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41
일행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시원석 안에서는 오러를 통한 육감이 작용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빛도 없었다. 대신 빛은 검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가능했다.
문제는 레지나를 제외한 일행 중 이 안에서 검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게 노아와 오필리아 둘뿐이라는 점이었다.
“집중해. 검기가 또 흩어지고 있어.”
“끄응…… 이거 완전 태풍 앞에서 촛불 지키는 기분인데요.”
몸 안의 오러를 지키는 것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외부 물체인 검에 불어넣은 오러는 휘핑 중인 계란 노른자마냥 순식간에 흩어지려고 했다.
그걸 붙잡고 있는 것은 노아의 말처럼 상당한 난도를 자랑했다.
“교대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하네요…….”
“아냐. 너희가 가능했더라도 어차피 나는 연습을 위해 검기를 만들었을 거야.”
오필리아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세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노아와 오필리아를 제외한 다른 세 사람은 기사 지망이긴 했지만 랭킹이 그리 높지 않았다.
셋 다 6,000등 미만.
이번에 신청한 수업이 성리학 수업 중에서도 가장 쉬운 개론 수업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차가 쌓인 사람들은 다른 수업으로 넘어갔을 테니까.’
노아야 랭킹이 높아도 이제 2학기이니 이런 수업을 듣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오필리아는?
“생각해 보니 선배는 몇 년차인데 아직도 이 수업을 안 들었던 거예요?”
“……묻지 마.”
“아하? 낙제 받고 이제야 다시 듣는 거구나? 괜찮아요. 쌍둥이 선배도 그래서 교양 수업 다 새로 듣고 있잖아요.”
“그쪽이랑 비교당하는 게 더 싫어…….”
사실 그녀가 황급히 날려먹은 교양 학점을 챙기고 있는 이유도 쌍둥이 때문이었다.
교양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고통받기 시작한 쌍둥이를 보면서 오필리아도 찔리는 바가 있었던 것.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몰래 들으려고 했는데…….’
하필 자기가 신청한 수업에 노아도 있었던 건 실착이었다.
노아도 성련검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든지 성리학을 들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생각지 못했다.
“두 분이 많이 친하신가 봐요?”
“아, 뭐. 매일같이 검을 섞고 있으니까요.”
“매일이요?”
“기숙사 전통이라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연습은 잘돼요.”
“와…….”
나이트레이 학생들에게 부동의 15인이란,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천재들이었다.
즉, 현세대의 유명 기사들처럼 ‘다른 세계’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
때문에 같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대하기 어려워하는 점이 있었는데, 노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세 사람은 그런 노아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슬란이 거하게 광고를 때린 덕에 검은 달에 대한 것도 교내에 꽤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다던데 어떻게 들어가신 거예요?”
“제가 들어갔을 때는 쌍둥이 선배가 없어서…….”
하나같이 노아보다 나이도 많고 연차도 높은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노아에게 존대를 썼다.
노아가 랭킹이 더 높았으니 나이트레이에선 특이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간 위쪽만 보고 살던 노아로서는 꽤나 어색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읏…….”
“저희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더 내려갈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간 1시간을 못 버티겠네요.”
천천히 한 단씩 내려가고 있었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세 사람에게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나는 이 녀석들을 위에 데려다주고 오마. 그 사이에 쓰러져 있진 않겠지?”
“걱정 마세요.”
이후부터는 노아와 오필리아만이 내려가게 되었다.
슬슬 두 사람에게도 압박감이 상당했고, 오필리아가 대화를 즐기지 않기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요가 찾아왔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오필리아 선배의 검기는 전혀 흔들리질 않네. 검술의 차이는 알고 있었지만 검기의 완성도도 이만큼이나 차이 날 줄이야.’
오필리아의 검기는 바깥에서 보던 것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안정적이었다.
그에 반해 노아의 검기는 주기적으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곤 했다.
