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07
“아들이라고는 했지만 이제 와서 아비 노릇을 할 생각은 없다. 네 안전을 위해서였다곤 해도 나는 너를 버렸으니까.”
“…….”
“또 아직 내겐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너와 함께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
“그런 핑계로 도망치시는 건가요?”
“음?”
“저는 당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로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카인은 놀랍다는 듯이 눈이 커졌으나, 이내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나 혼자 지레 겁을 먹었을 뿐일지도. 마스터 나이트가 되어도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더구나.”
카인은 노아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노아가 처음으로 친아버지를 만나 긴장한 것처럼, 그 또한 장성한 친아들을 만나 긴장하고 있었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그건 내 업보니까. 하지만 네 어머니의 이야기만큼은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제 어머니요?”
“네 어머니인 엔야는 기승전결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
“엔야는 황실 태생으로, 레이테라드의 누이였다.”
“예?”
“레이테라드라고 하면 모르려나? 광휘제 말이다.”
“예에에에?”
아무래도 마스터 나이트들에겐 대뜸 폭탄부터 던지는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 * *
엔야는 황실 태생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계승권이 없었다.
제국은 검술지상주의의 나라.
허나 엔야는 선천적으로 오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어라, 그건……?”
“맞다. 여기 있는 아르니 양도 같은 체질이지.”
아르니는 고개를 끄덕여 카인의 말을 긍정했다.
“카인 님은 제 체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해 주고 계시기도 하답니다.”
“어쨌거나 엔야는 검술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오러를 다루지 못한다고 검술을 익히지 못하는 건 아니다.
강체술과 검기를 쓸 수 없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사가 될 수 없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엔야는 검술을 지켜보는 건 좋아했지. 나는 레이테라드와 자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엔야와도 친해졌다만, 연애사는 넘어가도 되겠지.”
그 말에 아르니가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카인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무시했다.
“당시 마스터 나이트도 아니었던 내가 엔야와 결혼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주목받지 못한 황녀인 점이 컸다.”
그리하여 황실기사단의 유망주는 별 볼 일 없다 여겨지던 황녀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는 체질이 문제였을 뿐 역사상 최고 수준의 검술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검술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심검을 이루었으니 말 다 했지.”
“무, 무슨? 1년 만에 심검이라고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게다가 그 과정은 훨씬 더 충격적이지.”
체질을 극복하고 1년 만에 심검! 따위가 아니었다.
“엔야가 검술을 익혀야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바로 너였다.”
“저요?”
“너를 임신한 그날부터 엔야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오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오러를 가진 아이를 품었으니 어땠겠나.”
“……!”
엔야는 노아를 임신했고, 그로 인해 죽었다.
카인이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먼저 이 점은 확실히 해두마. 엔야가 죽은 것이 네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스승님이나 다른 녀석들이 지금까지 네게 이에 관해 말해주지 않은 것도 네가 쓸데없이 자책할까 봐 그런 것이겠지. 다시 말하지만 그건 사고였어.”
임신하기 전까진 아무도 그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알려진 바가 없는 희귀한 체질.
이러한 체질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를 배었다고 해서 반드시 죽는다고 할 수도 없었다. 엔야는 너를 품고 열 달을 버텼고, 낳은 뒤에도 몇 달을 더 살다가 갔으니까.”
엔야를 살리기 위한 온갖 시도가 있었다.
그중에는 노아를 포기하자는 것도 있었으나 엔야가 그것을 거절했다.
“별의 파편으로 네 오러를 모두 뽑아내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엔야는 거절했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서 결정했어. 엔야가 죽은 건 자신의 결정 탓이지 네 탓이 아니다.”
아내에게 너무 비정한 것이 아니냐고 할 만한 소리였지만 노아도 아르니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저 말을 하는 카인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 보였기에.
충격적인 침묵 속에서 카인은 최대한 덤덤하게, 허나 슬픔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단순히 나와 노아의 비극일 뿐이었겠지만, 문제는 엔야가 노아를 배고 난 다음에 일어났다.”
“그다음이요?”
“대전쟁이 터졌거든.”
대전쟁.
종족의 명운을 걸고 벌어진 인간과 마수의 전쟁.
“당시 마수와의 전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었다.”
대전쟁을 맞이한 기사들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죽거나, 강해지거나.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은 레지나와 같은 영웅들을 낳았다.
