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05
마을에 도착한 승객들은 집집마다 인원을 나누어 들어갔다.
사람에 비해 집의 숫자가 부족하긴 했지만 잠깐 머무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남아 있는 식료품은 대부분 통조림이나 근처에서 사냥해 말린 것으로 보이는 보존식이군요. 조금이지만 밀가루도 있습니다.”
“양이 많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이틀 정도 기다리면 구조가 올 테니 이 인원이 버티기에는 충분합니다.”
이미 노아의 확인을 거치긴 했으나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머물 곳을 재확인하며 물자의 양을 기록해 두었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범죄자들의 마을이라는 말에 불안에 떨던 이들도 온기가 돌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마음을 놓는 모습이었다.
“열차에 표시를 해뒀으니 구조대가 그걸 발견하면 이쪽으로 오겠지요.”
“구조대가 먼저 오면 다행이지만요.”
“예. 물론 이 마을에 살고 있던 범죄자들의 행방을 모르니 돌아가면서 경계를 설 예정입니다. 기사님들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최대한 쉬어두시죠.”
그런고로 노아와 율리우스는 승무원들에게 등 떠밀려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벽난로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이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반겼다.
“귀하신 분들을 추운 곳에 둘 순 없죠. 이쪽으로 오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는 강체술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천것들과 같이 계실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노아는 집 안에 들어온 순간 받았던 막연한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승객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집집마다 과도한 인원이 들어간 결과, 집 안은 벽난로를 중심으로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이 되었다.
난로에 가까이 앉아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잘 차려입은 모습이었고, 거기서 멀어져 추운 자리로 갈수록 옷차림이 허름해졌다.
‘빈부격차가 이렇게 드러나는 건가…….’
강체술이 보급된 이후, 세계의 빈부격차는 더더욱 심해졌다.
힘 있는 자들에게 말 그대로 ‘힘’이 생겼으니 돈 많은 자들과 아닌 자들의 차이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저런 소리가 나온다는 건, 이러한 차별이 저 남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의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뭣들 멀뚱멀뚱하고 있어! 기사님들 앉으셔야 하니까 자리를 비워 드려야지!”
“아니, 당신…….”
노아가 나서려는 찰나, 율리우스가 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제지했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진 마라.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네 눈치를 보고 있잖냐.
사람들은 바짝 긴장한 채 노아의 행동 하나하나에 움찔거리고 있었다.
기사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실제로 권한이 있든 없든 혼자서 그들을 모두 묻어버릴 수도 있는 초인.
자신의 목숨이 그런 초인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건 빈말로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기사는 시민을 지켜야 한다. 이 말을 기억하나?
-기사의 덕목이죠. 연말제에서 봤어요. 선서 첫 항목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별거 아닌 문장이지만, 이 문장에는 시민이 어떤 존재인지 적혀 있지 않다.
기사는 자의적으로 시민을 구별하지 않고, 시민이 어떤 존재일지라도 지켜야 한다.
-이 내용은 그만큼 무거운 내용인 거다. 그래서 의무를 다한 이들이 명예로운 거고.
-저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새삼 대단하시군요.
지금 이곳의 모습은 상대적인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약자가 항상 선한 것도 아니었다.
노아의 감각에는 허름한 사람들의 품속에 숨겨진 통조림 등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승객 모두가 구조를 기다리기에 충분한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 몰래 식량을 숨긴 것.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날카로워지지.’
힘이 없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몫을 스스로 챙겨야만 했다.
약자는 남을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기라도 하면 다시 일어설 수가 없다.
때문에 당하지 않기 위해선 처음부터 남을 믿지 않는 방법밖에 없었다.
가진 게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
이를 탓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들이라고 원해서 없이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
‘젠장.’
“저는 그냥 순찰이나 좀 돌아보겠습니다. 이 주변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둘 필요는 있으니까요.”
노아는 결국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살을 찢는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하아.”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가 없다.
이걸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였으니까.
‘이런 별거 아닌 상황에서도 저런 꼴을 봐야 하다니.’
노아와 율리우스는 이 사태의 원흉이 승객들 사이에 숨어 있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승객들 입장에서 이건 구조가 예정된 재난이었다.
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니라는 것.
‘이걸로도 기분이 꿀꿀해지는데 대전쟁 시절에는 도대체…….’
광휘제와 카인이 겪었을 대전쟁에선 이보다 훨씬 숨 막히는 극한 상황이 쉴 새 없이 이어졌으리라.
처음에는 광휘제가 전쟁을 원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노아였으나, 이런 꼴을 보고 나니 대전쟁을 겪은 사람이 인간에게 실망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래서야 광휘제가 전쟁을 원하는 것을 감히 비난할 순 없었다.
그가 겪었을 끔찍함을 노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기분 더러울 때는 역시 검이라도 휘둘러야지.”
노아는 순찰할 겸, 자신의 검술을 시험해 보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왔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눈의 대평원을 보며 얻은 깨달음.
그 깨달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눈밭 위에서 검을 뽑아 든다.
검술에는 답답함이 없다.
노아의 검은 노아가 하고자 하는 대로 움직인다.
끝없는 재능은 노아가 보고 느낀 것을 모두 검술에 녹여낼 수 있게 만들었다.
발상만으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
검을 뒤덮은 얼음이 수정처럼 빛난다.
“빙정강검.”
콰과과과과과!
그리 많은 힘을 담은 것도 아닌 일격에 대지가 갈라졌다.
