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25
226 : 후회 (6)
“…나?”
이중훈이 멍청한 얼굴로 그렇게 묻는다.
“그래. 너.”
박승환이 대신 말해 준다.
그렇게 대답을 들었음에도 이중훈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민주에게 시선을 고정하고서,
“…왜?”
그렇게 물어본다.
“멍청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최유라에게 그렇게 핀잔을 듣고 나서야. 이중훈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는
“아. 그렇지. 미안. 아니.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민주에게서 소주가 가득 담긴 컵을 조심스럽게 건네받는다.
민주는 볼 빨개진 얼굴로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컵을 건네받은 이중훈도 쑥스러운지 손에 든 컵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그런 두 사람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뭐랄까? 되게 유치한 것 같은데, 계속 보게 되는 로맨틱코미디 영화 같달까?
“뭐 하냐? 얼른 마셔라.”
하지만 창회 저 자식은 로코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그렇게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한다.
그래. 마실 건 마셔야지. 달게 마셔라. 2억 원짜리 소주 한 컵이다.
내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중훈은 잠시 주저하더니, 다시 한번 민주를 바라보고는, 컵에 가득 담긴 소주를 원샷해 버린다.
으.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오우! 역시. 쌍남자. 멋져. 반할 것 같아.”
박승환이 말한다. 이 자식아. 발음 조심해라.
원래는 이렇게 소주 한 컵 원샷 같은 빅 이벤트가 끝나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게 일반적이다. 게임은 계속 이어지고, 더욱 과격해지는 것이 그동안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평상시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본능적으로 다들 알고 있는 거다.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중훈이와 민주 두 사람에게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민주에게 ‘왜 이중훈을 선택한 거야? 좋아해? 그런 거야?’라고 묻지도 않고, 이중훈에게도 ‘민주가 이렇게 용기를 냈으면 너도 임마. 어? 남자답게 어?’ 그렇게 개드립을 치지도 못하는 거다.
그렇다고 단숨에 진지한 분위기로 가자니, 그것도 그런 것이, 당사자인 두 사람, 민주하고 중훈이 저 두 사람이 얼굴 빨개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누가 나서서 ‘그럼 이제 진지하게 속마음을 들어볼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거다.
“아우. 좀 쉬었다가 먹자. 정신이 없네. 잠깐 바람 좀 쐬고 와야 되겠어.”
눈치 빠른 최유라가 그렇게 말한다.
“그래. 좀 쉬었다가 먹자. 난 화장실.”
나도 그렇게 옆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
별로 오줌이 마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억지로 화장실에 다녀오고, 기왕 일어난 김에 담배나 피우고 오자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왔는데, 유라와 민주 그리고 지연이 세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여자들 이야기를 엿들을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았기에, 적당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막 불을 붙이려는 타이밍에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중훈이었다. 살짝 힘겨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내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담배 줄까?”
그런 이중훈에게 내가 말했다.
“아니. 지금 담배 피면 다 게워버릴 것 같아.”
이중훈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차라리 한번 시원하게 게워버려. 그게 속 편하고 좋다. 아니지. 2억 원이나 하는 술인데 게우면 안 되겠네. 버텨라. 버텨내야지. 비싼 술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중훈은 뭐라고 혼자서 쭝얼쭝얼거린다.
나는 그런 이중훈 보고 작게 웃은 후, 피우려고 꺼내놓은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속 뒤집어질 때는 옆에서 풍겨오는 담배 냄새만 맡아도 바로 올라오지.
이중훈은 그런 나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낸 후, 내 옆에 서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왜 그랬을까?”
그렇게 중얼거린다.
“직접 물어보든가.”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사실 민주가 너에게 호감이 있다더라. 지연이에게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둘이 잘 되는 게 배 아프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는 게 가장 그림이 좋다 싶었으니까.
“아니 뭐.”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죄 없는 땅바닥만 툭툭 몇 번 차더니.
“웃기는 이야기 해줄까?”
그렇게 말한다.
“뭔데? 안 웃기기만 해봐.”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먼저 말을 꺼낸 중훈이 녀석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런 중훈이를 재촉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때….”
그렇게 중훈이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1~2분 정도가 흐른 뒤.
“지연이가 처음으로 너 좋아한다고 했을 때. 쿨한 척하면서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좀 그랬어.”
축제 끝나고 다 같이 과방에 모여서 선배들이 사준 피자를 먹던 그 날, 처음 지연이가 나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었던 그 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나쁜 게 아니지. 그래도 그렇게 말해 주니 선배로서 솔직히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 뭐. 한수랑 둘 사이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연이는 우리 후배라는 사실이, 우리가 지연이 선배라는 사실은 바뀔 일이 없지. 아무튼,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중훈이는 그렇게 말해줬었다. 마음이 마음이 아니었을 텐데도, 차분한 목소리로 지연이에게 그렇게 말해줬었다.
“좀 뭐랄까? 내가 되게 한심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새 남자친구와 같이 있는 지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녀석에 대한 미움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더 괴로워했었다.
완전히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만, 중훈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최대한 티 안 내려고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더라고.”
“어떤 감정.”
“질투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그냥 속으로 삭여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야.”