카인 또한 그중 하나로 마스터 나이트가 되어 초고속 진급을 이루었다.
허나 수많은 마스터 나이트들이 활약했음에도 전황은 계속해서 악화됐다.
“종말급 마수 때문이었다.”
검기가 없어도 상대할 수 있는 일반급 마수.
기사의 검기가 필요한 특급 마수.
마스터 나이트의 심검이 필요한 재해급 마수.
그리고 역사상 유일무이한 종말급 마수.
놈에게 종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만큼 종말급 마수의 이능은 충격적인 것이었으니까.
“다른 마수들을 재해급으로 성장시키는 이능. 그 하나만으로도 놈은 정말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였지.”
“자, 잠깐만요. 종말급 마수의 이능이 그런 거였다고요? 그런 내용은 들어본 적 없는데요?”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다른 전장에서 아무리 이겨도 놈을 막지 못하면 다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수십의 재해를 상시 데리고 다니는 놈을 쓰러뜨릴 방법은 없었지.”
인류의 종말이 확정적인 상황.
“너무나도 결과가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사실을 공개할 수 없었다. 혼란도 혼란이고,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이들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때 엔야는 검술을 직접 배우지만 않았을 뿐,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종말을 쓰러뜨려야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말이지.”
노아를 잉태한 엔야는 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노아가 살아갈 세상도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도.
“그때부터 엔야는 한평생 지켜보기만 했던 검술을 실제로 익히기 시작했다. 임신 중이었지만 별문제는 아니었지, 어차피 강체술을 쓰지 못해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단 1년이었다.
엔야는 정령태가 외부의 오러를 이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이 사용할 검술을 직접 만들어내기로 했다.
광휘제는 누이를 위해 퍼플 섹터를 열어주었고, 엔야는 그곳에 있는 모든 검술을 익히고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기승전결이다.”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오러는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검술.
기존의 체계와는 전혀 다른 그 검술로 엔야는 지평을 보았다.
역사상 그 누구도 닿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에서 엔야는 종말을 쓰러뜨렸고, 이듬해 봄 세상을 떠났다.
“엔야의 사후 광휘제는 나를 반역죄로 수배했다.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이런 꼴을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지만, 엔야는 이미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다.”
엔야는 종말을 쓰러뜨린 후에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노아가 기승전결을 익힐 수 있도록 안배를 남겨두었다.
검술을 일반 체질에 맞게 고치고, 완성본은 노아만이 볼 수 있게 코코아의 협조를 받아 초승달 군도의 지하에 봉인하고, 무명검술서에는 전반부만을 남긴 것.
이는 자신의 사후에 카인과 광휘제가 대립할 것을 예상하고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아…….”
엔야는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아이를 위해 온 세상을 다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충격적인 이야기에 노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아와 카인이 각각 충격과 그리움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르니가 끼어들었다.
“그런……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째서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거죠?”
“사실을 공개하기에는 너무 위험했으니까.”
종말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엔야에 대한 것도 덩달아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광휘제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의도적으로 엔야에 대한 것을 숨긴 탓이었다.
“당시의 제국은 다양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고, 엔야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어.”
최상의 환경에서 치료에 전념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허나 전장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상황.
엔야는 자신에게 의료진이 붙어 있는 것을 낭비라 보고 치료를 포기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인 자신에게 붙어 있는 것보단 전장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게 낫다는 소리였다.
종말을 벨 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되니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필요 없다는 뜻.
실제로 그녀는 그러고도 종말을 쓰러뜨렸다.
“엔야는 노아를 낳느라 몸 상태가 최악이 되었음에도 종말을 이겼다. 때문에 광휘제는 그녀가 치료를 포기하지만 않았으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믿고 있지. 다른 나라들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다는 거다.”
방해만 아니었다면 엔야가 무리해 가며 검술을 익힐 필요 없이 종말을 끝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해만 아니었다면 이만큼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을 거다.
방해만 아니었다면…….
그리하여 광휘제는 희생된 제국 기사들과 엔야의 복수를 원했고, 카인은 생전에 엔야가 원했던 것처럼 평화로운 세상을 원했다.
“그런…….”
카인의 이야기에 아르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해검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동안 그녀 또한 생텀 킵이 대전쟁 당시 제국에 어떻게 굴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
당시 대부분의 나라는 대전쟁을 제국의 헤게모니를 끝낼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다.
