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240
“이건 불륜이잖아요!”
산맥의 조사를 위해 기사들을 이끌고 무릉에 베이스캠프를 친 베로니카는 툭하면 노아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시치미 뗄 생각인가요? 이건 누가 봐도 불륜이잖아요!”
“뭘 보고 와서 그러는 건데?”
“봐요!”
베로니카가 내민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전에 온천에 놀러 갔을 때, 여행 후 남는 건 사진이라며 이리저리 찍어댄 우르슐라의 사진.
개중에서도 단체 사진으로 모두 함께 찍힌 사진 중 한 장이었다.
“이게 왜?”
애초에 불륜 소리를 들을 만한 짓을 한 적도 없지만, 무슨 여자랑 단둘이 찍힌 것도 아니고 단체사진.
무슨 농담을 하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니 베로니카는 꽤나 진지해 보였다.
“여길 보세요!”
베로니카가 가리킨 곳은 노아가 사진을 찍기 위해 티우의 허리에 팔을 두른 모습이었다.
앵글 안에 20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 있어 튜브 때문에 계속 떠밀려가던 티우를 붙잡고 있던 것.
“불륜이잖아요!”
“이게?”
“이런 건 이제 ‘너한테는 약혼녀가 있잖아.’, ‘그런 녀석 따위는 상관없어.’ 같은 소리를 하는 장면이잖아요!”
“너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재미있는 소리가 시작되었기에 노아는 몸을 돌려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흔히 있는 이야기잖아요?”
“흔히 있다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가까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눈이 간다. 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게 그런 뜻일 리가 없잖아. 그럼 반상회 같은 건 불륜 파티장이게?”
베로니카는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럼 이건 그렇다고 쳐요.”
“뭐가 더 있어?”
차락!
이번에는 신문이었다.
[기승전결의 원본이 담긴 석벽, 나이트레이로 이동 중]노아가 초승달 군도에 있던 석벽을 옮기던 중의 기사.
사진에는 잠에서 깬 노아가 자신이 자는 동안 석벽을 들고 있던 우르슐라와 교대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노아와는 달리 석벽의 무게가 부담이었던 우르슐라는 꽤나 지쳐 있는 상태였다.
“불륜이잖아요!”
“어디가??”
“믿고 보낸 약혼자가 학교 선배와 껴안고 있잖아요!”
“안 껴안았거든? 그냥 지쳐 있으니 등 좀 두드려 준 거잖아.”
“빨개진 얼굴로 달라붙어서 하아하아 거리고 있는데도요?”
“그건 그냥 우르슐라 선배가 평소에 훈련 부족이라 저것도 힘들어한 것뿐이고.”
“……하긴 아까 보니 뱃살이 좀 느신 것 같기도 하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뒷담하고 있네.”
“아, 아무튼 간에요!”
이쯤 되니 노아도 베로니카가 어째서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늘어지는 건지 눈치챘다.
그는 귀여운 땡깡을 부리고 있는 자신의 약혼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품 안에 쏙 들어온 그녀는 마스터 나이트라는 무시무시한 경지인 것 치고는 호리호리하고 가는 몸을 하고 있었다.
“자, 자, 너도 안아줄 테니까 불륜 소리는 이제 그만 하고.”
방금까지만 해도 땍땍거렸으면서 안아주자마자 얌전해졌다.
그 간극에 조금은 기가 찬 상태로, 노아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슬쩍 보니 베로니카는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이런 거에 면역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매일 같이 검 손잡이만 붙잡고 있다가 사람의 살을 붙잡고 있으면 느낌이 완전 다르단 말이에요.”
“살집은 별로 없을 텐데. 나도 그렇지만 너도.”
앙!
가슴팍을 바라보며 던진 농담에 베로니카는 자신의 목에 둘려 있던 노아의 팔을 깨물었다.
잠시 후 노아는 자신의 팔에 남아 있는 선명한 잇자국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강철도 씹어 먹는 거 아냐? 식인황제라니 제국의 앞날이 깜깜하구만.”
“잡아먹히기 싫으면 평소에 잘하세요.”
말은 가볍게 했지만 베로니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은 노아가 좋다.
하지만 노아도 자신이 좋을까?
