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108
109 : 적의 적은 우리 편 (1)
김민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루루 몰려다니던 검은 머리 외국인 패거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혼자라는 것이었고, 휴대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어서 우리를, 정확히 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정도?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듯 우리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내 전 여자친구의 전 남친을 내가 그냥 곱게 보내드릴 수는 없지.
“어이.”
내가 그렇게 부르자, 김민우의 걸음이 뚝 하고 멈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당혹감이 가득하다.
나는 그런 김민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인사나 하려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내 말에 김민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기억나지? 예전에 네가 그렇게 말했던 거?
나는 그때 안 쫄았거든?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델꼬 다니던 덩어리들 어디 갔냐? 그 많던 친구들 다 어쩌고 혼자 다니는데?”
나는 그렇게 계속 딜을 넣었다.
지금 넣는 딜은 도트 데미지라 요 며칠 동안은 계속 피를 깎아댈 거다.
김민우는 고개를 돌렸다.
도망을 선택했구나.
하지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민우야.”
내 말에, 김민우가 반사적으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길 건널 때 좌우 잘 살펴봐. 밤길 조심하고.”
김민우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김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발기부전, 2년.’
마음 같아서는 한 30년 걸어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과했다고 할아버지에게 혼날 것 같다.
그리고 2년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심인성 요인이 영구적 장애로 발전하기까지 말이지.
***
불금! 불금이다!
‘금요일 오후’라는 다섯 글자는 어찌하여 이리도 사람을 흥분시키는지 모르겠다.
왜 영어에는 그런 말도 있잖아. Thank you God! It’s Friday!
근데, 서양문화의 근간인 기독교에서는 금요일이 불길한 날 아니던가?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잖아. 그래서 금요일에는 묵상하고, 금식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미국은 주류가 프로테스탄트라 ‘가톨릭의 사악한 전통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금요일은 먹고 마시고 즐겨라!’ 이런 건가?
흠. 뭐, 가톨릭과 개신교의 미묘한 관계는 모르겠고, 난 그쪽 식구도 아니니 금요일은 좀 즐겨도 되겠지.
따지면 나는 계열이 아예 다르잖아.
생각해보니 웃긴 게, 나는 예전에는 무신론자, 아니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지.
뭐, ‘불가지론’이라고 말하니 거창하긴 한데, 간단히 말하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고, 유신론과 무신론을 가지고 싸울 생각도 없으니 믿으시는 신자분이나 무신론자분께서 저에게 님들의 사상을 강요하지만 않으면, 저의 주먹맛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주의랄까?
그랬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신이고, 내가 다음 신이란다.
불가지론은 자기부정이 되는 건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내려가는데, 저 멀리에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다.
딱 보아하니 대구빡이 딱 우리 과 사람 같더라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박찬희네.
내 그랄 줄 알았다. 니 형님을 봐쓰모 행동을 우찌해야대노? 에? 퍼뜩 즐함 올리바라! 믈 믈뚱믈뚱 츠다만 보노! 에? 니 프뜩 즐 안 하나?
그렇게 명대사를 속으로 되뇌며 달려가 날아 차기를 하려고 발끝에 힘을 딱 주는데!
주는데!
박찬희가 반갑다는 얼굴로 손을 막 흔든다.
내가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해서.
본능적으로 나는 박찬희의 반가운 인사가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최유라, 내 동기이자, 얼굴은 예쁜데, 마음속에 상남자를 품고 있는 최유라가 있었다.
응?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나는 날아 차기를 시전하는 대신,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긴 상태로 두 남녀를 바라보는데, 불길한 생각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아닐 수밖에 없다.
그렇게 확신을 하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억에 하나, 조에 하나, 경에 하나, 해에 하나, 자(? : 10의 24제곱, 1,000,000,000,000,000,000,000,000)의 하나의 확률로, 설마 둘 사이에, 찬희와 유라 사이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하고 불쾌한 그런 생각이 날 스치고 지나간다.
왜냐고?
멍청한 얼굴에 멍청해 보이는 미소를 띤 채, 멍청한 손을 들어 멍청하게 손을 흔드는 박찬희의 모습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유라의 얼굴이, 뭐랄까 딱 하나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언어에 최대한 가깝게 묘사해보자면, ‘하지 마! 나 화났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얼굴의 주요 부분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런 부정적인 영역 주변에 ‘아이참. 부끄럽게 왜 그래’ 같은 소녀의 감정이 느껴지는 얼굴이랄까?
최유라 이 자식! 어디서 여자행세야!
아. 저 녀석 여자 맞기는 맞지. 얼굴도 예쁘고.
아무튼 그런 요상한 얼굴로 박찬희에게 다가간 최유라가 박찬희의 팔을 때린다.
헐. 저건 아프겠는데?
역시 최유라. 때릴 때는 인정사정없구나.
근데 박찬희 저 자식은 처맞고도 뭐가 좋다고 허벌쩍 웃고 있지?
야 임마. 너 거기 멍들었어. 백 퍼센트 확률로. 지금 병원 가서 진단서 때면 최유라 콩밥 먹일 수 있어. 돈 버는 거야!
내가 그렇게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박찬희는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유라에게 뭐라고 하고는 또 한 대 쥐어 터진다.
그렇게 쥐어 터져놓고는 뭐가 좋은지 박찬희가 또 웃는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오려한다.
하지만 욕설은 내 옆에서 들려왔다.
“저 것들이 감히 신성한 학교에서….”
