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242
노아와 베로니카의 결혼은 대륙 전체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해외에서는 호시탐탐 자신들을 짓밟으려 했던 광휘제의 시대가 끝난다는 것만 해도 축제 분위기였다.
제국 내에서는 기사들의 신이나 다름없게 된 노아가 또 어딘가로 사라지는 대신 이곳에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다.
이는 기사가 아닌 일반 제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전쟁의 여파로 집과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당장의 생활이 문제였다.
노아는 신대륙에서 가져온 영약과 별의 파편을 풀어 제국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고 돈을 푼 경력이 있었다.
위대한 기사보단 당장 밥벌이를 해결해 줄 사람이 더 급했던 이들에겐 노아야말로 구원자가 따로없었다.
그런 양반이 황위계승자와 결혼한다니 앞으로 정치도 좀 잘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노아는 새로운 검술의 전파와 보급을 원했고, 새로운 검술에는 검령과의 교감이 필수적이었으며, 검령을 형성하기 위해선 성련검이 필요했으니까.
이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신대륙에서는 기사를 필요로 했고.
-뚫었습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좋아 지금부터 하구로 들어간다!”
중간 연결책을 통한 전음이 들어오자마자 펠릭스는 선단 전체에 지시를 내렸다.
펠릭스의 지시에 연안에서 대기 중이던 선단이 차례차례 강의 하류로 들어섰다.
이미 몇몇 오지나 바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마수가 토벌된 구대륙과 달리, 신대륙은 아직 인간이 사는 곳보다 마수가 사는 곳이 더 많았다.
마을 밖을 나서면 당장 마수가 돌아다니는 이곳에선 식량 수급이 힘드니 도시의 규모도 커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검술을 전파한 시황제가 없었을 경우의 구대륙 같은 모습.
정확히는 시황제가 검술을 전파하기 전에 마수가 되었고, 그걸 노아가 쓰러뜨린 것이 지금의 신대륙이었다.
마술은 분명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기술이지만, 검술에 비해 직접적인 전투에 활용하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마수를 몰아내고 인간의 문명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검술에 비하면 전파가 힘든 것.
덕분에 구대륙의 환경은 각각의 도시가 육지 위에 섬처럼 떨어진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걸로 강줄기 상의 도시들은 전부 연결할 수 있겠군.”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온갖 마수의 시체들이 떠내려왔다.
비타가 이끄는 부대가 상류에서 강줄기를 막고 있던 수장룡 무리를 쓰러뜨리고 길을 뚫어준 흔적이었다.
“이걸로 1차 개척사업도 완료로구만? 집에 돌아갈 수 있겠어.”
로젤리아는 강변에 남은 마수들을 앉은 자리에서 처리하며 말했다.
신대륙은 넓다.
때문에 제국의 개척사업도 장기간,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몇 년씩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벌써 돌아갈 날인가요. 그렇다는 건 그 두 분의 결혼식도 곧이네요.”
“그쪽은 오히려 이제야 하는구나 싶지만.”
“여기서 만든 영약이랑 포션을 왕창 들고 갈 테니 선물은 따로 필요 없겠지?”
그러는 사이 멀리서 비타가 마수의 사체 위에 서서 손을 흔들어대는 모습이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후딱 마무리하고 돌아갑시다.”
* * *
레지나는 결혼식과 황위계승식을 앞두고 일찌감치 스텔라리움으로 올라왔다.
나이트레이 학교장에게는 시원석을 지킬 의무도 있었기에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축사를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건지. 할 말도 없는데.”
결혼식의 축사를 맡게 된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면 이런 자리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진작 하는 것이 그녀였다.
덕분에 레지나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이런 상황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이 둘이 결혼하는 데 대충 할 순 없는데. 하지만 나는 딱히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란 말이다.’
평소 냉철하고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그녀답지 않게 이번만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녀였지만, 이번 것은 심정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사소하지 않았으니까.
“으으으음…….”
덕분에 숙소에서 검 대신 펜을 붙잡은 레지나는 한참 동안 그대로 멈춰 있었다.
차라리 둘이랑 검을 들고 싸우라면 제법 괜찮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축사로 할 말이 없어서 칼질이라니 그건 카인도 안 할 짓이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펜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맥을 끊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그 말에 방으로 들어선 것은 화제의 예비 신랑이었다.
“차려입고 다니니 신수가 훤하구나.”
“손님들께 인사드리러 갈 거라고 하니 아예 메이크업부터 다 손봐주시더라고요.”
노아는 멋쩍게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들 사이에 멀리서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느니 하는 인사는 필요 없었다.
애초에 당장 며칠 전, 레지나가 자리를 비워도 되도록 나이트레이에 진법을 설치한 것이 노아였으니까.
“감사합니다.”
“무얼.”
레지나는 뭘 또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작게는 축사를 해주시기로 한 것부터 크게는 대전쟁 당시 제국을 구해 주신 것까지 많지요.”
“그건 언니가 감사받을 일이지.”
“아뇨. 그것과는 별개로 레지나 님이 없으셨다면 피해가 엄청났을 것도 사실이니까요.”
