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2
22 : Home과 House의 차이 (4)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거실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커피를, 그녀는 우유를 앞에 두고.
맵긴 매웠나 보다. 다음에 만들면 좀 덜 맵게 해야 되겠다.
“많이 매웠죠?”
“아니에요. 맛있었어요.”
서현 님은 우유를 홀짝이며 감상을 말했다.
“솔직한 감상을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했다.
서현 님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맛있었어요. 매웠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을 만큼.”
그게 매력이죠. 마약 같은 매력.
나중에 이걸로 장사나 한번 해 볼까?
그건 나중 일이고. 우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다음에는 좀 더 순하게 만들어 볼게요.”
“순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적당한 맵기가 포인트 같은데. 맞나요?”
역시 우리 서현 님. 모르는 것도 없어! 센스도 좋아!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만 덜 매웠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해요.”
그렇게 말하고 살포시 웃는 우리 서현 님.
저 미소를 볼 수만 있다면 1년 365일 내내 카레를 만들 자신이 있다.
아니지, 그러면 카레 그릇으로 맞겠지.
뭐 쓸데없는 생각은 이쯤하고, 일단 마음을 다잡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제가 어릴 때요.”
내가 말을 시작했다.
“네….”
서현 님의 표정이 바뀐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려나?
“아마 막 초등학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었을 때쯤? 그쯤이었던 것 같아요.”
서현 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세를 바로잡는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친구 어머님이 해 주신 카레를 처음 먹어 봤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가 안 계시거든요.”
“…네.”
“그래서 저는 그날까지 카레라는 음식이 어떤 맛인지 몰랐어요. 그저 TV에서 광고가 나오면 아, 저 노란색의 묽은 죽 같은 거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서현 님이 내 눈을 바라보고 계신다.
“저는 그 맛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노란 국물에, 감자나 양파 같은 채소들이 깍둑썰기로 들어가 있었죠. 한 입 먹었는데, 맛있다는 기억보다, 제가 예상한 맛과 너무 달라서, 그래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선명해요.”
너무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렸지. 바보같이.
“그리고 집에 와서 할아버지에게 말했어요. 카레를 얻어먹었다고, 내가 생각한 맛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다고. 그러고서 한 몇 주 지났나? 할아버지가 카레를 만드신 거예요. 일요일에.”
“어르신께서요?”
“아. 저희 할아버지 만나 보셨어요?”
“인사는 드렸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나누어 보지는 못했네요.”
“그렇군요. 이야기해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카레를 만들고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 양반이.”
할아버지를 매도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서현 님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런데 카레를 만드셨더라고요. 근데 웃긴 게. 얼마 전에 먹은 카레랑은 완전히 다른 음식인 거예요. 우선 뭐가 그렇게 불만이셨는지 채소는 아주 난도질을 해서 씹히는 것 하나 없지, 본인이 매운맛 좋아한다고 고춧가루랑 청양고추를 얼마나 집어넣었는지 맵기는 엄청나게 맵지. 또 씹는 식감이 없으니까 그거 대신 당신 술안주로 사다 놓은 물만두를 때려 넣으신 거죠.”
“그래서 물만두가….”
“맞아요. 오리지널은 할아버지 작품이죠….”
“오리지널이라고 하시는 거 보니까, 오늘 작은어르신께서 만드신 음식은 어르신 레시피는 아닌가 보네요.”
역시 우리 서현 님. 현명하시고도 현명하시도다.
“맞아요. 할아버지는 귀찮다고 그냥 끓는 카레에 만두를 넣어서 만들었지만, 물만두를 적당히 삶아서 바삭하게 튀기는 건 저만의 오리지널리티죠.”
“대단하세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칭찬한다.
칭찬을 받으면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뇌에서 생성된다. 그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속칭 히로뽕, 필로폰이라고 부르는 메스암페타민이 바로 그 도파민을 마구 분비시켜서 사람을 뿅 가게 하는 마약이다.
훗. 히로뽕 따위.
서현 님의 칭찬에 온 세상이 도파민으로 가득한 느낌이다.
더 칭찬해 주세요.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그건 그렇고. 이야기를 계속하자.
“제가 왜 이 카레를 대접해 드렸는지 아시겠어요?”
“음… 작은어르신 자신작이라서?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겠네요.”
“맞아요. 이 카레는 다른 의미가 또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기억 안 나요. 저는 기억 안 나는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게 있어요.”
“뭔데요?”
“친구 집에서 카레를 먹고 와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책방 구석에서, 아! 저희 할아버지 고향에서 책방 해요.”
“네. 이야기 들었어요.”
저에 대해서 참 많은 걸 아시네요.