어쩌면 그냥 제국의 안정을 위해 자신과의 결혼을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실제로 그는 학창 시절에도 특별히 연애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입장이고 뭐고 진짜로 싫으면 싫다고 할 성격이라 생각하지만…….’
싫지만 않을 뿐 딱히 좋은 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노아에게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일’ 정도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숨이 막혀오곤 했다.
좀 더 자신을 원해줬으면 한다.
확실하게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자신이 직접 부탁하면 의미가 없으니 노아가 스스로 그래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항상 그다음엔 자괴감이 밀려왔다.
‘무슨 애정결핍증인 성가신 여자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그것도 기사들의 귀감인 마스터 나이트로서 이런 생각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광휘제의 교육도 한몫했으리라.
황위를 이을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선 안 된다.
덕분에 베로니카는 쉽사리 솔직해지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언제 한번 놀러갈까. 둘이서만.”
“네, 네엣!?”
벌떡!
노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난 베로니카를 붙잡아 다시 다리 위에 앉혔다.
양쪽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집어넣어 붙잡은 게, 마치 고양이라도 옮기는 모양새였지만 베로니카는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황제가 되고 나면 마음대로 놀러 다니기도 힘들 거 아냐? 광휘제 폐하처럼 엄청난 이동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죠.”
“지금이야말로 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 그럼 놀아둬야지 나중에 후회 안 해.”
솔직히 말해서 광휘제가 저렇게 엇나간 것도 대전쟁으로 인해 놀아야 할 때 못 놀아서 저런 거다.
마인 전쟁으로 학창 생활이 조기 종결된 것은 노아와 동기들도 마찬가지.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엔 노아가 있었다.
“제가 쉬고 싶어지면 그땐 당신이 납치해 줘요.”
“대를 이어서 반역자 신세를 지라고?”
“까짓것 제가 사면해 버리면 되죠. 그땐 황제일 텐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매일매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버리라고.”
“하지만 그러면 납치를 못 당하잖아요? 살면서 한 번쯤은 남자한테 납치도 당해보고 싶고.”
“뭐 하는 버킷 리스트인진 모르겠지만 폐기하는 게 좋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한테나 납치당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평소 노아가 헛짓거리를 할 때마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하던 베로니카는 역으로 자신이 그 눈빛에 당하자 발끈했다.
“납치해 줬으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있어?”
“……저보다 센 사람이라든가?”
“마스터 나이트보다 센 사람이라니. 뭐야, 나잖아?”
그런 식으로 아침부터 꽁냥거리고 있자니 곧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
식사 후 베로니카는 기사단을 이끌고 원래의 목적이었던 산맥 조사에 나섰다.
노아는 우장왕을 찾아가 바둑을 두다 뒤늦게 일어난 소요와 함께 진법을 뜯어고쳤다.
셋이 돌아가면서 바둑을 두다, 소요가 장고에 빠지며 생긴 여유.
문득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노아는 그곳에서 티우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는 어린 수인들을 발견했다.
최근의 수인들은 티우와 한별을 계기로 검술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릉의 목가적인 풍경 아래 검을 잡은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일제히 연습하고 있는 모습은 묘한 감성이 있었다.
‘나이트레이에 입학하는 건 전국의 기사 지망생 중에서도 극소수. 전국적인 검술 보급을 위해선 체계적인 전파가 필요하다.’
노아 자신이야 사실 살기만 산골짜기에 살았지 마스터 나이트인 빈센트와 함께였다.
하지만 아슬란 같은 케이스를 생각하면 제대로 검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들 중에서도 수많은 천재들이 있었으리라.
노아는 명가의 출신이 아닌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도 할 일이 생겼네.”
쉽지 않겠지만 즐거운 일이 되리라.
* * *
시간이 흘러 이듬해 봄.
스텔라리움 인근, 미하엘이 통째로 전이시켰던 별의 파편 광산은 전쟁기념관으로 탈바꿈하여 개관식을 진행했다.
사실상 광휘제의 마지막 사업.
노아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잠깐 인사를 나눴을 뿐, 개관식 내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두 번의 전쟁에 모두 참여한 참전용사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행사는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광휘제는 담담한 어조로 두 전쟁의 진상과, 그에 따라 자신이 해온 일들을 밝혔다.
