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73
광휘제와 함께하자 황궁의 전역이 프리패스였다.
일일이 받아줄 수 없을 만큼의 경례를 받고서야 도착한 곳은 통짜 별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
자르기도 힘들었을 문에는 세밀한 문양이 빼곡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속성변환 이상의 경지를 이룬 조각가인 것은 분명했다.
‘중앙은 조각가도 15인급인 거냐?’
에이 설마.
‘황궁 최고의 장인이라 그렇다거나 하겠지…….’
이윽고 문이 열리자 광휘제를 따라 들어가려던 노아를 기사들이 제지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폐하, 황가의 무덤은 오직 황족만이…….”
그 말에 광휘제는 노아의 턱을 잡고 기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광휘제의 손을 타고 들어온 오러가 노아의 마안을 활성화시킨다.
노아에 대해 모르더라도 마안을 모를 순 없었다.
황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마안이 발현되자 기사들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실례했습니다.”
“가지.”
불만을 잠재운 광휘제는 노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따라 들어간 황가의 무덤은, 말 그대로 공원이었다.
“허?”
하늘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숲에서는 풀벌레 우는 소리가 났다.
“이곳은 황족 중에서도 마스터 나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 잠드신 공간이다. 보는 눈은 없지만 경거망동하진 말도록.”
“ㄴ, 네…….”
노아는 얌전히 광휘제를 따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기본적으로 제국의 역대 황제들은 전원이 마스터 나이트였다.
거기에 더해 황제가 되진 못했어도 마스터 나이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묻힌 땅.
‘암자만이 아니라 황가의 무덤 전체가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었던 건가?’
월식의 기억 속에서 본 암자가 워낙 숲속에 숨겨진 것처럼 생겨서, 그냥 근처의 보호 구역에 만들어둔 건가 했더니 아닌 모양이었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숲속 곳곳에는 검들이 꽂혀 있었다.
광휘제는 계속해서 걸으며 설명했다.
“저 검들은 모두 묘비다.”
“묘비라고요?”
“저곳에 묻힌 분들이 생전에 사용하던 검을 묘비로 삼은 것이지. 잘 보면 검의 양식이 시대별로 다양하다는 게 보일 거다.”
그 말대로였다.
다만 묘지는 검의 양식으로 파악한 시대 순서에 상관없이 자유분방하게 퍼져 있었다.
“사후 이곳에 안치될 대상자들은 모두 생전에 자신의 묘소를 지정해 둔다. 각자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르다 보니 저렇게 된 거다.”
마치 검이 여기저기서 나무처럼 자라난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검이 완성된 성련검이라 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풍경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성련검의 제련 방법이 개발된 건 비교적 최근 일 아니었나요? 엄청 옛날 검들도 다 성련검이네요?”
어설픈 실력으로는 자르는 것도 불가능한 게 바로 별의 파편.
그걸 검으로 가공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이곳에는 ‘오래된’ 성련검들도 버젓이 꽂혀 있었다.
“과거에도 별의 파편으로 검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던 건 아니다. 현재도 시원석마저 잘라내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시원석을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 마스터 나이트다.”
애초에 이곳에 묻힌 이들은 전원 마스터 나이트.
“마스터 나이트가 직접 심검으로 벼려낸 옛 검들은 생긴 건 투박해도 하나같이 강력하지.”
즉, 여기 보이는 검 하나하나가 전부 심검의 결과물이라는 뜻이었다.
‘이게 전부……!’
제국의 역사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들이 가는 곳에는, 그 역사 속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던 인물이 잠든 곳이었다.
암자에 도착한 순간, 노아는 말을 잃고 말았다.
“아…….”
월식의 기억 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광경.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광경을 마주하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이 휘몰아친다.
노아에겐 어머니와의 추억이 없었다.
하지만 월식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며 그도 어머니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런, 처음으로 찾아왔는데 우는 모습부터 보여주다니 불효자가 따로 없네요.”
