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137
138 : 김치콩나물국
항상 이야기하지만, 난 목요일이 제일 싫다.
왜냐고? 목요일에 수업이 잔뜩 몰려 있으니까.
그냥 연강도 아니고, 9시부터 6시까지 밥 먹을 시간도 없는 폭풍 연강.
신지수랑 깨지고, 델탈 나간 상태에서 공강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수강 신청을 했더니, 목요일에 불지옥 뺨치는 연강 퍼레이드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저녁에는 카페 알바도 있고.
그만둘까?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으니 알바를 때려칠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늘도 지옥의 연강을 슬퍼하듯, 장대비가 미친 듯 쏟아붓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재빨리 학생 식당이 있는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아침을 먹어야 한다. 목요일에는 든든한 아침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6시까지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학생 식당에서는 간단한 아침을 판매한다.
국 하나, 메인 반찬 하나, 젓가락 잘 안 가는 서브 반찬 두 개, 그리고 김치. 간단한 백반이다.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국에 밥 말아서 두 그릇 먹고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학생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랬는데!
거기 있어서는 안 될 누군가가 있었다.
김창회.
김창회가 있었다. 그 앞에 식판을 두고.
김창회가 국을 떠먹고 있었다.
국을 먹는다고? 김창회가? 염분이 다량 함유된 국을 먹고 있다고?
오늘 메뉴가 뭐지? 프로틴 국인가? 프로틴을 우려낸 국물에 닭가슴살을 넣었나?
아니다. 김치 콩나물국이다.
맛있지. 김치 콩나물국, 시원하고. 밥 말아 먹으면 속이 확 풀리지.
하지만 김창회가?
아. 물론 김치나 콩나물에는 영양소가 풍부하지만, 내가 아는 김창회는 프로틴에 영양제를 말아 처먹었으면 처먹었지, 영양소 흡수를 위해 국을 먹을 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김창회는 국물을 떠먹고 있다.
잠깐? 꿈인가? 아직 집인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것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루시드 드림?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건 현실이다. 김창회가 국물을 떠먹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뭐 해?”
김창회에게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밥 먹어.”
김창회가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숟가락을 들어 다시 국물을 떠먹는다.
식판에 밥도 있다. 반찬에는 손을 안 댄 것 같지만 분명 밥과 국물은 줄어들어 있다.
“밥도 먹어?”
“너도 1교시지? 얼른 먹어라. 지각 안 하려면.”
내 질문에 김창회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불안해. 오늘 뭔가 느낌이 싸해.
***
“의외네.”
수정이 누나가 날 보며 말한다.
“네?”
“한수 너는 이런 거 안 좋아할 줄 알았거든.”
누나가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보며 그렇게 말한다.
내 앞에는 빵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하드롤 빵을 그릇으로 사용하는 빠네파스타가 놓여 있다.
목요일 정오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나는 신림역 인근에 파스타 집에 앉아 있었다.
진철이 형이 수정 누나와 점심을 함께 하자는 깨톡을 받았고, 지금 여기서 두 사람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목요일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지옥의 연강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날인데, 오늘은 감사하게도 12시부터 3시까지 있는 전공 수업에 휴강 공지가 떨어졌다.
왜 휴강이냐고?
교수님이 국회에 가셨다네. 국회의원 나리께서 주최하시는 무슨 세미나에 끌려가셨다고.
덕분에 지옥의 목요일 연강의 고리가 끊어졌고, 덕분에 이렇게 여유 있게 학교 밖까지 나와서 고상하게 포크 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나저나, 파스타를 안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입니까? 저랑 파스타가 안 어울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시골 사람이라고 다 국수만 삶아 먹는 거 아닙니다. 파스타가 뭔지도 알고, 가끔씩 먹습니다. 우리 고향에도 마트 있고, 마트 가면 파스타 면도, 소스도 다 있다 이 말입니다.
“아니. 오해하지 마. 이상한 의미가 아니고, 뭐랄까? 한수 너는 어딘가 모르게 상남자 이미지가 있달까? 파스타는 느끼하다고 싫어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수정이 누나가 재빨리 말한다.
그런 거였군요.
그럼 그렇지. 내가 그래도 어디 가서 촌놈 소리는 안 듣고 다니는데.
“아니에요. 오해는요. 그리고 요즘 상남자들도 크림 파스타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꾸덕꾸덕은 진리죠.”
“들었지? 오빠?”
수정이 누나의 시선이 내 옆에 앉아 있는 진철이 형에게로 향한다.
진철이 형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수정이 누나가 아니라 내 옆에 앉아 있는 건데?
누가 연애 초보 아니랄까 봐, 그게 다 감점 요인이란 말입니다.
나중에 말해줘야지. 아니다. 말해주지 말아야지.
“아무튼, 갑작스러웠는데도,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
수정이 누나가 다시 날 보며 말한다.
“아니요. 제가 고맙죠. 밥 사주시는데. 설마 제가 내는 건 아니죠?”
“아니야. 오늘 내가 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다가 커피도 사 줄게.”
커피 정도는 내가 내야지. 그 정도의 상식은 있지.
“그나저나 혹시 어쩐 일로 밥을 사 주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밀턴 프리드먼이 그랬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뭐 밥 사 주면 고맙기는 한데, 내가 1학년도 아니고, 이렇게 밖에까지 나와서 밥을 사 주는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겠나?
