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ver the family business! RAW novel - Chapter 230
231 : 고열(高熱)
월요일 오후, 나는 어김없이 카페에 나와 있다.
오후 2시 출근, 오픈조와 교대하고 마감까지. 이게 월요일의 내 알바 스케줄이다.
하지만 이 스케줄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만두는 건 아니고, 다음 주에는 개강이니까. 개강하면 6시 출근으로 스케줄이 바뀌게 된다. 대학생 알바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나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스케줄을 바꿔야 하는 알바들 때문에, 전체 업무 스케줄이 조금씩 꼬여버릴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임시 점장인 병진이 형이 매우 골치가 아프겠지만,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기는 하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형에게 조금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점장 누나가 완전히 본사로 들어가고, 누나 대신 내려온다는 신임 점장은 감감무소식인 상황에서, 병진이 형은 정직원 계약하자마자 제대로 본사 교육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임시로 점장의 역할까지 떠맡은 상황이다.
병진이 형과 내가 쌓은 우정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난 알바라 모르겠는데요?’ 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또 병진이 형 옆에서 적극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기껏해야 알바 빵꾸나면 달려가 도와주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냥, 옆에서 심정적인 지원이나 해주는 수밖에.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 심정적 지원은 별로 필요가 없을 거다.
점장 누나가 병진이 형 옆에 있으니까. 경험이 풍부한 직장 상사이자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내 도움 같은 게 뭐가 필요하겠어?
그러니 형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냅두자.
사실 형을 신경 쓰기에는 오늘 내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
지금도 그랬다.
오후 4시가 막 넘은 시간. 평소였다면, 점심 피크타임과 퇴근 러시아워 사이의 평화로운 여유를 즐겨야 하는 그런 시간이지만, 지금 내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서현 씨, 그리고 지연이 때문에.
상황은 되게 심플하다. 서현 씨와 지연이가 있고, 그리고 그 두 사람과 나 사이에 이벤트가 있었다. 그렇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둘 중에 누가 더 좋으니까, 그 사람이랑 사귀어야겠다. 그렇게 간단히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이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풀리기는커녕, 머릿속에서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 가고 있으니 그게 더 미치겠는 거지.
그렇게 생각에 치이다,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는 마인드로 괜히 애먼 스팀 노즐만 닦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원래는 알바 중에 깨톡을 하거나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규칙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알바 중에 개인적인 전화를 잘 받지는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안 받았을 텐데, 더군다나 모르는 번호였으니 받을 이유도 없었는데, 어쩐지 그 전화는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한수?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네. 누구세요?”
-나 유지훈이야. 지연이 오빠.
“아. 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지연이 알바하는 날이지?
“네. 맞아요.”
-근데 오늘 지연이 알바 못 갈 것 같아. 상태가 조금 안 좋아.
“네? 어떻게 안 좋은데요?”
-열이 좀 많이 났어. 거의 39도까지 올랐었거든.
“39도요? 지금 병원이에요?
-병원은 오전에 갔다 왔어. 수액을 맞고 왔더니 조금 내리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직 열이 좀 남아 있는 상황이라서, 그래서 오늘은 알바를 못 갈 것 같은데.
“아. 네. 알겠습니다.”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죠. 아니, 괜찮은 게 아니고, 아프면 무조건 쉬어야죠. 지금 지연이는요?”
-지금은 자고 있어. 좀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알바 갈 거라고, 가야 한다고 헛소리하길래, 일단은 좀 자고 상태 괜찮아지면 가든지 말든지 너 알아서 하라고 그랬는데,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아서. 무리해서 나갔다가 괜히 너한테까지 피해 주면 안 되잖아.
“저한테 피해 주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죠. 아픈데 일단 낫는 게 중요하죠. 지연이 진짜 괜찮은 거예요?”
-일단 병원에서는 특별히 이상은 없다고. 몸살 같다고 그러네. 혹시 여행 중에 뭐 특별한 일이 있거나 했던 건 아니지?
“아니요. 특별히는…. 등산을 하기는 했는데….”
-등산? 우리 집 보물 같은 막내 여동생을 억지로 산으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 보물 같은 막내 여동생에게 자원 채집 할당량을 안겨주던 오빠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죄송합니다.”
-아니야. 농담이야. 등산 갔다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지연이가 그 정도도 못 버틸 체력은 아닌데…. 뭐. 아무튼. 결론적으로 오늘 지연이가 알바를 못 가게 될 것 같다. 이겁니다.
“…알겠습니다.”
-괜찮겠어?
“네?”
-알바.
“네. 괜찮습니다.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지연이가 걱정이네요.”
-이따가 일어나면 그때 전화하라고 할게. 아무튼 미안해. 갑자기 이런 일로 전화해서.
“아닙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잠시 휴대폰을 그대로 바라보았다.
어제 보았던 지연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니, 평소와는 달랐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신체적으로 힘겨워 보인다든가, 어디가 아파 보인다든가 그런 징후는 없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열이 39도 가까이 올랐다?
무리가 되기는 되었던 거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알바를 빠졌다고 투덜거릴 정도로 개념이 없진 않다. 나도 지연이가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 일을 해주는 것보다 얼른 빨리 낫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그렇고….
이럴 때는 또 방법이 있지.
나는 휴대폰 주소록을 열고, 그 안에서 이름 하나를 찾아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짧은 통화 연결음 뒤에 이어지는 병진이 형의 목소리.
-오! 내 동생 한!쑤! 어쩐 일이십니까?
“…형. 지금 통화 괜찮아?”
-그럼 괜찮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수 전환데.