‘같은 2단계 검기도 이만큼 완성도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단순히 더 높은 단계의 검기만 쓸 수 있는 게 다가 아니었다.
상위 랭커를 뛰어넘어 최상위권에 속한 극소수의 인물들은 확실히 전반적인 실력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허나 그런 오필리아조차 바닥에 가까워지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노아, 넌 괜찮아?”
“의외로 버틸 만한데요? 검기는 이제 안 나오지만요.”
중간부터 검기를 뽑을 수도 없게 된 노아에 반해 오필리아는 힘겹게나마 검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점을 보면 분명 오필리아의 오러 통제력이 훨씬 강한 건 확실한데, 의외로 더 멀쩡해 보이는 건 노아였다.
“힘들면 검기는 꺼두는 게 어때요?”
빛도 없고, 육감도 교란되고, 강체술 효과도 떨어져 오감도 약화된 상태다.
하지만 단순히 버티는 거라면 굳이 불을 켜둘 필요가 없었다.
“그래야겠어.”
오필리아는 바닥을 확인하고 검기를 껐다.
두 사람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손을 잡은 채 최하층에 도착했다.
시원석의 중앙은 그냥 동그랗게 파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도착한 시점에 이미 그 점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강체술은 진작 깨졌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러가 최대한 늦게 빠져나가게 버티는 것뿐.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숨이 턱 끝까지 찬 채로 끓는 물속에 처박혀 발가락으로 바늘에 실을 꿰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바늘이 죄다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오필리아조차 그렇게 느낄 정도였으니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러다간 학교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못 버틸지도.”
“버틸 만한 것 같은데요?”
“……응?”
그제야 오필리아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잡고 있는 노아의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노아의 강체술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떻게?”
“비슷한 걸 많이 겪어봐서요.”
진법.
산속에서 살던 시절 노아의 할아버지는 수시로 진법을 깔아 노아를 엿 먹이곤 했었다.
마수를 사냥하고 있는데 갑자기 검기가 동결된다든가, 절벽을 건너뛰는데 갑자기 강체술이 꺼진다든가.
노아가 보기에 시원석 내부의 환경은 그러한 진법에 걸렸을 때와 비슷했다.
“검기는 안 나오지만 오러가 빨려나가는 건 막을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해?”
“싸움이 길어질 때 버티기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뒈지는 수가 있었거든요.”
“뭐야 그게.”
노아는 할아버지가 진법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면 항상 돌아와서 따지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실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만 했다.
‘구라인 줄 알았는데. 진짜인가?’
만일 할아버지가 가르쳐 줬던 것들이 사실 다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면.
의외로 노아는 아직도 자신의 실력을 다 내고 있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
‘솔직히 경험 부족은 어느 정도 해결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배우긴 했지만 아직 못 써먹어본 기술들이 몇 개 있긴 했다.
현시점의 스펙으로는 못 써먹을 거라 생각한 거지만, 의외로 방법을 모를 뿐일 수도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진짜 어디까지 큰 그림을 그려놓은 건지 모르겠네.”
“슬슬 무리.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네?”
오필리아는 노아의 손을 놓고는 쭈그려 앉아선 곰 가죽을 뒤집어썼다.
“뭐 하세요?”
“에너지 절약모드.”
“앗 그럼 저도.”
그리하여 레지나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완전히 사우나 오래 버티기 대결이라도 한 것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 * *
“슬슬 확인하러 가볼까.”
레지나는 일부러 다른 학생들을 데려다주고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2시간을 기다렸다.
앞으로 하려는 훈련을 위해선 확실하게 두 사람이 탈진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빠르게 감을 잡게 해주려면 완전히 오러가 바닥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낫겠지.’
빌빌대고 있을 자신의 학생들을 놀려줄 마음에 희희낙락하며 내려간 레지나는 이내 두 사람이 아직 멀쩡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감탄했다.
“솔직히 말해서 너희가 이걸 버틸 거라곤 생각 못했다만.”