“고마워서.”
수정이 누나가 말한다.
고마워? 뭐가?
“…제가 뭘 했나요?”
“오빠에게 잘해줘서. 그게 고마워서.”
“네?”
“오빠에게 이야기 들었어. 그동안 한수 네가 여러모로 오빠 신경 써 줬다고. 저번에 상담해준 것도 그렇고, 그전에 아버님 이야기도 그렇고.”
나는 진철이 형을 바라보았다.
이 양반 얼굴이 앞에 놓인 토마토 파스타 소스처럼 붉게 물들어있다.
설마 서현 씨 이야기한 건 아니겠지? 중앙그룹 데릴사위 같은 이야길 한 건 아니겠지?
“저는 뭐한 게 없는데….”
내가 그렇게 얼버무리자, 진철이 형이 말한다.
“꼭 무언가를 해줘서 고마운 게 아니야. 이야기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그런 부분들이 고마운 거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쑥스러운 얼굴로 포크 질만 하던 진철이 형이 평소의 진지한 눈으로 그렇게 말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진철이 형이었다.
꾸깃꾸깃한 식권과 자신의 이야기와 진심을 먼저 건네준 것은 이 형이었다.
뭐 정확히 말하면 형이 오해했던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형이 건네준 식권과 진심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형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기에, 나도 형에게 작은 진심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파스타로 부족한데요?”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
처음 수정 누나와 밥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었다.
두 사람하고 밥을 안 먹어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세 사람만의 조합은 처음이었고, 더군다나 이제 막 시작하는 두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하늘 같은 선배님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주 즐거운 점심 식사였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몰랐는데, 수정 누나가 꽤나 오래전부터 진철이 형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한다. 누나가 1학년 때, 진철이 형이 군대 가기 전부터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같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은근히 마음을 내비쳐보았지만, 저 답답한 양반은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매일 우울한 얼굴로 캔커피만 마시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가 얼마 전 아버님 병원비 문제로 우울해할 때, 그때 수정 누나가 했던 말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손 내밀 용기도 없으면서 그렇게 마음 없이 고맙다는 말 하지 마요.
수정 누나의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터놓게 되었고, 진철이 형이 고백을 했다고.
의외네. 당연히 수정 누나가 고백했을 줄 알았는데.
뭐, 진철이 형이 바보도 아니고, 수정 누나가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걸 모르고 있지도 않았고, 또 형도 마음 한편에 누나에 대한 마음이 있었지만, 자기 상황이 누굴 만날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애써 외면해오다 결국 용기를 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 전 수정 누나가 해줬던 말이 떠오른다,
-정말 수천, 수만 가지의 고민을 하고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고민과 두려움을 뛰어넘었을 때만 고백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야.
흠. 수정 누나에게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자꾸 생각이 많아지네.
아무튼, 나도 진철이 형이 꾸깃꾸깃한 식권을 건네줬던 그 날의 이야기와 함께, 캔커피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다고, 당뇨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당사자를 앞에 두고서 작은 인민재판을 벌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커피를 마셨다. 물론 내가 샀고.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누나. 진철이 형에게 전해 들었는데, 일요일에 최유라 만나셨다면서요?”
“유라? 응. 선릉에서. 만난 건 아니고, 우리가 먼저 알아봤는데, 아는 척은 안 했어.”
최유라가 남자랑 부비부비하고 있어서, 아니, 부비부비는 아니고, 밀착해 있어서 딱히 아는 척 안 했다고. 진철이 형이 그랬지.
“누구였어요? 누나는 아는 사람이었다고 그랬다는데?”
내 질문에 수정이 누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살포시 떠오른다.
이걸 이야기해 줘도 되나?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당혹감이다.
이해한다. 수정 누나도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이다 보니, 소문과 관련해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뭐, 남들에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그래. 한수 너라면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니지는 않겠지….”
수정 누나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형태였어. 유라 옆에 있던 남자.”
잠깐만. 찬희가 아니고? 형태? 진짜 1학년 그 형태였다고?
“1학년? 그 형태요?”
“그래. 너랑 같이 요리팀에서 일했던 그 형태. 술이 좀 많이 취한 것 같더라. 유라가 부축하고 걸어가는 모습이었고. 아는 척하기 뭐해서,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치기는 했는데…. 혹시 무슨 일 있니?”
누나가 내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을 눈치챘는지 그렇게 물어본다.
무슨 일? 있다.
찬희가 일요일에 과외를 하는 동안 유라는 형태와 같이 있었다. 오해를 사기 딱 좋은 모습으로.
내가 생각하는 가설은 두 가지였다. 찬희를 1학년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아니면, 찬희를 누구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거나.
하지만 수정이 누나는 정확히 1학년 형태를 지목하고 있다.
“아니에요. 그냥 진철이 형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여쭤봤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조금 전 충격의 잔상이 내 얼굴에 남아 있어서였는지, 수정 누나나 진철이 형이 무거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나저나, 형이나 누나 동기들에게는 두 분이 만나는 거 이야기해 줬어요? 뭐래요? 선배들이?”
나는 재빨리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화두를 던졌다.
두 사람, 특히 진철이 형은 약간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선배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 귀에 그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형태였어. 유라 옆에 있던 남자.
조금 전 수정 누나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