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36
국사(國師).
나라의 스승.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불리지만, 그런 황제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처음부터 강한 건 아니다.
당연히 황제에게도 검술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필요했다.
국사란 바로 그 황제의 스승을 일컫는 칭호였다.
“그러니까 제 할아버지가 현 황제의 스승이었던 사람이란 말이죠?”
“그렇지.”
“학교장님도 할아버지께 검술을 배웠고요?”
“국사께선 황족뿐만 아니라 당시 황실 기사들의 스승이기도 하셨다.”
“에이 씨, 왠지 더럽게 세더라!”
한창 때의 나이인 노아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상대로 지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노아는 그간 할아버지를 이겨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고, 모두 실패했다.
“황제의 스승씩이나 되던 사람이면서 이길 때마다 손자를 놀려댔던 거라니. 너무하네 진짜!”
“보아하니 엄청 당한 모양이구나.”
‘네 검술이 너무 형편없어서 네가 벤 마수가 쓰다듬는 건 줄 알고 머리를 들이밀겠다!’ 같은 소리는 아직도 꿈에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하루라도 검 관리를 게을리하면 ‘100년 된 우리 할머니 과도도 그것보단 날카롭겠다!’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더 무서운 건 그게 진짜라서 뭐라 할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그 과도는 지금도 오두막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과일을 도륙 낸 검이리라.
“그럼 레지나 님도 저랑 같은 검술을 익히신 건가요?”
“단둘일 때는 친근하게 사저라고 불러도 된다만. 질문에 대한 건 아쉽지만 아니다. 나는 다른 검술을 익혔지.”
레지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검들을 톡톡 두드렸다.
무형검 오의, 검의 정원을 제외하고도 그녀는 무려 4자루에 달하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검을 사용했다.
노아가 가장 보편적인 종류의 장검을 사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 검술이 이런 검을 이용하는 것도 최대한 다양한 검기를 활용하기 위해서겠지.’
일반적인 만큼 범용성도 높다.
여러 속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이라면 이런 검을 사용하는 것도 필연적이리라.
“네가 사용하는 검술은 스승님이 은거 후 만들어내신 거다.”
“그런 것치곤 잘 알고 계시던데요.”
“개념 자체는 그전부터 있었으니까. 언제고 새로운 검술을 만들겠노라 장담하셨지만, 워낙 바쁘셔서 힘들었지. 스승님의 은거 또한 반쯤은 새 검술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
경험을 쌓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긴 했지만, 꼭 나이트레이를 다닐 필요는 없었다.
굳이 나이트레이의 추천장을 쓴 건 레지나가 현재 학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니 스승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네 검술을 좀 봐주도록 하마. 네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건 알고 있겠지?”
“속성변환도 검술의 특성으로 얻은 편법 같은 거고. 아직 무형검도 안 되니…… 할 게 많긴 하죠.”
“내가 과제를 내주마. 연말제 전까지 랭킹 100위 안에 들어가라.”
“하이 랭커가 되라는 건가요?”
어차피 1등을 목표로 하던 노아에겐 딱히 문제될 것 없는 과제였다.
다만 랭킹 제도를 생각하면 시간제한 안에 가능할지 어떤지는 해봐야 알 수 있었다.
“과제에는 적절한 보상도 있어야겠지. 만일 네가 성공한다면…….”
“성공한다면?”
“진짜 흑천을 가르쳐 주마.”
* * *
나이트레이에서는 분기별로 1년에 4학기를 진행한다.
선발전이 끝난 지금, 대부분의 수업은 막바지에 이르러 학점을 확정 짓는 기말 시험이 진행되었다.
필기로 치러지는 교양 시험은 결과도 그 자리에서 바로 나온다.
시험을 끝낸 노아는 강의실에 남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떠는 거 아냐? 결승전에서는 하나도 안 떨더니 뭐 이런 걸 가지고 떨어?”
“카를로스 너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교양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서 낙제가 나오면 골치 아파진단 말이야.”
“하긴 신입생 첫 학기에 상위 랭커를 찍은 놈이 그대로 연속 낙제점 받고 퇴학당하면 전설이 될 수 있겠군.”
“그래도 한번 낙제로 퇴학은 아니거든? 이번에 낙제 받아도 기회가 있긴 하거든?”
다만 학기 초부터 공부할 과목을 선택과 집중했던 노아였다.
집중하고도 낙제를 받을 정도면 당연히 다음 학기도 위험하다고 봐야 했다.
“난 최선을 다했다고. 이젠 기도밖에 할 게 없어.”
“아, 결과 나왔다.”
카를로스의 말에 고개를 들자 조교가 강의실 칠판에 공지를 달고 있었다.
강체술을 배운 학생들은 멀리서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이들 사이에서 탄식과 환호가 흘러나왔다.
위에서부터 등수별로 적힌 성적표에서 노아의 이름은 11번째에 위치해 있었다.
“오.”
입학 당시 100명을 넘었던 신입생들은 재시험을 통해 68명까지 줄어들었다.
68명 중 11등.
낙제를 피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진짠가? 진짜 내가 11등이라고?”
“뭐야, 노아 너 공부 잘하잖아? 속인 거냐?”
“아니, 학기 초에 수업할 때마다 죽 쑤던 거 너도 봤잖아.”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중간만 가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입장에선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펠릭스가 1등, 티우가 2등을 했으나 그 둘은 각자 랭킹전이 있어 시험을 끝내자마자 나간 상태였다.
“뭐야. 카를로스 너 31등이잖아? 공부를 가르쳐 주겠다더니 나보다 낮은데?”
“이, 이 학교에서 교양을 열심히 하는 녀석이 이상한 거라고!”
“랭킹도 나보다 낮은데?”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패배자가 현실도피를 시작했군.”