어머 씨바 깜짝이야!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나와 같은 자세로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긴 이중훈이 보인다.
이 자식은 언제 나타난 거야? 아니. 나타난 거는 둘째 치고 이 녀석은 뭔가를 아는 건가?
나는 조금 더 몸을 낮춘 후, 이중훈에게 손가락으로 수신호를 보냈다.
일단 지켜보자는 수신호.
이중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두 사람은 조금 더 자세를 낮춰, 우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두 용의자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무언가 익숙한, 하지만 불쾌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는 뭐랄까, 새로 시작하는 연인의 풋풋한 뒷모습이었고, 불쾌한 냄새는 박찬희와 최유라라는 부분이었지.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아무리 최유라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박찬희가 슬쩍 최유라의 손을 잡는다.
손을 잡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최유라는 바로 그 손을 빼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아는 최유라라면 손을 빼내고, 바로 박찬희의 뺨을 때리거나, 명치에 주먹을 날리거나, 고간에 니킥을 꽂거나, 적어도 쪼인트로 이어지는 연속기를 시전해야 하는데….
박찬희의 팔을 툭 하고 치는 데서 끝난다.
아까처럼 풀파워로 때리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진짜로 툭 하고, 아니지, 저건 툭도 아니다. 톡이다. ‘톡’ 하고 때리는 데서 끝난다.
옆에서 빠드득 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아보니 이중훈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
나는 그런 이중훈의 팔을 잡았다.
아직은 아니야.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마. 이건 공동 대응해야 하는 문제야.
그런 의미가 담긴 내 시선을 읽어낸 이중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다.
***
박찬희의 만행을 목격하고 30분 뒤.
나와 이중훈은 신림역 인근의 한 카페에 앉아있었다.
박승환과 김창회에게 긴급소집 명령을 소환했고,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은밀한 장소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장소는 과방밖에 없다.
근데, 과방은 좀 그런 게, 누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심각한 주제였다. 여차하면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문제다.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노출 가능성이 높은 과방에서 할 수는 없지.
그렇게 따지면 카페가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그건 짧은 생각이다. 편지를 숨기려면 우체통에 숨기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카페에 수많은 사람들과 소음이 우리의 심각함을 감춰줄 것이다.
이중훈과 그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린 지 십여 분, 박승환과 김창회가 투덜거리며 카페에 모습을 보였다.
“금요일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별일 아니면 내년 오늘이 니들 제삿날이다.”
박승환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중훈이 발끈했지만, 내가 이중훈을 다독였다.
괜찮다. 무지는 죄가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니까.
나는 무지한 박승환과 김창회에게 조금 전 나와 이중훈이 두 눈으로 직접 목도했던 그 끔찍한 광경을 전해주었다.
차마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저주에 물드는 것 같은 끔찍함을 이겨내면서, 나는 결국 그 끔찍한 장면을 전달하고야 말았다.
“…잘못 본 걸 거야. 잘못 봤다고 말해.”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박승환의 반응이었다.
이중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두 눈을 뽑아서 조금 전 그 장면이 거짓이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내 손으로 내 두 눈을 뽑아버리겠어.”
박승환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 말도, 이중훈의 말도, 모두 진실이라는 의미로.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잠자코 듣고만 있던 김창회가 말했다.
“그걸로는 부족해.”
이중훈의 말이다.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라는 게 있지. 감히 연애라니. 여자친구라니. 죽음, 그 이상의 형벌이 필요해.”
이중훈의 말에 박승환과 김창회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놈들과 같이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내 말에, 세 친구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무엇이든 물어보게 동지.”
이중훈이 말한다.
“아니,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고, 작년에 내가 저기. 신지수랑 사귄다고 했을 때, 그때도 이랬던 건 아니지?”
내 질문에 친구들의 눈빛이 바뀐다.
동지에서 적으로.
적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로.
지난 일이야! 지난 일! 이미 끝난 일이야! 형법에도 소급효 금지의 원칙이란 적용된다고!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녀석들의 살기가 줄어든다.
“휴우. 안 그래도 오늘 끔찍한 장면을 봤는데, 그때 생각을 했더니,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뻔했어.”
이중훈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김창회가 다 이해한다는 듯, 이중훈의 어깨를 두들겨 준다.
이거, 당분간은 말조심해야 되겠다. 안 그래도 분위가 흉흉한데, 지뢰밭 위에서 일부러 춤출 필요는 없으니까.
박승환이 자세를 낮추며 나직하게 말한다.
“자. 일단 정리를 해보자.”
우리 세 사람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낮추었다.
“둘이 사귀는 건 확실해?”
박승환이 물었다.
“확실한 건 아냐. 80% 정도. 하지만 썸이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
이중훈이 말한다.
박승환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이중훈의 말에 동의 표시를 했다.
“신중하게 말해야 해.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김창회가 말한다.
“니들이 직접 봤다면 의심하지 않았을 거야.”
내 말에, 박승환과 김창회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떠한 징후도 없었는데.”
박승환이 말한다.
“작년에 그런 소문이 있었지. 찬희가 고백했다가 까였다고. 혹시 그 소문에 대해서 좀 더 아는 사람 있어?”
이중훈이 손을 들어 올린다.
“말해봐.”
“그건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실이 아니야.”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그게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 풀 뜯어먹는 소리야?”
“표면적으로 말하면 고백은 없었어. 하지만 까였지.”
이중훈은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그날, 그 끔찍한 날에 있었던 끔찍한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