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24
225 : 후회 (5)
***
바위를 들어 올리면, 1급수에만 살 수 있다는 버들치가 가득 할 것만 같은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다.
졸졸졸 흐르는 청량한 계곡 물소리가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과 나무에서 뿜어져 나온 피톤치드가 어우러지며,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쾌함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런 상쾌함 속에서, 나는 내 혈관을 타고 흐르던 알콜이 천천히 내 몸 안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빠져나가는 게 알콜만이 아니라는 거지. 알콜과 함께 내 수명도 같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지금 내 귀를 쿵쿵 울리는 심박음을 고대로 녹음해서 기본 비트로 삼아 믹싱하면 EDM 페스티벌에서 틀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장이 엄청나게 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오르고 있는 중이니까.
아니, 사실 절벽은 아니다. 수직도 아니고.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최소 20도, 체감상 25도 이상 되는 경사도의 산길을 올라가고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수직 절벽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다는 이야기지.
분명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을 거다. 엄홍길 대장님도 힘들다고 말했던 월악산 영봉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시골 야산 올라가면서 힘들다고 엄살떤다고.
맞는 말이긴 하지. 처맞는 말.
새벽까지 술 마시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로 등산을, 그것도 그냥 등산도 아니고 ‘초등학교 때 소풍 가던 공원에 산책이나 가자.’라는 말을 믿고서 왔다가 예상 못한 등산을 하게 되면 그런 말이 나올 것 같냐!
***
처음에 리조트 버스를 타고 산 초입 도착했을 때는 괜찮았다.
산이 조금 높은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초등학생들 소풍 오는 곳이라고 했으니, 뭐 얼마나 높겠나 싶었다.
아니, 사실 높아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등산할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기사님이랑 잠시 이야기하더니 배낭 하나를 받아 든 김창회가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 10분 정도만 깔짝대다가 버스 타고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리조트까지 ‘여유롭게’ 산책하면서 돌아갈 것인지.
“산책로 비슷한 거 따라서 걸으면 한 시간 쪼금 넘는 정도?”
걸어가면 얼마나 걸리냐는 우리 질문에 김창회 그 자식은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그렇게 말했다.
그 정도면 걸을 만하겠다 싶기도 하고, 또 버스 기사님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 죄송스럽기도 하고 해서, 걸어서 돌아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 우리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창회 저 자식도 박승환 친구라는 사실을 말이지.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니, 아주 좋았다.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의 숲의 공기 맡으며 산 초입에 산책로를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애들도 산림욕 너무 좋다느니, 뇌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라느니, 이래서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느니, 같은 말을 하면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겼다.
그렇게 분위기 좋았는데, 경사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말수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산길을 오른 지 거의 5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이 김창회가 본색을 드러낸 시점이기도 했고.
“저거만 넘으면 바로 리조트.”
그렇게 말하는 김창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산 정상이 있었다.
우리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정상 한 번 바라보고, 김창회 한 번 바라보고, 산 한 번 바라보고, 김창회 한 번 바라봤다.
“…정상 찍는다고?”
“아니. 정상으로는 안 가고, 옆으로 산책로 있어. 동네 어르신들 산책 다니시는 길.”
김창회가 뻔뻔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동네 어르신들 산책 다니시는 길 같은 소리 한다. 여기가 무슨 칠레냐? 어? 여기 산책 다니시는 동네 어르신들 호가 엘 콘돌이시냐?”
웬만해서는 화 안 내는 박승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 도로 내려가?”
김창회가 말한다.
그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돌려 밑을 바라다본다.
젠장. 많이도 올라왔네. 거의 한 시간이나 올라왔으니.
아니, 내려가도 문제다. 버스 돌려보냈잖아. 여기가 서울도 아니고, 버스는커녕 택시 불러도 안 오겠지.
“…진짜, 저기만 지나면 바로 리조트 나온다 이거지?”
이중훈이 씹어 삼키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본다.
“어. 저기만 지나면 바로 리조트. 거의 다 왔어.”
그러면서 지고 온 가방을 연다. 안에 들어있는 건 500mL 생수병이다.
물까지 챙겨왔다? 빼박 계획범죄다.
존경하는 판사님. 이 500mL 생수병을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자, 물들 마시고. 다 왔다니까. 괜찮아. 지연이나 민주도 별말 없는데, 니들이 왜 그래?”
창회가 생수를 나눠주며 그렇게 말한다.