“책방 구석에 가서 만화책을 보더래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저에게 한수 다음에도 카레 또 먹고 싶으면 어쩌냐?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제가 그랬대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괜찮아. 우리 집은 엄마 없으니까. 카레 못 먹어도 괜찮아. 그랬대요.”
“아….”
서현 님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할아버지가, 나중에 말해 줬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대요.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매운, 맹독 같은 카레를 먹이신 거죠.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 이 분위기 아닌가?
“험. 크흠. 아무튼 전 그렇게 생각해요.”
서현 님은 말없이 내 얼굴을 보면서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계셨다.
“우리 집은, 우리 시골집은, 할아버지와 저 둘밖에 없고, 그래서 대화도 별로 없고, 살가운 뭐 그런 게 없어요. 어릴 때야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고 했겠지만, 중학교 들어가면 그런 거 싹 없어지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이를 지나왔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갔다 왔냐. 밥은? 식사는 하셨어요? 저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안녕히 주무셨어요? 학교 갔다 올게요. 뭐 이 정도였죠.”
옛날 생각난다.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그 시절.
“뭐 그렇다고 집도 막 오래돼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고통스러울 정도로 덥고. 제가 고3 때 하도 더워서 공부가 안 된다고 그랬더니 그제서야 박가이버 할아버지에게, 아, 박가이버 할아버지는 고물상 하시는 할아버지 친구예요. 그분에게 어디서 고물 에어컨 하나 얻어 와서 설치하고 그랬다니까요. 그런 데서 살았어요.”
자. 이제 본론이다.
“그런데, 거기가 집 같아요.”
서현 님의 표정이 굳는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것이 분명하다.
“영어 단어에서 주택을 의미하는 House와 집을 의미하는 Home을 구분해서 쓰잖아요? 거기가 집 같고, 여기는 그냥 주택 같아요. 훨씬 크고, 훨씬 더 좋은데.”
“…….”
“물론 감사하죠.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신경 써 주신 회장님도 감사하고, 또 옆에서 돌봐 주시는 서현 님도 감사하죠. 그런데 집 같지가 않아요.”
“…….”
“차 있죠.”
“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 삼각별, AMG 로드스터.”
“아… 네.”
“서현 님께서 그 차를 보여 주실 때, 좀 뭐랄까…. 기분이 묘했어요.”
“…그리 좋아하시지는 않으신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면 차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저 차를 타고 학교에 가면 어떨까를 상상해 봤어요. 선글라스를 끼고, 창문에 팔을 걸치고, 한쪽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학교를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봤는데,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운전석에 제가 앉아 있는 모습은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서현 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현 님이 그러셨죠. 내가 이 집을 보고 당연히 여기가 내 새집이겠구나, 당연히 내 카드겠구나, 당연히 내 차겠구나 했으면 실망했을 거라고.”
“…네.”
“삼각별, 누군가에게는 드림 카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뭐랄까.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뭐랄까요…. 그 옷을 입으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릴 것 같달까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정확하게 표현을 못 하겠네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합니다.”
“혹시… 서현 님이 고르신 건가요?”
서현 님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비서실에서 준비했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서현 님이면 저 차를 준비하시지 않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말에 서현 님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평소 보여 주었던 미소와는 다른 미소였다.
미안함? 씁쓸함? 그런 감정이 담겨 있는 미소였다.
“회장님께서 선의로, 좋은 마음으로 신경 써 주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의가 저에게는 조금… 뭐랄까.”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서현 님이 말한다.
“할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으라는 말을 듣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해 봤어요. 능력이 생겼구나. 부끄럽지만 강 회장님을 만나고 아, 이제는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장학금 받겠다고 아등바등 공부 안 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뭐랄까. 그렇다고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솔직한 제 생각이에요.”
“…….”
“작은 지방 도시, 도시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작은 동네에서 할아버지와 검소하게 살았던 한수, 고향 친구들과 말썽도 부리고, 싸움질도 하는 생활이 즐거웠던 한수, 작은 하숙집 방이었지만 나만의 공간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던 한수, 부족한 용돈을 보충하기 위해 알바를 하지만, 알바비보다 동료들과 투닥투닥 거리며 노는 것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수, 그렇게 21년을 살아온 한수가 바로 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벌 3세,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란 서현 님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저에게 2억이 넘는 차는 필요하지 않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울리지 않아요.”
서현 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차 있으면 좋죠. 저도 뭐…. 차 한 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안 해 본 것도 아니에요. 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자고로 첫 차는 최저임금기준 미만의 알바비를 한 푼 두 푼 모아서 중고차 시장에 가서 구입하는 침수차가 제격이라고. 뭐. 침수차를 살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첫 차는 제 손으로 장만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서현 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아니, 제가 말씀을 이상하게 드렸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서현 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서현 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저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서현 님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면서 말했다.
“저는 서현 님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