“……마침 황가의 무덤에서 할 일이 있기도 하니 잠시 자리를 비켜주지.”
“감사합니다.”
광휘제가 떠난 후 노아는 암자 주위를 걸었다.
당시의 모습이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암자의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식료품은 치워졌지만 가재도구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조금 전까지도 누가 살고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노아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유일하게 달라진 곳으로 향했다.
월식의 기억은 엔야가 죽기 전의 기억.
기억과 달라진 것은 새롭게 생겨난 봉분.
사용했던 모든 검을 부러뜨린 탓에 묘비가 될 검 한 자루조차 남기지 못한 그 묘지 앞에, 노아는 월식을 꽂았다.
월식은 노아의 오러를 받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해 그의 곁에 섰다.
“엔야…….”
그 외의 말은 없었다.
같은 추억을 가진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았으니까.
“……다음에는 어떻게든 꼭 아버지와 함께 올게요.”
그저 추모의 시간이 지난 뒤 노아가 한 마디 덧붙였을 뿐이었다.
거기까지 진행한 노아는 곧 오러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음?’
월식을 박아 넣는 것으로 암자를 비롯한 이곳 주위의 흐름이 변했다.
단순히 월식에 잠재된 거대한 오러 탓이 아니라, 모종의 진법이 활성화된 것과 같은 인공적인 흐름이었다.
“뭐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무슨 진법이 펼쳐진 것 같아.”
“진법이요?”
황가의 무덤은 명당에 속하는 지형이라 자연적으로 주변의 오러가 모여들어 밀도가 높은 편이었다.
덕분에 기본적인 흐름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아 깨닫는 것이 늦었는데, 암자와 주변의 구성이 일종의 진법을 만들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배치였지만 월식 네가 더해지는 순간 진법이 완성됐어. 우연인가?”
순간 우연인가 싶었으나 그렇게 생각하긴 힘들었다.
‘황실 공사를 대충 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여긴 황족만 출입 가능해서 내부 관리나 새로운 묘소를 만드는 것까지 전부 황가에서 직접 하는 곳.
월식에 의해 진법이 발동된 것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봐야 했다.
‘왜?’
월식의 기억 속에선 이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때는 엔야가 묻히기 전이라 봉분도 없었고.
‘의도됐을 가능성이 높다.’
노아는 흐름을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흐름. 덕분에 나도 눈치채는 게 늦어졌지만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을 거야.’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그저 조금 꼬여 버렸을 뿐인 흐름.
하지만 초승달 군도 지하에서 엔야가 남긴 기승전결의 완성본을 본 노아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이건 기승전결의 오러 운용법을 옮겨놓은 거야.”
“오러 운용법이라면…….”
오러 운용법은 검형과 함께 검술의 기본 구성요소 중 하나였다.
“기사들은 싸울 때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오러도 움직이지. 또한 그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
검형에 맞춰 최적화시킨 오러 운용법을 사용해야만 최대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 오러는 범용성에 중점을 두어서 공격만 따지면 밀리아 선배보다 효율이 떨어져. 같은 양의 오러로 같은 기술을 펼치면 내가 더 약한 거지.”
사용하는 오러의 양을 늘리면 위력이야 뛰어넘을 수 있겠지만 효율은 뛰어넘을 수 없었다.
물론 그만큼 밀리아의 오러는 생성 속도가 느리다거나, 무형검으로 운용시 사정거리가 줄어든다거나 했다.
하지만 찌르기 하나에 모든 것을 건 검술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모든 검형에는 각각 그에 맞는 오러 운용법이 필요한 거야.”
“그럼 이건……?”
“어머니는 아버지와 폐하의 반목을 걱정해서 검형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었지.”
후반부는 코코아에게 맡겨 노아만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오러 운용법도 마찬가지였던 거야.”
기승전결의 후반.
전과 결에 해당하는 오러 운용법은 따로 있었던 것.
