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28
229 : 후회 (9)
“야. 진짜 누가 들으면 나 완전 장난 아닌 줄 알겠다.”
“아니에요?”
“아니지! 유지연 씨. 지금 날 어떻게 보고….”
“알아요. 저도 농담이었어요.”
“그런 살 떨리는 농담 하지 마. 이상한 소문 돈다.”
“저도 오빠 관련한 이상한 소문 들어봤어요. 도박판에 갔다가 1억 빚 생겨서 도망 다녔다든가, 사채업자가 하숙집 들이닥쳐서….”
“거기까지.”
“넵!”
“아오. 진짜 박승환 이 자식을….”
“아무튼,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응? 뭐가?”
“민주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이야기하겠다고….”
“아. 그래서 좀 전에?”
“네. 그래서요.”
“그렇구나. 그럼 지금쯤 둘이 엄청 진지한 이야기 하고 있겠네?”
“네. 그럴 것 같아요.”
“그 녀석들 어디로 갔지? 몰래 다가가서 엿듣고 싶다. 아니 녹음해서 평생의 놀림거리로 삼고 싶다.”
“그거 범죄 아니에요?”
“맞아 범죄. 감옥 가야 해.”
“얼마나요?”
“10년 이하.”
“와. 엄청 쎄네요. 엿듣는 것만으로도요?”
“아니, 녹음하거나 도청기 같은 전자장비로 도청하면.”
“몰랐어요.”
“일반인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지.”
“근데 오빠는 어떻게 알아요?”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거고.”
“로스쿨 가려고요?”
“로스쿨 가려면 군대부터 가야 하잖아.”
“맞아요.”
“그럼 안 갈래. 로스쿨.”
“쳇.”
“쳇이라니. 우리 지연 씨는 나를 군대 보내고 싶은가 봐? 가서 막 구르고, 피 철철 흘리고, 엄마 보고 싶다고 질질 짜고, 그런 걸 원하시나 봐요?”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의도야 어찌 되었든 결과는 같잖아요. 군대 가서 고생한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지금 두 사람 어쩌면 잘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잘 안 될걸?”
“왜요?”
“우리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진짜로요?”
“아니. 뻥이지. 뭐, 둘이 좋다는데 우리가 어쩔 거야.”
“오빠들 보고 있으면… 좀 신기해요.”
“어떤 부분이?”
“맨날 말로는 죽인다, 가만 안 둔다. 그러면서 막상 서로를 엄청 신경 써주잖아요.”
“누가? 우리가?”
“네.”
“진짜 우리 지연이 안경 쓰고 다녀야겠네. 아니, 시력 1.5, 1.5라며?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못 볼 수가 있어?”
“저 옆에서 다 지켜봤어요.”
“뭐를요?”
“오빠 다쳤을 때. 기훈이 챙겨줄 때, 창회 오빠 생일일 때. 그리고….”
“그리고?”
“…아니에요.”
“말하려다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때 말하는 건데! 그렇게.”
“후회요?”
“후회요. 영어로 regret.”
“…후회. 후회.”
“뭐야? 그냥 던진 거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없어요.”
“…아무튼, 오빠들은 다른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
“네. 좋은 쪽으로요.”
“진짜로?”
“네. 진짜로요. 그러니까 제가 오빠들하고 같이 있는 거죠.”
“뭐,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기는 한데…. 지연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좀 걱정이 되네.”
“이미 늦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 같다.”
“저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 만나면 착한 척 잘할 수 있어요.”
“이미 늦었네.”
“이미 늦었죠.”
“그건 그렇고. 나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네? 뭔데요?”
“아까 좀 전에 이야기하다가 느낀 건데.”
“네.”
“못 들었다고 했지? 민주가 중훈이랑 따로 만난 거.”
“네? 네.”
“보통 친구 사이면 이야기해 주지 않나? 여자애들은 그런 이야기 서로 잘하는 것 같던데….”
“네. 뭐. 보통 그렇죠.”
“그럼 민주랑은 아직 그렇게 친해진 사이는 아니라는 이야기?”
“뭐. 네. 많이 친해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엄청 친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왜?”
“네?”
“우리 모임에 민주 소개시켜준 사람 지연이 너잖아.”
“…저죠.”
“왜?”
“잘못한 건가요?”
“아니아니.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론 민주가 중훈이에게 마음이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까. 그냥 선한 의도로 중간에서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기는 한데…. 그건가?”
“음. 뭐. 그렇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할까요는 아니라는 말인데요?”
“…꼭 알고 싶어요?”
“아니. 꼭 알고 싶은 건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냥 뭐랄까….”
“…….”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니, 나에게 있어서는 유지연 씨가 최우선이니까, 괜히 민주 때문에 지연이가 중간에서 괜히 곤란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단지 그래서. 꼭 알고 싶은 건 아니야.”
“…….”
“미안. 내가 괜히 이상한 소리 했나 보네.”
“아니에요.”
“오케이 넘어가자. 혹시라도 기분 상했으면 미안….”
“…제가 그랬죠.”
“응? 뭐라고?”
“처음에 민주가 오빠에게 관심 있는 줄 알았다고.”
“…어.”
“그래서 그랬어요.”
“응?”
“민주가 처음에 오빠들에게 관심 보일 때, 같이 노는 거 재미있냐고 물어보고, 내심 자기도 같이 꼈으면 좋겠다고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할 때, 민주가 오빠에게 관심 있는 줄 알고, 그래서 절대로 껴주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
“그랬는데, 나중에 민주가 관심 있는 사람이 오빠가 아니고 중훈 선배라고 하니까….”
