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12
12 : 하숙집에서 나가라구요? (3)
회장님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뜨셨다.
이제 이 공간에, 호텔 센트럴 남산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특별실에 21살의 대학교 2학년인 책방 손자인 나와.
자. 심호흡 한 번만 하고.
대한민국 재계 1위이자 글로벌 이코노믹스 선정 글로벌 기업 7위에 랭크된 중앙그룹의 강민철 회장의 손녀이신 강서현 님이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와… 호텔에 남녀 단둘이?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심장 이 자식아. 나대지 마! 그거 아냐, 임마!
“많이 놀라셨죠?”
서현 님이 말씀하신다.
“네?”
“할아버지의 실례를 용서해 주세요. 어르신과 작은어르신에 대한 충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아니, 전혀,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버버 하는 내 말에 강서현 님이 작게 미소를 지으신다.
웃으시다니! 당신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지려 하시나이까. 당신의 아름다움에 나의 눈이 멀면, 그때서야 멈추시려 하시나이까?
“조금 지나면 적응이 되실 거예요.”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래. 강 회장. 내가 자네의 충성스런 마음을 잘 알고 있지. 고맙군. 앞으로도 그렇게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 중앙그룹을 열심히 키울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참나. 말도 안 되지!
“적응 못 할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는 변하지 않으실 거예요. 작은어르신에 대한 그 마음, 태도, 언행. 어느 것 하나도요.”
곤란한데. 곤란해. 무엇보다 그 호칭이 제일 곤란해.
“작은어르신이라는 그 호칭이 제일 불편한데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절대로.”
“불편하신가요? 그러면 어떤 호칭으로 불러 드리면 될까요?”
오빠, 자기, 여보 뭐 그렇게 불러 주면 좋은데요.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무튼 식사도 끝났고, 회장님도 가셨고, 이제 집에 가야지.
오늘 충분히 힘들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아아아아주 힘들었다.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다. 일단 머리를 쉬게 하고 싶다.
“이제 집에 가도 될까요?”
내가 강서현 님에게 말했다.
‘님’ 자를 안 붙일 수가 없구만.
저 미모, 저 기품, 저 지혜, 저 현명함, 저 가스… 크흠.
“네. 오늘 많이 피곤하셨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혼자 가도 됩니다만….”
혼자 가도 되지. 되기는 되는데, 솔직한 마음이야 같이 가고 싶다.
데려다 달라 뭐 이런 거 아니고,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 뭐 그런 느낌?
“모든 것은 작은어르신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부탁드립니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
집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호텔 센트럴 남산의 총지배인이시라는 신사분께서 우리를 직접 1층까지 에스코트해 주셨다.
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서현 님이 에스코트 받고, 나는 서현 님을 모시는 몸종처럼 보였겠지만.
아무튼 그런 부담스러운 에스코트를 받으며 1층 로비로 내려가니 서초동에서 타고 온 회장님 차가 서 있었다.
회장님은 다른 차타고 가셨나 보네.
“갑작스러워 오늘은 따로 차량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오늘은 이 차량을 이용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총지배인님이 말한다.
불편이요? 공중 부양 차가 불편할 수 있나요? 도로의 요철이라고는 느낄 수도 없는 이 차량이 불편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총지배인님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을 뿐.
내가 뒷좌석에 앉자 총지배인님이 문을 닫아 주시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에 나는 뒷좌석에 앉은 그대로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내가 먼저 머리를 들었고.
아, 불편해. 불편해.
서현 님께서는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옆자리라고는 해도, 버스만큼 넒은 대형 세단인 만큼 그 사이에 두 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지만.
경차였으면, 아니, 오토바이. 그래! 오토바이가 필요해. 최대한 가까이, 서로 밀착해서.
위험하니까 꽉 잡아. 알았지?
그러면 내 몸에 감겨드는 서현 님의 팔, 밀착하는 몸, 내 등에 느껴지는 봉긋한….
그런 행복한 망상을 하고 있는데, 차가 공중 부양해서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고개를 깊숙이 숙인 총지배인님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간다.
거 참 부담스럽구만.
“저기… 서현… 님?”
나는 질문하기 위해 서현 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야에, 서현 님의 옆모습이….
그러니까, 그 뭐냐. 그 있잖아. 봉긋한 가…. 매끈한 다…. 크흠.
아니야. 서현 님 몸매 보려고 고개 돌린 거 아니야! 나는 진짜 질문을 하려고 고개 돌린 거야!
정말로! 맹세코! 할아버지의 서점과 내 친구 박승환이의 성생활을 걸고!
“네. 작은어르신.”
서현 님이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아 진짜 겁나 예쁘네.
“저기…. 호텔 총지배인이시면 직위가 어느 정도 되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서현 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린다.
그만 좀 웃어요! 진짜 심장 터져 죽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세요!
“호텔 센트럴 남산 총지배인님은 현재 COO, 최고운영책임자이시고, 그룹 서열로는 전무이사급입니다.”
COO? 최고운영책임자? 전무이사? 그럼 사장 바로 밑에 아냐? 그런 높은 분이 저렇게 깊게 고개를 숙이신 거라고?
“총지배인님께서는 할아버지와 같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신 분이세요. 그래서 어르신과 작은어르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고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서현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아니. 난 뭐 그런 걸 걱정한 것은 아니고, 그 뭐랄까, 연세 드신 분에게 대접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건데. 뭐. 아무튼.
“또 물어보실 게 있으신가요?”
서현 님이 날 보며 말씀하신다.
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까 그것도 물어볼까?