‘그리고 전은 마스터 나이트에 해당하는 경지이지.’
즉, 여기 와보지 않았으면 영원히 심검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로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는 뜻.
이미 자신의 검술로 마스터 나이트가 된 뒤에 기승전결을 접한 빈센트나 다른 이들에 반해, 순수하게 기승전결만을 익힌 노아는 이게 없으면 심검에 도달할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혼자서도 뭔가 빠졌다는 걸 알아챘을 수도 있지만…….’
과연 그걸 알아채고 홀로 보완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이걸 보기 전까지 빠진 부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만큼 가능할 거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이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익힐 만한 양이 아닌데. 나중에도 여길 드나들 수 있을지 폐하께 물어봐야겠네.”
다만 엔야가 일부러 이것을 숨겨놓은 이상, 가능하면 광휘제에게도 이를 밝히지 않아야 했다.
잘하면 이걸로 전에 입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말은 곧 자신도 마스터 나이트가 된다는 뜻.
이러한 사실에 흥분한 노아였으나, 이내 진법의 화룡점정 역할을 한 월식을 보며 어떠한 생각을 떠올렸다.
“저기 있잖아.”
“네.”
“네가 여기 남고 싶다면 여기 있어도 돼.”
“……그게 무슨 소리죠?”
노아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가 자신의 검을 묘비로 삼은 이곳에서 어머니만은 혼자 묻혀 계셔. 너도 나보다는 진짜 주인과 함께 있기를 원할 테니까…….”
“헛소리 마세요! 당신은 저 없으면 훨씬 약해지잖아요!”
“아니 약해지는 건 맞지만 훨씬이랄 것까지야.”
월식은 노아의 투덜거림을 가뿐히 무시했다.
“당신까지 엔야처럼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간 앞으로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저를 두고 가겠다고요? 어림도 없어요.”
그녀는 노아의 제안을 일축했다.
“온갖 위험한 일에 발을 들여놓고 저를 두고 가겠다니 미친 거 아니에요? 죽을 때까지 저랑 떨어지는 건 허락할 수 없어요.”
“주, 죽을 때까지?”
“엔야는 계속 여기 있을 테니까 한 100년, 200년은 괜찮겠죠. 당신을 돌보다 늦어진 것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아니거든요?”
“……!”
노아는 눈을 크게 뜨고 월식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중 가서 말 바꾸기 없기다?”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할 것 같아요?”
“그럼 유성 펜으로 이름 써놔도 돼?”
“그건 안 돼요!”
* * *
한편 진짜로 있었던 ‘할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광휘제는 엔야의 무덤 앞에서 노아와 월식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사고가 정지했다.
‘환각인가?’
월식의 인간 모습은 엔야의 모습을 따라 한 것.
광휘제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노아가 죽은 엔야의 유령과 대화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최근 피곤했나 보군. 환각이 보일 정도였다니.’
조직과의 전쟁이 시작된 후, 광휘제는 무한한 오러를 바탕으로 강체술을 돌려 몇 달씩 잠도 거르고 일하는 중이었다.
몸 자체는 오러로 계속 회복되었지만 실제로 정신적인 피로는 누적되고 있긴 했다.
‘앞으로는 휴식도 충분히 취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가자니 곧 그를 발견한 노아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환각이 아니라는 듯 정확히 월식의 손을 잡고 말이다.
“일은 다 보셨나요?”
“그래.”
“혹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앞으로 혼자서 여길 드나들어도 될까요?”
“……왜,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광휘제는 자신의 인생에서 드물게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월식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느라 그 점을 깨달을 여유가 없었다.
“어…… 여기선 왠지 어머니의 향수가 느껴져서요.”
오러 운용법에 대한 것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이지만 광휘제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노아를 붙잡고 물었다.
“혹시 죽은 사람의 유령이 보이거나 그러나?”
“예?”
잠시 후.
노아는 광휘제를 손가락질하며 폭소하고도 살아남은 두 번째 인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