아니. 이 양반이 오늘 뭘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업되어 있어?
“형.”
-응?
“오늘 데이트 있구나?”
-에이. 뭘, 그런. 티 났어?
“어. 목소리가 아주 제대로 업되어 있는데?”
-하하하. 업되어 있기는 무슨. 평소와 같구만. 그나저나 어쩐 일로 형에게 전화를 다 주셨나?
“형.”
-응?
“알바 빵꾸났어.”
-…어?
“지연이가 갑자기 아파서 못 나오게 되었대.”
-…그런데?
“내가 누나한테 전화할까? 오늘 형 땜방 뛰어야 한다고?”
전화기 너머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유지연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가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과 고요함이었다.
그런 어둠과 고요 속에서 눈을 뜬 유지연은 자신이 깨어났는지, 아니면 아직 꿈속에 머물러 있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다가, 손을 뻗어 전화기를 찾았고, 전화기를 잡고 나서야 자신이 깨어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유지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후 8시 21분.
알바 출근 시간인 오후 6시에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유지연은 잠시 멍한 시선으로 휴대폰을 바라보다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땀에 흠뻑 젖은 잠옷이 그녀의 몸에 붙어 불쾌한 느낌을 만들어냈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유지연은 당황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몸부터 일으켰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바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시간, 알바, 한수 오빠, 어둠, 지각.
그런 단어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이고 있었다.
전화. 전화부터 해야겠어.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나서야 그렇게 결정한 유지연이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그녀의 눈에 휴대폰 상단 바에 자리 잡고 있던 깨톡 알림이 보였다.
-이야기 들었어. 오늘 병진이 형이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푸욱 쉬세요. 건강이 최우선이야!!!
한수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유지연은 잠시 동안 그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손을 움직여 글자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답장을 쓰려던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지연은 그렇게 손을 멈춘 상태로 휴대폰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미안하다. 아파서 잠들었는데, 지금 깨어났다. 그렇게 보내면 되는데, 하기 어려운 말도 아니었는데, 그랬는데도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휴대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유지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지연쓰? 아직 자나? 일어났네?”
“…오빠?”
“언제 일어났어? 괜찮냐? 어디 봐봐.”
오빠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유지연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네. 배 안 고프냐? 밥 먹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오빠를 유지연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니네 한수 오빠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가 전화해서 이야기해놨어.”
“…언제?”
“한 4시쯤?”
“왜 오빠 마음대로….”
“그러면? 그 상태로 알바 가겠다고? 그럼 니네 한수 오빠가 참 좋아라 하겠다. 그치?”
“….”
“고맙기는. 천만에. 오빠가 다 그런 거지. 됐고.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나와. 약 먹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빈속에 약 먹으면 속도 피부도 다 뒤집어진다. 엄마가 이불이랑 시트도 간다고 했으니까 나올 때 들고 나오고. 아니다. 이불은 내가 들고 나가야지. 쫌 비켜봐.”
유지훈은 그렇게 말하고 유지연이 덮고 자던 이불을 주섬주섬 모아 집어 들었다.
“깨어나면 전화해달라고 했으니까, 전화해 보든가. 아니, 지금은 바쁜 시간이려나? 아무튼 옷부터 갈아입고 얼른 나와. 엄마가 너 좋아하는 죽 끓여놨어. 죽 죽 전복죽~”
양팔에 이불을 안고, 그렇게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방 밖으로 걸어 나가던 유지훈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혹시 여행 가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평소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본다.
“….”
유지연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오빠를 바라만 보고 있다.
“…있었네. 빨리 옷 갈아입어.”
유지훈은 그렇게 말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유지연은 닫히는 방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괜찮아?”
-네. 이제 괜찮아요. 열도 내렸고.
“저녁은? 먹었어?”
-네. 엄마가 죽 해줬어요.
“그래. 잘했어. 아플 때는 밥, 약, 잠. 이 세 개는 꼭 지켜줘야 해요.”
-…죄송해요.
“뭐가요?”
-오늘 못 가서….
“죄송하긴 뭐가 죄송하냐? 만약 그런 상태에서 오늘 왔으면 그게 진짜 죄송한 거야.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지. 그런 생각 할 필요 없어요. 그나저나 진짜 괜찮은 거지?”
-네. 이제 괜찮아요.
“조금 괜찮아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약 꼬박꼬박 챙겨 먹고, 에어컨 쎄게 틀지 말고.”
-…네.
“그래. 알았어. 일단 쉬어. 내가 이따가, 아니, 내일 전화할게. 오늘은 약 먹고 얼른 주무세요.”
-네. 죄송해요. 오빠.
“유지연 씨.”
-네….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
-네?
“우리 그 정도 가지고 죄송할 사이 아니라고요. 괜찮아. 아픈 게 더 죄송한 거야. 죄송하면 얼른 나아. 알겠지?”
-네, 고마워요. 오빠.
“그래. 내일 전화할게.”
-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데, 병진이 형이 궁금함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온다.
“지연이?”
“네.”
“괜찮대?”
“네. 약 먹고 쉬었더니 괜찮데요.”
“그래도 조심해야지. 병원 가서 수액도 맞고 왔다며?”
“그러게요.”
“그나저나, 둘이 어떤 사이야?”
“네?”
“그런 사이 아니라며? 혹시 우리 몰래 두 사람 사귀고 있고 그런 거야?”
“아니에요.”
“아니야?”
“네.”
“그래? 뭐, 아니면 말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병진이 형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형을 불렀다.
“형.”
“응?”
“혹시 오늘 끝나고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