“으아아아 패배자라니! 내가 패배자라니!”
노아의 순위를 확인한 동기들은 다시 봤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검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노아이지만, 일반 과목은 답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수업을 같이 듣는 동기들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위권 성적을 받아냈다는 건, 그만큼 엄청나게 공부를 했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노아는 다른 교양 수업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오, 이것도 15등이다.”
“야, 이건 8등인데?”
“여긴 21등이네. 상위권인데 아쉽다고 느껴지는 날이 올 줄이야.”
노아의 고득점 소식은 금방 교내에 퍼져 나갔다.
실력에 대해선 다른 학생들의 인정을 받은 지금도 이 학교에는 노아를 좋아하는 사람보단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만 이전까진 쥐뿔도 없는 주제에 튀는 걸 싫어했다면, 이제는 순수하게 그 실력을 질투하는 이들이 늘었다.
인정하긴 싫어도 나이트레이의 강자 중 하나로 꼽을 만하게 된 것.
“진짜로 네 말처럼 다른 애들이 교양에는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의외로 공부에도 자질이 있었던 건지.”
“이쯤 되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냥 공부도 잘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성적에서도 졌다고 실망하지 마라, 카를로스. 상대가 나였으니까. 비가 오면 옷이 젖듯 당연한 일이야.”
“으으, 재수 없는 놈……!”
노아는 신나게 깐족대며 카를로스를 놀려댔다.
“저기 노아?”
“응? 너희들은…….”
“혹시 주말에 다른 예정이 없으면 우리랑 놀러가지 않을래?”
기대 이상의 성적에 싱글벙글하던 노아에게 동기인 여자애들이 말을 걸어왔다.
다른 동기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인 노아였지만 그래도 얼굴 정도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노아가 가만히 있어도 외향적인 성격의 동기들이 먼저 접근해 오는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던 것.
다만 신기한 것은 이번에 말을 걸어온 것은 정도의 학생들이라는 점이었다.
“나랑?”
“솔직히 말하면 네가 펠릭스를 데려오길 기대하고 있는 거지만. 너만이라도 상관없어.”
“진짜 솔직하네.”
노아와 같은 기수의 정도 학생이라면 누구나 펠릭스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정작 펠릭스는 사도인 노아와만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아마 다리를 놔주길 원하는 것이리라.
“근데 이 학교에 놀 만한 곳이 있어?”
“학교 밖으로 나갈 거야. 매 학기 종료 후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리거든.”
학교가 한가해지면 단번에 수만 명의 한가한 사람이 생기는 셈이었다.
근처 상인들 입장에선 놓치기 아까운 대목이니 아예 작정하고 판을 키운 것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대도시의 축제라는 말에 관심이 동했다.
노아는 이곳에 오고 나서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재미있었다.
단순히 사람이 많다는 점도 신기했고, 검술을 배우는 입장에서 수많은 오러가 동시에 감지되는 것도 감각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펠릭스도 꼬셔봐야겠네. 내가 봤을 때 걔는 친구가 필요해.”
맨날 혼자 있고 싶어 한다고 진짜 혼자 내버려 두면 졸업할 때까지 혼자일 놈이었다.
카를로스는 그런 노아를 보며 눈을 흘겼다.
“본심은?”
“동기 중 제일 돈 많은 녀석을 놓고 갈 순 없지.”
* * *
펠릭스의 거절을 거절했더니 어디서 소문이라도 났는지 놀러 나갈 인원이 단숨에 급증했다.
거의 동창회가 되어버린 나들이에서 노아는 펠릭스를 동기들에게 던져주고 슬쩍 밖으로 빠져나왔다.
펠릭스는 구해달라는 듯이 노아를 바라봤지만 노아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쟤 무슨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너를 보고 있는데 무시해도 되는 거야?”
“하지만 저기 잡혔다간 기껏 놀러 나온 게 하루 종일 남의 가정사나 듣다가 끝날걸.”
“펠릭스는 그래도 되고?”
“정확히는 그래야 되고.”
티우는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이 노아를 바라봤다.
“펠릭스가 정도 애들을 붙잡고 있으면 적어도 우리 기수에선 정도와 사도가 싸울 일은 없을 테니까. 이 학교는 사실 협력할수록 유리하단 건 알고 있잖아?”
“생각보다 계산적인 성격이었구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서로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 의미에서 다음 학기에는 사도 쪽 동기들과도 좀 친해져 볼 생각이었다.
정도에 8대 가문이 있다면, 사도에는 검림(劍林)의 4대 문파가 있었다.
검림은 암부기사 위주이기에 정확한 비교는 힘들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8대 가문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상대와의 승부는 실력보다 얼마나 조사를 많이 했냐에 달렸잖아? 그리고 랭킹전은 단판제고.”
“작정하고 랭킹을 올릴 생각이구나?”
“누구랑 내기를 하나 했거든.”
대충대충 하기에는 걸린 게 너무 컸다.
“할 때는 철저하게 해야지.”
티우는 그런 노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를 열심히 메모했다.
“뭐야 그 메모는? 설마 라이벌 메모? 평소에 내 약점 같은 걸 적어놓는 거야?”
선발전에서는 패했지만 티우는 여전히 노아에게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티우의 꼼꼼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평소부터 정보를 메모하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어? 으, 응. 선발전 끝나고부터 정보 수집 좀 하려고.”
“나도 좀 보…….”
“절대 안 돼!”
노아가 고개를 들이밀려고 하자 티우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노아의 눈은 이미 펼쳐진 페이지에 적혀 있던 내용을 확인했다.
“좋아하는 음식이랑 싫어하는 음식은 왜 적어놓은 거야? 헉, 설마 식생활을 통해 상대의 컨디션을 흩트려 놓으려고?”
“……말을 말자.”
티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