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186
결국 의무대에 들른 두 사람은 퇴근을 함께하게 되었다.
날이 추워지자 해는 일찌감치 모습을 감추고, 어둑어둑한 퇴근길이 그들을 반겼다.
“이걸 보니 새삼 연말이라는 게 느껴지네.”
“그러게요. 며칠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그새 날씨가 이렇게 추워졌을 줄이야. 중앙에서 병사들 방한 용품부터 빨리 받아와야겠어요.”
“으악, 일 이야기는 이제 그만!”
검은 달로 돌아가는 길.
노아는 졸업한 뒤에도 검은 달 기숙사를 관사로 삼고 계속 그곳에 묵고 있었다.
교내의 다른 시설들에게서 뚝 떨어진 위치에 자리한 건물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부지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의 노아라면 딱 앉은 자리에서 교내 전역에 육감을 뻗을 수 있는 위치.
덕분에 무슨 일이 터지면 함께 움직여야 하는 베로니카 또한 검은 달에 묵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롭게 걷는 것도 되게 오랜만인 것 같네.”
리히테나워 사건을 제외하고서도 계속 정신없이 지낸 참이었다.
월식과 만난 것도,
마스터 나이트가 된 율리우스를 꺾겠다고 한 것도,
스텔라리움에 불려간 것도.
쉬지 않고 달려온 노아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국의 운명을 걸고 달려야 했고.
“어깨가 너무 무거운데.”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베로니카, 너 농담이 늘었다?”
노아의 말에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2년 전, 처음 만났을 당시의 베로니카는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것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초승달 군도에서의 사건부터였다.
‘함께 고생하고 나서부터 꽤 솔직해졌지.’
비단 노아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때 함께했던 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마음을 열어가던 베로니카는 월식과 함께 과거를 공유한 것을 기점으로 태도가 변했다.
정확히 어떻게 변했다곤 말하기 힘들었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선을 긋던 이전과는 다르게 필요하면 노아에게 의지하고, 자신도 의지가 되어줄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거겠지.’
베로니카를 부단장으로 삼은 것에는 그런 점이 컸다.
황녀라는 신분도 신분이고, 또 실력도 실력이지만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조직으로 인해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게 된 지금이라면 더더욱.
‘단원들 입장에서도 확실하게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위에 있는 게 안정적일 테고.’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 뭐, 이렇게 너랑 퇴근길을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퇴근길은 원래 누구랑 함께하든 좋지 않을까요.”
베로니카는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대답하고는 먼 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을 마치고 같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뭔가 젊은 부부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우아아아…….”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으응?”
그러는 사이에 둘은 검은 달에 도착했다.
동시에 수많은 메이드들이 문을 열고 그들에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이전과는 달리 반짝반짝한 외관.
대충 잡초만 제거해 뒀던 정원도 그새 겨울에 맞게 상록수 위주로 다시 조성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정리하던 시절과는 달리, 황실의 메이드들이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자 검은 달은 같은 건물이 맞나 싶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식사와 목욕을 준비해 뒀습니다.”
“먼저 씻고 먹을게.”
“네, 그러면 이쪽으로.”
원래 이곳에 살던 티우나 유니아 등은 간부가 되면서 배정받은 휘하의 부대원들과 같은 숙소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검은 달에는 노아와 베로니카 둘뿐.
황실에서는 얼마 전 둘만을 위해 40명에 가까운 메이드들을 보내왔다.
노아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사코트를 받아가는 메이드들을 보며 감탄했다.
“나는 누가 이렇게 하나하나 시중드는 게 아직도 어색하단 말이지.”
“익숙해지도록 하세요. 마스터 나이트라면 오히려 가사에 시간을 쓰고 있는 게 사치니까요.”
군단급 편제의 기사단 단장인 노아는 중장, 부단장인 베로니카는 준장 계급을 받았다.
장성급인 두 사람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서포트할 인원이 따라붙는 건 당연했다.
“아니, 우리 부대에서 사람을 뽑아도 되는 일이잖아? 파견 나온 사람들이라 생각하니 영 어색하단 말이야.”
“황실 메이드만큼 능력 있는 이들은 찾기 힘들답니다.”
그 말에 시중을 들던 메이드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실 메이드들은 기본적으로 암문에서 연수받은 암부기사들이었으니까.
개개인의 검술도 검술이지만, 무엇보다 주인을 보조하기 위한 온갖 능력에 통달해 있다는 점이 컸다.
다만 그녀들은 2기사단 소속이 아니라 황실 소속으로 파견을 나온 상태.
직속 부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아직 명령을 내리는데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튼, 저는 씻고 올 테니까 이따 식당에서 뵈어요.”
“그래.”
노아도 찝찝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일단 씻고 싶었다.
다만 어떻게 해도 자기가 먼저 씻고 나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안내하던 메이드는 그런 노아의 눈치를 읽고 잠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마스터 노아, 청소하던 중 지하에서 잠긴 방을 발견했습니다만 알고 계신 바가 있으신가요?”
“아, 거기 창고인데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어.”
“괜찮으시다면 관리를 위해 저희들에게 열쇠를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 어차피 다 맡겨놨으니…… 마침 말 나온 김에 나도 같이 가서 확인 좀 해보자.”
노아는 임관식 때 수도에서 만난 쌍둥이를 떠올렸다.
‘분명 갑작스럽게 졸업하면서 짐을 대부분 창고에 쑤셔 박고 왔다고 했었지.’
지금 저 안쪽이 무슨 꼴일지는 노아도 궁금했다.
창고를 뒤지면 분명 먼지투성이가 될 테니 씻기 전에 봐두는 편이 좋으리라.
그리하여 지하로 내려간 노아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창고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퀴퀴함.
