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106
107 : 신기한 날 (2)
신기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날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집 앞 공원에서 신지수를 만나는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 넓은 서울에서 뚝섬의 서울숲, 서울숲의 수많은 산책로 중 하나에서 같은 시간에 이렇게 신지수를 딱 마주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놀란 눈으로, 나보다 더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는 신지수가 있었다.
신지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녀석 옆에는 동행인이 있었고, 나도 아는 사람, 신지수의 사촌 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신지수의 곁에 머물던 그 시절에, 지수의 사촌 언니와 가끔씩 만나서 차를 마시고, 밥을 같이 먹었었다.
고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마음이 깊고, 어른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나를 못 봤다면 모를까, 눈이 마주쳤는데, 몸을 돌려 온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인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벼운 눈짓, 그 정도가 적당하다. 그 정도로 스쳐 지나갈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나는 결국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를 잡아 세운 사람은 지수가 아니었다. 지수의 사촌 언니였다.
지수의 사촌 언니는 나를 잡아 세우고,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벼운 잡담을 두어 마디하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우리 두 사람을 놔두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아마 신지수도, 사촌 언니를 제지하지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남아버리게 되었다.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수의 사촌 언니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지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수는 당혹스럽다는,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그렇게 남겨진 우리 두 사람은 별말 없이, 마치 그렇게 하기로 계획을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고, 불편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리운 느낌이 드는 산책이었다.
그렇게, 서로 아무런 말 없이 산책로를 따라 걷던 신지수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촌 언니와 성수동에서 밥을 먹었고, 가벼운 산책 삼아 서울숲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 안에는 사촌 언니가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 어쩐 일이야?”
지수가 물어본다.
“나 이사했어. 이 근처로.”
“…그렇구나. 몰랐어.”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지수 너머로 내 현재 거주지인 갤러리 포레스트가 번쩍이고 있다.
“언제 이사했어?”
“얼마 안 되었어.”
“…자취?”
“친척 집.”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대충 답했다.
하지만 지수의 대답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서울에 친척이 있는 줄은 몰랐어.”
지수는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헤어지기 전까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는 분. 신세를 지게 되었어.”
“…불편하지는 않아?”
“괜찮아.”
신지수는 그렇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어땠을까? 저 녀석이 여자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 끝이 났을까?
날 지그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달라는 의미를 눈빛에 담아서 말이지.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주었을 테고.
하지만 지금 신지수는 그저 쓸쓸한 표정으로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가 더 이상 물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시선을 앞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지수랑 계속 사귀고 있었다면 이야기했을까?
내가 예비 신이고,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중앙그룹이 우리 할아버지와 나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을까?
그리고 나는 받아들였을까? 집을 옮기라는 회장님의 제안을? 서현 님과의 동거생활을?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신지수가 날 떠나간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신지수가 다시 물어본다.
“…풀었네. 깁스.”
지수의 시선이 내 팔을 향하고 있다.
“어. 얼마 전에.”
“이제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는 너무 단답형으로 대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말을 덧붙였다.
“뭐 병원에서 풀어도 된다고 한 거니까.”
내 추가적인 설명에 신지수가 처음으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여전하구나.”
신지수가 그렇게 말한다.
“여전히… 자상하네. 저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내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
며칠 전, 학교에서 만났을 때, 신지수가 그랬었다. 혹시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냐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매정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추가적인 설명을 했었다.
신지수가 그때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고마웠어. 그렇게 말해줘서.”
신지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신지수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좀 섭섭했거든.”
“…뭐가?”
“저번에 학교에서 만났을 때, 길게 이야기하지 못해서.”
신지수는 잠시 주저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언니랑 밥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했어. 섭섭했다고. 그랬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언니가 자리를 비켜 준 거 같아. 나도 당황했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신지수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나 너무 이기적이지?”
신지수가 그렇게 묻는다.
“…어.”
내 대답에 신지수가 슬픈 미소를 짓는다.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
“…그래.”
“미안해.”
그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신지수의 목소리가 점점 젖어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드디어 신지수를 떠나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눈물을 멈춘 신지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질 때의 버릇이었다.
“미안해. 오늘 못난 꼴 많이 보인다.”
신지수가 그렇게 말한다.
“아니야.”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기억되는 것은 싫은데….”
신지수의 말이다.
“나 휴학했어. 유학 가려고.”
“…들었어.”
“이모가 캐나다에…. 너도 알고 있겠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원래는 졸업하고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갑자기 가게 되어서….”
“그래.”
“나 그 사람하고 헤어졌어. 그 사람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야.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싶어서.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는 거나 마찬가지지.”
신지수는 그렇게 말하고 쑥스럽다는 듯 작게 웃는다.
“조금만 더 걸어도 될까?”
지수가 말한다.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지수는 내 걸음에 발을 맞추었다.
“얼마 전에 유라를 만났어. 유라가 그러더라. 눈이 멀어 있었다고.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그 사람하고 헤어지니까 유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그렇게 말한 신지수의 걸음이 다시 멈추었다.
“…미안해. 이런 이야기 불편할 텐데.”
“아니야.”
진심이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신지수와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김민우 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불쾌하고,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격한 감정은 없었다.
마치,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평론가처럼 무감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뭐랄까. 그런 감정들이 마치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그런 약한 애잔한 느낌 정도. 그뿐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되겠지?”
지수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한 번 더 보게 되어서.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그래.”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는 한참 동안 날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물어보지 않을래.”
지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지수가 무엇을 묻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질문을 채근하지도, 내가 미리 짐작으로 대답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오늘, 최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마지막이니까….”
지수가 고개를 숙인 채로 작게 말했다.
“그래.”
내가 말했다.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될까. 마지막으로.”
나는 그렇게 말하는 지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 녀석에게 다가가 두 팔로 살포시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긴 지수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떨림은 긴장이나 두려움, 흥분처럼 액티브한 감정에 기인한 떨림이 아니라는 것을.
슬픔이었다.
지수가 느끼는 슬픔이 떨림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미안해.”
내 품 안에서 지수가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말했다.
“…고마워.”
지수가 속삭였다.
***
그리 짧지 않은, 하지만 그리 길지도 않은 산책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서현 님이 돌아와 계셨다.
“산책 다녀오시는 거예요?”
막 퇴근했는지, 아직 불편한 정장 차림의 서현 님이 현관에서 나를 맞이한다.
“네. 요 앞에 잠깐. 지금 퇴근하신 거예요?”
“네. 지금 막.”
“저녁은요?”
“먹었어요. 할아버지랑.”
서현 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 회장님이랑 저녁을 드셨다면 제대로 드셨겠네.
“한수 씨는요? 저녁 드셨어요?”
“네. 저도 먹었어요. 소화 시킬 겸 산책 갔다 왔어요.”
내 말에 서현 님이 아직 답이 부족하다는 듯 지그시 날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이해하고 답을 보충한다.
“국 데우고 밑반찬도 제대로 꺼내서 챙겨 먹었어요.”
라면 같은 걸로 대충 때우지 않았습니다. 서현 님이 안 계셔도 말 잘 듣는 한수입니다!
그제야 서현 님은 미소를 짓는다.
“차 드실 거죠?”
서현 님이 물어보신다.
“차 드실 거죠?”
내가 서현 님과 같은 질문을 했다.
서현 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작게 미소 짓는다.
“네.”
“그러면 씻고 옷 갈아입고 오세요. 처언천히!”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가는 서현 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 꼭 말로 표현하자면, 치유된다는 그런 잠정이 내 몸 안에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