마인과 마술의 등장으로 마수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었으나, 역시 시황제가 종말급 마수가 되었다는 것은 꽤나 충격이 있었다.
‘게다가 그 오러를 집어삼켰던 인간이 눈앞에 있으니.’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 가능성은 낮은 것이, 그걸 일일이 따지기 시작하면 그간 기사들이 섭취해 온 영약도 출처를 따져야 하니 굳이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뿐.
인류는 아직 오러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은 아직도 검술에는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중앙 기사단장.”
노아는 자신을 부르는 광휘제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순의 마지막.
“부탁하마.”
광휘제는 다가선 노아에게 월식을 건넸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그로서는 드물게도, 그 말은 진심이었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여 답한 후, 기념관 내부로 들어섰다.
건물의 설계부터가 소요의 진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전쟁기념관에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진법을 작동하기 위한 장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월식은 노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인을 잃고 홀로 남겨진 검령들이 어떻게 되는지 네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지.”
“저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죠.”
“나로서는 처음으로 대화가 가능한 인간을 만난 셈이었으니까. 엔야나 신산조차 나와 직접 대화는 불가능했는걸.”
검령에 대한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노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월식이나 암월을 비롯해, 수많은 검들이 결국엔 영원한 고독 속에 잠길 거라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어.”
시원검 디 오더가 계기였다.
황가의 무덤에 남아 있는 수많은 검들 중 검령이 남아 있는 것은 디 오더뿐이었다.
주인이 죽으면 검령도 천천히 사라진다.
오히려 시황제가 마수가 되어 살아 있는 탓에 사라지지 못한 디 오더는 존재 자체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알 수 있어. 나는 지금 네 오러로 살고 있는 거야.”
엔야를 잃은 월식 또한 언젠가 사라질 예정이었으나, 노아와의 만남으로 그 일은 유예되었다.
“어쩌면 8대 가문에 쓰던 검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는 것도 검령 때문일지도 모르지. 대화는 불가능했어도, 검령의 존재는 느낄 수 있었던 기사들이 전통을 남겼을지도.”
그 긴 세월 동안 검령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을 가능성은 낮았다.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을 뿐, 검이 살아 있다고 느낀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리라.
“검을 자신의 애인처럼 여기라는 말 같은 게 남은 것도 그 영향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월식은 피식 웃었다.
“실제로는 자식에 가깝지만 말이야.”
월식은 노아의 허리춤에서 졸고 있는 암월을 쓰다듬어 주곤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네가 만나는 건 내 기억 속에 남은 환상일 뿐이야.”
“그런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검술만은 진짜일 테니 만나보려는 거고요.”
“하지만 그냥 환상이랑은 좀 다를 거야. 사실 엔야는 오러를 통해 감정이나 기억 그 자체를 남길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었거든.”
“네?”
“언젠가 네가 나를 통해 기억을 엿볼 거라는 걸 예상하고, 일부러 기록을 남겼다는 거야.”
그들이 중앙에 접근하자 진법이 순차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인사하고 와.”
복잡한 진법의 발동을 중단하고 다시 준비하려면 한참 걸린다.
노아는 어쩔 수 없이 발동하기 시작한 진법에 맞춰 월식과 검혼을 이루었다.
그에 따라 월식의 심상세계가 단순한 정신공간을 벗어나 현실에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암자가 자리한 황가의 무덤.
마스터 나이트들의 검이 꽂혀 있는 그 언덕에, 한 여성이 월식을 들고 서 있었다.
“반가워 아들. 이 기억을 보는 시점의 네가 몇 살인진 모르겠지만 오러로 기억을 엿볼 정도니 지금의 나보단 강하겠지? 턱수염이 무성한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미래의 아들을 상상하며 말했다.
“대화도 어떤 주제로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도 같은 검술을 익혔을 테니 이건 가능하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완성되지 않은 성련검이었으나, 지금은 그 안에 이 세계의 바탕이 되는 월식이 깃들어 있었다.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분이셨네.”
월식을 든 엔야에게 맞서 노아는 암월을 뽑아 들었다.
미하엘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서늘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