그새 거미줄까지 처져 있지는 않았으나 먼지의 냄새가 상당했다.
“어이구야. 진짜 다 그냥 갖다 박아뒀네. 이거 청소하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아닙니다. 혹시 주의해야 할 물건이 있다면 따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 그거라면 아마도…….”
노아는 앞에서부터 짐을 치우고 들어가며 시야에 들어온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저거는 연습용으로 쌓아둔 검이라 부대에 넘기면 될 테고…….”
입학 시험에서 어릴 적부터 사용하던 검을 부러뜨려 먹은 노아는 저 연습용 검들을 들고 시바와 맞붙었던 적이 있었다.
“저기 있는 보존식들은 눈 오고 그래서 여기가 고립되면 먹을 거 사러 나가기 귀찮다고 쌓아놓던 거라 버려도 되고…….”
종종 유통기한이 다가오면 다 같이 저걸로 온갖 창작요리를 해먹고, 새로 육포를 만들어놓는다거나 그랬다.
“또 저건…….”
노아는 그런 식으로 검은 달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치워야 할 것들을 설명해 주다, 그대로 멈춰 섰다.
“마스터 노아?”
“별거 아냐.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검은 달에서의 추억.
그것은 곧 아슬란과의 추억이기도 했다.
‘아슬란 선배는 도대체 왜 조직에 붙은 거지?’
미하엘이 조직을 만든 것도 의문이었지만, 노아의 경우에는 가까운 사이였던 아슬란이 더더욱 의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간의 모습만을 가지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안 보였으니까.
노아가 아는 아슬란은 항상 강하고, 종종 엉뚱하고, 그러면서 재미있는 선배였다.
1위라는 랭킹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 자체를 즐기던 사람.
딱히 세상을 향한 악의 같은 걸 내비친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노아는 문득 카밀라가 찾아왔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우르슐라를 만나러 온 김에 아슬란에게 부탁을 받아 노아에게 어떠한 말을 전하고 갔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보물을 숨기려면 보물더미 밑에 묻어라.’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분명히 그건 계엄령이 떨어진 뒤의 일이었단 말이지.’
아슬란은 광휘제에게 자신이 얻은 심검의 효과에 대해 거짓말했다.
노아에게 전언을 남긴 시점엔 이미 배신한 상태였다는 소리.
‘왜 그런 말을 남긴 거지?’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거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문구였다.
하지만 보물 운운하는 뒷부분은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카밀라 씨도 모르는 눈치였으니 아마 본인이 덧붙인 걸 텐데.’
겉으로 보기에는 숲 이야기와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하려는 이야기는 아마 이쪽일 터.
‘나보고 보물을 숨기라는 건가? 아니면 본인이 보물을 숨겨놨으니 찾으라는?’
숨기라고 하는 거라면 노아는 딱히 숨길 게 없었다.
소중한 거라고 해봐야 2기사단 단원들? 빈센트? 레지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걸 잡아다 숨겨놓은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찾는 쪽?’
찾는 거라면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아슬란 선배의 보물이라.’
생각해 보면 노아는 아슬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저 자신처럼 출신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와중에도 재능 하나만으로 정점에 선 인물이라고 대단하다 여겼을 뿐.
알고 보니 자신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슬란의 재능은 진짜였다.
“아는 거라곤 기껏해야 좋아하는 요리 정도인가…… 응?”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아슬란이 술을 되게 아꼈다는 점이 떠올랐다.
‘예전에 로젤리아 선배가 청소하던 와중에 아슬란 선배가 숨겨놓은 술을 발견한 적이 있었지.’
그걸 뜯기고 나서 드물게도 아슬란이 며칠 동안이나 우울해했기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술이 보물?’
그렇게 생각하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아슬란이 술을 숨겨놓았던 위치.
노아는 그쪽으로 다가가 바닥판을 뜯어보았다.
우드득!
나무판을 걷어내자 기초공사에 쓰인 석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감에는 여전히 특별한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노아는 이왕 뜯어낸 거 납득이 갈 때까지 파보기로 했다.
“노아 님?”
“잠깐 있어봐.”
석재를 검기로 잘라서 뽑아내고, 그 아래로 나타난 흙을 파 내려갔다.
그렇게 사람 키 정도의 깊이를 내려가자 뭔가가 손에 걸렸다.
노아는 곧바로 그걸 건져 올렸다.
“이건…….”
육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별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상자.
별의 파편은 그 특유의 튼튼함이나 감지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금고로도 쓰이곤 했는데, 그런 류의 물건으로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은 상자라도 값이 상당히 나간다.
아무렇지 않게 버릴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
‘버려진 걸 우연히 주운 것일 리가 없다.’
아슬란이 남긴 건 바로 이 상자인 게 분명했다.
노아는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 * *
한편 스텔라리움에서는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보가 날아들고 있었다.
“남해상에서 재해급 마수 및 빅 웨이브급 마수 군단이 이동 중!”
“급보입니다! 리베리 영지 부근에서도 재해급 마수 출현! 3체입니다!”
“북부의 라플란드도 지원 요청! 40시간 안에 재해급 마수가 도달할 거라고 합니다!”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지도에 발견된 재해급 마수의 예상 경로가 그려진다.
제국 전역에 걸쳐 나타난 그 경로들은 제국군의 각개전투를 강요하고 있었다.
“미하엘 녀석. 보름 만에 흡수를 끝낸 건가.”
레지나는 제국군 총사령관으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직이 숨어든 지 약 보름.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각 군단에 토벌군 편성 및 출정을 명한다! 내륙에서도 마수가 튀어나올 수 있는 이상 피난은 불가! 도시에 들어서기 전에 모두 요격해라!”
2차 대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