌아올 것 같구나. 제자 너는 훈련의 일환으로 적명족 놈들하고 적당히 치고받고 싸울 수 있고, 지식도 챙기고. 이 얼마나 뾰족한 수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