야. 쟤들 눈 봐라. 너 선배 아니었으면 쟤들이 벌써 너 깠어!
“…한 시간이면 된다며?”
조용히 있던 최유라가 말한다.
“한 시간에서 조금 넘을 것 같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는 김창회의 얼굴에서 박승환이 보인다.
“…많이 넘을 것 같은데?”
“그러네.”
김창회가 그런다.
“…그러네?”
“까먹고 말 안 한 건 있어도 거짓말은 안 했어.”
김창회가 그런다.
“…뭘, 말 안 했는데?”
“나 혼자 오면.”
졸라 당당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
버스를 보낸 시간 기준으로, 우리가 산 하나를 넘어 리조트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반이 넘어서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들 씻을 생각도 못 하고 거실에 널브러져 있다.
“그렇게 땀 흘린 옷 그대로 입고 에어컨 밑에 있으면 감기 걸린다. 얼른 씻고 옷 갈아입자.”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있는 김창회만 그렇게 말하고 있고.
신력을 쓰자. 신력을 써서 체력을 회복하고 저 자식을 죽여버리자. 개인적인 욕망이 아닌 사회정의를 위해서.
그런 마음의 소리가 들렸지만, 김창회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몸 식으면 감기 걸리기 쉽다. 난 안 걸리려냐? 아무튼 일단 옷은 갈아입어야지.
“…사람 많은데 어떻게 씻지?”
큰방에 딸린 화장실까지 포함해 욕실이 세 개이기는 한데, 사람이 여덟 명이니 순서 정하는 것도 문제네. 대충 두셋씩 같이 씻어야 하나?
“사우나 있어.”
김창회가 말한다.
“…여기 사우나가 있어?”
내가 물었다.
“어. 본관 지하에.”
확실히 작은 리조트는 아니다. 조식 주는 레스토랑도 있고, 독채도 몇 채씩 있는 걸 보면. 그런데 사우나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
“남자들은 사우나 가. 우리는 여기서 씻을래.”
바닥에 누워있는 최유라가 그렇게 말한다.
“가자. 갈아입을 옷 챙기고.”
내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자.
“오빠.”
역시 바닥에 딱 붙어있는 지연이가 날 부른다.
“응? 왜?”
“올 때 메로나요.”
“…알았어.”
***
“으아아아아. 내 몸이 녹아내린다.”
온탕에 몸을 푹 담근 박찬희가 그렇게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한다.
근데 사실 나도 그렇다.
지금 한여름이고, 조금 전까지 열과 땀에 쩔어 있었는데, 샤워하고 온탕에 들어오니 뜨뜻한 물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괜찮지?”
그런 우리를 보고 김창회가 씩 웃고는 그렇게 말한다.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체력만 회복하면 너 죽이러 간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김창회의 나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자식, 저거 근육 봐라. 진짜 운동을 얼마나 한 거냐? 고작 몇 년 사이에 저런 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건가 싶다.
정공법으로는 우리 넷이 다 달려들어도 힘들 것 같고…. 바닥에 비누를 깔아놓고 미끄러트린 후 바가지로 후드려 패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민주 말이야.”
갑자기 이중훈이 그렇게 이야기를 꺼낸다.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시선이 중훈이를 향한다.
어깨까지 탕에 담그고 눈을 감은 상태로 이중훈이 말을 잇는다.
“왜 우리랑 같이 어울리는 걸까?”
그렇게 말한다.
민주가 저 녀석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아니, 다른 놈들도 알고 있으려나? 아무튼 지연이가 그 사실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나뿐이다.
“왜? 불편해?”
찬희가 그렇게 물어본다.
“아니. 불편한 건 아니고.”
이중훈이 상반신을 일으키며 말한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무슨 느낌?”
“뭔가, 목적이 있는 거 아닐까?”
이중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목적? 무슨 목적? 민주가 뭘 노리고?”
찬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창회는 여전히 무표정이고, 승환이는 ‘오호.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군요’ 하는 표정이고. 나도 말없이 이중훈을 바라만 보고 있다.
“어제 그 이야기 하는데, 아. 너는 먼저 자서 모르겠구나. 어제 CC에 대한 이야기 했었는데. 그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그러니까 무슨 느낌?”
이중훈이 날 바라보고는.
“민주도 한수 좋아하나? 그런 느낌.”
그렇게 말한다.
아니, 갑자기 거기서 내 이름이 왜 나와?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인다.
“에이. 설마.”
