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241
노아가 기승전결의 원본을 접하는 동안 전쟁기념관에 있던 다른 이들도 제각기 월식의 기억에 접속했다.
심상세계의 기억은 단순히 영상을 보여줄 뿐인 선술과는 다르다.
오러에 새겨진 기억과 연결되면 직감적으로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개관식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사들.
그들은 기억의 주인이 펼치고 있는 검술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이것이 검령과 하나 되기 위한 최소한의 실력이란 말인가.”
“검령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자가 있었다니…….”
노아를 통해 검혼의 개념이 이미 알려져 있었기에 더더욱 기사들은 자신과 엔야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의 전쟁 내내 실제로 목격한 이들은 극소수였던 종말급 마수까지도.
“저런 괴물이 실존했었다고?”
월식의 기억이 진행됨에 따라 그 내용에 감탄하는 자도,
호승심이 끓어올라 자신도 검을 뽑아 들고 전투의 내용을 따라가 보는 자도,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예전의 자신을 바라보는 자도 있었다.
카인은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다시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이 슬픈 모습이 아니면 좋겠어. 그러니 웃어줘.’
엔야의 말에 과거의 카인은 웃었다.
그 표정은 자신이 보아도 처참하리만큼 헝클어져 있었다.
“저런 꼴을 보면서 잘도 고맙다고 했네.”
딴에는 안간힘을 써서 웃은 것이었지만 옆에서 보면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도 엔야는 덕분에 안심했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보고 싶었던 그 미소는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다.
“굳이 몰래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월식은 카인에게 해당 기억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진법의 힘으로 이 공간에 접속한 사람의 수만큼 의식을 나누어 제각기 기억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아가 있는 쪽에서는 엔야를 보조하여 그녀의 검집으로서 함께 싸우고 있었지만, 이쪽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
“내 얼굴 보면 기분 잡칠 인간들이 많아서. 이런 좋은 날에 굳이 그럴 필요는 없잖아?”
“광휘제의 이야기라면 딱히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반역죄는 사라진 카인이었으나, 그는 이번 개관식에 몰래 잠입했다.
마스터 나이트가 즐비한 곳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진짜로 정체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노아한테는 인사하고 가. 그 녀석은 진작 알아챘지만 모른 척하고 있는 거니까.”
“하여간 아들이 너무 잘난 것도 생각해 볼 일이군.”
그러던 중 카인은 월식의 반응에서 노아의 전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검혼의 싸움에선 종이 한 장 차이라도 실력이 더 뛰어난 쪽이 압승할 텐데?’
마스터 나이트간의 싸움이 상성에 달렸다면, 검혼은 절대적인 수준이 높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심상세계의 주인은 그 안에서 절대적이므로 상대의 심상세계를 덮어버린 시점에서 끝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카인은 노아가 쉽게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누가 이기고 있는 거지?”
“14전 14무. 아, 이제 15무네.”
“비등하다고?”
“엔야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강했던 거지.”
물론 이것은 월식의 예상도 뛰어넘은 것이었다.
월식은 엔야의 검집으로서 노아가 강하다는 걸 알아도 심정적으로 엔야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엔야는 실제로 강했다.
“싸우면서 실시간으로 노아가 하는 걸 보고 배우더라.”
“기억 속의 모습에 네 주관이 너무 들어간 거 아닌가?”
“나는 검집이지 기사가 아냐. 내가 모르는 검술을 갑자기 펼치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기억 속 엔야는 실제로 그녀가 남긴 오러를 바탕으로 구현되었다.
그 말인 즉, 월식이 만들어낸 엔야는 실제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만 할 수 있다는 뜻.
“이미 생전에 저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거야.”
그 말에 카인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 저쪽에선 엔야가 노아의 검술을 보고 배우고, 노아가 또다시 그걸 보고 배우는 순환이 일어나고 있어.”
“그게 가능한 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가능한지 따질 필요도 없지. 하지만 계속 이어지진 못할 거야.”
노아가 상대하는 엔야는 어디까지나 기억 속 존재.
모르는 걸 보고 배울 순 있으나, 못하는 걸 할 수 있게 발전하진 않는다.
생전의 경지에서 가능한 것만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검혼에 이르렀지만 검령과 만나지 못했으므로, 실제 경지에 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었다.
“엔야는 딱 생전의 경지에 맞는 수준까지만 성장할 거야.”
“……아들만 너무 잘난 게 아니었군.”
* * *
누구나 실제 대전쟁 시절의 전투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전쟁기념관은 별의 전당에 이어 새로운 기사들의 성지로 떠올랐다.
그로 인해 기사들의 평균적인 실력이 다시 한번 급상승했으나, 노아와 그의 동기들이 따라잡히는 일은 없었다.
다른 이들이 성장하는 이상으로 그들은 더 많이 성장했으므로.
그리하여 노아는 예상보다 더 빠른 시간에 검혼의 숙련 단계를 넘어, 마스터에 이르렀다.
“달까지 가서 입문, 신대륙에서 종말급 마수를 하나 더 잡으며 숙련, 그리고 이걸로 검혼도 마스터인가.”
노아의 말에 암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 관리를 위해 교대로 깨어 있던 것도 이제는 끝.
이제는 노아와 암월이 함께 깨어 있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미뤄둔 일을 하러 가볼까? 더 이상 기다리게 만들 순 없으니까.”
베로니카가 오해로 자폭한 그날.
노아는 그 뒤로 그녀가 오해하지 않았다면 벌였을 일들에 대해 듣게 되었다.