“조금 전, 그, 박 대표님이라는 분이, 수상이라는 단어를 말씀하셨는데, 외교 문제 그런 말씀도 하시고, 혹시 그 수상이 외국의 그 수상을 의미하는 건 아닌 거죠?”
“B국 수상님께서 현재 한국을 국빈방문 중이십니다. 오늘 저녁에 만찬과 비공식 회동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렇다면….”
“네. 할아버지가 저녁식사를 펑크 내신 거죠. 그리고 회동도 안 가시려 했고요.”
아하. 이제 이해가 되네.
그러니까 강 회장님은 한국에 국빈자격으로 방문중인 B국의 수상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나에게 저녁을 대접한다고 만찬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 말씀이군.
만찬이야 어찌 저찌 한다고 쳐도,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진행될 비공식 회담도 나를 집에 모셔다 주기 위해서 안 가시려고 하신 것이다, 이거로군.
서현 님이 날 보며 싱글 생글 웃고 있다.
또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만 물어봐야지. 오늘 너무 많이 놀랐어. 이제 충분해.
***
아무리 생각해도 바퀴는 장식이 아닐까 의심되는 공중 부양 차는 20여 분만에 성수동에 도착했다.
성수동이라고 해도. 성수역 인근이 아니다.
서울 숲 인근의 우뚝 서 있는 주상복합 고급아파트가 공중 부양 차의 목적지였다.
나 이 건물 안다.
서울 숲 인근에 조성된 고급 주택 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주상복합 ‘갤러리 포레스트’.
뉴스였나, 연예가중계였나, 아무튼 어디선가에서 봤다.
중국에서 어마 무시한 인기를 끌고 있는 초유명 한류 스타가 여기에 산다고 하더라.
얼마라더라? 최소 몇십억 원은 한다고 했는데. 아무튼, 거어어어어업나 비싼 집을 구입했고, 한류 스타 팬인 중국 갑부가 그 옆집인가를 샀다는 이야길 들었다. 뉴스는 아니겠군. 싸랑해요, 욘예가중계인갑다.
아무튼 공중 부양 차는 이 거어어어업나 비싼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응? 왜 여기로 들어가지?
설마? 서얼마?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한수야. 한수야! 정신 차려라. 이 자식아!
분명 회장님이 그러셨잖아. 할아버지 때문에 제대로 준비 못 했다고.
어디 학교 근처에 아파트나 하나 잡아 주셨겠지.
아니지! 내가 오늘 높은 분들 만났다고 정신이 나갔구나.
아파트라니. 감히 아파트라니!
서울 시내 아파트 전세가 얼마나 하는데! 지금 5평짜리 하숙방에서 살다가 감히 서울 아파트를 넘보는 것이냐!
분리형 원룸, 아니면 오피스텔, 그래. 그 정도가 적당하겠군. 사실 그 정도도 나에게는 과분하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수십억짜리 집은 나와 인연이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 공중 부양 차는 이곳으로 온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차량이 멈추었고, 서현 님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문을 열고 내리셨다.
아항! 알겠다.
서현 님 댁이구나.
역시 재벌 3세. 어마무시한 곳에 사시는군요.
하긴 우리 서현 님이야 그 기품이나, 풍기는 아우라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초라하지. 경복궁 근정전도 서현 님에게는 부족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앉아 있는 뒷좌석의 문이 열렸다.
기사님이 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어? 뭐지? 기사님이 왜 문을 여셨지? 나 내리나? 내려야 하나?
그렇게 어버버 하고 있는데, 기사님이 고개를 숙이며 말씀하신다.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건가? 아니. 도착은 둘째 치고!
기사님이 문 열어 줄 때까지 건방지게 기다린 모습이 된 거잖아! 완죤히 개싸가지 된 거잖아!
나는 번개같이 내려 문을 잡고 계신 기사님에게 허리를 거의 반으로 접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니 서현 님이 날 보며 웃고 계신다.
응? 왜 웃고 계시지?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좀 기분이 상한다.
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거늘, 그게 우스워 보인 것일까?
서현 님도 어쩔 수 없는 재벌 3세.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서현 님이 기사님에게 다가가 말한다.
“삼촌.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면서 기사님에게 고개를 숙인다.
기사님도 얼굴에 가볍게 미소를 띤 채, 살짝 고개를 숙여 서현 님에게 마주 인사한다.
아까 그 말 취소, 건방진 재벌 3세 어쩌구 그 말 취소!
자고로 얼굴 예쁜 사람이 마음씨도 곱다고 했다. 우리 서현 님의 저 모습이 그 이론을 증명한다.
기사님이 다시 나에게 몸을 돌리고는 다시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씀하신다.
“편히 쉬십시오. 다음에 또 모시겠습니다.”
나도 재빨리 허리 숙이기!
이거 익숙해져야겠어.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인사를 해 올지 모르니, 항상 허리 숙일 준비를 해 둬야겠어.
잠깐만. 잠깐만. 근데 편히 쉬라뇨? 기사님 가시면? 난 누가 데려다주는 건가요?
그런 내 생각을 알지도 못하는 듯, 기사님은 차량에 탑승하시고 천천히 멀어져 갔다.
멀어져 가는 공중 부양 차량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에게 서현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가실까요?”
네? 어딜요? 어딜 올라가요?
서현 님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문 옆에 댔다.
삑!
전형적인 알림 소리, 그리고는 지하 주차장과 거어어어어업나 비싼 주상복합을 연결하는 문이 스르륵 열린다.
뭐야? 나 따라가는 거야?
여자 집에?
오늘 처음 봤는데?
만난 첫날 라면 먹는 거야?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서현 님이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실까요?”
크흠. 허험.
자, 목 좀 가다듬고.
외쳐 봅시다.
심! 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