“…….”
“저 되게 못됐죠?”
“아니.”
“…….”
“누가 그래? 우리 지연이 못됐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놔둔다. 민형사상 책임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가만 안 놔두지.”
“…….”
“지연아.”
“…네.”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네. 나도. 음. 마찬가지였을 거야.”
“…네?”
“만약에 누가, 어떤 놈이, 지연이 너에게 관심 있다고, 그래서 같이 놀자고 했으면…. 꺼지라고 했을 거야. 아니, 반 죽여놨으려나?”
“…진짜요?”
“아니. 반 죽이는 건 좀 그렇지?”
“네. 그건 좀 그래요.”
“그래. 반 죽이는 게 아니다 아주 죽여버리… 아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
“…….”
“…좀 전에요.”
“어.”
“유라 언니가 그랬어요. 후회하냐고.”
“어떤 걸?”
“…오빠.”
“응.”
“저 부탁이 있어요.”
“뭔데?”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들어줘요.”
“응.”
“그리고 아무 말 하지 말아줘요.”
“응?”
“아무 말 말고, 그저 제가 하는 이야기만 들어줘요. 그리고….”
“…….”
“그리고, 제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 어떠한 반응도 하지 말아줘요. 오늘만. 아니, 이번 여행 끝날 때까지.”
“…그래.”
“약속해 줄 수 있어요?”
“그래. 약속할게.”
“…꼭이요.”
“그래. 꼭.”
“…….”
“…….”
“그날.”
“…….”
“그날 다들 있는 데서 제가 그랬잖아요. 오빠가… 좋기는 한데, 당장 사귀고 싶다거나, 남자친구가 되어줘서 나만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거나, 그런 마음은 아닌 것 같다고.”
“…….”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오빠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제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조금만 더 그때처럼 지내고 싶었어요. 선배들, 오빠들, 언니들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모여서 놀고. 그렇게 노는 게 너무 좋아서 그랬는데….”
“…….”
“그때. 오빠 입원했을 때, 따지고 보면 그건 나 때문인데, 내가 없었으면 오빠가 그런 일을 겪을 이유도 없었는데… 오빠는 그런 내게 원망은 하나도 안 하고. 오히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내가 놀랠까 봐 그렇게 나를 먼저 생각해 줬어요. 그런 오빠 모습 보면서 내가 너무 원망스럽고….”
“지연아.”
“…네.”
“미안. 듣고만 있으라고 했는데. 이 말은 꼭 해줘야 할 것 같아서. 괜찮을까?”
“…네.”
“그거 너 때문에 생긴 일 아니야. 너의 잘못 아니야. 제이슨 그 자식이 너의, 아니. 우리의 삶에 멋대로 끼어든 거야. 그리고 그때도 말했지만, 만약 도촬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로돌아간다면? 제이슨 그놈하고 변호사가 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나는 절대로 널 혼자서 거기로 보내지 않을 거야. 절대로. 나는 전혀 원망하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너에게 내가 힘이 되어줬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워. 진심으로.”
“…다시 듣고 싶었어요.”
“응?”
“그때 오빠가 병원에서 그렇게 말해줬던 그 기억, 백번도 넘게 되돌렸어요. 오빠의 그 말. 다시 듣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듣고 싶을 때 말해. 또 해줄게.”
“…나중에 또 해주세요.”
“그래. 또 해줄게. 그리고 미안. 이제 조용히 있을게.”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마음속에서 자꾸 커져가는 오빠 모습을 눈치챈 게.”
“…….”
“오빠가 기훈이 매수하겠다고, 전세 보증금 마련해주겠다고 했을 때, 기훈이 할머니와 더불어 아버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오빠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데…. 저는 그저 후배일 뿐이지만, 그렇게 사려 깊게 생각하는 오빠의 모습이 엄청 멋지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많은 사람을 만나본 건 아니지만… 오빠 같은 사람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
“…처음으로 욕심이 난다고 생각했어요.”
“…….”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오빠랑, 선배들이랑 같이 전셋집 보러 다니고, 창회 오빠 자취방에 모여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할머니에게 오빠의 진심을 전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그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 이사하는 날도, 몸은 힘들었는데 마음은 행복했어요. 할머니랑 열심히 이것저것 나르면서, 죽을 때까지 이날의 기억은 잊어먹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행복했었어요.”
“…….”
“그때뿐만이 아니에요. 오빠들이랑 놀 때도, 그냥 농담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다 같이 과방에 모여 사문위원회라고 하면서 놀 때도, 같이 알바할 때도, 다른 사람들 모르게 우리 둘이서만 같이 영화 볼 때도… 행복했어요. 진짜 행복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걱정될 정도로 행복했어요. 행복했는데….”
“…….”
“그랬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자꾸 그날이 계속 떠올랐어요. 나만 바라봐줬으면 하는 거 아니라고,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고, 다 같이 웃는 게 좋다고, 그렇게 쉽게 말했던 그 날이 떠올랐어요. 떠오르고 계속 후회했어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는데….”
“…….”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오빠가 하는 모든 말, 모든 행동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오빠도 나만 봐줬으면 좋겠다고 욕심이 나요.”
“…….”
“모르겠어요. 이게 사랑인지. 아직 한 번도 누굴 사랑해본 적 없고,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어서,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해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마음이고,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감정이라는 거.”
“…….”
“저 오빠 좋아해요. 진심으로.”
“…지연아.”
“미안해요. 그때도 그렇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연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나는 지연이에게 이야기를 듣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잡지도 못하고 그렇게 멀어져가는 지연이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