광휘제의 교육대로 엄격하면서도 치밀한 성격으로 자란 베로니카지만, 그런 그녀도 연애에 관해서는 서툴렀다.
노아를 돌아보게 만들기 위하여.
베로니카는 오직 그 한 가지 목표로 수많은 일들을 꾸며두었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녀는 장차 황위를 이어받을 사람이었다.
굳이 노아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남자를 고를 수 있는 입장.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베로니카는 노아를 골랐다.
심지어 작정하고 일을 꾸며가면서까지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나도 그 마음에 정면으로 응해줘야지.”
타인의 호감을 사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하물며 그것이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녀라면 더더욱.
하지만 자신이 유리한 입장이라고 해서 호감을 인질로 잡아 사람을 휘두르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러니까,
“거기 지나가는 황태녀님.”
“오늘 연습은 금방 끝나셨네요? 요 며칠은 계속 전쟁기념관에 박혀계시더니.”
이제는 제대로 말해보자.
“나도 네가 좋아.”
바람이 불고, 정원의 풀들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베로니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방금 말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물론 마스터 나이트의 청력이 방금 그 말을 놓쳤을 리는 없었다.
침묵이 이어졌지만 거북함은 없었다.
“다음부터 그런 중요한 말은 빨리빨리 하도록 하세요.”
“네, 그러도록 합지요.”
“정식 프러포즈는 따로 하시도록 하고요. 예물 같은 건…… 맡겨놓으면 이상한 걸 구해올 것 같으니 나중에 같이 고르고요.”
“보석상을 부르는 것보단 데이트 삼아 직접 나가는 게 좋겠네.”
“그리고 지금은 일단 안아주세요.”
“응.”
노아는 깡총깡총 품속으로 뛰어든 베로니카를 웃으며 받아들였다.
황궁의 회랑 한복판에서 두 사람은 거리낌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머리도 쓰다듬어 봐.”
“이렇게?”
“좋아한다고 더 말해줘.”
“완전 강아지 다됐네. 이런 성격을 어떻게 죽이고 살았대?”
좋아한다는 대답 대신 딴소리가 나오자 베로니카는 노아의 품에 안겨서 그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귀여우니까 더 좋아졌어.”
그 말에 베로니카는 만족했다는 듯이 웃으며 품속에 얼굴을 묻었다.
“이젠 안 놔줄 거야.”
“여기까지 와서야 말을 놓는구나?”
“이제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녀는 노아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웃는 게 예뻐.”
“읏……!”
“인상 팍 쓰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네.”
그 말에 일부러 입을 삐죽 내밀며 짐짓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이제 와서 그래봐야 귀여울 뿐이었다.
피식.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직접 말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로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구. 검술도 마찬가지야. 쌍둥이의 경우를 봐서 알잖아?”
기사들이 검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검술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알고 있더라도 계속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일도 있다.
카인이나 광휘제가 그랬듯,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그에 대해선 엄마한테 많이 들었지.”
엔야는 검술을 수련하며 어느 순간 오러를 통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 모든 기억을 남겨둘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런 뒤부턴 기억 속에 꾸준하게 모든 일이 끝난 후 남겨질 이들에 대한 말들을 남겨놓았다.
노아가 엔야를 어머니 대신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살아선 듣지 못할 테니 나중에 많이 불러달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
“좋아해.”
“저도요.”
“그럼 바로 날짜부터 잡아볼까?”
* * *
공공장소에서 서로 껴안고 난리를 부렸으니 당연하게도 소문이 퍼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덕분에 노아와 베로니카는 제대로 된 연애를 맛볼 새도 없이 현실적인 결혼 준비 과정에 들어가야 했다.
“청첩장도 안 보냈는데 왜 벌써 축의금이랑 선물이 쌓이냐.”
어차피 약혼한 시점부터 두 사람의 결혼은 시기가 문제일 뿐, 확실시된 상황이었다.
덕분에 소문이 퍼지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축하 메시지와 선물이 쏟아졌다.
미래의 권력자를 향한 눈도장 찍기도 있었고, 순수하게 기사로서 존경해 보낸 이들도 있었으며, 그냥 놀리기 위한 것도 있었다.
“선물 중에 기저귀도 있는데? 심지어 수제작이야.”
“누가 보낸 건데?”
“아슬란 선배.”
“……지명수배 걸어둘게. 생사불문으로 하면 되겠네.”
한편 광휘제도 소문이 퍼지자마자 두 사람을 호출했다.
“결혼식은 즉위식이랑 동시에 하는 게 나을 테지? 바쁜 사람들을 몇 번이고 부르는 것도 일이니.”
제국은 넓다.
초승달 군도쯤 되는 곳이라면 스텔라리움까지 오는 것만 해도 한참이니 큰 행사를 연달아 하긴 쉽지 않았다.
“그게 좋겠네요.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한테 축복받고 싶으니까요.”
“아잇,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광휘제는 노아의 말에 몸을 배배 꼬는 자신의 후계자를 보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으나 사랑을 하는 여자는 뻔뻔했다.
“돌겠군.”
철인 후계자를 만들겠단 노력의 결과는 반쯤 녹은 마시멜로우처럼 말랑말랑한 무언가였다.
“이참에 물어보도록 하지. 혹시 결혼식에 관해서 리퀘스트 같은 게 있나?”
“아, 그거라면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이어지는 노아의 설명을 모두 들은 광휘제는 한마디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쌍으로 돌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