강력한 기술이 손쉽게 만들어졌음에도 노아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응?”
갈라진 눈 밑으로 무언가의 흔적이 보였다.
“이건 건물 터? 옛날에는 여기에도 마을 같은 게 있었나?”
좀 더 눈을 치워보자 다른 흔적들도 드러났다.
“이 구조는 마치…….”
쌓인 눈 아래 드러난 흔적은 방금까지 그가 머물던 마을과 쏙 빼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흔적은 아냐. 최근에 무너진 거야.’
그렇다면 이곳에 있던 마을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마을에 발이라도 달린 게 아닌 이상…….”
노아는 문득 어떠한 마수에 대해 떠올렸다.
“설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 바위나 나무 따위로 의태해 사냥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마수들.
자연 속에서 온갖 자연물로 의태하던 놈들이 인공물로는 의태할 수 없어서 안 하던 걸까?
의문의 답은 멀리서 들려왔다.
콰아아앙!
“망할.”
* * *
“뭐야. 덫에 뭔가가 걸려들었기에 와봤더니 노아가 아니잖아?”
율리우스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상대를 바라보며 주변을 살폈다.
“꺄아악!”
“사, 살려주세요!”
갑작스럽게 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그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같은 집에 있던 이들뿐이었다.
다른 집에 흩어져 있던 승객들은 모두 팔다리가 돋아나 움직이기 시작한 집들에 갇혀 있었다.
마치 집이 거대한 거미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
‘아니, 반대로 집의 형상을 했을 뿐, 원래 마수였나.’
마수의 아가리 속에 제 발로 들어간 셈이었다.
이래서야 율리우스라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마수보다 빠르게 시민들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집들이 날뛰기 시작한 건 모두 저 여자가 나타난 뒤의 일이다. 저 여자가 모종의 방법으로 마수들을 지휘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율리우스는 의문의 여성을 향해 물었다.
“너는 누구지? 어째서 노아를 노리고 있는 거지?”
“흐음. 원래 목표는 아니지만 너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율리우스 싱클레어. 자기보다 강한 녀석들이 졸업해서 어부지리로 1위가 되었다지?”
의문의 여성은 대뜸 율리우스의 신경부터 긁었다.
“내 이름은 타라. 생텀 킵에 가는 길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
초승달 군도에서 북해검왕의 딸인 아르니를 노렸다는 조직의 인물.
‘노아가 격퇴했었다는 녀석인가. 노아를 노리는 건 복수라도 할 생각?’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가 있다는 건 근처 어딘가에 노아도 있다는 이야기겠지. 둘을 한 번에 상대하기는 곤란하니 너를 먼저 죽여둬야겠다.”
타라의 말에 율리우스는 검을 뽑으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허, 동작 그만. 이쪽의 말 한마디에 시민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걸 잊으셨나?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인질들을 죽일 거야.”
그 말은 집거미들의 몸속에 갇혀 있는 시민들에게도 들렸다.
“기, 기사님…….”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으나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들은 애절한 표정으로 율리우스에게 반항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네놈…….”
“그러니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죽어.”
퍼억!
그와 동시에 사람들을 집어삼킨 집거미가 다리를 휘둘러 율리우스를 후려쳤다.
평범한 사람은 일격에 으깨졌을 위력이었지만 강력한 강체술을 보유한 율리우스는 몽둥이에 얻어맞는 정도의 충격으로 그쳤다.
허나 그 말은 죽을 때까지 계속 맞아야 한다는 뜻에 불과했다.
퍽! 퍽! 콰직!
가시처럼 날카로운 마수의 다리가 율리우스의 손과 어깨를 관통했다.
“꺄하하! 팔이 망가졌으니 이제는 검을 쥐지도 못하겠지? 네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방어조차 용납하지 않은 일방적인 공격.
율리우스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잠깐의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걸레짝이 되어버리는 모습에 시민들조차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차피 타라가 그들을 살려놓을 가능성은 없었다.
율리우스가 당하면 다음은 그들 차례일 뿐.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죽음의 위협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인물은 드물었다.
허나 그것도 정도가 있다.
자신들로 인해 처참하게 당하고 있는 율리우스를 본 시민들은 이내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어린아이였다.
“기사님! 저는 괜찮으니까 맞서 싸워요!”
순간 모여드는 시선.
아이의 어머니는 발작적으로 아이의 입을 막으며 치마폭으로 감싸 안았지만, 그 한마디가 갈팡질팡하던 다른 이들의 결심을 등 떠밀었다.
“젠장, 기사 형씨!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싸워!”
“안 되겠으면 당신이라도 도망쳐요!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기사님!”
허나 그러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율리우스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기사는! 시민을! 지킨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하핫, 기사도 따위에 목숨을 버리다니 바보 아니야?”
타라는 그러한 율리우스를 비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숨통을 끊어놔!”
그리고 그 순간, 섬광이 일었다.
파지지직!
집거미 수십 채의 천장이 일제히 잘려 나간다.
관절이 삐걱거릴 정도의 급가동.
잘려 나간 천장으로 집집마다 뛰어든 노아는 한순간에 수십 번을 오가며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선배! 전원 확보했어요!”
“기다리고 있었다.”
율리우스는 소드박스에서 튀어나온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릴리즈.”
박스에 수납된 검이 구호와 함께 해방됐다.
“사우전드 크로스.”
이어서 그가 검을 휘두른 순간, 수천의 검격이 일대를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