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smanship Genius of the Knight School RAW novel - Chapter 49
“보고 싶었다.”
그 열렬한 고백에 노아와 펠릭스는 너 나 할 것 없이 아연해졌다.
“저를요?”
‘황제가 나를 왜…… 라고 생각하기엔 확실히 그럴 만도 하네.’
초면에 저런 소리를 듣다 보니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노아의 할아버지는 바로 황제의 스승이라는 국사가 아닌가.
따져보면 노아와 광휘제 간의 연결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레지나도 노아에게 관심을 보였으니 황제도 마찬가지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옆에 펠릭스가 있는 와중에 그 점을 말로 꺼낼 수는 없었다.
‘사저가 어지간하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광휘제도 그러한 노아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펠릭스를 돌아보곤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노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고민이었다.
“음, 으으음. 으으으으으으음…….”
‘뭔가 리액션이 강렬하네.’
“스승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나?”
“뭐에 관해 물으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짜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군. 이걸 어쩐다.”
광휘제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분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면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 그렇다면 나라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멋대로 말해 버려선 안 되는 거야.”
“저기, 뭘 말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네 검술에 관한 이야기다.”
광휘제는 노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아는 왠지 그 눈빛에서 서글픈 느낌을 받았다.
“네가 배운 검술의 완성을 부탁한 건 나다. 그분께서 네게 그걸 가르쳐 주신 것을 보니 아마 완성된 거겠지.”
“……!”
“네 수준을 보아하니 기의 막바지 단계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손님이 하나 더 있었지.”
광휘제는 말을 하다 말고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 행동에 펠릭스는 화들짝 놀라 한쪽 무릎을 꿇으려고 했으나, 광휘제가 제지했다.
덕분에 자기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 고민하던 노아는 그냥 가만히 서 있기로 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 따져보면 방금 전까진 아예 나한테 검을 휘두르고 있지 않았나?”
“읏, 그건……!”
“노아를 보겠다고 몰래 참가한 건 나이니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면 좋겠군.”
“명심하겠습니다.”
말뿐인 약속이었지만 광휘제는 그걸로 되었다는 듯이 다시 노아를 돌아보았다.
“공식적으로 너를 호출했다간 기록이 남을 테니 이런 짓까지 해가며 만나러 온 거다. 그러니 너도 비밀로 해다오.”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럼 저를 만나보고 싶었다는 건 검술의 완성을 확인해 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겸사겸사지. 다른 이유가 더 컸지만, 스승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면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부탁했으면서 내가 방해할 수는 없지 않나?”
“음?”
“네 검술을 온전한 의미로 완성시킬 수 있는 건 세상에 오직 너뿐이다, 노아. 나와 스승님은 그저 그걸 도와줄 뿐이야.”
노아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광휘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광휘제는 그런 노아를 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앞으로 뭔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테오도르를 통해 말해라. 상식적인 선에서 들어주도록 하지. 예를 들어 너를 내 양자로 받아달라든가.”
“……상식이요?”
“황제로 만들어달라는 건 자네 능력에 달린 문제니 내가 못 들어주지만, 저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아니면 레지나에게 졸업할 때까지 네 검술만 봐달라고 해볼까?”
“그래도 되는 겁니까?”
“한 3년 정도 나만 보면 똥 씹은 얼굴이 되겠지만 어쩌겠나. 내가 황젠데.”
레지나가 들었으면 진지하게 혁명을 고민할 소리였으나 광휘제는 사람 좋게 웃었다.
강체술로 인해 청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 그러니 참으로 상쾌해 보였다.
‘진심인가?’
제국의 황제라면 손짓 한 번에 나라 하나를 지울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런 광휘제가 하는 말이다 보니 농담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마음 같아선 조금 더 놀아주고 싶지만 나는 이만 관객석으로 빠지도록 하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에 내가 수성 측의 주력을 둘이나 붙잡고 있으면 안 될 일이니.”
“역시 이번 라운드는 베로니카가 주목받을 수 있게 일부러 판을 짜신 건가요?”
“꼭 베로니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제국에서 우승자가 나오기만 한다면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탑 소드에 손을 쓰긴 했지만 베로니카를 위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 몰래 만나기도 쉽지 않군. 그러면 대회가 끝날 때 또 만날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지.”
다음 순간 광휘제는 인사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쿠이나가 썼던 분신 같은 건 아니었다.
노아는 그게 어떤 원리로 작동한 건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광휘제가 떠나고 나자 주변의 오러가 원상태로 되돌아갔다.
골목 바깥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노아는 그제야 이 공간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펠릭스는 멀뚱히 광휘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노아에게 물었다.
“넌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스승님이라는 건 또 뭐고?”
“사실 날 키워주셨던 할아버지가 국사셨다고 하더라고.”
“……국사 빈센트 리히테나워 님?”
펠릭스에게는 이미 들킨 상황이었으니 노아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잠깐 너도 8대 가문 출신이었던 거냐? 그럼 왜 일반 학생인 척을…… 사생아? 아니, 리히테나워가는 그런 걸 따지지 않을 텐데?”
“아마 혈연은 아닐걸. 그보다 우리 할아버지가 8대 가문 출신이었어?”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냐?”
펠릭스는 그게 말이 되냐는 듯이 반응했지만 노아로서도 그런 반응은 억울했다.
아무도 말을 안 해주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보다 마수가 더 많은데.
“아무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방금 분명히 우리가 안 가면 위험하다는 듯이 말하지 않았나?”
“그렇군. 일단은 상황 확인부터 하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의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간 두 사람이 본 것은 무너져 내린 내성벽이었다.