엔야가 종말급 마수를 제압한 뒤에도 놈이 만들어낸 수많은 재해급 마수들이 남아 있었다.
광휘제가 종말의 오러를 손에 넣은 것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뒤의 일.
레지나가 없었다면 종말급 마수를 잡고도 제국이 망해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내심 항상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거냐.”
“걱정 마세요 그냥 선물 하나를 전해 드릴 뿐이니까요.”
노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국소적인 심상세계가 펼쳐지며 그의 기억이 레지나에게로 흘러들어 왔다.
그것은 대전쟁 당시 레지나를 따르던 2기사단 단원들의 기억이었다.
“그분들의 오러는 레지나 님의 무형검에 남을 정도로 명확했죠. 그렇다면 검령도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검령이 남아 있을까 싶긴 했지만 놀랍게도 전원 검령이 남아 있었다.
당시 전사한 기사들의 자식들이 성련검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기사로 활동하고 있던 덕분.
“그분들께 이미 검령이 형성된 검임을 알려 드리고 제가 접촉해도 될까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해 주시더군요.”
그리하여 노아는 당시 2기사단원들의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어차피 레지나는 그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고, 전쟁 후에 사례집을 모으는 과정에서 상세히 기록을 남겼다.
다만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도 관점이 달랐다.
“마지막까지 그곳에 남은 분들 중 레지나 님을 원망하고 있던 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실은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단장을 원망하고 있진 않았을까.
혼자 살아남아 놓고 뻔뻔한 년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부하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괜찮다고 말해주리라.
하지만 이미 죽은 이들에게 물어 대답을 들을 순 없는 이상 그건 자신의 생각에 불과했다.
노아는 지금 그 모든 생각들이 자신의 현실도피 따위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그런가. 녀석들은 이런 생각으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레지나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강인한 인물이었다.
다만 그것이 아예 과거를 신경 쓰지 않는단 소리는 아니었다.
기억을 통해 당시 부하들의 감정과 생각을 직접 확인한 레지나는 작게 웃었다.
그간의 걱정이 쓸모없는 것이었음에 대한 허탈함이기도 했고, 안도이기도 했다.
“고맙구나.”
“뭘요.”
노아는 레지나가 그랬던 것처럼 뭘 그런 말을 다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레지나는 그런 노아를 바라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축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 * *
결혼식이 황가의 무덤에서 진행되기로 결정된 후, 황족이 아닌 이들의 출입을 막는 법안 또한 폐지되었다.
“폐하께서 용케도 이런 요구를 허락해 줬네.”
“우리 요청이 아니더라도 슬슬 바꾸긴 해야 했으니까.”
황가의 무덤은 제국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시절에 스텔라리움 황궁 내에 만들어졌다.
건국 초기에는 아직 바깥에 마수가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묘지도 안전한 성벽 안에 만들어야만 했다.
다만 지금처럼 제국이 커지고 나자 슬슬 황가의 무덤도 새로 묘지를 만들 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황족만이라고 해도 이미 천 년이나 지속된 제국의 역사 속에서 황족의 피가 이어진 가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마스터 나이트만이 묻히는 곳이라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것도 최근에는 마스터 나이트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가면 몇 세대 안 가서 황가의 무덤이 꽉 찰 테니 결정을 하긴 해야 했다.
“원래부터 전부 이장하고 추모공원으로 만들 생각도 있으셨다고 하니. 황위에서 물러나기 전에 괜히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자기 책임으로 하시려는 거겠지.”
“그럼 우리는 나중에 여기 묻히는 게 아냐?”
“여기가 아니더라도 함께일 테니 괜찮아.”
노아의 말에 베로니카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덤까지 나와 함께해 줄래?”
동시에 노아가 내민 것은 결혼 목걸이.
손을 자주 사용하는 기사에겐 결혼반지 대신 목걸이 쪽이 일반적이었다.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인적 드문 곳에 부르나 했더니만.”
프러포즈는 따로 해달라.
노아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황녀님 꼬시는 거면 중대 사항이지.”
“꼬셔진 건 이미 한참 전이거든?”
베로니카는 그렇게 말하곤 목을 내밀었다.
“좋아, 걸어줘.”
노아는 베로니카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기 위에 몸을 숙였다.
양팔이 목 뒤로 돌아간, 상대를 껴안는 듯한 자세.
거칠게 움직여도 출렁이지 않도록 초커 형태로 된 목걸이가 베로니카의 목에 채워졌다.
그리고,
“……!”
물러나려는 노아의 턱을 베로니카의 손이 잡은 찰나,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짧은 입맞춤.
직후 베로니카의 팔이 노아의 목을 휘감으며 다시금 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고 또다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떨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키스가 이어졌고.
100번째의 키스 후에야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있었다.
“이걸로 버킷리스트 첫 번째 항목은 완료.”
“저번에 관두라고 했던 그거? 그거 아직 폐기 안 했구나?”
“소감은?”
노아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관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은 연일 과감해져 먼 훗날.
제국의 황금기를 이끈 여명제와 월영검신의 이야기는 새롭게 탄생한 신랑신부들의 지침과도 같은 일화가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시간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