“…잘 안 되지.”
내가 말했다.
이중훈은 그렇게 말하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 한번 끄덕이고는 다시 밤하늘을 바라보며 계속 말한다.
“그래서 찬희에게 말했어. 다음 학기에 휴학할까 싶다고.”
“…뭐라고 한 소리 들었겠는데?”
내 말에 중훈이가 쓰게 웃고는.
“처음 봤어. 찬희 자식 그렇게 화내는 거.”
그렇게 말한다.
“찬희에게 졸라게 혼나고 나니까,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이게 지금 뭐 하는 건가 싶고, 한심한 놈이구나 싶고. 또 너랑 지연이랑 괜히 내 눈치 보느라 괜히 더 어색해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차라리 제대로 풀자고, 풀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자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 술 먹자고 그랬던 거야.”
“그날?”
“…그 사고 일어난 날.”
“아… 그날.”
-오늘 이중훈이가 우울하단다. 그러니 친구 된 도리로서 술 한잔 먹어줘야 하지 않겠냐. 특히 너는 오늘 술값도 내야 하고.
금요일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친구 놈들에게 억지로 끌려간 그 날, 제이슨에게 폭행을 당했던 그날.
중훈이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담배 한 대 주라.”
그렇게 말한다.
나는 담배를 꺼내 중훈이에게 건네주고 나도 한 대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잠시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말없이 담배 피우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3분의 1쯤 담배를 피웠을 때.
“그날 밤, 너는 응급수술 받고, 우리는 경찰서 다녀오고 그런다고 정신없는데,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인 것 같고, 그래서 너도, 다른 녀석들도 볼 면목이 없고….”
“….”
“아무튼 그랬는데, 너는 그 상황에서도 겁나 침착하더라.”
“그랬냐?”
“그래. 정신 차리자마자 지연이에게 연락해보라고 하고, 순번 정해서 당분간 지연이 집에 데려다주라고 하고. 가출청소년이 대신 자수했다는 이야기 듣고서도 흥분하기는커녕, 함정일지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그 모습 보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
“어떻게?”
“일단 자책은 나중에 하고, 지금 당장 눈앞의 일부터 수습하자. 그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훈이의 역할이 적지 않았지.
“그리고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나는 한수 너를 절대 못 이기겠구나.”
“…이기긴 뭘 이겨, 임마. 싸울 생각이었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알아. 개드립 친 거야.”
내 말에 이중훈이 작게 웃는다.
“솔직한 심정이었어. 나중에 기훈이도 그렇고.”
“기훈이?”
“말로는 매수할 거라고, 돈으로 포섭해서 증인으로 삼겠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잖아. 전세 보증금 마련해준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기훈이 할머니까지 생각해서 그런 거였다는 거 알았을 때는…. 뭐랄까, 뒤통수를 쎄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달까? 그리고 기훈이 아버지 병원까지 신경 쓰고. 나라면 절대 그런 생각 못 했을 거야.”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그 어쩌다 보니까가 쉬운 게 아니지. 아무튼, 그런 너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 했다. 뭐. 그런 거지.”
중훈이는 그렇게 말하고 담배를 땅에 비벼 끈 후 꽁초를 다시 주워 든다.
“끝?”
내가 물었다.
“끝.”
이중훈이 말한다.
“웃기는 이야기라며?”
“어.”
“어디가 웃긴데?”
“안 웃기냐?”
“하나도 안 웃긴데?”
“근데 왜 웃고 있는데?”
“어이없어서.”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 마주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우리 중훈이, 아직 사춘기인 갑다. 쓸데없는 생각 겁나 하고 있는 거 보니.”
내가 그렇게 말했다.
“이해해라. 내가 좀 귀하게 자랐잖냐.”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그건 그렇고, 민주 이야기는 뭐야?”
내가 그렇게 물었다.
“응?”
“아까 낮에 사우나에서 헛소리했잖아. 민주가 나한테 관심 있네 어쩌네, 그러면서.”
그 말에 이중훈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방어기제…랄까?”
이중훈이 그렇게 말한다.
“방어기제?”
“어. 뭐. 지연이 일도 있고 했으니까 이번엔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그런 방어기제 비슷한 거. 젠장. 담배 한 대 더 주라.”
“…토할 거면 미리 말해. 도망가야 하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건네주었다.
이중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인 후,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하다가.
“내가 민주 집에 갔었잖아. 불고깃감 받으러.”
“그랬지.”
“전날에 민주랑 깨톡 하는데, 민주가 그러는 거야. 엄마가 음식 만들어 주셨는데, 엄청 많이 만들어 주셨다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그럼 내가 들어줄까? 그렇게 말했는데, 민주가 그래 주면 고맙겠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연스러운 그림이니까.
“그랬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민주가 나한테 혹시 마음 있나? 그런 생각.”
“…역시 금사빠 이중훈 선생.”
“그런 게 아니라… 젠장. 그런 말을 들어도 변명을 할 수가 없네.”
“아냐. 이것도 그냥 개드립이었어. 아무런 근거 없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 전에 뭐가 있었는데?”
이중훈은 잠시 말없이 담배를 두어 모금 빨아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사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