* * *
“만남은 어떠셨습니까.”
“제 어미를 쏙 빼닮았더군. 여장 시켜놓으면 재미있겠어. 언제 한번 시도해 봐야지.”
“초상화와 같은 드레스를 준비해 보도록 하지요.”
경기에서 이탈한 광휘제는 변장을 풀고 곤룡포로 갈아입었다.
개회식에는 불참했지만 1라운드가 끝난 뒤의 라운드별 시상은 그가 직접 해야 했다.
그런 그의 시중을 든 것은 황실 선임 집행관인 벤 마이어였다.
마이어 가문의 전대 가주인 벤 마이어는 테오도르의 할아버지뻘 되는 연배였다.
테오도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벤은 황제의 집행관이었다.
황제의 대관식 준비만 3번을 치른 벤은 황실 공무원 중 최정상에 올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력한 기사인 그도 세월의 흐름은 이기지 못해 노화,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어릴 때부터 모셔온 광휘제의 신변잡기적인 일만 처리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집행관이 된 지 얼마 안 된 테오도르와는 달리 벤은 노아에 대한 일도 알고 있었다.
“펠릭스 녀석도 대단하더군. 자네가 오랜만에 나온 것도 그 아이 때문이겠지?”
“후후, 그렇지요.”
“알렌은 누가 봐도 대단한 녀석이었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는 마이어 가문의 입지가 앞으로도 확고하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저 아이는 더하군.”
“제 형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입니다. 사실 형이 먼저 태어나 먼저 검술을 배웠을 뿐, 재능은 자신이 더 뛰어난데도 말이지요.”
“알렌은 저 나이에 속성변환을 이루지 못했지. 마이어의 최연소 기록을 가진 건 엄연히 저 아이지만…… 같은 세대에 리베리 쌍둥이가 버티고 있으니 재능을 체감하기 쉽지 않겠지.”
광휘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간에서는 그를 인류 최강자라 떠들어대지만 그는 자신보다 대단한 인물을 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오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임에도, 때문에 기존의 검술을 익히지 못했음에도.
스스로 심검에 도달했던 역사상 최고의 천재를.
“미완성으로도 찬란하게 빛났던 그 검술을 완성시킨다면.”
염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 * *
수성 측의 최후방인 황궁을 지키고 있던 베로니카는 연이어 들려오는 비보에 고뇌에 빠졌다.
“적들이 성벽을 뚫고 들어왔다고요?”
“하핫! 이거 황녀님이 한 방 먹었구만!”
“허허, 시주께선 공명지조라는 말을 모르시오?”
“하아? 그게 무슨 소리냐?”
“시주는 이미 황녀와 한배를 탄 몸. 좋든 싫든 일련탁생해야 하는 상황인데 같은 편을 비웃어서야 쓰겠소?”
“그따위 거 내가 알 바냐? 난 처음부터 우승 따윌 노리고 온 게 아니란 말씀. 사실은…… 헛! 이거 아무 생각 없이 말해 버릴 뻔했군.”
수성 측의 지휘부에는 황녀인 베로니카 말고도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필리스의 외인부대나, 진화를 추구하며 별의 파편을 갈아 마시는 성식자(星食子)들처럼 미친 이들도 있었다.
미친놈이란 대체로 미친 짓을 하고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강자들이었다.
협동전에서는 베로니카라도 그들을 무작정 떼어놓을 순 없었다.
“괜찮아요. 상대의 발상이 놀랍긴 해도 근본적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호오?”
“저들이 실격 행위를 전략적으로 사용해 가며 전진할 가능성은 예상하던 바예요. 실격을 감수하는 대신 규칙의 허점을 찾아낸 건 예상외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벽을 뚫는 게 전부. 구시가지에서 막으면 되는 일이에요.”
“황녀의 말이 맞소이다.”
성식자, 스스로를 고행자들이라 불러달라 주장하는 이들도 베로니카의 말에 동의했다.
“약자를 상대로 이기는 건 당연한 일. 강자의 뼈를 부러뜨리고 피륙을 찢어야 성장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흐흐, 이 땡중들. 언제 봐도 느끼는 거지만 나보다 미친놈들이라니까?”
송곳니와 성식자들이 이렇게 분위기를 개판 내고 있으니 다른 이들은 소극적으로 상황만 볼 따름이었다.
이 상황에서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건 결국 베로니카뿐.
싫어도 자신이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성식자분들께서 구시가지에 합류해 주시죠.”
“알겠소이다.”
“그럼 나는?”
“송곳니 당신은 저와 함께 여기서 상대의 기습에 대비합니다. 제 마안은 시야에 닿는 곳만 볼 수 있으니 방어를 위해선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헤에. 네 말에 따르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놀고 있어도 된다니까 봐주도록 하지.”
지시를 확인한 이들이 물러가자 베로니카는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단합이 깨진다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이 파격적인 작전. 리카르도 왕자가 관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요.’
내성벽의 범위는 넓다.
그러다 보니 성벽 자체가 뚫린 게 아니라고 해도 어디 한군데가 뚫리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상대가 일점집중 형태로 나섰을 때의 이야기.
게다가 이번에 뚫린 곳은 나이트레이의 인원들이 배치된 곳 바로 옆이었다.
‘내심 그쪽은 병력의 과투자를 감수하고서 저희 인원들을 모아놓은 곳인데 어째서 그쪽을?’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마안을 가진 제가 나가면 상대의 움직임을 꿰뚫어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저를 끌어내는 것이 목적일지도…….’
최대한 빨리 상대의 의도를 파악해야만 하는 상황.
리카르도의 마수가 천천히 수성 측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