“안 그래도 슬슬 정신이 혼미해요.”
땀방울이 계속 눈에 들어가 따가웠지만 그걸 닦기 위해 팔을 들 힘도 없었다.
오필리아는 그런 노아보다도 더 상태가 안 좋아서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첫날부터 최하층에서 두 시간이나 버틸 줄이야.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베로니카보다 더한 기록이었다.
물론 베로니카는 작년 일이었으므로 훨씬 더 랭킹이 낮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럼 바로 다음 단계로 가지.”
“죄송한데 지금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못하겠거든요?”
“오늘 다 하라고 안 할 테니까 일단 설명이나 들어라.”
레지나는 두 사람 앞에 적당히 걸터앉았다.
“너희 두 사람은 자신의 성련검을 가지고 있지. 이번 학기에 너희 둘은 성련검을 완성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
성련검의 완성.
그것은 주인의 오러에 완전히 동화한 성련검이 스스로 다음 단계로 탈태하는 현상을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탈태를 이룬 성련검은 엄청나게 강력해진다.
시원석과 같은 강도로 굳어 마스터 나이트와 싸우는 게 아닌 이상 부러질 일이 없게 되는 건 물론, 주인의 오러에 특화되어 검기의 위력과 유지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난다.
속성변환의 경우 숙련된 기사라도 몇 시간씩 상시 유지하긴 힘들 정도로 오러를 잡아먹었다.
때문에 완성된 성련검이 있고 없고는 아주 큰 차이였다.
“기본적으론 장기간 꾸준히 오러를 주입하면 되지만 그래서야 완성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명가의 출신이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일찌감치 성련검을 장만하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그 경우에는 기사 서임을 받고 나서야 자신의 성련검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 다 먹고 성련검을 구하면 완성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시원석의 오러를 역으로 빨아들여 자신의 검에 주입해라.”
“예?”
“시원석의 오러는 이미 탈태를 마친 오러다. 그걸 너희가 빨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검에 주입하면 재질 변환을 가속할 수 있지.”
물론 문제는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오러가 다 빨려 나갈 판인데 이걸 역으로 빨아들이라고요?”
“그게 가능해질 때쯤이면 둘 다 실력이 지금보다 한 단계 진일보해 있을 거다.”
이어진 말에 노아는 눈을 빛냈다.
“노아 너는 ‘기’를 완성할 수 있겠지.”
* * *
그리고 3개월이 흘렀다.
“경기 종료! 승자, 베로니카!”
2학기 마지막 랭킹전.
810위 노아 대 11위 베로니카의 경기.
특이할 게 없는 결과였지만, 베로니카는 그 내용에 놀랐다.
“끄응. 오필리아 선배는 일주일 전에 벌써 완성했다던데. 며칠만 더 있으면 나도 될 것 같은데 아쉽네.”
“잠깐만요, 당신! 마지막에 그거 도대체 뭐였죠?”
“아 그거? 이번에 새로 만들어낸 기술. 근데 아직 생각대로 되질 않네. 개량해야 할 것 같아.”
“방금 그게 미완성 기술이었단 말이에요?”
노아는 2학기 내내 시원석 훈련을 받으며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을 되돌아보았다.
랭킹전 내기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랭킹전까지 미뤄가며 그쪽에 몰두했던 덕에 학기가 끝나는 지금까지 랭킹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랭킹이 그대로라고 해서 실력도 그대로인 건 아니었다.
“마안에도 보이지 않는 기술이라니, 마스터 나이트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하지만 가능했지. 편견에 휩싸이면 안 되는 거야.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거든.”
노아는 이전 레지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로 대충 답해준 뒤, 재빨리 랭킹전을 마무리 지었다.
“너는 이따 학생 대표로 방학식 참석해야 하지? 시간 빼앗아서 미안. 방학 때 탑 소드에서 보자.”
“네? 잠깐만요!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도망치지 말란 말이에요!”
여름방학의 시작.
탑 소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