물자를 지원한다고 해놓고 시간을 끄는 건 애교, 의회의 승인하에 정규군이 제국의 도시를 약탈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실제로 엔야가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었을지 어떤지는 모른다.
다만 광휘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광휘제는 현 인류 최강자이자, 제국의 황제였다.
진짜로 전 세계를 상대로 복수를 실행할 수 있는 인물.
아무리 그 모든 희생 끝에 얻은 자식이라도, 카인은 선뜻 노아를 우선할 수가 없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노아는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좋아, 결정했어요.”
“노아 씨?”
“일단은 임무에 집중합시다. 저는 선각자와 그 조직 놈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당신도 이번 일에 협조하고 있다면 조직을 박살 내고 싶은 건 마찬가지겠죠?”
“물론이지.”
“그럼 여기서의 일을 끝내고 제가 폐하를 만나보겠어요. 이대로 가면 어느 한쪽이 끝장나지 않는 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요.”
노아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갈등이 이어졌다는 건, 가만히 내버려 두면 평생을 갈 거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폐하 쪽은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맡겨주세요.”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아뇨, 있어요.”
“……?”
“어머니 성묘를 혼자 갈 순 없잖아요. 아버지.”
“……!”
양아버지와도 아직 어색한 와중에 더 어색한 친아버지가 생겼으나,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 *
같은 시각 생텀 킵, 마녀의 저택.
백발에 백안.
이질적인 외모로 사람들에게 ‘마녀’라 불려온 여자는 인간이었던 것들의 위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애들 중에 성공작은 하나도 없었다고?”
“송구합니다만 그렇습니다.”
“내가 이딴 쓰레기나 보려고 기사를 키워낸 줄 알아!”
분노한 그녀가 손을 내리치자 주위에 있던 백골들이 퍽 하고 부스러졌다.
한때 그녀의 제자이자, 부하이자, 연인이었던 이 해골들은 마수화 시술의 실패작들이었다.
물론 자신의 부하들을 생체실험에 내몬 그녀에게 사자(死者)에 대한 경의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그 해골병사들은 특급 마수이니 나름대로 전력이 되어줄 겁니다.”
“이래서야 사람들 앞에 내보이지도 못하잖아! 이런 것들을 어디다 쓰라고!”
콰앙!
또다시 백골이 조각나 튕겨 나갔다.
허나 시간이 지나도 뼛조각이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하얀 재가 방 안에 휘날렸다.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으신 모양이군요.”
“집성제인가? 이딴 꼴을 해놓고 잘도 내 앞에 나타났네. 북해검왕 그놈도 제대로 못 끝내놓고, 내 기사들까지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장난하자는 거야?”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북해검왕은 시일이 걸릴 뿐 결국엔 병상에서 죽을 테고요.”
“죽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생텀 킵을 먹을 수 있게 돕는 거 아니었냐고!”
조직은 하얀 마녀와 접촉하기 위해 주변인부터 포섭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타라를 통해 하얀 마녀와 닿은 그들은 조직에 들어올 것을 권했고, 하얀 마녀는 대가를 요구했다.
바로 자신이 생텀 킵을 장악하도록 도우라는 것.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예정대로 다음 회의에서 북해검왕의 상태를 알리고 과반의 표를 모으면 되는 일이에요. 당선만 된다면 북해검왕의 잔당을 처리하는 것쯤 당신에겐 식은 죽 먹기겠죠?”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제국의 개들이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걱정 마시지요. 그쪽은 저희가 처리할 테니까요.”
“흥. 이번에도 어정쩡한 결과로 끝난다면 그때는 끝인 줄 알아. 그리고 가져온 쓰레기는 알아서 처리해.”
하얀 마녀는 발 앞의 두개골을 옆으로 차버리고 방을 나섰다.
남겨진 집성제가 손을 휘젓자 방 안에 가득한 백골이 재로 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재를 자신의 그림자 속에 집어넣고 나자, 그림자 속에서 아라크네가 머리를 내밀었다.
“저거 미친년이네. 언제까지 저런 년의 비위나 맞추고 계실 거예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이제 며칠 안으로 결판이 날 테니까.”
하얀 마녀는 이제 마수화 시술을 피할 수 없다.
“이능을 사용하는 마스터 나이트가 탄생할지, 아니면…….”
바스락.
두개골 하나가 재로 변하는 과정에서 재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자기가 쓰레기라고 칭하던 괴물이 될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