가장 먼저 그렇게 말한 사람은 박찬희다.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 숙여 탕 안쪽을 바라본다.
임마. 시선이 왜 거기로 가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박승환이 물어본다.
“아니. 뭐 근거라기보다는…. 그냥 한수 저 자식한테 이상하게 여자 꼬이잖아.”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여자가 꼬인다고?
“뭔 개소리야? 반년 넘게 쏠로인 사람한테.”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중훈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긴. 한수에게 관심 보인 애들이 없는 건 아니지.”
창회도 그러고.
“저 녀석 이상하게 인기가 있단 말야.”
승환이도 그러고.
“한수 좋다고 한 애들이 없지는 않았지. 유라도 그랬고.”
찬희도 그런다.
잠깐만!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유라? 최유라?”
나보다 먼저 이중훈이 놀란 눈으로 찬희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어본다.
“어. 유라가 한수 좋아했었대.”
박찬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말한다.
“뭐야? 그걸 너에게 이야기했다고?”
“어.”
“그래도 돼?”
“안 될 건 또 뭐야? 지금은 내 여자친군데. 너 혹시 우리 몰래 유라랑 사겼었냐?”
찬희가 날 보며 그렇게 묻는다.
“아니! 전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있는 힘껏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면 뭐 문제 될 거 없지. 그리고 뭐 둘이 만났다고 해도, 우리가 사귀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지.”
박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아무 일 없었다고! 진짜로! 할아버지를 걸고!”
“알아. 유라가 다 이야기해 줬어. 으. 좋다.”
찬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탕에 몸을 더 담그고 녹아내린다 같은 소릴 한다.
“뭐야? 왜 이렇게 쿨해? 기분 안 나빠?”
중훈이가 찬희에게 묻는다.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게 중요하지.”
“와, 씨. 너 대인배다. 박찬희 대인배 인정. 진짜. 리스펙.”
박승환이 찬희에게 엄지척을 해준다.
“훗. 형님이 이렇게 마음이 넓으시다.”
“한수, 너 이 자식아! 이제부터 찬희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라. 아무튼 지수도 그렇고, 지연이도 그렇고, 유라도 그랬다고 하고…. 그러니까 민주도 혹시 그런 건가 싶어서.”
이중훈이 그런다.
“설마. 지연이가 한수 좋아하는 거 민주도 알 텐데.”
창회가 그런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수학도 아니고, 그렇게 답이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
중훈이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이중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자식 원래 똥볼 많이 차지만, 오늘 제대로 차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니야?”
“아니야.”
내가 확실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있을 박승환이 아니지.
박승환은 에리스의 대신관 같은 놈이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불화의 여신을 모시고 있지.
“그럼 민주가 고백해도 안 받아주겠다는 말이지?”
그렇게 불을 붙인다.
“아니라고, 이 자식아. 절대 아니야.”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래!”
“10만 원 빵?”
“1억 빵. 쫄리면 뒈지시던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박승환의 시선이 이중훈에게 향한다.
“유어 벳(Your bet) 1억. 받으시겠습니까?”
“묻고 더블로 가!”
그렇게 판이 만들어졌다.
***
여행을 왔는데, 첫날 술 먹었다고 다음 날 술 안 먹을 수는 없다.
사우나와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한 우리는 다시 술판을 개장했고, 달렸고, 그리고 또 그 시간이 찾아왔다.
연애 이야기.
우리 모두의 시선은 민주를 향해 있다. 그리고 그런 민주는 손에 든 종이컵을 바라보고 있다.
종이컵 안에는 소주가 가득 담겨 있다.
“…저는.”
민주가 그렇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금 상황을 설계한 박승환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그 잔을 건네주세요! 물론 이성으로써 좋아한다거나,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괜찮다. 사람 대 사람으로 봤을 때 괜찮다. 그렇게 생각되시는 이.성.에.게. 2억 원짜리 잔을 건네! 주십시오!”
이렇게 말한다.
“네? 2억이요?”
“아니야. 잘못 말했어. 신경 쓸 것 없고. 자! 민주의 선택은!”
그렇게 말하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두구두구두구 이러고 있다.
다른 우리도 모두 기대 어린 시선으로 민주를 바라보고 있다.
민주는 작게 한숨 쉬고, 잠시 주저하더니 눈 질끈 감고 종이컵을 들고 있는 팔을 한 방향으로 쭉 내민다.
그 끝에는 저렇게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게 눈을 뜬 이중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